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편집위원 모임
2018-09-062018년 9월 편집위원회가 있었다.
● 일시: 2018년 09월 06일(목요일) 07:30 – 09:30
● 장소: 서울 용산구 이촌로2가길 5 (이촌동, 한강르네상스빌 A) 102호
● 참석자: 김승욱, 음선필, 곽우정, 백승현, 조영길, 김행범, 김철홍, 김정효, 이영진, 황은주
● 예배
·기도: 김철홍 교수
·찬양: 90장 주예수 내가 알기 전(통일 98)
·설교: 이영진 목사
·본문: 요한복음 1:43-50; 4:42.
● 설교요약
- 우리는 누구를 만나는가. 아는 사람을 만난다. 우리는 누구를 부르는가. 아는 사람을 부르기 마련이다.
- 본문은 앞서 그렇게 서로 아는 사람끼리(세례 요한, 안드레, 베드로, 빌립) 만나고 부르는 상황이 전개 되다가 나다나엘에 와서 제동이 걸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 “나사렛에서 무슨 선(善)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그것은 윤리적으로 악(惡)한 지역이어서라기보다는 그 지역에 얽힌 ‘전승’에 관한 나다나엘의 회의적 시각의 반영이다. 이를 테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에서 ‘가지’를 뜻하는 네쩨르(נֵצֶר)를 ‘나자렛’(Ναζαρὲτ)으로 보는 전승은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러한 빈약한 전승을 옹호하기 위해 요셉-마리아가 호적을 하러 갔다가 (베들레헴에서 출산하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돌아와 정착한 곳이 바로 나사렛이라는 설명은 그런 문필가로서 마태의 노력을 표방한다.
- 그렇다면 나다나엘은 대체 왜 ‘나자렛 전승’을 부정한 것일까? 그것은 ‘왕의 제도’가 본래 열광적 분위기 속에서 들여온 야만성에 기초한 제도로서, 민중의 우민성을 드러내 고발하는 맥락에 닿아있다(사무엘상). 그리고 그 우민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사회에도 임하여 있다.
- 지금 우리 사회의 이 열광적인 분위기는 우리로 하여금 본의 아니게 ‘좌-우’, ‘진보-보수’, ‘김구-이승만’이라는 분열의 전선에 서지 않으면 안 되도록 요구하지만, 본질을 잊을 때에 그것은 언제나 민족의 토착신 신앙으로 변질될 소질이 다분하다.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토템에 함몰 된 것처럼. (‘이승만-하와이’ 전승, ‘김구-만주’ 전승.., 이런 것에 함몰 되어 있는 건 아닌지.)
- 나다나엘은 이 열광적인 왕의 제도 이전의 시점 즉, 하나님이 광야에서 자기 백성을 직접 인도하심으로 그들의 진정한 왕이 되었던 시점을 고대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왜냐하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라고 묻는 나다나엘 자신이, “빌립이 부르기 전에 이미 너를 봤다”고 한 그 지점을 자신의 임금과 ‘만났던’ 지점으로 승인하기 때문이다.
- 그런 점에서 ‘안드레-베드로-빌립’이 서로 한 동네 사람으로서 서로를 ‘아는 것’과 나다나엘의 임금이 나다나엘을 ‘알고 있는 것’은 그 ‘아는 것’의 차원을 달리한다. 이것이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한 요인이 되었다.
- 이와 같은 세계관(Worldview)의 신앙은 유대인들만의 지엽적 토착 신으로 전락할 뻔한 메시아를 사마리아인들도 고백할 수 있는 ‘세상의 구주’가 되게 만들었다. 여기서 세상의 구주는 ‘세계의 구주’(ὁ Σωτὴρ τοῦ κόσμου)를 말한다.
- 다른 말로 하면 이 시대 우리의 사마리아인들도 우리가 믿는 구주를 구주로 여겨야 할 것이 아닌가.
● 안건
– 지난 호(9월호) 검토
– 이번 호(10월호) 발표자 확정
– 다음 호(11월호) 기획
– 연재 칼럼 논의
– 기타 논의(홈페이지 구성)
- 지난 호(9월호) 검토
– 특집 주제: 가난한 자, 경제적 약자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
– 이달의 표지 인물: 광야교회 임명희 목사 - 이번 호(10월호) 발표자 선정
-커버스토리: 로렌 커닝햄 인터뷰
-특집 주제: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세워진 대한민국
1) 박명수 – 하나님의 은혜 속에 탄생한 대한민국
– 고려는 불교세력, 조선은 유교세력, 대한민국은 기독교인이 세운 나라
2) 이영훈 – 1948년에 세운 대한민국은 조선이나 대한제국과는 다른 나라이다.
3) 이상규 – 하나님의 은혜 속에 복음화를 이룬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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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