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징비록, 전쟁을 잊은 국가에 미래는 없다

6·25 징비록, 전쟁을 잊은 국가에 미래는 없다

2021-06-10 0 By 월드뷰

월드뷰 JUNE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8


글/ 김형철(예비역 공군 중장, 자유수호포럼 공동대표)


끝나지 않은 전쟁 6·25


6·25전쟁은 68년 전에 정전되었지만, 우리에게 미완의 과제를 남겨 주었다. 두 개의 다른 체제 대결의 우위는 경제력과 군사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국력을 결정하는 많은 요소 중에서 경제력과 군사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 의지와 국가 전략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핵무기 보유 여부가 국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현시점에서 제3국의 도움 없이 북한과 대한민국이 제2의 6·25전쟁을 벌인다면 우리가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주전론(主戰論)과 주화론(主和論)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남한산성의 논쟁을 되풀이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역사는 전쟁을 잊은 국가에 미소 대신 눈물을 남겨 주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6·25전쟁 이후 우리는 중요한 세 가지 안보 수단을 확보했는데, 그 첫째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고, 둘째는 주한미군이며, 셋째는 한미연합군사령부이다. 이것은 한미동맹의 실체이고, 6·25전쟁에서 함께 피 흘리며 싸운 전우들이 만들어낸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지금 그 세 가지 자산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안보 삼각기둥


[한미상호방위조약]

우리가 언제 패권 국가와 상호방위조약을 가진 적이 있었나?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선조 임금은 한양을 떠나 평양을 거쳐 의주로 몽진(임금이 피난 가는 것)을 했다. 거기서도 불안했던지 명나라로 내부(명나라로 들어가서 조선 정부를 세우는 것) 하려고 했고, 명나라 원군만을 기다렸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1953년 체결되어 1954년에 발효되었으며, 이후 북한의 침략을 막아온 최고의 안보장치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6·25전쟁 정전회담에서 우리 측 대표를 철수시키고 반공포로를 석방하면서까지 이 조약을 만들어냈다. 대한민국의 100년 앞을 내다본 ‘신의 한 수’가 아닐 수 없다.

[주한미군]

현재 미국은 전 세계 150여 개 국가에 16만 명 이상의 군인을 파병하고 있다. 그중 일본-독일-대한민국 순으로 많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일본과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추축국이었다는 점에서 미군 주둔이 그들을 감시하려는 목적은 아닌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경우 또다시 침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와 우리의 요청으로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그것은 지난 70여 년간 북한의 전면적 침략을 저지해 온 실질적인 방어 수단이었다.

[한미연합군사령부]

한미연합군사령부는 전 세계 유일의 맞춤형 연합군사령부로서 한국군의 군사적 능력을 크게 발전시켜온 군사동맹의 요체이다. 유엔군 사령관이 100% 지휘하던 한미 연합전력에 대한 지휘체계가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창설됨으로써 전시 증원되는 미군을 포함해 한미연합군을 미군이 51%, 한국군이 49% 지휘할 수 있는 체계로 발전된 것이다. 엄밀히 말해 6·25전쟁 이후 미군이 일방적으로 지휘하던 한미연합작전체제가 한국군이 49%의 지분을 가진 대주주로서 연합작전에 참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체제로 발전된 것이다.


안보 삼각기둥을 위협하는 안보 정책


한미상호방위조약, 주한미군 그리고 한미연합군사령부는 대한민국의 안전을 보장하는 삼각기둥이고, 삼각기둥이 견고한 역할을 수행하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 한미연합 군사연습과 훈련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한미연합 연습 축소,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그리고 종전선언 등과 같이 파행적 행동과 정책을 통해서 안보 삼각기둥에 심각한 손상을 가하고 있다. 한미연합연습을 축소하고 종전선언을 하면 북한과 관계가 개선되어서 북한이 도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최저임금을 올려서 소득주도성장을 이루겠다는 생각보다 더 단세포적이고 우매한 생각이다. 그것은 자칫하면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독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연합연습 중단과 축소]

연합연습을 하지 않는 연합군은 축구 국가대표선수만 뽑아 놓은 채 훈련을 하지 않는 대표선수단과 같다. 축구 국가대표선수를 뽑는 이유는 시합에서 이기기 위함인데, 국가대표선수들이 각자가 속한 팀에서 늘 훈련을 하고 있으니 대표선수단이 별도로 훈련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연습과 훈련을 하지 않는 연합군으로는 전시 연합작전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전시 작전통제권을 한국군이 가져오겠다는 발상은 미군에게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신호를 우회적으로 보내는 것이다. 미군은 타국 군의 지휘를 받지 않는다는 ‘퍼싱 원칙’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한국군보다 무기체계, 군사교리, 정보 능력, 실전 경험 등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는 미군을 우리 군이 무슨 명목으로 지휘하고 또 지휘한들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미군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다”라는 표현을 써 가면서 한국군 지휘부를 비난했지만, 대한민국이 지켜질 수 있다면 바짓가랑이보다 더한 것도 잡아야 한다.

