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깊은 다루심

하나님의 깊은 다루심

2021-06-19 0 By 월드뷰

제1부 선교사의 지도력 개발 (3)


월드뷰 JUNE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4


글/ 전성걸(글로벌연합선교훈련원 TMTC 상임대표)


하나님은 그의 일꾼을 ‘존재로 사역하는’ 지도자로 빚어 가신다. 사역의 경력이 깊어 가는 과정 중 몇몇 결정적인 경험들과 사건들을 허락하셔서 존재로 사역하는 지도자로 개발해 가신다. 문제는 이와 같은 다루심의 손길에 대한 지도자의 반응이다. 지도자가 하나님의 다루심의 손길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지도력의 확장을 경험할 수도 있고 그 확장이 유보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지도력 개발의 경험을 하나님의 다루심의 과정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혹시 풀타임 사역을 그만둔 사람을 알고 있는가? 혹은, 자신이 사역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사역을 그만두고 싶을 만큼의 총체적 어려움을 경험했던 대표적 인물이 있다. 바로 사도 바울이다(행 19; 행 26:15~20; 고전 9:24~27; 고후 1:8~9; 고후 11:23~30; 고후 12:9). 바울 삶의 최대 위기는 그가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기 위해 에베소를 떠나 다시 마게도냐로 갈 즈음에 찾아 왔다. 바울은 몸져누웠고 죽을 지경이 되었다. 에베소 폭동 때 간신히 피신한 터였다. 디도가 전해 준 고린도 교회의 기다렸던 소식도 좋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지도력에 저항했다. 자신의 사도적 권위가 의문시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갈라디아의 교회들도 다른 복음에 이끌려 가고 있어 그의 근심은 극에 달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울은 치명적인 육체의 질병을 앓고 있었다. 하나님께 세 번이나 강청 기도를 드렸으나 치유 받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한 때는 바울의 나이 50대, 사역 경력 20년 차 때의 일이다.


바울이 경험한 하나님의 깊은 다루심


바울이 경험한 이와 같은 과정들에 이름을 붙인다면 아마도 평범한 단어로는 감당이 안 될 것이다. 하나님의 ‘깊은’ 다루심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바울이 거쳐 간 하나님의 깊은 다루심에는 어떤 목적이 있었을까? 바울이 거쳐 간 깊은 다루심의 핵심을 우리는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 필자는 다음의 네 가지를 떠올려 본다. 첫째, 바울은 개인적인 관계에서 그리고 교회들과의 관계에서 ‘사역적 갈등’을 경험했다. 모름지기 그는 사역 중 경험한 갈등의 구조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을 터득했을 것이다. 갈등의 성격을 파악하고, 갈등의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갈등을 창조적으로 사용해 하나님의 뜻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간 모습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다. 둘째, 바울은 생애 중 격심한 압박을 느끼는 ‘삶의 위기’를 여러 번 경험했다. 그러나 생명의 위기 중에서도 그는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교훈을 남겼다(고후 1:8~11). 셋째, 바울은 ‘지도력 반발’이라는 관문도 통과했다. 지도력 반발이란 지도자를 따르는 집단의 추종자들이 지도자를 향해 다양한 형태로 반항하는 상황을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부터 그의 신학적 지도력을 향한 반발을 경험했지만, 그는 지도자로서 인내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회심을 경험하며 일정 기간 식음 전폐의 ‘고립’을 경험했다. 성경은 3일간 그가 무엇을 경험했는지 말씀하고 있지 않지만, 이후 바울의 행적은 그가 고립의 기간 중 극적인 패러다임의 변화를 경험했음을 알게 해 준다. 즉 고립의 시간을 통해 그의 생각과 존재가 바뀌는 것을 경험했다. 이와 같은 깊은 다루심의 과정에 바울은 올바르게 반응했고 그 결과 하나님은 그를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의 권위와 지도력과 섬김을 지속해서 허락해주셨다.

