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티니즘과 의학

리버티니즘과 의학

2021-11-24 0 By 월드뷰

리버티니즘과 성 혁명 (5)


월드뷰 NOV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5


글/ 민성길(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리버티니즘(libertinism)은 리버티니스트(방탕아)의 사고방식을 철학처럼 이론화하고 그럴듯하게 장식한 사상이다. 서구의 리버티니스트들은 전통적 기독교의 하나님이 주신 성 윤리를 거부하는 ‘자유’의 사람들이다. 이는 쾌락주의로 번역되는 ‘hedonism’과 비슷하지만, 보다 극단형으로, 그 전형적인 모습은 ‘orgy(또는 orgie)’로 나타난다. ‘Orgy’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①진탕 마시고 떠들기, 주연, ②(고대 그리스·로마에서 디오니소스를 모시던) 비밀 주신제(酒神祭), ③난교 파티, 섹스 파티. 역사적으로 유명한 리버티니스트로는 칼리굴라 황제, 시인 바이런, 사드 후작, 카사노바, 그리고 가상적인 인물인 돈 후안 등이 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돌아온 탕자” 이야기의 탕자가 바로 리버티니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20세기의 성혁명은 리버티니즘의 대중화라고 볼 수 있다.


의학의 기여

의학은 인간 섹슈얼리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일반 의사들은 일상적으로 성 기능, 임신과 출산, 육아, 성병, 음주-흡연-마약 문제 등을 관리해 준다. 따라서 방탕아들의 최종적 운명을 잘 알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의학은 리버티니즘을 조장하기도 했고, 그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고, 그 병폐를 수습하려 하기도 했다.

의학이 리버티니즘을 조장했다는 것은, 정신분석의 성 억압 이론, 피임약과 항생제의 발명, 낙태기술, 마약 제조기술, 킨제이 보고서, 마스터즈와 존슨(Masters & Johnson)의 성 생리학(오르가즘) 연구, LGBT의 정상화와 성적 자기결정권 옹호 등이 결과적으로 리버티니즘을 조장했다는 의미이다.

의학이 리버티니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의학이 ①리버티니즘의 결과로서 매독과 에이즈 같은 성병이 창궐함을 밝혔고, ②히스테리 현상(노이로제), 동성애, 물질남용 등 정신건강 문제가 리버티니즘과 관련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③성 위생 문제, 가정파괴, 출산 감소 등 리버티니즘의 사회적 합병증을 지적했다. 리버티니즘이 한 국가나 한 왕조를 멸망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로마제국의 멸망이 성적 타락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고, 중국에서도 ‘주지육림(酒池肉林-사치와 주색(酒色)에의 탐닉(眈溺)을 의미)’으로 왕조가 멸망했다는 고사가 있다.

의학이 리버티니즘의 병폐를 수습하려 했다는 말은, 역사적으로 의사들이 성과 관련된 개인의 건강문제를 치료해 왔을 뿐 아니라, 사회문화에 관해서도 의학적 연구에 근거하여 제언하고 행동하는 등 인간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모럴을 견지해 왔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모럴(moral)은 도덕과 윤리, 올바름, 확고한 정신 등을 의미한다. 의학은 성 관련 질병에 관한 연구와 치료를 통해 리버티니즘에 대해 경고했으나, 사람들은 잘 듣지 않았다.


성병

역사적으로 고대와 중세 서구에 성병이 있었으나, 의사들은 그 정체를 잘 몰랐다. 15세기에 매독이 등장해 페스트, 결핵 및 나병과 더불어 중세 사회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매독이 성적 문란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라 여겼다. 20세기에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매춘과 성병 문제가 장병들의 사기뿐 아니라 전투력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음을 새삼스럽게 다시 알게 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항생제 페니실린의 발견으로 성병에 대한 공포가 줄어 다시 성 문란이 조장되었다.

