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을 위한 교육(Teaching for Transformation)
2019-02-04변혁을 위한 교육(Teaching for Transformation)
월드뷰 02 FEBRUARY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0 |
이상찬/ 별무리학교 교감
‘교육’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가르치는 자가 자신의 내면에 맺힌 의식을 털어놓을 때 배우는 이가 어떠한 내적 방어나 변명 없이 수용하여, 가르치는 자의 삶과 말을 전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람 또한 그렇게 살기를 기뻐하는 과정이라면 말이다. 게다가 일반적인 교육이 아니라 기독교적 내용을 교육의 중심부에 풀어낼 수 있는 일이라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그런 고민을 한지 8년 차다. 준비과정을 생각하면 10년이 넘었다. 충청남도의 맨 끝자락, 전라도 땅인가 싶은 그곳에 별무리 마을이 있다. 2010년부터 서울, 부산, 대전, 천안, 경기, 인천 등 전국에 흩어져 아이들을 가르치던 공립학교 선생님 서른 한 가정이 모여 마을을 이루었다. 해가 지면 하늘의 별들이 유난히 반짝이는 마을이어서 별무리 마을이다. 그 안에 마을과 공동체의 헌신으로 기독 학교 별무리 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그 학교는 공립학교 교사들이 뜻을 모아 지었지만 단순하게 기존의 학교를 비판하는 논리만으로는 참된 기독 학교를 세울 수 없다는 전제를 갖고 시작했다. ‘교육’의 참된 의미와 하나님 나라 안에서의 함의를 찾지 못하고 추진하는 모든 계획들은 그저 허무한 해프닝이란 전제였다. 이 학교가 10년 가까이 기독교 교육을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이뤄낼 지 고민한 과정을 살펴보면서 현장에서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찾아보자.
기독 교육을 꿈꾸다
학교를 시작하는 교사들에게는 꿈이 있었다. 하나님 안에서 ‘교육’의 참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잘 가르쳐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학생들이 자라나는 꿈이었다. 그런 학교의 정체성을 정의할 뿐만 아니라 이후에 모든 결정의 기준이 될 만한 가치를 찾아야 했다. 그런 전제로 제자도, 공동체, 소명, 샬롬이라는 네 가지 가치를 찾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삶을 자신도 따라가겠다는 ‘제자도’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가장 중요한 전제였다. 가르침이나 배움에 자기희생이 전제되지 않으면 자칫 개인의 성취를 사사로운 유익으로만 삼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 있는 일은 조직적이고 단계적이어야 한다.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필요해진다. 그런 마음으로 모인 무리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소명’이다. 자기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소명의 발견은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해 완성하고 싶어 하시는 회복의 역사의 시작일 것이다. 나아가 앞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가치의 실현은 한 사람의 주변에서 시작하여 지역사회, 민족, 열방을 평화롭게 하는 ‘샬롬’의 실현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네 가지 가치의 논의 끝에 별무리 학교의 교육 목적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책임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로 결정하였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인지 찾아야 했고 교육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나라’는 육신이 죽어서 가게 되는 소위 ‘천당’을 이야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이 몸담고 살아가는 ‘그 냄새 나는 나라’에 관한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책임’이 무엇이고 ‘그리스도의 제자’의 바른 모습은 어떤 것인지 논의했다. 그리고 끝으로 어떻게 하면 학교 안에서 아이들의 삶을 바꾸는 교육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교과목에서 모든 것을 끝내자
초창기 별무리 학교를 시작한 이들은 교사가 곧 교육과정이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당연하게 교사들이 가르치는 교과목이 매우 중요한 관건이었다. 그 배경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별무리 학교에 자원한 교사들은 경력과 전공 영역을 볼 때 소위 잘 나가던 사람들이 분명했었다. 적어도 자신이 가르치는 교과 속에서 전문적 내용 지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펼쳐 보이는 일에 능숙할 것이라고 자부했다. 자신이 전공한 교과목을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조명하는 것이 무엇이고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이라는 틀 안에 교과 내용을 어떻게 재구성할 때 가장 극대화된 교육 효과가 있을지를 연구하였다. 그런데 몇 년을 지속하지 않아 이런 과정이 지식의 구조와 기능이 중시되는 도구 교과(언어, 수학)에는 너무 작위적이라는 분석을 하였다. 내용 교과(사회, 과학 등)들은 현실적 이슈와 가치 중심의 이면적 특성이 있어서 구성이 다소 수월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속 시원하게 해결할 수는 없었다.
