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미래가 보이는가?

연금개혁, 미래가 보이는가?

2021-02-13 0 By 월드뷰

월드뷰 FEBRUARY 2021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1


글/ 김병준(강남대 실버산업학과 교수)


2014년 OECD 34개국 중 우리나라의 연금소득 대체율은 40%에 머물러 OECD 평균인 58%에 크게 못 미치며, 34개국 중 29위로 최하위권이다. 연금소득 대체율은 은퇴 전 평균소득 대비 연금소득의 비율을 의미한다. 이에 정부는 보험료를 더 내서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안을 검토했으나, 당장은 보험료를 올리지 않고 소득대체율을 올려보려는 기획을 구상하고 있다. 2007년 국민연금개혁을 통해 소득대체율을 기존의 50%에서 40%로 낮춘 이후, 2019년부터는 연금개혁특위를 발동해 관련 이익단체들의 안을 두고 갈등을 하던 중 현재는 정부 중재 4개 안(현행 유지, 현행 유지와 기초연금 인상, 소득대체율 45%와 보험료율 12%, 소득대체율 50%와 보험료율 13%)을 놓고 국회에서 표류 상태에 있다. 보험료율을 올리자니 가입자인 국민뿐 아니라 사업장 가입자에 대해 50%의 연금보험료를 책임져야 하는 기업체의 부담이 더해지고, 그렇다고 연금소득을 안 올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일단 정부는 현재 급여소득의 9%로 책정된 보험료율 인상은 고려하지 않고 어떻게든 연금소득 대체율을 올려보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2057년에 국민연금이 고갈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후세대에 거대한 빚을 떠안기는 정책에 불과하다.

이렇듯 연금개혁안에 대해 신의 묘수란 없다. 고통을 분담하는 선택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어떤 선택이 최선인가에 대한 견해는 각자 다를 수 있지만, 필자로서는 당분간 국민연금의 연금 소득대체율을 그대로 두고 오히려 저출산 고령화 추세에 대비하여 보험료율을 현실적으로 인상할 것을 권고한다. 이제 그 논지를 서술해보기로 한다.


글로벌 주식 투자 비중의 제고가 선결 과제


우선 국민연금(NPS)의 운용자산에 대한 성과를 보기로 하자. 2019년 말 현재 기금운용 규모 736조 원으로, 단일 기금 규모로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2019년 한 해 간 운용수익률은 11.9%이며 세계 상위 대형 6개 연금기금 중 3위(1위 노르웨이 GPFG 19.9%, 2위 네덜란드 ABP 16.8%)를 차지했다.

