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립대학 교수와 학문의 자유
2018-08-31종립대학 교수와 학문의 자유
월드뷰 08 AUGUST 2018●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5 |
음선필/ 홍익대 법학과 교수
종교 교육의 목적으로 설립된 종립 대학의 교수가 자신의 학문적 소신을 이유로 그 건학 이념과 교육목적에 반한 내용으로 강의나 강연을 할 수 있는가? 예컨대 기독교 대학의 교수가 동성애를 적극 옹호하는 강연을 하여도 무방하다고 볼 것인가? 이에 대하여 종립대학은 강의나 강연 내용이 건학 이념과 교육목적에 반한다는 이유로 해당 교수를 징계하거나 재임용을 거부할 수 있는가? 이 경우, 해당 교수는 학문의 자유를 이유로 자신에 대한 징계처분 등의 무효를 다툴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상황은 통상 연구윤리 위반이나 위법행위 등으로 사립대학 교수에게 징계처분하거나 재임용을 거부하는 경우와는 다르다. 이는 종립대학 교수의 학문의 자유와 종립대학의 종교의 자유가 충돌하는 경우이다.
종립대학 교수의 학문의 자유
학문의 자유는 좁게는 연구의 자유와 강학(講學)의 자유를 의미하며, 넓게는 연구결과 발표의 자유와 학문적 집회·결사의 자유까지 포함한다. 연구결과 발표의 자유는 연구결과를 외부에 공표하는 자유로서, 대학 강의실 외의 집회에서 발표하거나 논문 또는 저서로써 발표하는 경우를 포함한다. 학문의 자유는 국가에 대한 방어권이므로 공권력에 의한 침해나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 또한 사립대학 교수의 경우, 그 설립자나 관리자 등에 의해서 침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사인(私人)에 의한 침해로부터도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한 까닭에 학문의 자유는 사인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적용되는 효력을 가진다.
학문의 자유는 그 구체적·단계적 발현 형태에 따라 제한의 정도가 달라진다. 연구의 자유는 외부와의 연계성이 희박하므로 고도의 헌법적 보장을 받는다. 그러나 강학의 자유나 연구결과 발표의 자유는 사회적 전파성 때문에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제한을 받게 된다. 특히 연구결과 발표의 자유는 그 사회적 전파성을 고려하여 강의실에서 발표하는 강학의 자유보다 더욱 제한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이 학문의 자유는 다른 헌법적 법익의 보호를 위해, 또한 타인의 권리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제한을 받는다.
학문의 자유가 제한되는 형태로는 법령에 금지됨으로써 받게 되는 직접적인 제한 외에도, 강의 및 강연 등을 이유로 나중에 겪게 될 징계 또는 재임용 거부 등 신분상 불이익을 우려하여 받게 되는 간접적인 제한도 있다.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종립대학에서 건학 이념을 구체화한 정관에 의하여 교수의 학문의 자유가 직·간접적으로 제한될 수 있느냐이다. 달리 말하면, 종립대학이 정관에 규정된 종교적 정체성을 이유로 교수의 학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느냐이다. 이는 종립대학이 갖는 대학의 자치권과 별도로 종교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이다.
종립대학의 종교의 자유
종교의 자유는 신앙 형성의 자유, 신앙 고백의 자유, 신앙 실행의 자유로 나뉜다. 이 중 신앙 실행의 자유는 종교적 교리를 행위의 지침으로 삼고 종교적 확신에 따라 행동할 자유를 말한다. 신앙 실행의 자유에는 종교의식(儀式)의 자유, 종교에 따른 생활형성의 자유, 선교활동의 자유, 종교교육의 자유 등이 포함된다.
종교교육의 자유는 그 주체에 따라 내용이 다르다. 주체가 부모인 경우, 가정에서 자신의 종교관에 따라 자녀를 교육을 시킬 권리와 종교교육을 실시하는 사립학교에 자녀를 취학시킬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한다. 한편 종립학교의 경우, 학생들을 대상으로 종교적 교리를 가르치고 이에 기초한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을 실시하는 권리를 의미한다.
종립학교의 설립·운영은 선교활동의 자유 내지 종교교육의 자유에 해당된다. 종립학교는 종교의 자유 주체로서 또한 사립학교의 지위에서 일정한 자유와 권리, 그리고 의무와 책임을 가진다. 무엇보다도 종교의 자유 측면에서 종립학교는 그 기초가 되는 종교적 교리에 입각한 교육목적·교육목표 및 교육체계를 수립하고, 이에 찬동하며 교육을 담당할 교원을 선발·확보하고 또한 교육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물적 설비를 갖추어야 한다.
