크리스천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왜 필요한가

크리스천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 왜 필요한가

2020-01-08 0 By worldview

월드뷰 01 JANUARY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3


글/ 정동수(사랑침례교회 목사, 인하대 기계공학과 교수)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재 상황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자유 민주주의, 자유 시장 경제를 국시로 하여 새 국가로 출발하였다. 대한민국의 자유 헌법은 미국의 헌법을 기초로 만들어졌고 미국의 헌법은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국민은 비록 기독교인이 아니라 해도 이미 헌법을 통해 기독교의 사상과 자유의 가치를 누리고 있다.

좋은 헌법과 좋은 지도자들로 인해 대한민국은 지난 71년 동안 눈부신 번영을 누리며 세계 경제 10위권에 드는 부강한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그와 함께 우리 머리 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공산주의 국가가 존재하면서 지속적으로 자유 대한민국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해 왔고, 특별히 오랜 기간의 진지전(陣地戰)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의 모든 분야에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사상을 파급시켜 왔다. 또 전교조 교육을 통해 젊은 세대들이 심각한 사상적 해이를 보이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졸속 탄핵이라는 기이한 사태가 발생하여 대한민국에서는 법치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 뒤 등장한 문재인 정권은 공공연히 대한민국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려는 시도를 감행하였고 앞으로도 기회만 있으면 이 일을 하려 할 것이다. 또한 국가가 과도하게 개인의 삶에 파고들어 간섭하여 국민을 국가에 의존하게 만드는 사회주의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역사가 증명하듯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로 가게 되면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다. 지금의 번영은 물거품이 되며 모든 국민이 베네수엘라 국민들처럼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고 또한 북한에 의해 흡수 통합되어 모두가 자유를 잃게 될 것이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달려 있다


필자는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의 입장에서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은 교회와 목사들에게 있다고 확언할 수 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역사, 특히 국가를 잃고 70년간 바빌론 포로 생활을 하게 된 유다 왕국의 역사를 기록한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를 보면 당시 상황과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거의 똑같다고 할 수 있다. 유다 패망의 근본 원인은 백성의 영적 생활을 이끌고 나가는 지도자들의 타락에 있다. 그들의 특징은 화평이 없는데도 화평이 있다고 달콤한 말로 백성을 속이는 데 있었다. 한두 명이 아니라 대다수 지도자들이 그리하였으므로 백성은 자연스레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같이 회개하고 바르게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는 일단 그들의 귀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올바른 소리를 듣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기 때문이다.

“그 땅에서 놀랍고도 무서운 일이 이루어졌도다. 대언자들은 거짓으로 대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방법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렇게 하는 것을 사랑하니 그것의 마지막에는 너희가 무엇을 하려느냐(렘 5:30-31).”

이 말씀에 따라 결국 유다는 자기 지도자들의 거짓말을 신뢰하며 이집트를 추종하다가 바빌론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바로 이 시대에 예레미야는 분명하게 이집트가 아니라 바빌론을 따라야 멸망하지 않는다고 유다의 통치자인 시드기야 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또 이 모든 말씀대로 유다 왕 시드기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들의 목을 바빌론 왕의 멍에 아래에 두고 그와 그의 백성을 섬기소서. 그리하면 살리이다(렘 27:12).”

구약 시대 유다 왕국은 하나님의 선민들의 나라였지만 국력이 약하였다. 유다는 남쪽의 이집트와 북쪽의 바빌론 사이에 낀 채 왕과 지도자들이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바르게 외교를 해야만 나라가 유지될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눈물의 대언자로 알려진 예레미야가 무려 40년 동안 그들에게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 기준으로 보면 ‘완전히 정치 발언’이었다. 그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집트가 아니라 바빌론과 잘 지내야 유다가 살아남을 수 있음을 외쳤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과 제사장들 그리고 왕은 이집트와 예루살렘 성전을 신뢰하다가 결국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 멸망당하고 성전은 초토화되어 여우 같은 들짐승들의 거처가 되고 말았다.


외세에 둘러싸인 대한민국이 살 길


약소국 대한민국은 지금 유다와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일제 36년 식민 지배를 거치면서 우리는 우리 힘이 아니라 미국, 소련 같은 외세에 의해 해방을 맞이하였고 그 결과 남과 북이 둘로 나뉘게 되었다. 북한 김일성은 소련, 중국 등의 공산주의 대륙 세력과 연합하여 공산주의 국가를 세웠고 남한의 이승만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 민주주의 해양 세력과 연합하여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세웠다.

