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보편적 인류애

엉뚱한 보편적 인류애

2021-06-15 0 By 월드뷰

월드뷰 JUNE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COLUMN 1


글/ 이상원(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전 총신대 교수)


정치적 이익확보를 위하여 보편적 인류애(?)를 이용함


현재 한국의 집권층은 정말 납득하기 어려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통상적으로 국가권력은 인류 보편의 이익보다는 국익에 근거해 정책을 입안하여 추진하고, 국가의 지나친 국익 우선주의에 대해 민간기관들이 견제와 비판을 하면서 보편적 이익을 강조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국가 권력기관이 주도적으로 나서서 국익을 희생하면서까지 보편적인 인류애(?)를 강조한다. 집권층은 헌법이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이상한 논리를 국민에게 주입하려고 한다. 그들은 건전한 양성적 성(性)인식과 결혼관을 가진 다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성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국제적인 성해방세력과 연대한다. 또, 한국의 시민권을 획득하지 않고, 한국 땅에서 살아가는 외국인에게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주어야 한다며 지원 법안을 만들고자 한다. 그들은 보편적 인권이라는 명목 하에 이미 한국의 삼대 종교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한 기독교를 탄압하면서까지 이슬람 난민과 이슬람교를 우대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집권층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 경제의 토대 위에 해방 이후에 설립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무자비하고 잔혹한 북한 공산당 정부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한다. 이로 인해 “애국”이 마치 극우 보수 세력의 광적인 신앙의 표현인 것처럼 오해하게 하며,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태도이며, 마치 무슨 죄를 짓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그런데 사실상 집권층이 추구하는 보편적 인류애의 내용은 보편적인 것이 아니다. 그 내용에는 특정한 성해방세력, 이슬람세력, 특히 중국과 북한의 공산당 정부와 밀월관계에 있는 친중, 친북 세력의 정치적 이익 이외에는 다른 것이 보이지 않으며, 국가권력이 보편적 인류애라는 가치를 특정한 정치적 이익의 확보를 위한 징검다리로 이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를 사랑하는 것이 보편적 인류애를 추구하는 태도와 상충되는 것으로서 지양해야 할 태도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성경은 어떤 답변을 주는가?


의생활과 국가 생활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레인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부터 종말의 날까지 인류가 이탈해서는 안 되는 레인(lane)들을 정해주셨다. 이 레인들 가운데 두 개의 레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개인의 삶에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구조에 관한 것이다. 개인의 삶에 관련된 것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나오기 직전에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조치에서 확인된다. 가죽옷은 다양한 의미가 있는데, 그 의미들 가운데 하나는 남자와 여자의 성기를 노출하지 말고 옷으로 가리고 생활을 하라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성기는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아가페적 사랑의 표현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이었으나,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그 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인간의 성기가 남자와 여자 사이의 진정한 아가페적 사랑으로부터 유리되어 인간의 욕심을 이기적으로 충족시키는 도구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진정한 사랑의 표현이 어느 정도 가능한 제도적 장치인 결혼이라는 장치 안에서만 옷을 벗고, 성기를 적나라하게 볼 수 있도록 하시고, 결혼이라는 제도 밖에서는 성기를 가리는 생활 곧, 옷을 입는 생활을 하도록 하신 것이다. 종말의 날까지 특별한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인간은 결혼 제도 밖에서는 옷을 입고 생활해야 한다.

타락한 인간세계의 질서로서 종말의 날까지 하나님이 정하신 또 하나의 사회 구조적인 레인은 국가다. 사도행전 17장 26절은 하나님이 인류를 첫째로, 한 혈통으로 만드셨고 둘째로, 온 땅에 살게 하셨고 셋째로, 연대를 정하셨고, 넷째로,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다고 말한다. 이 네 가지 요소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을 나온 이후부터 종말의 날까지 상수(常數)로서 유지되는 질서다. 첫째로, 모든 인류는 생물학적으로 아담과 하와의 혈통 안에서 아담과 하와의 DNA와 체질을 물려받은 자들이며, 이 혈통이 아닌 다른 혈통은 없다. 아담과 하와 이외에도 많은 다른 조상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복수 아담론은 왜곡된 성경해석이며, 다른 동물의 종이 진화해 인류가 되었다는 이론 역시 잘못된 것이다. 둘째로, 하나님이 인류에게 정해주신 거주환경은 지구의 땅 위다. 바닷속은 인류의 거주환경이 될 수 없으며, 지구표면이 아닌 우주 공간이나 다른 별들도 인류의 거주환경이 될 수 없다. 관찰 가능한 영역을 넘어서서 관찰이나 실험 자체가 불가능한 거시적 시공간으로 논리적 상상을 확장해 신화적 세계관을 전개하는 사변과학이 우주의 수많은 별을 인류의 거주 선택지로 선전하는 것은 허황된 과장이다. 셋째로, 인류 수명의 길이는 하나님이 정해주셨다. 인명은 재천인 것이다. 넷째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하나님은 인류가 땅 위에서 거주할 때 그 경계를 정해주셨는데, 거주의 경계가 바로 다양한 형태의 국경을 의미한다. 국경에 의해 한정된 국가라는 삶의 시간과 공간은, 비록 국가의 크기는 고대의 작은 도시국가로부터 거대한 제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하나님이 정해주신 시공간이다. 국가체제가 시간상으로 변해 망하기도 하고 새로 형성되기도 하는 것, 국경이 지리적으로 변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로 일어나는 것이다. 국가는 국민의 삶에 있어서 운명적인 것이다. 국민에게는 국가를 선택할 권한이 없다. 국민은 태어날 때 이미 어느 국가소속인가가 정해져 있으며, 이민으로 국가의 소속을 바꾸는 것은 국민 대부분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가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사회 구조적인 삶의 환경이다.


