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만든 “가덕도 미신”
2021-02-14
월드뷰 FEBRUARY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2 |
글/ 허희영(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2차 세계대전 중에 미 공군기가 이따금 남태평양 사모아섬에 내렸다. 조종사들은 코카콜라와 담배, 초콜릿 같은 서구 문명의 선물을 원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전쟁이 끝나자 비행기는 오지 않았고, 비행기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원주민의 마음은 무속으로 변했다. 나무 비행기에 대나무로 만든 헤드폰을 쓰고 빌어도 화물은 오지 않았다. 비행기가 화물을 싣고 온다는 현상은 인식했지만 잘못된 결론을 유추한 것이다. 이 ‘카고 컬트(cargo cult)’는 196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파인만(R. Feynman)이 과학적 방법의 잘못된 믿음을 설명하느라 사용한 용어다. 충분한 검증 없이 외양만을 추론해 이론으로 믿는 행태를 경계하는 말이다.
잘못된 프레임에 갇힌 부‧울‧경의 민심
세상의 모든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프레임에 따라서도 모습이 달라진다. 프레임이란 사람이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해석하는 형식을 말하는데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가 정립한 방식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틀이 일단 결정되고 나면 그 프레임 속에서만 문제를 이해하고 진실과 관계없이 해석한 것만을 사실로 믿으려고 한다. 프레임은 개인의 인식이자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일 뿐이므로 진실을 보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부산·울산⸳경남은 지금 가덕도 신공항의 프레임에 갇혔다. 사실, 프레임 속에 갇혀 있는지가 벌써 18년째다. 정부가 새로 들어설 때마다 대선공약을 걸어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 간의 지역갈등을 일으켰던 동남권 신공항의 문제는 2016년, 결국 김해공항으로 동남권 신공항 입지가 결정되었다. 객관성 확보를 위해 국내 전문기관보다 외국의 전문기관에 의뢰하기로 하고 선정했던 프랑스의 ADPi가 현재의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을 낸 것이다. 후보지 선정결과에 조건 없는 승복을 약속했고 후보지별 평가점수도 공개되면서 밀양과 가덕도를 놓고 벌인 유치경쟁도 가라앉았다. 서병수 당시 부산시장은 김해신공항의 유치를 환영했고, 그동안 우려했던 김해공항의 시설 포화, 안전과 소음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며 부산신항에서 김해공항은 약 15Km로 세계 주요국가의 공항과 항만사례를 볼 때 항만⸳철도⸳항공을 연계한 육해공 트라이포트(Tri-Port) 구축이 가덕도보다 더 낫다고 홍보도 했다.
그런데 이듬해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이어진 부산시장 선거에서는 오거돈 후보가 가덕도 신공항을 공약을 내걸면서 대구‧경북과 부‧울‧경 5대 광역단체장 간에 맺었던 신사협정은 깨졌다. 그리고 오거돈 시장이 취임하자 김해신공항에 대한 각종 의혹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도덕적 해이가 만든 ‘가짜 진실들’
