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과 복지

행복과 복지

2021-12-01 0 By 월드뷰

월드뷰 DECEMBER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발행사


글/ 김승욱(발행인,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들어가며


2021년 한 해 동안 <월드뷰>는 올바른 방향 설정을 위해서 ’아드 폰테스 – ‘근원으로 돌아가자’라는 키워드로 사회 각 분야를 조명했습니다. 성탄절이 있는 연말을 맞이하여 12월호 특집은 행복과 복지문제를 다룹니다.

이 시대 현대인이 추구하는 것은 웰빙(well-being), 즉 건강한 인생인 것 같습니다. 웰빙족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물질이나 명예를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삶보다는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유지하는 균형 있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요즈음 건강관리에 돈을 아끼지 않고, 또 비싼 유기농 식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자만 웰빙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단순히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육체적으로 건전한 문화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외제 차는 부의 상징이었지만, 이제 내 집 마련은 포기하더라도 비싼 차를 타고 좋은 음식을 찾아다니고, 최신형의 고급 스마트폰을 사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람마다 행복을 느끼는 기준이 달라서 소비패턴도 크게 차이가 납니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동물과 달라 의식주가 해결되어도 건강하지 못하거나, 정신적인 만족을 얻지 못하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또 보람된 일을 하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큰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채워져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문제로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렇게 웰빙의 측면은 신체적, 물질적 웰니스(wellness)만이 아니라, 정신적, 지적, 사회관계적, 영적 다양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는 수준의 기본적 필수품(basic needs)은 만족되어야 합니다.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은 물질은 인간 행복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지만, 애덤 스미스(Adam Smith)가 지적했듯이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필수적 재화가 부족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기본적 생활에 필요한 최저수준은 시대마다 국가마다 다릅니다. 과거에는 외식, 여행, 자가용 등은 사치재였으나, 오늘날 한국을 비롯한 OECD 국가의 많은 사람에게는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올해 들어 벼락거지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벼락부자에 대응해서 나온 용어로,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갑작스러운 외부적 요인으로 거지가 된 것을 일컫는 말입니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 이후에 이 말이 빈번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제 가까운 지인도 벼락거지가 되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하는 말만 믿고, 20여 년간 살던 집을 5억 원에 팔고 3억 원에 전세로 살고, 남는 돈은 자녀 유학비와 교육에 썼습니다. 그런데 2년 지나니 집주인이 3천만 원을 올려달라고 해서, 하는 수 없이 형제들에게 돈을 꾸어서 전세를 올려주었습니다. 이제 몇 달이 지나면 또 2년이 지나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그사이 임대차 3법이 시행되면서 전셋값이 1억 5천만 원이나 올랐다고 합니다. 그나저나 주인이 들어와서 살겠다고 해서, 이제는 외곽으로 이사를 하든지 주인과 협상해서 전셋값 인상분을 낮추어달라고 하든지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정부 시책을 믿고 집을 판 죄 밖에 없는데, 전세 기간 만료 두 번 지나고 나니 벼락거지가 된 것 같다고 합니다. 정부가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한 복지정책을 펴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경제정책으로 국민이 잘살게 만들어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기본적 필수품을 마련하는 것은 각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이념이 등장하고, 복지국가 이념이 등장하면서 국가가 국민 모두의 최소한의 복지는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퍼졌습니다. 노동능력이 없는 계층에 대해서만 정부가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넘어서, 이제는 모든 국민의 기본적인 소득을 보장해야 한다는 기본소득제에 관한 주장도 확산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삶에 필요한 기본자산까지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했습니다.

이에 반해서 모든 국민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비현실적이므로 한정적 국가 재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점점 커지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서 전 국민에게 동일한 소득을 나누어주는 것보다는 꼭 필요한 계층에게 선별적으로 나누어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반론도 많습니다. 지금도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3D 업종에 외국인 근로자 아니면 일할 사람이 없는데 기본소득까지 주면 더욱 구인난에 곤란을 겪는 기업들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요즈음에는 건설현장에서도 무거운 것은 크레인 등 중장비로 이동시키기 때문에 힘든 일이 많이 사라졌는데도 50대 중반 이후 기술자 외에는 한국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외국인 근로자도 구하기 어려워서, 인력을 못 구해서 난리라고 합니다. 궂은일 하기 싫어하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줄 경우, 출산율 최하위 한국 사회의 잠재성장력은 점점 더 떨어질 것이라고 염려합니다.


커버스토리(Cover Story)


어느 주장이 더 타당할까요?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복지문제에 대해서 경제학자와 복지학자의 견해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복지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복지에 소요되는 예산에 대한 관심보다는 복지지출에 관심이 많고, 가능한 복지를 늘리는 것이 좋다는 전제하에 그 방법에 대해서 관심을 갖습니다. 반면에, 경제학자들은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데 더 관심이 많고, 경제성장이 최선의 복지라는 관점을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경제학자들은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며, 복지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번 호에서는 경제학자와 사회복지학자 두 분을 모시고 복지문제를 검토했습니다. 경제학자로는 건국대학교 인문사회융합대학 경제통상학부 김원식 교수를 초대했습니다. 그는 고용보험,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과 같은 사회보장 및 국가재정 관련 정책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복지학자로는 한림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복지학과 최균 교수를 초대했습니다. 그는 사회보장심의위원회 위원, 재정정책자문위원회 위원, 미소금융재단 이사를 역임했습니다. 두 분과 복지제도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고, 복지제도의 유형별 장단점, 한국 복지제도의 나갈 방향을 논의한 후에 고령 복지, 아동복지, 교육복지 등을 토론했습니다.