바울이 경험한 고립의 시간은 사실 성경 여기저기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지도자 개발의 방법이다. 요셉은 감옥에서 고립을 경험했고, 모세는 살인자가 되어 도망 중 고립을 경험했다. 엘리야는 산상 대결이 있기 3년 전 홀로 광야에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고립의 시간을 가졌다. 예수님 역시 40일간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며 공생애 전에 고립의 과정을 거치셨다.


내가 경험한 고립


필자도 고립의 시간을 거쳤다. 시작은 카자흐스탄 교회 개척 사역 초기 가장 중요한 때였다. 5년여간의 교회 개척 사역의 열매로 성전을 건축하게 되었고 성전봉헌 예배를 온 교인들과 함께 아름답게 드렸다. 그리고 난 뒤 과로로 쓰러졌다. 사경을 헤매는 며칠간 급박한 시간을 보냈다. 증세가 나아지지 않자 서둘러 한국에 들어와 선교사를 무료로 진료해 주는 병원을 찾았다. 그때만 해도 마음만은 성전 건축의 감격과 앞으로의 사역 계획으로 충만해 있었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감격과 의기 충만의 마음을 정지시키기에 충분했다. 간 질환이 발병해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당장 사역지를 나와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강력한 권고가 더 마음을 내리쳤다. 왜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나에게 이런 청천병력 같은 선고를 내리시는가? 필자는 그 시점부터 자발적 고립의 시간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고립이 아니었다. 상황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부정적 생각과 반응으로 가득한 비자발적 고립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던 아내는 두 주간 하나님의 뜻을 묻는 기도의 시간을 갖자고 내게 제안했다. 그러나 기도가 나오지도, 기도를 할 수도 없었다. 하나님을 향한 반항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두 주간의 시간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아내가 하나님께서 기도 중에 감동으로 주신 말씀이라며 마태복음 16장 18절의 말씀을 나누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나는 이 말씀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내 교회’라는 말씀 앞에 숨이 멎어 버릴 것만 같은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애지중지 개척하고 성전 건축까지 마친 그 교회가 내 교회가 아닌 ‘주님의 교회’라는 단순한 그 진리 앞에 내 마음은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나의 역할은 여기까지 구나’라는 감동이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고립의 단계


말씀으로 확인된 결정에 따라 우리 부부는 선교지를 현지인 형제·자매들에게 맡기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진짜 고립의 과정은 이제부터였다. 선교지를 떠난 나는 더이상 선교사가 아니었다. 위로의 말씀을 나누는 목사도 될 수 없었다. 온종일 힘없이 누워 있어야만 했기에 남편도, 아빠의 역할도 할 수가 없었다. 병상에서 필자는 오로지 모든 정체성이 벗겨진 상태였다.

일반적으로 고립의 기간은 발가벗는 단계로 시작된다. 발가벗기란 자신의 정체성을 벗는 것을 말한다. 직위나 역할, 혹은 사역이 가져다준 정체성을 벗는 것이다. 선교사나 사역자로서 얻은 정체성이 벗겨질 때 지도자는 불안감과 고통과 우울한 감정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다시 사역할 수 있을까, 사역을 할 수 없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끊임 없는 부정적 감정들로 혼돈의 시간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발가벗기 단계에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하고자 하시는가? 필자가 경험한 바로는, 하나님께서는 고립의 첫 단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원래적 정체성을 추구하도록 방향을 바꾸고자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질문하게 하신다.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수여하신 본연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필자의 고립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지나고 있었지만, 건강과 감정은 전혀 회복될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간 질환에 좋은 약도 먹어보았고, 치유 기도도 받았다. 식이 요법도 시도했다. 그러나 모두 소용이 없었다. 조급해진 필자는 하나님께 매달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기 시작했다. 사역을 떠나 무엇이 나의 진정한 정체성인가를 묻기 시작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도록 창조되었는가를 하나님에게 묻기 시작했다.

발가벗기의 단계로 정체성을 상실한 지도자는 이 과정을 기꺼이 통과하려 할 때 하나님과의 씨름의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평생 속이는 자로 살아왔던 자신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어 주실 것을 강청하며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했던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정체성을 깨닫게 해 주시도록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다.