1960년대의 성 혁명과 인권운동으로 동성애가 ‘정상’으로 인정되자, 동성애 문제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들이 나타났다. 1980년 동성애자들 사이에 에이즈가 발견되었다. 에이즈는 이성애자에게로 퍼져갔다. 에이즈 공포 때문에([사진 1] 참조) 사람들 사이에서 에이즈도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말이 떠돌았다. 성 문란은 다소 진정되었으나 조만간 의학의 발달로 에이즈가 치료된다고 알려지면서 다시 사람들이 함부로 행동하게 되었다. 그 결과 에이즈는 물론 다른 일반 성병 감염도 덩달아 증가했다. 에이즈가 면역기능을 떨어트려 암 발생률이 높아진다는 사실과 특히 구강-항문 성교로 간염과 이질과 같은 소화기계 장애가 생긴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사진 1] 에이즈 공포를 나타내는 에이즈 사망자 수에 대한 뉴스 보도


프로이트 정신분석

20세기 리버티니즘의 부흥에는 정신분석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즉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히스테리가 무의식에 억압된 성욕 때문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는 지식인들에게 ‘성본능의 해방’이라는 아이디어를 자극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어디까지나 현실사회의 임상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성 해방을 조언하지 않았다. 그는 쾌락원칙(pleasure principle)에 따라 성욕을 해방하기보다, 인격을 성장시켜 성숙한 자아의 힘으로 현실원칙(reality principle)에 따라 본능을 통찰하고, 승화 같은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방어기제로서 사회적 규범에 건강하게 적응하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성 해방론자들은 프로이트의 이론을 자신들의 논리에 따라 ‘성해방’을 주장하는 데 이용했다. 예를 들면, 프로이트는 소아성욕론이라는 용어로 각종 노이로제와 동성애 그리고 성도착증의 원인을 설명하고 따라서 소아기를 극복(master)하고 “성인의 현실 세계”로 성숙해 나오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소아의 성욕”은 어른들로 하여금 성적 쾌락을 추구하게 하는 성욕이 아니다. 이는 이차 성징이 나타나기 이전의 “비성적인 쾌락”(즉 pre-genital sexuality)으로서 성인의 성적 쾌락(즉 genital sexuality)과 같다고 보면 안 된다. 예를 들면 아기를 안아주면 아기가 좋아하는데, 이를 성적 쾌락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그러나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나 허버트 마르쿠제(Herbert Marcuse) 같은 프로이트-막시즘(Freudo-Marxism)의 성 해방론자들은 소아성욕론을 문자 그대로 곡해해서 어른이 소아의 성욕을 만족하게 해주어야 한다면서 소아성애를 옹호한다. 따라서 20세기 가장 유명한 철학자인 미셀 푸코(Michel Foucault)가 최근 소아 동성애 가해자임이 폭로되었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그의 비밀이 지금껏 지켜진 것은 폭로되면 수치스럽다는 ‘현실원칙’ 때문이었다).

또한, 프로이트는 성적 욕망(eros)의 쾌락원칙을 넘어 죽음의 본능(thanatos)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인간이 생명 이전의 상태, 즉 진화론적으로 무기물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본성이 있다는 것이다. 죽음의 본능을 지금은 공격성(aggression)이라 부른다. 인간의 죽음의 본능-공격성은 증오, 분노, 반복행동, 자학과 자살, 피해의식 그리고 폭력 범죄, 살인, 전쟁 등으로 나타난다. 인간은 모두 ‘카인의 후예’인 것이다. 당연히 프로이트는 타나토스 역시 ‘해방’되기보다는 ‘통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 본능과 폭력이 동반되는 것이 성폭력이다. 그래서 리버티니즘이나 orgy에서는 으레 폭력도 포함된다. 폭력적 성도착증에는 가학피학증, 시간(necrophilia) 등이 있고, 가장 극단적으로 쾌락살인(快樂殺人, lust murder)이 있다. 에리히 프롬(Erich Pinchas Fromm)은 나치 히믈러(Heinrich Himmler)의 행동을 네크로필리아라고 진단한 바 있다. 그런데 마르쿠제는 사도마조히즘을 정상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1960년대 이후, ‘섹스와 폭력(sex and violence)’이 인간의 본성으로 회자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섹스와 폭력은 결국 ‘죄의식’과 관련되며, 자제의 대상이 된다. 결국, 이는 프로이트가 유대-기독교 전통 위에 서 있음을 시사한다.

