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영역에서 국가의 역할

경제영역에서 국가의 역할

2021-11-02 0 By 월드뷰

월드뷰 NOV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OVER STORY


국가의 역할을 다루는 이번 11월호 커버스토리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역임한 한국외국어대학교 최광 명예교수를 모시고, 경제영역에서 국가의 역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편집자 주).


김승욱: 최광 교수님은 학부는 경영학, 석사는 공공정책, 박사는 경제학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셨고, 한국재정학회장과 한국조세학회장을 역임했습니다. 행정 경험도 많으셔서 국회예산정책처 처장, 한국조세연구원 원장, 보건복지부 장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셨습니다. 저는 박사과정에서 멘슈어 올슨(Mancur Olson) 교수의 <국가의 흥망성쇠(The Rise and Decline of Nations)>를 매우 흥미롭게 배웠습니다. 이 책은 당시 세계에서 인용빈도가 높은 10대 서적에 선정되었습니다. 교수님께는 올슨의 제자이고, 박사학위 지도를 받았으며, 이 책을 번역하셨는데 책의 이론적 기초가 되는 <집단행동의 논리 – 공공재와 집단이론>도 교수님께서 이성규 교수와 함께 번역하셨지요. 먼저 멘슈어 올슨의 이론과 주장에 대한 소개를 먼저 부탁드립니다.

최광: 올슨 교수님은 박사학위 논문지도 교수를 넘어 저의 인생에 큰 가르침을 주신 진정한 사부입니다. 올슨 교수님께서 몇 년만 더 사셨더라면 노벨경제학상을 받으셨을 텐데, 65세에 연구실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하셔서 수상기회를 얻지 못한 것이 안타깝습니다. 이익집단이론의 창시자로 올슨의 이론은 비단 경제학계뿐만 아니라 정치학계와 사회학계에서도 칭송을 받았습니다. 세 권의 주된 저서 중 마지막 두 권은 경제적 번영의 기본 원리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와 나라 간에 성장률이 왜 다른가 하는 문제에 대해 천착했는데 이는 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국부론을 쓴 이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승욱: 올슨의 이론에 따라 한국경제발전을 설명한다면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조선왕조에 형성된 이익집단이 일제 시대에 파괴되고, 다시 미 군정기를 거치면서 일제하에 형성된 이익집단이 파괴되었는데, 이러한 점이 한국의 고도성장에 영향을 미쳤을까요?

최광: <국가의 흥망성쇠>는 나라 간 성장률이 왜 다른가 하는 문제를 다루는데, 올슨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영국의 경제성장률이 2%인데 반해 독일과 일본의 성장률이 5% 이상으로 월등히 높은 사실에 주목하고, 그 원인을 찾고자 했습니다. 올슨 교수는 그 원인이 두 집단 간의 이익집단 발흥과 성장 저해 활동 차이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한 나라의 성장률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현상도 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960~1980년대 7~10%씩 성장하던 우리 경제가 오늘날 1~2%의 저성장으로 추락한 것은 바로 이익집단의 발흥과 횡포 때문이라고 확신합니다. 1987년 체제 즉 1980년대 민주화 이후 각종 이익집단이 발흥하고 개별 이익집단의 활동이 매우 활발해졌습니다. 노동조합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급격한 임금인상 주장, 각종 정치 개입, 기업투자 방해, 도를 넘은 파업으로 노조는 오늘날 무소불위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를 빌미로 엄청나게 많은 이익집단이 생기고, 모든 이익집단이 소위 지대추구 활동을 경쟁적으로 한 결과 우리 경제는 물론 나라 전체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김승욱: 이번 특집은 국가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데,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정부>라는 책을 쓰셔서 이 부분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박정희 정부가 경제발전에 성공한 요인이 무엇일까요?

