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신학은 갈등을 부추기는 이단 신학이다

페미니스트 신학은 갈등을 부추기는 이단 신학이다

2021-07-15 0 By 월드뷰

월드뷰 JULY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3


글/ 김성한(목사)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피해의식을 심어 주어 남성 혐오를 부추긴다. 페미니스트들은 인간 역사는 남성들에 의해 반복된 여성 권리 박탈의 역사이며, 남자들은 가부장제를 이용해 여성들을 비하하고 혐오하며 여성들에게서 사회적 권리와 기회를 박탈해 왔다고 주장하며, 여성들은 이에 분노하고 저항하라는 한다.

페미니스트들은 특히 기독교가 가부장주의와 여성 혐오 사상을 부추겨 왔다고 주장하며 기독교를 혐오 세력으로 각인시킨다. 그래서 페미니즘 신학이 있는 곳에는 남성에 대한 분노가 있고,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가르침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어느 구절에서도 남성에게 여성을 혐오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페미니스트 신학은 갈등과 분노를 유발하기 위해 성경의 본뜻을 왜곡하고 모함한다.


페미니스트 신학은 경험 중심의 신학이다


페미니스트 신학은 성경을 문화의 산물로 보며, 성경을 보는 관점도 철저하게 인간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성경이 남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었고 남자들에 의해서 해석되었으므로 필연적으로 남성 중심적이고 여성 혐오 사상을 가르쳐 왔다고 주장한다. 성경의 기록과 해석이 오직 남성들의 경험만 반영하고 있으니, 여성의 경험을 가지고 본문을 다시 판단하고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경은 인간의 경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신학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 신학은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성경이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참람한 이단 사상이다.

강남순, <페미니즘과 기독교>, 대한기독교서회

페미니스트 신학이 위험한 것은 성경을 의심하는 자세로 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남성 중심적으로 기록되었으니, 그 본문을 중립적으로 다시 재구성해서 보라고 하면서 성경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조장한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라고 부추겼던 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바른 성경 해석은 성경 본문이 말씀하시는 본뜻을 정확하게 찾는 것이며, 바른 성경 해석의 시작은 편견을 버리는 것이다. 인간의 눈은 편견으로 들여다보면 정말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이단들은 성경의 본문을 가지고 자기가 재림 예수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한다. 어떤 목적과 선입견을 가지고 성경을 보게 되면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인간의 사고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정확하게 해석하려면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신학은 철저하게 자신의 경험과 목적을 가지고 편향된 시각으로 성경을 볼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절대로 바른 해석이 나올 수 없다. 성경 본문의 뜻을 정확하게 찾기 위해서는 인간의 사상이나 목적이 개입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신학은 애당초 성경에 대한 객관적 해석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바른 성경 해석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페미니스트들은 성경 해석이 애당초 인간의 경험에서 시작한다고 단정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객관적 해석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기존의 남성 중심적 해석에서 여성의 입장으로 재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또 다른 편향된 주관적 해석을 낳을 뿐이며 자신들의 성경 해석도 여성 중심적인 또 다른 편향적인 해석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논리인 셈이다.

결국, 성경에서 본문의 뜻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경험적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임의적 자의적 성경 해석은 모든 이단의 행태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성경 해석 방법이다.


페미니스트 성경 해석은 남녀 갈등을 부추긴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 11:3)

페미니스트는 “여자의 머리는 남자라는 성경 말씀을 남자가 여자에게 권세를 행사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전근대적인 가부장제의 발상이며,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바울의 개인적인 생각의 한계였다고 억지 주장을 한다.

성경에서 ‘남자가 여자의 머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남자가 여자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압제하라는 말씀이 아니다. 성경은 ‘머리’라는 의미에 대하여 그런 식으로 타인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압제하는 것이라고 가르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방법으로 이 구절을 해석한다면,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는 말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스도가 교회에 권세를 부리고 억압하고 착취한다는 말인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를 위하여 희생하신 것이 보이지 않는가?

성경은 “큰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라고 가르친다.