생각이 행동을 바꾼다
기독교 세계관적 관점으로 교과목을 재구성한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도로CTT(Christian thinking tool)를 통한 창조, 타락, 구속, 회복의 관점으로 교과목을 재구성하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이슈가 되는 개념의 성경적 원래 모습을 정의하고 현실에서 어떻게 타락하였는지를 밝혀낸다. 그런 후 예수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그 문제를 회복할 수 있을지를 학생들 스스로 숙고하고 논의하여 회복의 모습을 정의하고 그것에 적절한 행동을 체계적이고 발전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은 학생들의 고민과 당장 해결해야 할 행동 지침을 찾는 데는 매우 효과적이었고 가치 지향적인 교과목에는 적절한 기독교적 대안을 제시해주었다. 하지만 교육 활동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부분을 적용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꼈다. 교육 내용에는 가치 지향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지식의 구조 자체를 배우는 학문들이 주를 이루는 교실 현장에서는 적용의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이것도 결국 가치 중심의 교과엔 효과적이지만 도구 교과(언어, 수학) 등의 교과목엔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중핵 교육과정을 생각하다
‘무엇이 기독 교육의 참모습일까?’라는 고민을 이어갈 무렵 별무리 학교는 매우 중대한 사회적 도전에 직면했다. 고등 과정을 설계하며 여실하게 드러난 학생들의 진로와 진학의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도전이었다. 2015년 고등 과정 첫해를 진행하면서 갈등은 최고조에 달했다. 나름 철저한 준비를 하고 시작한 고등학교 교육과정이었지만 학생들은 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를 치른 후 누가 나서지 않아도 스스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명확한 모의평가 등급으로 자신들을 평가했고 1등급부터 9등급까지 분명한 기준에 의해 나뉘었다. 인성, 도덕성, 가치, 지향점 등등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은 학력 중심의 기준이 너무나 명확하게 학생의 판단 기준이 되었다. 더 심각한 것은 낮은 등급 학생들의 학습 의욕이나 참여도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낮았다는 것이다. 1학기를 마치고 학생들을 지켜보던 교사들은 깊은 회의에 빠졌다. 고등학교가 대학이라는 상급학교의 진학에 매어 학생들을 등급으로 평가해 버리는 수준을 뛰어넘지 못한다면 이 시대 별무리 학교를 세운 의미가 없다는 확신을 하게 되었다. 교사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어떤 방향으로 학교의 방향을 잡아야 할지 책을 읽고, 논의하고 결국 교과 교육과정 속에 기독교적 가르침을 내포한 ‘중핵 교육과정’을 추가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도를 바탕으로 공동체적 샬롬과 공동체적 소명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고 담당자들끼리 교육과정을 만들기로 하였다. 환경/생태, 인권, 경제, 사회/문화의 네 가지 영역을 구분하여 학년별, 내용별 위계를 생각하여 핵심 교육과정을 구성하였다. 다음 학기 교장선생님을 비롯한 전 직원들은 학부모 총회에서 별무리 학교는 진학 중심의 입시 교육을 포기하고 진정한 기독교성을 갖춘 제자를 키우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그리고 이 선언을 전후하여 20여 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떠났다.