최광: 많은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부가 모든 것을 재단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정부가 경제계획을 수립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운용이나 집행에 가계와 기업의 자유와 창의성을 전적으로 보장해 주었습니다. 수출과 관련해서 정부가 한 일은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기업 간 경쟁을 유도한 것입니다. 1990년대 세계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정부 주도 성장이 아니라, 시장주도 성장이라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시장에 순응할 때 정부 정책이 성공합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인지한 유일한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이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부는 무소불위의 정부가 되었습니다. 국민도 무슨 문제만 생기면 정부더러 해결하라고 아우성칩니다. 정부가 하는 일 중 잘한 것 하나라도 있으면 말해 보라고 묻고 싶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무슨 일만 생기면 정부더러 해결하라고 하나요? 어느 나라든 정부는 문제의 해결사가 아니고, 각종 문제의 원인 제공자입니다. 최근의 부동산 가격 상승은 정부가 초래한 것입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딱 세 가지입니다. 첫째 국민을 외침으로부터 막아주는 방위(防衛), 둘째 공공질서 및 법질서 확립, 셋째 공공사업과 공공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입니다. 정부가 복지를 제공할 수는 있으나, 복지 제공이 정부의 기본 역할은 아닙니다.

김승욱: 흔히 박정희 정부 시절에 정경유착으로 재벌이 탄생해서 한국이 재벌공화국이 되었다고 비판합니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최광: 정경유착이 심했다는 것과 우리나라가 재벌공화국이라는 주장 자체에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정경유착이 일부 있었으나 유착에 따른 부패를 포함한 각종 폐해는 다른 나라에 비해 미미했으며, 재벌이나 대기업의 경제적 비중이 우리나라보다 큰 사례가 많습니다.

일본이 패전 후 한국에 남기고 간 일본 정부나 일본인의 귀속사업체를 불하하는 과정도 기본적으로 공개입찰이었습니다. 해방 후 혼란 속에서 원칙대로만 되지 않은 부문도 분명히 있었지만, 귀속사업체의 주인을 빨리 찾아 줌으로써 경영이 원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도 큰 사업을 맡길 때는 기업가들의 능력이 주된 평가 기준이었고, 그 기업가들의 기업 보국 헌신이 지금의 한국 경제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뇌물에서 자유로웠던 것은 오늘날까지도 세계적인 자랑거리입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재직 시절인 2014년에 16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웨덴의 최대 재벌 발렌베리 회장과 면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5대에 걸쳐 경영권을 이어가고 있는 대표적 세습기업 발렌베리는 스웨덴 GDP의 30%, 주식시가총액의 40%를 점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삼성그룹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며, 생산하는 제품의 수도 엄청납니다.

기업의 규모가 크고 작으냐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당해 제품을 얼마나 높은 품질로 얼마나 싸게 생산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재벌기업이 반드시 독점기업은 아닙니다. 가전제품과 각종 IT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 덕분에 소비자는 싸고 질 좋은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데, 혜택은 모두 무시하고 재벌기업만 성토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습니다.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대비시키는 것도 잘못입니다. 대기업의 경쟁자는 외국의 대기업이지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이 아닙니다. 재벌은 근로자와 중소기업가, 납품업자를 착취해서 재벌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영위하는 산업의 수익성과 전 세계 고객의 성원에 힘입어 그렇게 된 것이다. 특혜 때문이라면 특혜가 더 많은 중소기업이 더 잘되어 있어야 합니다. 재벌과 대기업이 오늘의 위치에 오른 것은 고객에게 경쟁자보다 더 나은 제품과 더 좋은 서비스를 더 싼 가격에 공급했기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이 외면하면 하루아침에 망하는 것이 기업입니다.