나아가 정신분석이론으로, 비판의 여지가 있지만, 리버티니즘의 모든 현상을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다. 말하자면 돈 후안의 심리, 성중독(성 과잉) 현상, 성도착, 마약 중독 현상 그리고 동성애자의 개인 심리를 이해할 수 있으며, 같은 의미에서 성 혁명가들의 이론과 그들의 개인적 심리도 설명할 수 있다. 정신분석적으로 보면, 리버티니스트들은 성 본능과 공격성을 ‘행동화(acting-out)’하고,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해 ‘합리화(rationalization)’ 또는 ‘지능화(intellectualization)’하며, 내면의 절망적 죄의식을 ‘부인(denial)’한다.


리버티니즘과 정신건강 간의 관계

프리섹스와 정신건강 문제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정신건강 문제란 우울증, 불안, 약물 남용, 자살, 성중독, 사이코패스 현상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정신건강 장애로 인해 리버티니즘 행동이 나타날 수도 있고 또는 리버티니즘의 후유증으로 정신건강 장애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어떤 공통적인 내면의 문제가 있어 리버티니즘 행동과 정신건강 문제를 동시에 나타낸다는 생각에 강하게 동의한다. 따라서 방탕자들의 말로가 파탄적인 것은 그 행동 자체가 자타에 해로움을 끼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깊은 내면(무의식)에 있는 ‘악’이 스스로를 파괴하거나, 그 죄의식이 자신을 징벌한 결과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부모의 리버티니즘은 자식에게 트라우마가 되어 후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LGBT의 정상화와 성적 자기결정권 옹호

LGBT 모두에 공통적이지만, 동성애를 예로 들면, 고대 문화와 고등종교들은 동성애를 반대했다. 대신 이성애와 일부일처제적 윤리를 강조했다. 그러나 보다 문명화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동성애가 공공연했다. 그러나 중세동안 유대-기독교의 영향으로 동성애는 ‘죄’로 간주되어 종교재판의 대상이 되었다. 15세기경부터는 범죄로 인식되어 국가의 처벌을 받았다.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의학의 발달에 따라 정신의학은 동성애를 뇌의 퇴행(degeneration)에 의한 정신병으로 보았다. 그러나 19세기에 새로운 학문인 성학(sexology)을 시작한 일부 정신과 의사들이 동성애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전반에, 동성애는 정신분석에 의해 일종의 ‘노이로제’로 인식되어 전환치료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동성애자들은 여전히 발각되면 경찰에 체포되었다. 1960년대 게이 인권운동이 미국정신의학회를 맹렬히 압박하여, 드디어 1973년 미국정신의학회가 동성애를 ‘정상화’했다. 이러한 결정은 생물학-의학-자연과학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인권에 근거하여 내려진 것이다. ‘섹스파트너를 누구로 하는지는 개인의 자유다’라고 하는 성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인정된 것이다. 이는 결국 리버티니즘-계몽주의-성 혁명-인권운동이 기독교 전통과 자연과학에 대해 거둔 승리였다. 이후 의학은 어쩔 수 없이 트랜스 젠더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옹호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동성애에 대한 임상적 연구가 공개적으로 활발해 졌고, 그 결과, LGBT 사람에게 각종 의학적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정신 사회적 비판

기독교나 기타 세계의 고대 종교들은 한결같이 이성애와 일부일처제 가족제도를 옹호하고, 성 문란, 방탕, 동성애 그리고 폭력 등을 금지하는 윤리를 강조했다. 그런 의미에서 의학의 사회적 역할도 종교와 같았다. 즉 ‘생명에 관련된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인류의 멸종(extinction)을 막으려는 것이다.