그동안 부산지역에서 만든 <김해공항 확장 사업의 위험한 진실> 자료집은 진실이 어디까지 ‘거짓’으로 바뀔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전문가의 프레임으로 보면 가덕도 신공항은 정치인들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벌어진 심각한 문제다. 정보를 많이 가진 쪽이 정보가 없는 상대를 기만하는 도덕적 해이는, 지역민의 복지를 챙겨야 하는 대리인들이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론을 반대로 움직여 정책의 방향을 종종 바꿔놓는다. 의뢰인과 대리인 간의 이해 상충은 1970년대 후반 경영학 이론에서 시작되었다. 주주와 전문경영인이 각각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듯이 정치인과 지역민, 대통령과 국민 간의 관계에서도 이해 상충은 늘 발생한다. 지역의 정치지도자들이 만든 가덕도 신공항의 환상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진실을 덮어 가덕도 환상을 만들어냈다. 피해를 보는 쪽은 공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기만당하는 지역민들이고 이득을 보는 쪽은 선거에서 표심을 얻는 정치인들이다. 김해신공항의 백지화 결정은 권한을 위임해 준 국민과 국가경영을 맡은 정치인 간의 계약관계가 지켜지지 않을 때 국가적으로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지역의 표심을 겨냥한 정치권의 가덕도공항 특별법
지역의 정치인, 일부 지식인과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여론은 마침내 지난 연말 국책사업을 뒤집어 10조 원이 넘는 세금을 투입할 특별법안을 국회 본회의에 올려놓았다. 여당 138명과 야당 15명의 명의로 각각 제출했던 법안의 취지는 김해신공항 계획을 백지화하고 후보지를 가덕도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그들의 프레임으로 만든 ‘김해공항 확장 사업의 위험한 진실’은 진실한 내용일까. 물론 이치에 맞지 않고 사실과도 다르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의 제안 이유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현재 동남권의 항공물류 99%가 인천공항에서 처리되며, 연간 순수 물류비용으로만 7천억 원 정도 소요되고 있어,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균형발전 및 지방 경쟁력 확보를 위해 물류‧여객 중심의 관문 공항 건설이 반드시 필요함.” 입법의 이유로 문제의 원인과 해결보다는 현상만 나열했다. 그나마 사실과도 맞지 않는다. 화물이 실리는 곳에서 발생하는 물류비용을 가덕도로 흡수할 수 있다는 것부터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항공화물이 인천공항으로 집중되는 이유는 세계 170여 개 도시로 운송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그곳에 집중되어 있고, 탑재되는 전체 항공화물의 약 38%는 대부분 중국의 항공사들이 싣고 오는 환적화물이기 때문이다. 2019년 말 통계를 보면, 국내에서 나가는 전체 항공화물 중 부산⸳경남지역에서 나오는 물동량은 중량 기준으로 10%, 금액 기준으론 고작 2%에 불과하다. 충남의 의료단지와 경기지역의 전자업계에서 나오는 물동량 60%와는 대비되는 규모다. 공항으로 모이는 화물은 가볍고 얇고 작고 고가인 의약품과 반도체, 자동차부품, 신선식품이 대부분이고, 이 가운데 약 40%는 여객기의 짐칸으로 운송된다. 항공화물이 인천에 집중되고 물류비용이 거기서 발생하는 이유다.
24시간 공항의 환상
그러면 “24시간 운영이 가능한 후보자로 안전성, 확장성, 접근성 등을 모두 갖춘 가덕도가 가장 적합한 곳이라 할 수 있음.” 이건 맞는 얘기일까. 소음피해가 없는 24시간 공항이라면 좋겠지만 공항이 성공하려면 충분한 고객이 있어야 한다. 잘 지어놓아도 고객이 없으면 양양, 무안, 울진처럼 실패한 공항이 된다. 공항의 고객은 항공사이고 항공사는 여객이 있어야 비행기를 띄운다. 24시간 운영하는 인천공항에도 심야엔 거의 고객이 없다. 밤 11시부터 아침 6시까지 공항을 드나드는 여객과 화물의 비율은 약 16%, 15% 수준인데, 그나마 여객은 아침 4시부터 몰리고 화물은 밤 11시 전후에 집중된다. 0시부터 새벽 4시까지 도착하는 여객은 4.1%에 불과하고 이후 도착하는 여객들도 택시를 타거나 버스나 지하철 운행이 시작될 때까지 공항에서 대기해야 한다. 열악한 접근성은 공항컨설팅그룹 ADPi가 가덕도를 최하위로 평가한 이유 중 하나다.