김승욱: 박정희 대통령이 청렴했다는 말씀을 하시니까, 교수님께서 번역하신 올슨 교수의 <Power and Prosperity(지배 권력과 경제번영)>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이 책에서 올슨 교수는 번영의 필요조건으로 잘 정의된 사유재산권과 약탈의 부재를 꼽았습니다. 지배 권력이 국민을 약탈하지 않아야, 즉 청렴해야 번영한다는 것인데, 과거 지배계층이 국민을 착취해서 자기 권력을 유지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사례가 많습니다. 지금 북한 김정은 정권도 마찬가지인데,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스위스 계좌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최광: <지배 권력과 경제번영>은 올슨 교수가 돌아가신 후에 출간된 유작입니다. 내용은 정치학의 핵심개념인 ‘지배 권력’과 경제학의 핵심개념인 ‘경제번영’을 결합한 것입니다. 지적하셨듯이 올슨 교수는 경제적 번영의 필요조건으로 사유재산권의 확립과 지배 권력에 의한 약탈의 부재 두 가지를 내세웁니다. 김정은의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는 사유재산권을 부인하고 지배자들이 약탈하기 때문에 인민이 굶주릴 수밖에 없습니다.

세계언론인 협회 회장을 오래 역임하신 분이 박정희 대통령 사후 10여 년이 지나도 스위스 계좌가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박정희 대통령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찬하며 박 대통령 전도사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사유재산권을 부인한 적이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 일부 정치인은 국가와 공공기관의 역할을 강조하며, 사유재산권을 부정합니다. 토지 공개념, 토지 국유화가 대표적인데 토지 개발도 공공개발이 최선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쟁을 통한 민간의 개발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김승욱: 이제부터는 정부 재정정책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나누겠습니다. 먼저 조세정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박정희 정부 당시에 부가세 제도를 도입하면서 많은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그때 부가세를 10%로 정했는데, 지금까지도 10%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일본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처럼 부가세율이 낮은 나라는 없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세금경제학>도 쓰시고 한국조세연구원장 시절에는 <한국 조세정책 50년>이라는 책도 편찬하셨는데, 한국의 조세제도에 대해서 현재 상황과 문제점을 요약해 주십시오.

최광: 1977년 부가가치세제의 도입은 우리나라 세제 역사에 기념비적인 일입니다. 적시에 잘 도입되었고, 순조롭게 정착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OECD 회원국의 부가세 평균세율이 19%에 달하니, 우리의 세율 10%는 낮아도 보통 낮은 수준이 아닙니다. 복지와 통일 재원 조달을 위해 부가세 세율인상이 불가피한데, 15%를 상한 수준으로 정하고 매년 0.5%씩 10년에 걸쳐 인상하길 제안합니다.

<국부론>에서 애덤 스미스는 “국가가 빈곤과 절망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밖에 없다. 안정적인 정부, 예측 가능한 법률, 부당한 과세의 부재 이 세 가지만 지키면 된다.”라고 했습니다. 그 스미스가 부활해 한국의 세제를 평가한다면 뭐라 말할까요? 분명 “부당한 과제가 존재한다.”라고 할 것입니다.

역대 정권 모두가 ‘세제개혁’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매해 대략 10번씩 세법 개정을 해왔지만 실상 ‘개혁’이 아니었습니다. 세제 ‘보완’이나 ‘개편’ 수준이었고, 그것도 대부분 조세 감면 혹은 세수 증대 방안에 불과했습니다. 제대로 된 세제개혁은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세 부담은 다른 나라에 비해 분명 낮지만, 우리 국민의 세금에 대한 불평·불만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 가지가 지적될 수 있습니다. 첫째 세제와 세정이 반듯하지 못하고 헝클어져 있기 때문이며, 둘째 세 부담에 상응하는 혜택을 정부로부터 받지 못하기 때문이며, 셋째 세 부담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대한 불만과 불신도 그 근원을 잘 따져 보면 사실 세금에 연유된 경우가 많습니다. 헝클어 질대로 헝클어진 우리 세제를 바로 잡아야 하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점입니다.

