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역사왜곡 처벌법’에 반대한다

‘5·18 역사왜곡 처벌법’에 반대한다

2021-03-19 0 By 월드뷰

월드뷰 MARCH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COLUMN 4


글/ 김재호(전남대 경제학부 교수)


포괄적인 역사왜곡금지법으로 출발


작년 봄 역사를 왜곡하면 처벌하는 법을 만든다는 기사를 보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근현대사를 두고 ‘백년전쟁’이라고 할 만큼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어느 한쪽의 주장을 허위로 단죄하여 처벌한다면 역사 연구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리가 있겠는가!

이 개탄스러운 법은 2020년 6월 양향자 의원 등 31인이 발의한 ‘역사왜곡금지법’이다.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어 심사 단계에 있다. 처벌 대상이 매우 포괄적인데 “일제강점기 전쟁범죄, 5·18민주화운동 및 4·16 세월호 참사 등”에 관해 역사적 사실을 “부인 또는 현저히 축소·왜곡하거나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고,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 “일본의 역사부정에 내응하는 행위”에 대해 최고 7년 이하의 징역과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 글에서 살펴볼 ‘5·18역사왜곡처벌법’은 ‘역사왜곡금지법’ 중에서 5·18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조항만을 분리해서 만든 법이다. 2020년 10월 27일 이형석 의원 등 174인이 발의해 12월 8일에 국회를 통과했으며 2021년 1월 5일부터 시행되었다. 독립된 법으로 만들지 않고 기존의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법률 제5029호, 1995.12.21 시행)을 개정하는 형식을 취했다. 먼저 발의된 ‘역사왜곡금지법’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무리한 입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허위사실의 유포에 중형으로 처벌


제1조에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정의를 추가하고 제8조(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의 금지)를 신설했다. 5·18민주화운동을 “1979년 12월 12일과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하여 발생한 헌정질서 파괴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전개한 민주화운동을 말한다.”라고 정의했으며,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당초 허위사실을 유포해 5·18민주화운동을 부인·비방·왜곡·날조한 자에 대해서 7년 이하의 징역이나 7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했던 것을 심사과정에서 허위사실 유포의 목적에 해당하는 부인, 비방, 왜곡, 날조를 삭제하고 처벌 수준을 다소 낮췄다. 처벌수준이 조금 완화되었지만 처벌 대상은 더욱 포괄적으로 되었다.

이런 조항만 보더라도 5·18역사왜곡처벌법의 목적이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이와 다른 의견의 표명을 금지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술·학문, 연구·학설, 시사 사건이나 역사의 진행 과정에 관한 보도를 위한 경우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단서를 달고 있지만, 영역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우 광범하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 신문, 잡지, 방송, 기타 출판물이나 정보통신망의 이용, 전시물 또는 공연물의 전시·게시 또는 상영, 토론회, 간담회, 기자회견, 집회, 거리연설에서 발언의 방법으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는 경우에 처벌할 것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5·18에 관한 토론과 연구가 불가능


우리는 왜 이 법에 반대하는가? 왜 반대해야만 하는가? 다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전지하고 공의로운 신이 아닌 이상 지나간 역사에 대한 완벽한 지식과 공정한 서술은 불가능하므로 법적으로 진실과 허위를 판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더욱이 ‘역사왜곡금지법’의 발의에서 본 바와 같이 이 법은 근현대사에 대한 자유로운 주장과 연구를 금지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 왜곡을 처벌하겠다는 것은 5·18에 대한 역사적 연구가 완결되었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혹자는 시간순으로 일지가 정리되고 방대한 사료집이 편찬되었으며 진상조사 보고서도 작성되었기 때문에 5·18에 관한 주요한 모든 사실이 확정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코 역사적 연구가 끝난 것일 수 없다. 이제 비로소 본격적인 연구를 위한 기초가 갖추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규모가 큰 역사적 사건이 그러하듯이 5·18도 다면적이며 다층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관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 전개가 병립할 수 있다.