이달의 특집(ISSUE)


이달의 특집에는 4가지 분야에 14편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먼저 역사적으로 복지에 대한 관심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에 대한 글을 4편 실었습니다. 한국경제사를 전공한 전남대학교 김재호 교수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속되었던 복지제도인 환곡제도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택해야 할 복지제도가 무엇인지 실마리를 찾으려고 했습니다. 이어 ‘자유와 시장 연구소’ 권혁철 소장은 서구에서 복지국가 이념이 왜 시작되었고, 어떻게 쇠락했는지를 설명해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복지 수준이 높으면 경제성장이 느리게 됩니다. 국립안동대학교 이성규 교수는 스웨덴의 복지 수준이 높지만, 경제성장이 크게 악화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한국 사회에 시사점이 많습니다. 보건사회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순천향대학교 김용하 교수는 4차산업혁명 시대가 열리면서 기본소득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데, 평화적인 방법으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무엇인지 설명했습니다.

복지와 관련되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논·쟁점 3가지를 소개했습니다. 한국의 복지 수준은 세계에서 어느 정도 수준일까요?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복지 수준이 OECD 국가 중에서 최하 수준이라고 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한국도 복지 수준이 이제 선진국과 동등한 정도라고 주장합니다. 숭실대학교 이상은 교수는 한국의 복지가 OECD에서 어느 정도 수준이며, 우리가 나아갈 복지의 방향이 어느 쪽인지 설명했습니다. 지나친 복지는 노동 의욕을 떨어뜨려 모두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반면에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사회구조가 더 큰 문제라고 하는 반론도 있습니다. 자유기업원 최승노 원장은 최선의 복지는 열심히 일하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우리 사회에 선별적 복지가 바람직한지, 보편적 복지가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쟁이 있습니다. 서강대학교 곽태원 명예교수는 왜 선별적 복지가 더 바람직한지 설명했습니다. 그는 [성경과 경제]라는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이 칼럼을 특집으로 옮겼습니다.

다음에는 아동, 교육, 노동, 고령자 등 부문별 복지와 관련된 주제에 대한 칼럼을 4편 실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을 역임한 김미숙 박사는 아동복지의 현황과 문제점을 설명하면서 저출산에서 벗어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대통령 교육비서관 및 한국학술정보원장을 역임한 충남대 천세영 명예교수는 무료급식과 반값 등록금을 중심으로 한국의 교육복지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책을 제시했습니다. 아시아투데이 김이석 논설심의실장은 시장친화형 복지가 왜 중요한지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국민연금연구원에서 연금제도연구실장을 역임한 김헌수 박사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 각종 연금제도의 근본적인 구조 개혁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회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3편의 칼럼을 실었습니다. 장로교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만식 교수는 교회가 사회복지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선진국의 경험을 중심으로 설명했습니다. 강남대학교 사회복지과 이준우 교수는 의욕적으로 사회복지를 중요하게 다루었던 현 정부의 복지정책의 성과와 한계를 평가한 후 기독교 영성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복지의 과제를 피력했습니다. 아세아연합신학교 사회복지학과 손신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4차산업혁명 시대의 사회복지 정책 방향을 기독교 관점에서 제시했습니다. 그는 복지국가 모델과 신자유주의 모델을 넘어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해서 국가적 책임의 정당성을 도출했습니다.


맺음말


김용하 교수의 칼럼 중에, 토머스 모어(Thomas More)가 1516년에 유토피아를 “사람이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고, 아내의 바가지에 마음을 상할 이유가 없고, 아들의 가난을 염려하지 않고, 딸의 결혼지참금을 걱정하지 않으며, 나이 들어 일을 못 하게 되더라도 아직 일하는 사람만큼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자손 대대의 생활과 자신의 행복이 약속되어 있어서 즐겁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묘사했다고 합니다. 경제적으로 걱정이 없어도 아내의 바가지가 없어야 유토피아가 된다는 토머스 모어의 글을 보니, 절대 국가가 유토피아를 만들어 주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은 복지문제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우리를 살리려 대속 재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와 부자, 병든 자나 건강한 자, 어린아이나 어른, 독립운동가나 세리를 구별하지 않고 모든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분열되어 갈등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행복의 길은 무엇일까요? 물질만을 숭배하는 이 시대에 진정으로 가난한 자는 누구일까요?

올바른 방향을 찾기 위해서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아드 폰테스’를 기억하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기독교인의 행복, 웰빙, 복지의 근본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일은 축복이라는 사실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행복한 삶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지 열심히 살아서 남을 도울 수 있는 것이 행복입니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인생의 방향 없이 남들이 하는 대로 무턱대고 노력한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쓴 책이지만, 자칫하면 게을러도 좋다는 오해를 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복지도 일할 수 없는 사람에게 사회가 도움을 주는 것이지, 건강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이 힘들다고, 하기 싫다고 일하지 않는 사람까지 무분별하게 돕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을 살리는 복지와 거지를 만드는 복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게으름을 권장하는 복지는 사람을 죽이는 복지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달 12월을 맞이해서 한 해 동안 편집위원으로 수고하신 분들의 ‘편집위원 한마디’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2021년 한 해를 평가하면서 보다 희망찬 새해를 기원하는 편집위원들의 글을 실었습니다. <월드뷰> 가족 모두를 대표해서 독자 여러분께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지난 한 해를 힘들게 보내신 분이 많겠지만, 축복된 새해를 맞이하시길 빕니다.


글 | 김승욱

중앙대학교 명예교수이며, 현재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및 학교법인 청지학원 이사를 맡고 있다. 미국 조지아 대학교에서 신제도주의 경제사 분야의 박사학위(Ph.D.)를 받고 UNIDO 국제 전문가와 경제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1989년에 9명의 교수와 함께 “기독교학문연구회(현 “사단법인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를 창립해, 2000년부터 2012년까지 12년간 회장으로 봉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