역대 몇몇 정권에서는 세제개혁을 검토한 적은 있으나 한 번도 제대로 추진한 적이 없었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지도자의 무지와 지도력 부족입니다. 재정 운용이야말로 국가 운영의 요체인데 재정의 중심에 있는 세제를 반듯하게 만들겠다고 결심한 지도자가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세수 결함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세제개혁에 나서지 못하는 근본적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 중요성과 국민의 높은 관심을 감안할 때 세제개혁위원회는 기획재정부가 관장하는 현행 세제발전심의회보다 격상시켜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장기적인 활동 기간을 부여하고 독립성을 강력히 보장해 제대로 세제개편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김승욱: 현 정부 들어서 국가부채가 크게 늘었습니다. 국가 신용평가를 고려해서 GDP 대비 국가부채 40%를 마지노선이라고 여겼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대한 근거가 없다고 하면서 재정지출을 크게 늘려서 50%대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재정적자가 가파르게 높아지는 것에 대해서 우려하는 국민이 많은데, 정부에서는 아직도 우리나라 재정은 건전하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최광: 정부의 역할과 규모에 대해 정책 당국자, 전문가, 국민 모두의 인식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놓고 볼 때 큰 정부는 극히 최근의 현상입니다. 선진국의 경우 로마 시대부터 1900년까지 정부 규모는 GDP의 10%에 불과했고, 1, 2차 세계대전 시기를 제외하면 1960년대에 20%에서 1980년대에 40% 수준으로 급팽창했습니다.

정부재정은 민간이 자율적으로 관리하는 자원을 정부가 강제적으로 가져가 정치적으로 관리하는 제도입니다. 정부재정이 커지는 만큼 개인의 자유가 제한을 받습니다. 따라서 납세자에게 복지를 크게 할 것이냐 작게 할 것이냐 묻지 말고, 복지냐 세금이냐 또는 자유나 예속이냐를 물어야 합니다.

왕조시대는 물론 20세기에도 큰 정부는 나라를 멸망하게 했거나 나라 전체에 언제나 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영국의 큰 정부는 영국병을 초래했고, 2차 대전 직후부터 복지 지출을 급팽창시킨 북구의 복지 국가들도 우리보다 먼저 IMF 구제 금융을 받으며 혹독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기업의 과중한 부채가 문제였고, 가계와 기업은 매우 건실했습니다. 현재는 기업도 가계도 정부도 모두 빚투성이입니다. 현재 세 주체 모두 각 2천조 원에 달하는 부채를 지고 있는데, 어떤 요인으로든 문제가 터지면 속수무책인 상태가 되니 참으로 걱정입니다.

독일 통일 비용의 60~70%가 동독 주민에 대한 복지 지출에서 기인합니다. 만일 통일이 된다면 아무런 재원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북한 노인들에게 남한과 같은 수준으로 연금을 지급해야 하고, 2,700만 명의 북한 주민 모두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재원이 소요될 텐데 이미 빚더미에 빠져있는 정부재정이 어떻게 이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김승욱: 최근에 교수님께서는 <대한민국 파괴되고 있는가>라는 책을 펴내셨습니다. 소득주도성장을 한다고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고, 기업의 각종 활동을 억압해서 경제가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한국 경제의 잠재력을 파괴하는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최광: 한국 경제의 잠재력을 파괴하는 주체에는 세 집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첫째 집단은 현 집권 세력인 종북 좌파 반자유주의 세력입니다. 사유재산권을 부인하고, 기업과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주사파의 본질입니다. 이들은 인류의 역사를 모르고 오직 권력 쟁취에만 몰두해 성장 잠재력을 고양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집단입니다.

두 번째 집단은 이익단체입니다. 이익집단은 소비자 단체, 각종 사업자 단체, 노동조합, 지역 단체, 농민단체, 시민단체 등 수없이 많습니다.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세금이 엄청나게 낭비되고, 경제 활동이 마비되고, 진입장벽이 구축되어 경쟁을 막기 때문에 경제의 잠재력은 계속 하락할 수밖에 없는 형국입니다.

세 번째 집단은 생산성이 낮고 경쟁력이 없는 공공부문입니다. 공공부문이 계속 팽창하면서 성장 잠재력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민간부문의 생산성이 공공부문의 생산성보다 훨씬 높은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지도자의 선동과 국민의 공짜 심리가 상승 작용해서 공공부문으로 자원이 계속 이전하면서 공공부문이 팽창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나라 전체의 생산성과 잠재력이 하락하고 있습니다.