인간은 전지하지도 않고 공정할 수도 없으므로 5·18뿐만 아니라 어떠한 과거에 대해서도 완전한 역사라는 것은 서술될 수 없다. 5·18민주화운동은 민주화를 주장하는 학생과 시민들을 공수부대가 무자비하게 진압함으로써 촉발되었지만, 과연 누가 원인과 전개 과정 그리고 결과에 이르기까지 완벽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모든 역사적 사건과 마찬가지로 공백과 침묵이 있을 수밖에 없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새로운 사료의 발견과 문제의식의 변화가 필연적이기 때문에 재해석되어 새롭게 서술되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


둘째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초인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에 관해 대한민국 헌법은 제19조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 제21조 제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제22조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5·18역사왜곡처벌법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가를 역사의 심판자로 만듦으로써 국가의 힘을 과도하게 강화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전체주의 체제보다 우월한 것은 자유가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의견의 경쟁 때문에 번영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마치 시장에서 상품과 기술이 경쟁함으로써 높은 품질의 상품과 효율적인 기술이 개발되는 것처럼 다양한 이론과 주장이 자유로운 토론과정에서 진위와 우열이 가려지고, 비판을 통해 보완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과거 조선 시대에 주자의 경전해석만이 정통으로 인정되고 다른 견해는 사문난적으로 몰려 생명을 위협받는 조건에서는 사고의 혁신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이 <자유론(On Liberty)>에서 허위라 할지라도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라고 했던 것은 자유로운 토론으로부터 사회가 얻는 이익이 크기 때문이었다. 진실이 허위와 대적하는 가운데 진실됨이 밝혀지고 진실이 더욱 진실답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애초에 자유로운 토론이 없으면 어떻게 허위와 진실이 가려지겠는가? 5·18에 대해서 국가가 정한 공식적인 역사와 다른 견해를 주장할 때 그것이 허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일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며, 그러한 판단을 누가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등장한다. 역사에 대해 국가가 판단하는 위험성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영국 삽화가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의 일러스트레이션 중에서 ‘베헤못과 리바이어던’(Behemoth and Leviathan). 두 생명체는 구약성서 욥기에 묘사되는 동물이다. 그 괴생명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다양한 모습으로 상징화되었다. (1825년작)


족쇄 풀린 강력한 리바이던의 등장


다론 아제모을루(D. Acemoglu)와 제임스 로빈슨(J. Robinson)은 <좁은 회랑(The Narrow Corridor)>에서, 발전하는 사회는 국가라는 리바이던에 족쇄를 채우는 것에 성공한 사회라고 주장했다. 리바이던이 없으면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가 되거나 관습의 우리(cage)에 갇히게 되지만, 리바이던이 강력해져서 사회를 억압하고 착취하게 되어도, 사회는 발전할 수가 없다. 인류 역사에서 매우 소수의 사회만 리바이던에 족쇄를 채움으로써 국가의 전횡을 막는 데 성공했다.

5·18민주화운동과 그 이후의 민주화는 국가에 대해 족쇄를 채우는 과정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5·18민주화운동의 기여는 명백한 것이지만, 최근 우리나라는 리바이던의 족쇄를 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점이 많다. 5·18역사왜곡처벌법이 대표적인 징후라고 생각된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국가가 정해놓은 역사를 복창하도록 강요당한다면 이미 자유로운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이러한 추세라면 앞으로 역사해석뿐만 아니라 양심과 신앙에 이르기까지 자유로운 표현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은 기우에 불과한 것인가? 본래 국가권력은 의심스러운 존재였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왕을 세우고자 할 때 강력한 경고를 받았음을 잘 알고 있다(삼상 8장).


5·18민주화운동의 우상화를 막아야


마지막으로 5·18역사왜곡처벌법은 국가의 폭력에 저항했던 5·18민주화운동의 지향과 모순될 뿐만 아니라 5·18을 신성불가침의 우상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민주화에 기여한 5·18의 역사적 가치를 살리는 것은 비판이 불가능한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번영하는 사회로 발전해가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5·18민주화운동이 민주화에 기여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을 절대화해서 5·18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불가능하게 하고, 5·18과 관련된 단체나 활동에 대한 비판을 불가능하게 만든다면 그것이 바로 5·18을 우상화하는 일이 될 것이다. 어떠한 역사라도 예배의 대상으로 삼고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일까지 일어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우려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든 것이 불완전하며 죄의 속성에 물들어 부패하기 쉽다. 당연히 5·18민주화운동도 예외일 수 없다. 5·18이 싱싱하게 살아 부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비판과 토론을 통해 항상 새롭게 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

<jhokim@jnu.ac.kr>


글 | 김재호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년 이후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 경제사 분야를 전공하고 있으며, 경제사학회 편집위원장과 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