정체성에 대해 하나님과 씨름했지만, 여전히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선교지를 떠나 투병 생활을 한 지도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선교사들에게 평균적으로 주어지는 안식년의 기간도 끝나가고 있었다. 이젠 이 상황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에 ‘공부’라는 생각이 강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아내와 곧 생각을 나눴다. 아내도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 어쩌면 아내도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출구를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선교사였기에 선교학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랐고 같은 서부지역에 있는 풀러 신학교에 원서를 냈고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몸과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지쳐 있었지만 새로운 환경 속에 새로운 출발을 꿈꿀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무엇보다도 첫 학기 수강했던 과목들은 하나님과의 씨름이 이제 마무리되어 감을 깨닫게 해 준 이정표가 되었다. 교회개척학 과목은 선교사로서 지난 개척 사역 중 범한 실수들을 인정하고 약함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 리더십 과목은 지도력이란 평생의 과정을 통해 개발되며,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지도자에게 “모든 일을 바르게 하는 지도자에서 하도록 되어 있는 바로 그 일을 올바로 하는 지도자”로 개발해 가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사역을 성취하도록 의도하셨는지가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되도록 창조하셨는지를 점차 확인하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나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과의 씨름이 아닌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 정체성으로 살아가도록 도움을 요청하는 친밀함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하나님과의 씨름 단계에서 친밀함의 단계로 옮겨가며 깨닫게 된 핵심을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증진시키기 위한 첫 출발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겸손이라는 점이다. 둘째, 잘못을 인정한 빈자리에 서서 약할 때 강함 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기로 작정하는 것이다. 셋째,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사역이 부여한 정체성이 아닌,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던 정체성으로 나아가게 하신다는 사실이다.

고립의 세 번째 과정을 통과한 필자에게 하나님은 드디어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자리로 인도하셨다. 디모데후서를 묵상하던 어느 날 아침, 1장 6절 말씀을 읽는 순간 북받쳐 오르는 감정에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지난 투병 생활 중 쌓였던 고난과 외로움, 불안과 불만, 그리고 조급함이 완전히 씻겨져 나가는 듯한 감격의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용하실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고립의 과정이 필요했다는 사실이 명백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로 말미암은 새로운 정체성을 덧입게 하실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의 순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거쳐 간 고립의 결과로 현재 필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사에 기초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소위 더 잘 나갈 수 있는 자리, 직위와 평판이 가져다주는 정체성이 아닌 “하나님의 은사”에 기초한 정체성으로 “하도록 되어 있는 바로 그 일”을 위해 일하고 있다 (은사에 기초한 사역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를 통해 나누고자 한다).

고립의 마지막 단계에서 하나님께서는 지도자를 고립의 과정에서 벗어나게 하신다. 보다 성숙한 지도자로 섬기도록 고립의 종국을 허락하신다. 지금 뒤돌아보면 고립의 과정은 존재로 사역하는 지도자로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변화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고립으로부터의 자유가 목적이 아닌, 고립의 기간에 경험한 변화에 맞는 삶을 살도록 하려는 것이 이 과정의 목적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깊은 다루심은 초점 있는 사역을 하도록 지도자를 이끄시는 섭리적 사건이다. 지도자의 성숙을 심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매우 강렬한 다루심이다. 그 결과 지도자에게 초점 있는 사역으로 나아가게 하신다.

혹 이 글을 읽고 있는 선교사, 사역자 중에 고립의 시간을 거쳐 가고 있는 분이 있다면 좀 더 힘을 내어 고립의 축복을 경험해 보길 바란다!

<chunsunggeol1@gmail.com>


글 | 전성걸

캐나다 NSCAD University (B.A.), Tyndale Seminary (M.Div.)를 졸업하고, Full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박사학위(D.Min. in Intercultural Studies)를 취득했다. 카자흐스탄에서 교회 개척 선교사로 사역했으며, GMF 산하 한국글로벌리더십연구원(KGLI) 원장과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글로벌연합선교훈련원 TMTC 상임대표 및 MEX 디렉터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로는 <타문화 관계전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