김승욱: 현 정부는 노동문제를 개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조가 코로나19 방역을 무시해도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못합니다. 노조는 이익집단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의 강령을 보면 국가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시키려고 하는 의도를 숨기지 않습니다. 강성 노조에 대한 교수님의 해법을 듣고 싶습니다.

최광: 식자나 일반인 모두 생산물 시장에서의 독점을 매우 싫어합니다. 반면에 노동조합을 약자라고 성원하면서도 노동조합이 독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데, 노동조합은 노동시장에서 근로자의 독점공급자입니다. 노동조합은 고유의 역할이 있기에 권장되고 법의 보호를 마땅히 받아야 합니다. 노동조합의 존재 이유는 조합원인 근로자에게 더욱 높은 임금을 보장하고, 일터의 안전과 쾌적함을 확보해 주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따라서 노동조합과 사용자 간의 협상 과정에서 협상 내용은 임금과 작업 환경 안전에 한정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임금과 작업 환경을 넘어 정치에 관여하고, 정부의 많은 정책을 좌지우지하려 하고, 작업장을 불법으로 점거하고, 집회법을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하여 노동조합이 무소불위의 존재가 된 지 오래입니다. 전교조는 학교 교육을 황폐화하여 교육의 질이 크게 떨어지고, 학생의 시민적 소양도 저하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조합의 탈법, 범법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조치가 취해져야 합니다.

김승욱: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하셨고, <복지정책에 대한 근원적 고찰>이라는 책도 쓰셨는데 복지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추진해야 할까요?

최광: 복지정책을 더 잘할 수 있는 기본과제와 기본원칙에 대해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날 복지제도의 근간인 4대 보험은 1880년대 후반 프로이센의 재상 비스마르크(Otto Eduard Leopold von Bismarck)에 의해 도입되었습니다. 서구의 경우 복지제도는 13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지만, 우리의 4대 보험은 그 역사가 얼마 되지 않습니다. 복지국가(welfare state)란 개념은 1941년 캔터베리 대주교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이 전쟁을 일으킨 독일을 ‘전쟁 국가(warfare state)’로 규정하고, 영국은 ‘복지국가(welfare state)’라고 비유한 말장난에서 유래됐습니다.

삶의 목표가 행복의 추구에 있고 사회의 공동목표가 이상향의 건설에 있다면, 이를 실현하는 복지국가의 건설은 우리가 모두 바라는 것입니다. 최근의 복지정책과 관련해서 기본적으로 세 가지 큰 오류가 관찰됩니다.

첫째, 구체적인 복지시책의 도입보다 더 시급한 선결과제가 해결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그 선결과제는 국민의 세 부담 증대를 통해 국민 각자가 자신의 업무에서 보람을 찾고, 장래에 대하여 밝은 희망을 품으며 자신이 열심히 일해서 얻는 경제적 과실이 남의 것과 비교하여 볼 때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져 만족감과 보람을 갖는 사회풍토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사회의 기본질서와 경기규칙을 확립하는 파수꾼으로서 정부가 본연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사회가 복지사회입니다. 사회 기본질서의 확립과 유지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동되는 복지제도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둘째, 복지시책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국민부담의 증대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인식되지 못한 점입니다. 복지정책의 시행은 필연적으로 국민부담의 증대를 수반하는데, 일반 국민과 정책당국은 물론이고 심지어 학자들까지도 이에 대해 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합니다. 정부가 부담하는 복지 재원은 결국 세금의 형태로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복지혜택의 배분과 복지비용의 분담을 어느 소득계층에 지게 하느냐에 대해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어야 합니다.

셋째, 복지의 시혜가 집단 중심이 아닌 개인 중심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인식되고 있지 못한 점입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은 국가의 정책이 농민을 도와주고,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중산층을 육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농민, 중소기업, 중산층에 이어 최근에는 여성, 대학생, 근로자 등의 집단도 지원 보호․대상이라고 합니다. 정부 정책에서 배려 대상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잡을 때 두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는데 첫째는 농민 중산층 근로자를 제외하면 대한민국에 남는 사람이 없으므로 모든 국민이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결론이 도출된다는 점이고, 둘째는 농민과 중소기업인 중에는 상당 수준의 소득을 얻는 사람들이 있기에 전혀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계층에 세금이 낭비되게 된다는 점입니다.

