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복지국가 어디쯤 와 있나
2021-12-07
월드뷰 DECEMBER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5 |
글/ 이상은(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들어가는 말
한국은 그동안 급속하게 발전했다. 경제적으로 세계 10위권으로 성장했고,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이러한 경제적·정치적 발전을 기반으로 복지도 급속하게 성장해 한국은 주요 사회복지정책을 거의 다 도입했다. 출산 지원, 육아휴직, 아동급여, 교육 보장, 의료보험, 산재보상, 실업 보장, 노령·장애·유족연금, 노인에 대한 장기요양제도, 최후의 안전망으로 빈곤 정책까지 거의 모든 복지제도를 갖추었다.
한국은 그동안 OECD 국가 중에 복지지출이 가장 빠르게 증가했으며, 그 결과 복지에 대한 인식도 상당히 달라졌다. 과거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복지국가가 아니라는 인식이 우세했으나, 2000년대 이후 이러한 인식은 많이 변화되었다. 2000년대 중반 무렵 강의 중에 학생들에게 한국이 복지국가인가를 질문하면 약 절반쯤은 그렇다고 응답했으나, 이제는 한국이 복지국가가 아니라고 답하는 학생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복지정책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면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주요 국가들과 비교해서 한국의 복지는 어디쯤 와 있을까? 또 어디로 가야 할까?
주요 서구 복지국가들과 비교해 본 한국 복지의 위치
1) 미국과 한국의 복지 비교
우선 미국과 비교해 보자. 미국은 서구 복지국가 중에서 대표적인 복지 후진국으로 분류된다. 미국은 주요 복지제도 중에서 없는 제도가 상당히 많고, 그 대상이 제한적이거나 급여 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제도가 없다. 미국은 아동수당제도나 보편적 보육서비스제도도 없고, 보편적 장기요양보호제도 없다. 전 국민에 대한 기초생활보장제도도 없다. 그렇다고 사회보장제도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적 건강보장은 노인 및 장애인과 저소득층에 대해서만 제공되고, 일반 경제활동 연령층의 중산층에 대해서는 제공되지 않는다. 아동급여나 보육서비스도 저소득 가구, 특히 모자가정으로 대상이 제한된다. 장기요양서비스도 저소득층으로 제한되며, 빈곤 가구에 대한 현금급여도 주로 근로 무능력 빈곤 가구로 제한된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근로 능력 가구에 대해서는 공적 보장이 약하고, 주로 근로 능력이 없는 가구를 중심으로 공적 사회보장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사회보장의 포괄성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과거 1990년대만 하더라도 한국은 주요한 사회복지제도가 도입되지 않거나,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복지 측면에서 미국보다 후진국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은 사회보장의 제도적 측면에서 미국을 앞질렀고, 미국에 없는 보편적 제도(전 국민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보편 보육서비스, 전국민기초보장제도 등)를 구축했다. 그래서 요즘은 학생들에게 사회복지정책을 공부하려면 미국에 유학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경영학이나 공학을 공부하려면 그 분야의 선진국인 미국에 가면 좋지만, 복지정책을 공부하려면 그 분야 후진국인 미국에 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2) 영국과 한국의 복지 비교
다음으로 영국과 비교해 보자. 영국은 과거 복지국가의 전형 중 하나로 인식되었다. 2차 대전 중에 그 유명한 베버리지 보고서를 기반으로 전후 복지국가를 구축했다. 영국은 소위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보장을 국민에게 제공하는 국가였다. 필자가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 중반, 베버리지 보고서를 복지국가의 청사진으로 알고 공부했다. 그 당시 영국에서 유학했던 교수님의 영국 이야기는 꿈만 같았다. 예를 들어 영국 학교에서는 우유를 무료로 제공했었는데, 대처(Thatcher) 정부 이후에 우유 무상공급을 중단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수님은 대처 정부에서의 우유 무상공급 중단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인데, 당시에는 그보다도 우유를 무상으로 제공했다는 것이 더 인상 깊었다. 이렇게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인식되던 영국은 1980년대 이후 대처 정부하에서의 복지국가 축소 시도로 소위 자유주의 복지국가로 분류된다.