전통 종교가 성숙한 신념이라면, 리버티니즘은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는 의미에서 소아-청소년기적으로 퇴행(regression)된 또는 고착(fixation)된 논리이며, ‘사춘기적 충동’을 합리화-지능화한 결과이다. 그런 소아-청소년기적 정신과 논리는 순수하기도 하고 이상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청소년의 뇌와 정신은 미숙하며 충동적이고 그들의 논리는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른들의 생각이 완고(스테레오타입)하며 자기들을 ‘억압’한다고 비판한다. 그러기 때문에 리버티니즘을 따르는 현대인들은 전통 종교를 떠나거나 무신론자가 되거나, 대신 이교(paganism)를 따른다. 소아청소년들과 리버티니스트들은 ‘내일’보다 ‘오늘’의 재미(fun), 즉 즉각적 만족(immediate gratification)을 추구한다(제4부 참조). 따라서 어떤 종교체제가 리버티니즘을 옹호한다면 그것은 사이비 종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은 대개 섹스와 폭력에서 무법적이다(우리나라의 경우 백백교나 용화교를 보라).


첨단 의과학의 발달

현재 정신장애는 물론, 범죄나 기타 일반적인 인간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뇌 MRI 같은 뇌 영상 기술, 유전학, 분자생물학 등 첨단 의학적 기술이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 동성애나 트랜스젠더의 유전자를 발견하거나 관련 뇌 구조의 특징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공격성(사이코패스)에 관한 연구는 꽤 많다. 섹스는 본능으로서 같은 본능인 공격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공격성연구가 성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연구로서, UC Irvine의 신경학자 제임스 팰런(James Fallon) 교수의 연쇄살인자들의 뇌 연구가 있다. 그는 뇌 MRI 연구를 통해 사이코패스의 원인으로 안와전두피질(orbital cortex)에 장애(저 활동성)가 있다고 했다([사진 2] 참조).

[사진 2] 팰런 교수의 뇌 MRI에서 싸이코패스의 특징인 전전두엽(화살표)에 저 활동성이 관찰된다.
출처: https://www.smithsonianmag.com/

이 부위는 충동 조절, 윤리적 결정, 도덕적 행동을 조절하는 중추이다. 저 활동성은 효소 MAO-A와 관련이 있는데, 이는 ‘세로토닌’의 대사에 관계된 효소이다. 성장의 어떤 ‘결정적 시기’에 정신적 트라우마를 받게 되면 MAO-A의 유전자가 자극받아 조금씩 활성화한다(결정적 시기란 정신분석적으로는 대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시기로서 이때 트라우마란 대개 부모의 폭력이다). 따라서 어릴 때 집안과 학교와 사회에서 자주 폭력을 보고 트라우마를 받은 소년과 소녀가 자라서 만나고 결혼하면, 다음 세대에는 MAO-A가 조금이라도 더 농축되어 폭력성이 증가하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일이 대를 이어 반복되면 수세대 후 언젠가는 연쇄살인마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성 문란이 역사적으로 증폭되어 온 현상을 설명하는데 적용할 수 있다. 즉 20세기 성 혁명은 수천 년 동안 대를 이어 축적되어온 리버티니즘의 최종적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만일 리버티니즘과 폭력성이 지금처럼 지속한다면, 미래의 언제인가, 출산율 감소와 질병과 폭력으로 인류가 멸종될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다음 호에 계속)

<skmin518@yuhs.ac>


글 | 민성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연세대학교 의대 교수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종신회원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및 효자병원 진료원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최신정신의학>, <화병연구> 등 다수가 있으며 국제신경정신약리학회 선구자 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