복지정책의 수립에는 뜨거운 마음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문제는 차가워야 할 머리까지 뜨거워진다는 데 있습니다. 복지에 대한 열망이 강하면 강할수록 국민과 정책담당자의 머리는 보다 냉철한 문제의 파악과 사실의 인식이 중요합니다.

김승욱: 고령사회를 넘어서 이제 초고령 사회로 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연금 문제는 심각합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역임하셨으니, 앞으로 한국의 연금개혁 방향에 대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최광: 국민연금제도는 1988년에 시행되어 33여 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가입자가 2천 2백만 명, 수급자가 5백 5십만 명에 달하면서 노후설계 제도로서 훌륭히 정착되고 있습니다. 기금운용도 일반에게 인식된 것보다는 훨씬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제도의 잘못된 설계로 50년 이내에 기금이 고갈되어 젊은이들이 연금을 못 받게 된다는 두려움과 기금운용에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 등으로 걱정을 하고 있는데, 국민연금 제도 운용이나 기금운용에는 기본적으로 큰 문제가 없습니다.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 문제가 매우 심각한 것은 사실이지만, 고갈은 막는 방법이 분명히 있어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재의 보험료율(9%), 수급 연령(61~65세), 소득대체율(40~50%) 등 정책변수 세 가지를 그대로 유지한다면 앞으로 50여 년 전후로 기금이 소진될 것입니다. 국민연금제도 도입 당시에 보험료율 3%, 수급 연령 60세, 소득대체율 70%였는데 만약 이 초기 정책변수를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기금은 이미 소진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세 정책변수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연금보험료율은 1988년 연금제도 도입 당시 3%였던 것이 1993년에 6%로 인상된 후 1998년에 9%로 인상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대로입니다. 보험금을 수급할 수 있는 나이는 초기에 61세였는데 현재는 태어난 연도에 따라 다르지만, 1953~1956년생의 경우 61세이고 1969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만 65세에 연금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제도 도입 당시 70%였던 소득대체율이 1998년에 60%로 하향 조정되었고, 2008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50%로 다시 인하한 후 매년 점진적으로 인하해 2028년도에 40%에 달하도록 했습니다.

다른 선진국도 비슷한 과정을 밟아 왔는데, 선진국들 정책변수의 평균적 수치는 보험료율 20%, 소득대체율 40%, 수급 연령 65~70세인데 이를 참고로 하여 세 변수를 잘 조합하면 기금고갈 문제로 연금을 받지 못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의 저부담 고혜택 제도를 중부담 중혜택 제도로 전환하면 되는데, 문제는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 정치 지도자의 지도력에 달려있습니다.

연금 기금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요인에는 세 가지 정책변수 외에 출산율, 노령화, 경제성장률, 기금운용 수익률 등이 있습니다. 출산율과 노령화는 구조적 요인이기에 정부가 영향을 미치기 어려우나 경제성장률과 기금운용 수익률은 하기 나름입니다.

1988년 이래 연금보험료 수입이 660조 원, 기금운용 수익금이 511조 원, 연금지급액이 252조 원이므로 2021년 7월 현재 기금적립금은 919(=660+511–252)조 원으로 지난 33년간의 기금운용의 평균 수익률은 6.27%에 달합니다. 기금운용은 무한경쟁의 국제적 업무입니다. 세계 전문가 중의 전문가들이 매일매일 피를 말리는 경쟁 속에서 자산운용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조그마한 틈도 한 치의 실수도 치명적 손실로 연결됩니다. 그러므로 기금운용은 전문가에 맡기고, 정부와 국회는 감독만 잘하면 됩니다.