[종전선언]

문재인 정부가 북한과의 종전선언에 집착하는 이유는 종전선언에 이어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화협정은 어느 경우에 맺는 것일까? 그것은 전쟁을 일으키려는 국가와 평화를 원하는 국가 사이에 맺는 것이 통상의 경우이다. 1938년 9월 영국과 프랑스는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히틀러(Adolf Hitler)에게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란트 지역을 넘겨주는 뮌헨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뮌헨협정 체결 후 귀국한 영국의 총리 체임벌린(Arthur Neville Chamberlain)은 히틀러의 친필서명이 담긴 협정서를 흔들며 “여기 우리 시대를 위한 평화가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러나 독일은 6개월 후 체코슬로바키아를 완전히 병합했고 그로부터 6개월 후에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1973년 1월 파리에서 남베트남과 북베트남 그리고 미국은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로써 베트남전쟁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고 미군은 남베트남에서 철수했다. 그러나 북베트남은 1974년부터 평화협정을 무시한 채 남베트남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유사시 남베트남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한 미군은 돌아오지 않았다. 마침내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은 북베트남에 항복했다.

이처럼 평화협정은 침략 의도를 가진 국가가 상대 국가를 안심시키거나, 전쟁이 끝났다는 이유로 동맹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고도의 국제 사기행각이다. 우리가 북한을 무력으로 침략할 의도가 없다면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다.


6·25전쟁과 미래


문재인 정부가 한미연합연습 축소, 전작권 조기 전환, 종전선언을 추진하는 이유는 드러내 놓고 한미상호조약 파기, 주한미군 철수, 또는 한미연합군사령부 해체를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보 삼각기둥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종국에는 안보 삼각기둥을 허물 수 있는 외곽을 때리는 것이다. 전작권이 전환되면 한미연합군사령부가 와해되고, 유사시 한반도로 전개될 미 증원전력의 규모가 급감할 것이다. 그것은 수십만 미군 장병의 목숨을 한국군 지휘하에 둘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단순한 이유에 기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이 선언적 의미만 있다고 말하지만, 종전선언이 발표되는 순간 국내외 종북·좌익 세력들은 유엔사령부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며 광화문을 점령하고 촛불시위를 벌일 것이다.

결국, 전작권 전환과 종전선언은 이 땅에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한 사전작업이다. 전작권 전환은 ‘군사주권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그리고 종전선언은 ‘전쟁을 끝내고 우리 시대의 평화’라는 달콤함으로 포장하고 있다.

우리가 소망하는 6·25전쟁의 미래는 헌법 제4조에 명시된 평화통일이다. 축구 경기에서 3:0으로 이기고 있던 팀이 역전되는 것은 다반사이고, 잘 나가던 국가 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순식간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을 떠 올리면 답이 나온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링컨이 남북전쟁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노예를 해방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미국의 분단을 막기 위해서였다. 링컨은 힘으로 남부를 제압한 후 남부를 용서하고 포용해 지금의 연방 국가를 이루었다. 3:0으로 이기고 있는 경기를 4:0으로 끝내고, 잘 나가는 국가 경제를 더욱 발전시켜서 통일 대한민국이 북한 발전을 지원할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6·25전쟁 이후 구축한 안보 삼각기둥을 더욱 견고하게 다져야 한다. 한미연합연습 축소, 전작권 전환, 종전선언 등이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로 이어진다면 세계는 반세기 전 베트남에서 벌어졌던 공산화 통일과정을 한반도에서 다시 한번 목격하게 될 것이다.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은 징비록을 남겼는데, 어찌하여 6·25전쟁을 겪은 대한민국에는 6·25 징비록이 없는 것일까?

<kimhc2022@gmail.com>


글 | 김형철

1980년 공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35년간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했다. 주미대사관 공군무관, 한미연합군사령부 작전계획처장과 정보참모부장을 역임한 연합작전 전문가이다. 공군사관학교 교장(중장)을 끝으로 2015년 전역했으며 현재 자유수호포럼의 공동대표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