남한과 북한이 같은 조건에서 시작하였으나 7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둘의 상태는 천양지차를 보이고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속담이 있다. 북한은 사회주의, 공산주의와 더불어 어버이 수령 동지를 숭배하는 종교를 심었고 그 결과 2018년 기준 국민 1인당 총소득 1,200달러, 온 국민의 자유 박탈이라는 사악한 열매를 거두었다. 반면에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시장 경제와 더불어 양심의 자유를 허용하는 체제를 심었고 그 결과 2018년 기준 국민 1인당 총소득 30,000달러, 온 국민의 번영이라는 열매를 거두었다. 특별히 양심의 자유를 통해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일취월장하며 발전하여 현재 성도 수가 1,000만이 넘는 기적을 이루었다. 사실 대한민국의 번영은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강조하고 가르치는 기독교 프로테스탄트 정신에 기인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지난 몇 십 년 동안 대한민국에서는 마르크스 레닌주의자들을 제거하지 않고 약자로 보고 방치해 둔 결과 사회 곳곳에 이들이 영향력을 미치며 대한민국 체제를 바꾸고 대륙권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국가들과 연합하려는 시도를 하기에 이르렀다.

즉 대한민국이라는 선박은 먹고사는 문제는 성공했지만, 그것의 근간인 체제를 지키는 일을 게을리하다가 얼마 되지 않는 주사파 세력들에 의해 나라가 전복될 위기를 맞고 있다. 다시 말해 2,600년 전 유다 왕국에 일어난 일이 그대로 대한민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약소국인 대한민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미국, 일본, 캐나다, 호주, 영국 등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 민주주의 해양 세력과 동맹을 유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북한, 중국, 러시아 등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대륙 세력과 연합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뻔한데도 불구하고 입을 열어 바른 것을 외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전자가 아니라 후자를 택하면 당장 목숨을 잃을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인데도 대다수 교회와 목사들은 잠잠히 있다. 오히려 대다수 목사들은 로마서 13장을 들어서 모든 권력은 하나님이 임명하시므로 교회는 묵묵히 순종하고 따라가야만 한다고 가르치며 그리스도인들이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는 일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이들은 이것이 정교분리 원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교분리는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참여하거나 비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정교분리는 국가가 국교를 지정하여 국민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은 이미 완벽하게 정교분리를 시행하고 있다.


잘못 정립된 ‘정교분리’라는 허수아비 이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국민은 투표를 통해 자기의 권리를 대표들에게 일임하였을 뿐이다. 그러므로 국민의 대표들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 국가를 이끌고 나가야 한다. 그런데 대표들이 국민들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고 가면 주권자인 국민들이 그러면 안 된다고 의견을 표출해야만 한다. 이 일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종교, 출신 지역 등에 상관없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헌법이 이를 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 교회들이 동성애 반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낙태 반대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이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체제가 바뀌는 일이다. 자유 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체제가 바뀌고 한국·미국·일본 동맹에서 북한·러시아·중국과의 동맹으로 바뀌면 지금 대한민국의 교회와 국민들이 당연히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일시에 잃게 된다. 사실 동성애 반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낙태 반대 등은 사회주의 시스템이 되면 아예 목소리를 낼 수도 없다.

그렇기에 목사들과 교회들은 동성애, 차별금지법 제정, 낙태 같은 지엽적인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체제를 뒤바꾸려는 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강력하게 내야만 한다. 그래서 확고하게 자유 민주주의 시장 경제 체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지키면 이런 지엽적인 문제들은 쉽게 자동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교회와 목사는 무조건 정부에 100% 순종할 수 없다. 우리는 로마서 13장 1~7절 말씀에 근거하여 정부의 치리자들을 존중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같은 절대적인 규정이 아니라 시대와 환경에 따라 실천 측면에서 유동성이 있는 실천 윤리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로마서 13장 한 부분을 가지고 무조건 치리자들에게 순종해야만 한다는 절대적인 규정을 가르치면 안 된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그리스도인들은 정부나 정부 지도자들에게 항거해야만 하는가?

<답: 정부에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 되면 그때는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정확하게 알려주는 진실이다. 이런 실천 윤리는 100% 사람이 지킬 수도 없고 특히 양심의 자유를 지키려면 거기에 매일 수도 없다. 신·구약 성경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백성이 국가의 통치자나 종교 지도자들의 명령을 거부할 때 오히려 복을 주신 사례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1. 출애굽기 1장에 보면 이집트의 파라오는 유대인 산파들에게 히브리 여인들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산파들은 왕의 명령에 따르지 아니하였다. 그러자 오히려 하나님은 산파들의 집에 복을 주셨다.

2. 다니엘서 3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은 두라 평야에 커다란 형상을 세우고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에게 그 신상 앞에 엎드려 경배하라고 요구하였으나 그들은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다. 그 결과 그들은 용광로 속에 던져졌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 같은 형체의 존재를 보내셔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존귀한 자들로 삼아 주셨다.