김승욱: 마지막으로 대한민국이 발전하려면, 어떠한 정부가 되어야 하는지 충고를 부탁드립니다.

최광: 대한민국은 참으로 기업 하기 힘든 나라인 반면, 정치하기는 쉬운 나라입니다. 그리고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인식이 크게 잘못되어 있습니다. 기업인은 고객인 소비자가 외면하면 하루아침에 망합니다. 소비자가 자신이 지불하는 가격과 그 대가로 받는 서비스를 언제나 저울질하기에 기업가는 싼 가격에 최선의 서비스 제공에 심혈을 기울이며 소비자가 어떤 횡포를 부려도 언제나 미소로서 대합니다. 기업인은 항시 경쟁 속에서 체력을 단련하며, 오늘날과 같이 국경 없는 범지구화 시대의 거센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참으로 처절하게 투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살아남는 기업은 대단한 저력을 갖고 있으나, 그 저력도 언제 사라질지 모를 두려움 속에서 노심초사(勞心焦思)하고 있습니다. 포츈(Fortune) 500의 세계 최고 기업들도 40년 정도면 명멸(明滅)한다고 합니다. 기업의 세계는 냉엄하여 기술, 자금, 판매, 인사 등 어느 한구석이라도 허점이 있으면 부도 도산이라는 처절한 결과로 귀착됩니다.

정치인과 관료는 어떻습니까? 물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선거를 치르고, 당선 후에도 주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관료가 되기 위해서는 경쟁률이 매우 높은 시험을 치르고, 승진하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치인과 관료는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상급자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일상의 생활입니다. 현직에 있을 때는 예산과 결정권의 크기에 따라 관련자들의 섬김을 받고, 큰 잘못을 해도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퇴출당하지 않습니다. 상당수의 정치인과 관료, 특히 고위직의 경우는 퇴직 후에도 높은 보수의 자리를 꿰차고 잘 나가기도 합니다.

관료와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정책과 서비스는 불량품인 경우가 부지기수이고, 매일 봇물 터지듯 쏟아 내는 정책도 대부분 함량 미달이거나 재탕 삼탕 한 것이어서 국민이 외면하는 것이고,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는 것들입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관료와 정치인은 자신의 실책과 실책의 결과를 책임지기보다는 많은 경우 잘하는 기업인을 닦달하거나 속죄양으로 삼아 사태를 더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정치인과 관료는 기본적으로 국민의 대리인 즉 머슴입니다. 머슴인 정치인과 관료는 원칙적으로 자신의 이해를 떠나 주인인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문제는 머슴에 불과한 관료와 정치인이 주인인 기업인 위에 군림하려는 데 있습니다.

관료와 정치인은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 여건에 민첩하게 변화하는 기업인을 호통치는 경우가 비일비재(非一非再)합니다. 우리 사회의 개혁대상 제1호가 관료와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공감대가 형성된 지 오래입니다. 국가 경쟁력 또는 성장 잠재력과 관련한 국내외 기관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치인 또는 관료 그리고 그들이 만든 제도와 정책은 문제인 반면, 기업과 기업인들은 언제나 상당한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잘못하는 집단이 잘하는 집단을 호통치는 코미디가 연출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뒤진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상대적으로 정치가와 관료 때문이지 대기업이나 재벌 때문이 아닙니다. 대기업이나 재벌이 무결(無缺)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가와 관료는 좋은 정책으로 국민에게 봉사하고, 기업은 전 세계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싸고 질 좋은 상품으로 봉사하는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제 현상을 선한 것과 악한 것으로 구분하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재벌경제나 중산층 경제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벌경제는 나쁘고 중산층 경제는 좋다는 식의 이러한 몰이해(沒理解)를 남에게 강요하는 무지(無知)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영어에 길들이기(taming)라는 표현이 있는데, 길들이기의 대상은 정부 자체(taming the government)이지, 정부가 기업을 길들이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개념적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업을 길들이는 것은 소비자의 선호이고 기업 간의 경쟁이지 결코 정부의 몫이 아닙니다.

김승욱: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