김해공항이 부산 시내에 있고, 신공항의 V자형 활주로가 악천후에 더욱 위험하며, 활주로가 3.2KM에 불과해 대형기의 이탈위험이 커질까? 김해공항이 부산시 강서구에 있는 것처럼 세계적인 공항들 역시 대도시를 배후에 두고 있어 오히려 여객수요가 안정적이다. 김해신공항의 안전성에도 문제는 없다. 활주로는 비행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기상을 가장 먼저 고려해서 설계되고, V자형 활주로는 세계적인 전문회사 ADPi가 설계했다. 토목이나 행정학을 전공하는 지역의 전문가들과는 글로벌 표준으로 평가하는 잣대부터가 다르다. 신공항의 진입표면에 놓인 산악지역을 피해 접근경로를 변경한 계기 착륙 절차는 국토부가 이미 마련해 놓았고, ICAO의 충돌위험 모델(CRM)로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장애물도 모두 평가를 마쳤다. 부‧울‧경 지역사회가 의혹의 프레임에 갇혀 그걸 무시했을 뿐이다. 안전기준을 충족하도록 접근절차를 바꾸면 공항시설법 제34조를 놓고 지자체와 협의할 일도 없다. 활주로가 짧아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세계적으로 3.2Km의 활주로에 대형여객기가 취항하는 공항들은 얼마든지 있다. 일본 하네다공항과 미국 뉴왁공항이 모두 3.3Km 남짓한데 이미 단종된 초대형 여객기 A380의 취항을 위해 3.7Km를 주장하는 것은 무리다.
총리실 검증위원회의 엉뚱한 결론
재작년 총리실은 해당 부처인 국토교통부를 배제하고 의혹을 검증할 검증위원회를 구성했다. 그리고 작년 말, 이 위원회는 검증보고서를 내놓았지만, 안전성에 대한 의혹들을 밝히지 못했다. 보완이 필요하다는 사족만 달고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엉뚱한 결론을 냈다. 내용만 놓고 보면 의혹에 대해 진실을 밝히는 대신, 김해신공항 후보지의 타당성을 입증한 셈이다. 법안에는 가덕도에 공항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로 “2030 부산세계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도모하기 위해 동남권 신공항의 신속한 건설이 필요함”만을 명시했다. 서둘러 만든 논리만큼이나 이유가 궁색하다. 4시간 이내로 수도권과 부산권역을 연결하는 도로망과 KTX, SRT가 있고 연간 3천만 명 여객을 처리할 공항이 있으면 충분한 교통인프라다. 대전 엑스포(2013)는 공항 없는 도시에서 성공했고 여수무역박람회(2019) 때는 여수공항만으로 넉넉했다. 평창동계올림픽(2018) 당시엔 행사장과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양양공항이 기대를 모았지만 3,818명만 양양의 관문 공항을 이용했다. 방문객들 대부분이 네트워크가 집중된 인천공항으로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미래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확장성이 어렵다”라는 보고서의 결론도 항공수요의 특성을 모르는 얘기다. 2056년이 되면 연간 여객 3,800만 명의 수요처리가 가능하다고 본문에서 밝혀놓고 확장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향후 36년 동안의 처리능력엔 문제가 없지만, 그 이후까지 봐야 한다는 건 예측의 기본을 모르는 얘기다. 예측은 모델이 아무리 정교해도 기간이 길수록 예측력은 떨어진다. 지금 ICAO도 장기예측은 2036년까지만 한다.
공개토론으로 진실 밝혀야
가덕도 특별법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제성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국토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그 직⸳간접 효과는 예타(예비 타당성 조사) 과정에서 당연히 반영된다. 천문학인 세금이 들어가는 국책사업에서 예타를 생략하는 것은 국가 예산통제시스템의 포기다. 지금은 코로나19 위기로 각국 정부가 추진하던 공항계획과 건설들이 늦춰지고 있다. 4월에 있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표심을 얻을 목적이 아니라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국채사업이란 무엇인가? 국민이 내는 세금이 투입되는 일이다.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투자한 만큼 수익이 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투자된 사업의 유지를 위해 해마다 감당하기 힘든 세금이 계속 들어가야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역의 항공전문가들 말대로 수요가 계속 늘어나 성공할 사업이라면 지자체가 나서 재원을 조달하면서 정부가 예산을 보태서 건설하고, 미국의 공항들처럼 지자체가 직접 운영하면 될 일이다. 지금이라도 김해신공항을 백지화할 만큼의 문제가 있는지를 쟁점별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공개토론으로 진실을 밝혀야 한다. 가덕도 공항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야 국책사업의 신뢰가 회복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만든 ‘가덕도 미신’을 없애는 방법이다.
<hyhur@kau.ac.kr>
글 | 허희영
항공대학교 항공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항공경영학회 초대 회장과 한국항공대학교 항공경영대학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항공대학교 경영학부 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