국가비판은 이웃사랑의 표현


국가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레인이자 지평이기 때문에 국가는 기독교인들이 존중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 된다. 국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국가 안에 있는 국민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하는바,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라는 갈라디아서 6:10의 말씀에 따라서 교회를 더욱 사랑하되 교회의 사랑이 국가에 대한 사랑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국가를 세우신 것은 타락한 인간 사회에 편만한 악의 세력을 법적인 권력의 힘으로 차단하고, 국민의 생명을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며, 국가 내의 약한 국민과 기관들을 지지해 주기 위한 것이다. 국가가 이와 같은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선을 행한 자를 처벌하고, 불의를 행한 자를 오히려 두둔하며, 타국을 부당하게 침략하며, 신앙의 자유를 억압할 때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국가에 대해 저항하고 국가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저항과 비판은 국가가 하나님이 세우신 기관이라는 전제하에 국가가 바르게 소명을 행하기를 바라는 국가 사랑의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유다와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선지자들의 비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선지자들의 비판은 하나님이 세우신 국가기관인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이 죄악으로 인해 멸망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바울은 자기의 동족 유대인들이 선교사역 기간 내내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온갖 방해와 핍박을 가했고, 유다 왕국은 식민지국인 분봉국의 형태로밖에는 남아 있지 않았으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조차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동족인 유대인들을 사랑했다(롬 9:2).

교회와 국가는 모두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다. 다만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방법과 국가를 통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은총의 기관으로서 영적이고 도덕적인 방법으로 악을 제어하고, 국가는 일반은총의 기관으로서 법적인 강제력을 통해 악을 제어한다. 교회의 영역과 국가의 영역은 소명이 다르지만, 서로를 배제하지 않으며, 오히려 두 영역이 나란히 함께 존재하면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 위에 구현한다. 그러나 두 영역이 물과 기름처럼 상관하지 않는 분리된 영역들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국가에 대해 영적이고 도덕적인 방법으로 도움을 제공하기도 하고, 국가가 영적이고 도덕적으로 타락할 때 견제하기도 하며, 국가는 법적인 강제력을 가지고 교회에 대해 버팀목이 되기도 하고 교회가 불법을 행할 때 제어하기도 한다.

현재 집권층은 권력에 주어진 고유한 국가적 소명을 해체하고 정체와 결과도 불분명하고 신뢰할 수 없는 특정한 이념의 구현에 집착하는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국민 전체의 도덕성을 진작시키고 의학적인 건강을 증진하는 정책을 추구해야 마땅한데도 가정을 해체하고, 성 질서를 어지럽히며, 젊은이들을 심각한 질병에 몰아넣는 성 정책을 집요하게 추구하고 있다. 이와 같은 시도 안에서 우리는 신마르크스주의적인 성 해방 이념에 함몰되어 국가 고유의 소명을 망각해 버린 타락한 관리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국가가 하나님이 국가에 부여하신 고유한 소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특정한 이념에 집착해 나라 전체를 파국에 몰아넣는 것이 자명할 때, 기독교인과 교회는 국가와 국민을 사랑해야 한다는 원리에 근거해 국가의 일탈에 대한 합법적인 비판과 저항을 하지 않을 수 없다.

<swlee7739@hanmail.net>


글 | 이상원

총신대학교 신학과(B.A.), 동 신학대학원(M.Div.), 미국 웨스트민스트 신학교(Th.M.), 네덜란드 캄펜 신학대학교(Th.D.)에서 수학했다. 미국 보스턴 대학교와 네덜란드 우트레히트 대학교에서도 공부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기독교윤리학/조직신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한동협 현대성윤리문화교육원 원장, 월드뷰 편집위원, 차바아 운영위원, 복음법률가회 운영위원, 카도쉬 아카데미 고문으로 섬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