우리는 그동안 영국의 복지체계를 많이 모방했다. 영국에서 실시되었던 많은 제도가 유사한 이름과 내용으로 실시되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소득부조(Income Support), 근로세액공제(Work Tax Credit), 아동세액공제(Child Tax Credit), 아동급여(Child Benefit), 주거급여(Housing Benefit) 등이 한국의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근로장려세제, 자녀장려세제, 아동수당, 주거급여 등의 도입에 주요한 기반이 되었다. 전 국민을 단일 제도에 포괄하지만, 빈곤 구제 수준의 낮은 급여를 제공하는 영국의 사회보험제도는 한국의 사회보험 제도 구축에 있어서 주요한 기준점 중의 하나였다. 사회서비스에서 최근 강조된 ‘지역사회보호’도 영국의 ‘커뮤니티 케어’가 주요한 준거 중의 하나였다. 그 결과 이제 한국의 복지제도는 영국의 복지 정도를 상당히 따라잡았다. 한국도 이제는 영국과 유사한 정도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의 생활을 보장하는 제도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모자라는 부분도 많다. 예를 들어 한국은 아직 상병수당이 없고, 아동수당도 만7세까지로 제한적이며, 현재 노인 중 다수는 공적연금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으며, 의료보장의 보장범위는 여전히 제한적인 등의 문제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은 영국에 비해 복지에 있어서 더 우수한 측면도 구축했다. 대표적으로 영국은 저소득층에 대해서만 보육서비스나 장기요양서비스를 제공하지만, 한국은 보편적으로 전체 아동 또한 전체 노인들에게 보육 및 요양서비스를 제공한다. 영국의 사회보험은 빈곤 구제 수준의 낮은 정액 급여체계지만, 한국의 사회보험은 더 높은 급여 수준을 제공하는 소득비례방식으로 구축되어 있다. 영국의 국가보건서비스(NHS)는 정부 재정으로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하지만, 오히려 의료서비스의 접근성과 질은 한국이 더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아동수당도 영국은 2010년대 초반 이후 일정 소득 수준 이하 가구의 아동에게 제한해 지급하지만, 한국은 소득에 무관하게(비록 연령이 7세 이하 아동으로 제한되지만) 모든 아동에 지급한다. 이처럼 한국은 이제 영국의 복지를 상당히 따라잡았다. 한국은 복지의 몇몇 부분에서 아직 부족한 점이 상당히 있지만, 영국보다 더 보편적인 사회서비스를 시행하게 되었고, 사회보험은 빈곤 구제를 넘어서 더 높은 급여를 제공하기 위한 소득비례 방식의 급여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복지 제도적 측면에서 이제 한국은 영국과 상당히 유사한, 또는 어떤 부분에서는 더 나은(물론 몇몇 부분에서는 더 못하지만) 복지 제도를 수립했다. 이제 한국 복지의 주요 관심은 영국 수준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이를 넘어서 유럽 대륙의 국가와 북유럽 국가 수준으로 더 나아갈 것인지로 향하고 있다.