고등교육기관으로서 종립대학은 건학 이념을 충실히 구현할 수 있는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교수로 하여금 이에 부합한 연구와 교육을 수행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교수의 교육과 연구에 관해서는 정관, 학칙, 개별적인 근로(복무) 계약, 또는 교수의 자율적 가이드라인을 통하여 일정한 작위 및 부작위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종립대학을 규율하는 현행법으로는 교육기본법, 고등교육법, 사립학교법 등이 있는데, 이에 근거하여 종립대학은 운영에 관한 세부사항을 정관과 학칙에서 규정한다. 정관과 학칙, 그리고 이에 근거한 각종 규정(規程)은 종립대학의 자율적 규범에 해당한다. 교수의 신분과 복무에 관하여는 ‘교원인사규정’과 ‘교직원 복무규정’ 등이 규율하고 있다.
건학 이념과 교육목표에 충실하려는 종립대학은 이에 반하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교수에게 제재(징계 또는 재임용 거부 등)를 가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징계처분 등에 대하여 불복하는 교수는 처분 결정의 무효를 주장하며 법원에 제소하게 될 것이다. 이 때 법원은 징계처분 등의 요건 충족 및 절차 준수 여부를 검토하는 것 외에, 교수의 학문의 자유와 종립대학의 종교의 자유를 살펴보게 될 것이다. 여기서 종립대학과 교수 간에 기본권의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충돌을 사전 예방하고 최소화하며, 또한 사후적으로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규범적 근거가 필요하다.
교수와 종립학교 간 기본권의 충돌
교수의 학문의 자유와 종립대학의 종교교육의 자유가 충돌하는 경우, 양자 중에 어느 것이 우월한가를 추상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현실적이지도 않다. 학문의 자유의 실현 형태나 종립대학의 종교적 성향 등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양자의 충돌은 다양하게 나타나기에 그 해결책이 달라져야 할 것이다. 강연이나 강의의 내용이 종교현상에 대한 학문적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본교리에 대한 도전에 해당할수록, 또한 종립대학이 정관이나 규정에서 종교적 정체성(正體性)을 강조하며 종교교육을 중시할수록 그 충돌의 정도는 강해질 것이다. 종립대학은 일반 대학교육 이외에도 종교교육을 중시하기 때문에 일반 사립대학에 비하여 특별한 고려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종교적 정체성을 강조하는 종립대학의 종교교육과, 기본적 교리에 위배되는 강연·강의는 비례적으로 공평하게 제한될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고 본다. 또한 종교의 자유가 원래 기본적 교리에 대한 강한 신앙적 고백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이에 반하는 내용으로 강연·강의를 하는 자유와 타협(절충) 하는 대안을 찾기 어렵다.
따라서 교수가 종립대학의 건학 이념에 반하는 내용을 강의·강연함으로써 종교적 교리에 기반을 둔 학문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경우, 종립대학은 종교교육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 구성원인 해당 교수를 징계하거나 그 재임용을 거부할 수 있다고 본다. 사립대학 교원이 학문 연구에 관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더라도, 학교법인 정관에서 교수의 자격심사 기준으로 삼고 있는 덕목인 학생교육·학생지도·교육 관계 법령의 준수·기타 교원으로서의 품위 유지에 관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경우 그에 대한 재임용을 거부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대법원 입장이다(대법 2008.2.1. 2007다9009). 그러한 점에서 종립대학 교수는 강학 및 연구결과 발표의 자유에서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종립대학은 종교교육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하여 건학 이념에 반하는 내용의 강학·강연 등을 직접 제한하는 근거 규정을 정관이나 규정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강학·강연의 제한에 대하여 학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성을 다툴 수 있으나, 제한되는 강학·강연의 내용이 종립학교의 건학 이념을 훼손하는 경우로서 제한의 필요성이 있을 때에는 해당 규정의 헌법적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본다. 또한 교수의 자율적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다. 그러한 예로 한동대학교의 ‘교수명예헌장’을 들 수 있다.
음선필 교수 | 어릴 적 기독교 배경에서 성장하던 중 성경읽기를 통하여 개인 신앙을 갖게 되었다. 대학 입학 후 네비게이토선교회에서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통하여 제자의 삶을 훈련받고 캠퍼스 사역에 드려지게 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현재 홍익대학교에서 법과대학 학장으로 섬기면서 헌법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