페미니스트들이 “머리”의 개념을 권력과 폭력으로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부터 잘못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성경의 질서를 전부 권력의 개념으로 해석하고 있는데, 성경에서 가르치는 ‘질서’의 의미는 권세 부리는 것을 의미한 적이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질서를 ‘세속적인 권력의 서열’로 바라보는 페미니스트 해석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가르침과 정반대의 관점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권세를 부리는 것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하는 행위이며, 너희들은 그러지 말아야 하고, 너희 중에 누구든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가르치셨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성경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연약한 그릇이기 때문에 더욱 귀하게 여기라고 가르친다. 페미니스트 신학이 성경에 대하여 모함하는 주장처럼 ‘여성이 남성보다 연약하므로 정당하게 지배하라’는 가르침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성경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인간의 사상을 가지고 거기에 맞추어 성경을 재단하고 해석하는 페미니스트 신학의 거짓 해석에 속지 말아야 한다.

<페미니즘 시대의 그리스도인>, ivp. 148

교회의 사역은 권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다.

페미니스트 신학은 남성들이 교회의 사역과 결정권을 독점한다며 여성들도 동등하게 교회의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부분에 대하여 그들의 태도가 매우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페미니즘은 교회의 사역을 권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의 논리는 “남성이 교회에서 권력을 독점하고 있으니 이것을 되찾자”라는 것인데, 이런 태도는 권력을 탐하는 것일 뿐이다. 교회의 사역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고 신학교에서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 교회의 사역을 권력의 행사로 이해한다면 교회는 이런 사역자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하지 않는 교단이 있다. 그것은 교회의 사역을 남성이 독점하려는 의도가 절대 아니다. 이것은 혹시라도 성경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될까 두려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성경 말씀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이 없다.

성경의 표현을 남녀 중립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스트 신학은 성경에서 남성 중심적 용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하나님 아버지’ 대신에 ‘하나님 어버이’ 혹은 ‘하나님 어머니’라고 고쳐야 한다는 등, 성경의 표현을 수정할 것을 요구한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하나님의 계시로 주어진 것이며 함부로 고치는 것은 망령된 행위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계시하셨기 때문이며,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 남성 중심적 편견을 가지고 기록했기 때문이 아니다.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성경을 함부로 고치면 성경은 누더기가 될 것이다.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시 131:2)

성경에는 하나님의 심정을 모성적으로 표현한 구절들이 있다. 이런 구절들을 근거로 하나님의 여성성을 주장하고,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부르자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는 해석이다. 남자들도 자기의 심정을 표현할 때 여성적인 표현을 쓸 수 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마 23:37)

예수님이 자신의 심정을 암탉에 비유했다고 해서 예수님을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나? 페미니스트 신학은 끊임없이 성경에 대하여 왜곡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페미니스트 신학은 근본적으로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이 추구하는 사상에 성경을 억지로 꿰어맞추려는 것이다.


페미니즘은 분노와 선동이며, 끊임없는 모함의 연속이다


페미니스트들은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교묘한 거짓말로 성경을 비틀어서 교회를 모함하고 남자를 모함한다. 이런 면에서 페미니스트 신학은 틀림없는 이단이다. 페미니즘의 궁극적 목적은 여성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를 빌미로 인간관계를 이간질하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은 남녀 관계를 권력의 구조로 볼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런 관점으로 인간의 관계를 들여다보면,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갈등이 유발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을 획일적으로 동일하게 창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으로 보면 이 획일적으로 동일하지 않은 요소들이 모두 불평등으로 보일 것이다. 서로 갈등하고 뺏어야 하는 페미니즘은 인간의 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 갈등을 유발해 남자와 여자를 다 불행하게 만드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돕는 배필의 관계로 창조하셨지 경쟁하며 갈등하는 존재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돕는 배필의 도움 에셀(eser)은 하나님의 사역에도 적용된 단어다.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분이시다(시 33:20). 남자에게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에게 남자가 필요하다.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할 때 이 도움의 관계가 아름답게 완성되는 것이다.

<kimmoxa@hanmail.net>


글 | 김성한

서울대학교 건축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현재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이단사이비대책위원이며 안양에 있는 은혜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