3. 다니엘서 6장을 보면 다리오 왕의 신하들이 다니엘을 미워하여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리려고 어떤 신에게도 기도하면 안 된다는 칙령을 다리오 왕에게 내리게 하였으나 다니엘은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여전히 하루에 세 번 기도하다가 사자 굴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시고 오히려 가장 높은 위치로 승진하게 하셨다.

4. 마태복음 2장에는 예수님이 태어나던 때에 동방의 지혜자(박사)들이 헤롯 왕의 명령에 따르지 않은 일이 기록되어 있다.

5. 침례자 요한은 헤롯 왕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을 볼 때에 면전에서 그를 책망하였다.

6. 초대 기독교가 확립될 때 산헤드린 공회 지도자들은 제자들이 복음을 선포하지 말 것을 명하였으나 제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복음을 선포하였고 하나님은 이들의 일에 복을 주셔서 결국 복음이 전 세상에 퍼지게 되었다.

히브리서 11장은 구약 시대 믿음의 사람들의 행적을 보여 주며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한 점의 의혹도 없이 명확하게 보여 준다. 모든 권력에 순종하라고 말하는 성경은 동시에 왕의 명령에 불복종한 사람들을 믿음의 사람들로 명기하고 있다. 모세의 부모는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모세를 숨겼다. 이것은 그들의 믿음이었다. 모세 역시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과감하게 이집트를 버렸다. 이것은 모세의 믿음이었다.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는 그가 태어났을 때에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니 그가 특이한 아이인 것을 그들이 보고 왕의 명령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믿음으로 모세는 나이가 들었을 때에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절하고 잠시 죄의 쾌락들을 즐기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택하였으며 또 그리스도의 치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주께서 보상으로 보답해 주시는 일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이니라. 믿음으로 그는 왕의 진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이집트를 버렸으니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분을 보는 것같이 하면서 견디어 냈느니라(히 11:23-27).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바로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불의를 보고 하나님의 공의로 항거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들을!

원래 정부는 인간 세상에 질서와 번영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이후에 친히 제정하신 제도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권력자는 하나님의 사역자이며 하나님의 일을 도모해야만 한다. 그는 인간에게 자유와 기쁨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가 하나님과 국민이 원하는 것에 반대되는 일을 하고 국민들을 탄압하면 기독교인들은 비폭력으로 항거해야 한다.

1517년 마르틴 루터는 그 당시 온 세상을 다스리던 로마 교황에 항거하여 프로테스탄트들의 시조가 되었다. 그래서 항거자라는 의미의 프로테스탄트들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정부를 운영하는 지도자들에게 비폭력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바르게 행하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래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폭정을 행하던 영국에 항거하여 자유를 획득하고 미국이라는 자유 국가를 만들었으며 일본강점기에 일어난 3.1 운동과 같은 것도 폭정에 항거하여 다수의 기독교인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사건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우리 주 예수님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라…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산 위에 세운 도시가 숨겨지지 못하리라…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밖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부패하고 어두운 세상 안에 살면서 방부제와 빛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우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

그러면 지금 위기를 맞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선한 행위는 무엇인가?

동성애 반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낙태 반대 같은 것은 다 선한 행위들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고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체제를 지키는 것이다. 그래서 결코 사회주의로 넘어가지 못하게 대한민국 헌법을 지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들과 목사들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같은 유물론 체제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의 가장 큰 위협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치고 외쳐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과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지키는 선한 행위이며 하나님을 심히 기쁘게 하는 일이다.

인류 역사에서 정교분리를 가장 먼저 헌법에 명시하고 완벽하게 실천해 온 미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이 시각 바로 이렇게 하고 있다.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주의, 동성애, 차별금지법 제정, 낙태 등을 반대하는 글을 적고 국회의원들에게 편지를 쓰며 목사들이 폭스 뉴스, CNN 같은 매체에 나와서 분명하게 이런 것들을 반대한다고 밝히며 이것을 반대하는 국회의원들과 대통령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목사와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 위배되는 정책을 펴는 지도자들에게 적극적인 항의 편지를 보내고 유튜브 영상을 찍어 배포하며 광화문 광장, 청와대 앞 광장 등에 모여 법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선한 행위이고 하나님을 심히 기쁘게 하는 행위이다. 오히려 이런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직무 유기이며 세상이 하나님을 모독하도록 방치하는 악한 행위이다.

그러므로 마귀가 통치하는 어두운 세상에서 밝은 빛을 적극적으로 내며 하나님의 가치를 알리는 것, 특히 사회주의, 공산주의로 가면 안 된다고 소리를 내고 정보를 공유하고 집회에 나가며 또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재정적으로 돕는 것은 성경이 분명하게 규정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지상에서의 의무’이다.

<dsjung@inha.ac.kr>


글 | 정동수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립대 기계공학과 석사,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 기계공학과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메릴랜드 주립대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영어 킹제임스 성경 주번역자이다. 현재 인하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 사랑침례교회 목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