3) 유럽 대륙 국가들과 한국의 복지 비교
유럽 대륙의 국가들은 사회보험 중심으로 높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벨기에, 이탈리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국가의 경우 사회보험 급여가 소득비례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어서 영국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의 급여를 제공한다. 영국의 사회보험이 빈곤선 수준의 정액 급여를 제공한다면, 유럽 대륙 국가들은 소득비례 급여를 제공함으로써 빈곤선 수준을 넘어서서 중산층의 이전 생활 수준을 보장한다는 특징을 가진다. 그래서 이들 국가는 사회지출 수준이 높다. 현재 OECD 국가 중 사회지출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는 프랑스로 GDP의 약 30% 정도를 사회적 급여에 지출하고 있다. 한국은 이들 유럽국가에 비교하면 사회복지의 급여와 지출 수준이 낮다. 한국도 사회보험은 소득비례 급여 방식을 형식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급여의 상한액이 낮아서 실질적으로 중산층의 생활 수준을 유지하기보다는 빈곤 구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앞으로 한국의 사회적 급여 수준을 높여서, 중산층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들 유럽 대륙 국가의 사회복지제도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이들의 경우 직역별·산업별 등 부문별로 별도의 사회보험제도를 구축해 왔기 때문에 부문 간에 사회보험의 격차가 크다. 또한, 이들 국가는 사회복지를 사회보험 현금급여를 중심으로 구축해 보육이나 장기요양 등 사회서비스 영역이 취약하고, 특히 가족 정책이나 적극적 노동 시장정책 등이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사회복지를 전체 국민을 통합적으로 단일 제도에 포괄하는 보편주의적 방식을 택해왔고, 사회서비스 영역을 발달시켰다.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는 한국의 복지가 유럽 대륙 국가들보다 더 나은 측면도 상당히 있다.
4) 북유럽 국가들과 한국의 복지 비교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경우에는 그동안 서구국가 중에서 가장 복지가 발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국가들은 소득비례 사회보험이 잘 발달해 중산층의 이전 생활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또한, 교육·의료·적극적 노동 시장정책, 그리고 보육 및 요양서비스 등 보편적 사회서비스가 일찍부터 발전했다. 사회서비스에서 이용자 부담을 소득계층별로 차등화해 소득계층과 무관하게 사회서비스에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그래서 북유럽 국가들은 소득보장과 사회서비스가 잘 결합하여 중산층의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은 아직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복지 수준에는 상당히 못 미치는 상황이라, 현금급여 수준을 인상하고 사회서비스의 보편적 접근성과 품질 향상을 도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복지국가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할까
지금까지 한국의 복지가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서구 복지 국가들과 비교해 살펴보았다. 한국은 독일 등 유럽 대륙 국가와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의 복지 수준에는 아직 못 미치지만, 미국의 복지체계를 넘어서서 영국에 상당히 유사한 수준으로 발전했다. 한국이 앞으로 유럽 대륙 국가나 북유럽 국가와 같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 국민의 복지국가에 대한 열망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러한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어떠한 측면을 고려해야 할까? 그 방향은 유럽 대륙의 국가보다는 북유럽 복지국가 형태가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유럽 대륙 국가들은 직역 및 산업 등 부문별로 분립적인 사회보험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현금급여를 제공할 수 있었지만, 부문 간의 사회보험 급여의 격차와 불평등의 문제를 야기해 왔다.
또한, 사회보험 현금급여 이외에 사회서비스 등에서 상대적으로 발전이 지체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비해 북유럽 국가들은 전 국민에 대해 단일의 통합적 사회복지를 제공하고, 또한 현금급여와 사회서비스 사이의 균형을 이루는데 상대적으로 잘 대처해 온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은 이미 통합적 사회보장 체계와 보편적 사회서비스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기반으로 유럽 대륙형보다는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형의 복지국가를 지향해 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급속한 고령화에 직면할 예정이다. 인구 고령화로 연금과 의료보장, 장기요양 등의 영역에서 지출이 급증할 수밖에 없다. 또한, 출산, 아동 양육, 청년층 교육 및 훈련 지원, 주거 보장 등 아동을 출산하고, 양육하는 데 대한 사회적 지원의 필요성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앞으로 아동과 노인, 청년과 장년 등 인구집단 간에, 또한 현금급여와 사회서비스 간에, 한쪽으로 치우쳐서 다른 쪽이 간과되지 않고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루도록 복지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salee@ssu.ac.kr>
글 | 이상은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이며 빈곤 정책, 연금, 아동수당 등의 소득보장정책과 복지국가 전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