Teaching for Transformation
중핵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한 교과 교육과정의 운영은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성격 특성에 맞는 전공 적성을 찾고 그것을 중심으로 진로를 탐색하여 직면해보고 경험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 명확한 학과나 직업을 찾아 공부하고 대학을 준비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배운 것들을 자신들의 삶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과정이 성경적인지의 여부였다. 그야말로 정교화된 여타 세속적 진로 교육과 무엇이 다른지 규명할 필요를 느꼈다. 그때 별무리 학교에 TfT(Teaching for Transformation)가 소개되었다. 이전에 중핵 교육과정을 계획하며 다루는 내용(인권, 경제, 문화 등)들 속의 가치와 개념에 관한 부분들이 도출될 때는 교사 나름의 기준을 갖고 가르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미묘한 차이에서 생기는 혼란은 학생들이 겪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정리가 필요한 대목이 생긴 것이다.
성경 속에 서술된 창조의 이야기는 왕 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완전함을 따라 충만한 기쁨으로 온 세상과 만물과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것이다. 창조는 모든 완전함의 극치로 하나님에게 완전한 기쁨이요 인간에게는 궁극의 조건이었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얼마나 완벽했는지의 증거는 인간의 불순종까지 허락되었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지은 인간에게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을 거역할 선택권을 허락하셨고 인간은 보란 듯이 그를 거역하였다. 인류의 역사는 결국 타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하나님의 창조 섭리는 그렇게 끝날 것 같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세계를 회복할 뜻을 꺾지 않으셨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공의의 제물로 십자가의 형벌을 받게 된다. 십자가에 예수가 죽음으로 인류는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온전한 회복의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를 부름으로 누리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이 처음 창조 때처럼 온전한 회복의 메시지는 인간의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충만한 기쁨의 ‘하나님 나라’의 우주적 구원인 것이다. 이것은 ‘교육’의 새로운 정의를 가능하게 한다. 교육은 배우는 자를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하는 것이어야 하고 초대받은 이들을 극진하게 양육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렇게 양육된 학생들이 이 세상을 향하여 자신의 손을 들어 예수님이 행하셨던 회복의 역사를 세상 곳곳에서 행하도록 독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 내용에 있어서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무슨 내용이 학생들의 영혼을 성장시킬지 고민해야 한다. 어떤 교과가 학생을 하나님 나라로 초대할 수 있는지 고민하여 교육과정 속에 배치해야 하고, 어떤 활동이 학생들을 발달 단계에 맞게 양육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구성해야 하고, 어떤 가치가 학생들이 배울 뿐 아니라 행동하게 하는지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는 흔들릴 수 있는 인간관의 기준을 잡는 데 이정표를 제공했다. 창조의 본래 모습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해야 할 원래적 모습,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의 나라를 꼭 회복시키겠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의지를 알 수 있었다. 특히 선험적으로 특정 지은 회복의 모습을 열거한 인간상에 대한 서술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책임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내 주었다. 지역을 섬기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추진되던 다양한 프로젝트들의 방향성과 가치를 알게 해주었고 그런 활동들을 어떻게 서술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맺으며
정리하자면, 학교 현장에서 어떻게 기독교적 교육을 할 수 있을 지의 고민을 기독학교로서는 절대 쉬지 않아야 한다. 교과교육 만을 통해 그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도 직접 실천해본 이후엔 별반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고 과정을 체계화하여 창조, 타락, 구속, 완성이라는 프레임 속에 내용 체계를 대입 시키듯 풀어내는 방법은 단독적 이슈나 개념에는 가능하지만 구조적이고 전향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지식 체계 전체를 다루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창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이야기를 찾아내고 그 맥락 속에서 교사가 함께 변혁을 몸으로 느끼며 동참하는 변혁적 가르침을 통해서만 배우는 자들의 삶을 혁신할 수 있는 교육이 가능할 것이다.
<temist@naver.com>
글/ 이상찬(별무리 학교 교감)
한동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생물교육을 전공하였고 2012년부터 19년 차 공립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교사들과 함께 충남 금산에 별무리마을을 세우고 그 안에 별무리학교를 만들어 초, 중, 고 교육과정이 마을 공동체와 어울어지는 교육공동체 형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