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벌벌 떠는 ‘플랜맨’들에게

두려워 벌벌 떠는 ‘플랜맨’들에게

2019-12-22 0 By worldview

영화 <플랜맨>(The Plan Man. 2014.) 비평


월드뷰 12 DECEMBER 2019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3


글/ 황선우(세종대 트루스포럼 대표)


‘플랜맨(The Plan Man)’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걸까. 계획적인 사람? 그런 사람은 ‘A Man of Planning’이다. 플랜맨은 ‘계획’을 특징으로서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름 그대로 계획이 곧 자기 자신인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그의 삶은 계획을 넘어선 계산이 된다. 인간이 아닌, 마치 ‘계산기’라는 기계처럼 살아간다.

우리 인간에게 계획이란, 말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언 16:9).”를 인정할 때 비로소 성립된다. 내 삶의 주인은 내가 절대 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주인님이라는 뜻의 ‘주님’을 온전히 사모할 때에야 인간으로서의 계획된 삶을 살 수 있다. 이를 넘어서 인간이 하나님의 계획까지 자신의 계획에 놓으려 하면 그것은 계산이 되어 불안과 초조로 다가온다.

2014년에 개봉된 영화 <플랜맨>은 플랜맨 한정석(정재영 분)의 삶을 그리고 있다. 한정석은 1분 1초 모두 나눠 계획을 세워 1초의 흐트러짐 없이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 자신을 스스로 성실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변인들은 그가 플랜맨의 삶에서 살짝 벗어나 처음으로 지각했을 때 오히려 환호를 보냈다. 그의 삶은 과했다. 그에게는 사랑도, 행복도 없었다. 계산만 있을 뿐이었다.

영화 《플랜맨》 포스터.


플랜맨의 사랑


한정석을 플랜맨의 삶에서 벗어나게 해준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첫 번째 사랑은 매일 12시 15분 정각에 1초도 늦지 않고 가던 편의점에 있었다. 정석은 거기서 늘 일하고 있던 이지원(차예련 분)이 자신과 마찬가지로 결벽 증세가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라면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본인의 그런 모습이 너무 싫어 병원에 다니는 중이었고, 자신에게 대시하는 정석에게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정석은 거절당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울적했지만, 포기가 되지 않아 자신도 변하고자 노력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한정석 변화의 시초가 되었다.

그는 첫 번째 사랑을 이루기 위해 병원도 다니기 시작하는데, 크게 효과는 없었다. 오히려 그와 극명하게 다른, 자유분방한 음악가 유소정(한지민 분)과 함께 지내면서 변하기 시작한다. 정석이 소정과 지내기 시작한 건 소정이 지원에 대해 잘 알아서 지원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정석은 오히려 소정의 영향으로 본인이 조금씩 변화하는 걸 느꼈고, 결국 사랑이 옮겨간다. 묶여 있던 자신이 자유롭게 되는 데 도움을 준 소정을 향해 두 번째 사랑을 시작한다. 사실, 첫 번째 사랑은 엄밀하게 말해 사랑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성실함이라 착각했고, 그런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보고 가진 동질감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신은 변하기 위해 병원까지 다닌다고 해 정석은 당황한 것이었다.

소정과 정석. ⓒNAVER 영화.


플랜맨의 상처


정석은 조금씩 변화하면서 사랑에도 차차 다가갈 수 있었고, 또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정석에게는 상처가 있었다. 그 상처는 어릴 적의 너무나 두려웠던 기억, ‘기억력 소년’이었다.

기억력 소년 한진우(조용진 분). ⓒNAVER 영화.


한정석의 본명은 한진우였다. 이 아이는 기억력에 천재성이 있다고 해 유명세를 치른 후 한 방송에 출연했다. 그리고 이 방송에서 그의 기억력을 숫자 맞추기에서 보여주면 그는 미국 유학을 갈 수 있었다. 진우 어머니는 진우가 유학 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방송 제작진과 조작을 해 진우에게 답을 미리 알려준다. 어머니와 제작진은 진우에게 기대를 잔뜩 모았다. 하지만 진우는 어머니와 떨어지는 게 너무 무서웠다. 또한, 진우에게 어머니와 제작진의 바람은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진우는 일부러 틀린 답을 선택해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기를 선택한다.

결국, 조작한 게 들통나자 진우 어머니에게 사람들의 비난과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졌고, 어머니는 충격에 기절한다. 이것이 진우와 어머니의 마지막이었다. 진우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어머니가 죽었다는, 어머니와 떨어지는 것이 싫어서 했던 선택이 어머니를 죽음으로 이끌었다는 죄책감에 빠진다. 그래서 진우는 이름도 바꾸고, 직업도 세상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 도서관 사서로 선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늘 완벽함을 강조하던 어머니의 압박이 싫었지만, 그 어머니에 대해 죄책감이 생겨 오랜 시간 완벽주의에 빠진 채 살았다.

한정석은 이름을 바꾸면서까지 자신의 기억을 지우려 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소정을 만나고서야 플랜맨의 삶으로부터 조금씩 변화되었고,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봤다. 진우가 아닌, 다 큰 정석은 “무서웠어요, 엄마”, “미안해요, 엄마”라 하며 울음을 터뜨린다. 한정석은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소정에게 고백하고 최초의 사랑을 한다.


분별과 계산의 차이


하나님은 우리가 계산기처럼 살길 원하지 않으신다. 무언가 결정할 때,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갖길 원하신다. 내가 존엄한 인간이라 할 때, 그것이 어떠한 계산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말씀에 의한 분별이어야 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도 마찬가지다.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진정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우리의 지혜를 앗아간, 완벽주의에 목매달게 한 두려움은 어떤 것인가.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하다. 그 사랑만이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을 깰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주인 되어 움직이는 계산이 아닌,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 자리에 둘 때 오는 그 자유와 지혜만이 나에게 참된 사랑을 선물해준다.

<sunu8177@naver.com>


글 | 황선우

세종대학교에서 수학과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있고, 기독교 보수주의 청년 단체 <트루스포럼>의 세종대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월드뷰를 포함하여 여러 언론·잡지에 칼럼 및 수필을 기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