그러나 2004~2019년까지의 최근 16개년 평균을 보면 이 결과가 달라진다. NPS는 동기간 중 연평균 운용수익률 5.8%를 기록함으로써 일본의 GPIF(후생연금기금)의 3.2%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성과를 보인다. 상위 4개 기금의 동기간 연평균 수익률 성과는 8.4~7.5%를 기록 중이다. 이러한 원인 중 가장 중요한 단 한 가지 이유는 위험자산인 주식의 투자 비중이 위의 기간 중 연평균 24.7%로 6개 연금기금(31.0~60.5%)과 비교할 때 가장 낮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기간 중에 수익률이 우리나라(NPS)보다 낮은 일본(GPIF)도 2014년부터는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주식투자 비중을 28%에서 45%대로 급격히 끌어올렸다.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성과는 장기간에 걸쳐 나타난다. 주가의 상승은 기업이 창출하는 미래 현금 흐름에 기초하기 때문에 단기간에는 변동성이 커 위험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위험 감수의 대가(리스크 프리미엄)가 기업의 성장과 더불어 주가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기간에는 전 세계 주가가 40.3%(모건 스탠리 세계지수 기준) 하락했다. 이에 따라 세계 6대 기금의 운용 성과도 동기간에 30%에서 52% 하락했다. 그러나 경제 회복과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곧바로 회복세를 나타낸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포함된 2004~2019년의 기간 동안 MSWI가 연평균 9.6% 상승했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참고로 동기간 주식투자 비중이 각각 60%와 57%를 차지할 정도로 높았던 미국의 CalPERS(캘리포니아 공적퇴직연금)와 노르웨이 GPFG(정부연금기금)의 연평균 운용수익률이 각각 7.2%와 7.5%를 기록하며 위험자산의 비중 확대가 장기간의 기금운용 성과를 개선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국민연금(NPS)의 경우 10년 기간을 기준으로 기금운용 성과가 연평균 1% 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 연도는 2년씩 늦춰진다. 따라서 2019년 현재 41%에 머무는 주식투자 비중이 다른 5개 연금의 투자 비중인 50~72% 수준까지 늘릴 경우 연금의 고갈 연도를 크게 연장할 수 있고 구태여 현행 연금보험료를 낮추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의 증가 속도는 2004~2019년 연평균 3.8%를 기록하여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8년 UN이 집계한 합계출산율도 198개국 중 최하위인 1.1명에 그치고 있어 연금 가입자 수는 줄어들고 연금수급자는 더 증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하면 연금보험료의 단계적 인상은 불가피하다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단지 주식의 비중만 증가시키면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이미 NPS는 삼성전자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표적 우량주식들의 비중이 전체 주식투자 비중의 40% 선에 육박함에 따라 종목당 투자 한도 5%를 초과했다. 종목당 투자 한도의 증가와 함께 스튜어드십(stewardship)을 행사할 경우 NPS의 의결권 개입 여부에 따라 기업의 경영권에 심각한 제한을 가져올 수 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NPS와 같은 대형 기금에서 국내 주식으로만 투자를 한정시킬 경우 국제분산투자로 거둘 수 있는 더 큰 수익의 향유를 누리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국제분산투자를 하면 한 나라에 치우칠 때보다 투자 성과가 훨씬 더 높다. 6개 대형 연기금에서 미국과 일본을 제외하면 2019년 전체 주식투자 중 해외 주식의 비중은 우리나라(NPS)가 55%로,캐나다(CPPIB, 83%), 네덜란드(ABP 공무원연금기금, 88%), 노르웨이(GPFG 100%) 등에 비해서 현저히 낮다(그림 참조). 일본이 성과가 저조한 이유는 해외 주식 비중이 낮기 때문이며, 미국이 해외 주식비중이 낮은 이유는 미국 기업들의 시가총액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에 자국 기업 주식을 많이 보유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과학적 투자기법에 따른 국제 분산투자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기금운용의 전문성은 물론 독립성이 절실히 요구된다.


기금운용의 독립성 제고를 위해 스튜어드쉽 코드를 자제해야 한다.


NPS가 5% 이상 초과 보유 중인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이건희 회장의 사망과 더불어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의 적절한 상속을 위해서는 11조 원에 이르는 거대한 상속세 문제가 제기된다. 이재용 부회장이 현행 세법에 따라 상속세를 제대로 내기 위해서는 지분 축소가 불가피하다. 이 경우 NPS가 국내 최대주주로 등극하게 되고 삼성전자의 중요 의사결정에 NPS가 스튜어드십을 이용해 개입할 경우 자율적 기업 경영에 심각한 장애가 초래되어 소위 연금사회주의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이는 NPS의 기금운용위원회 구성에서도 나타나는데 보건복지부 장관을 포함한 당연직 6인이 모두 정부 측 인사로 구성되고 위촉위원 14인 중 사용자 단체인 기업 측 3인과 연금전문가 2인을 제외한 9인 (노동조합 연합단체 추천 3인, 지역가입자 농어민단체 추천 2인, 지역가입자 자영업자단체 추천 2인, 지역가입자 소비자 및 시민단체 추천 2인 등) 모두 비전문가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소위 NPS의 가입자 주체를 대표한다는 차원에서 구성되었으나, 자칫 가입자 주체의 노후자산관리라는 대명제를 실현하는 것에 대해 집단이기주의라는 부작용이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또한, 기금운용의 책임 투자 및 주주권 행사와 중점 관리기업 선정 등과 같은 스튜어드십 코드의 실현을 위한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의 구성은 상근 전문위원 3인과 관계전문가 6인으로 구성되긴 했으나 최종 의사결정은 위의 20인으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의 의결을 거치게 되어 있어 자칫 잘못하면 사기업에 대한 경영권 침해의 요소로 작용하기 쉽다.

원래 스튜어드십이라 함은 영국에서 2010년부터 법으로 명문화시켜 시행되었는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해외투자로 심각한 손실을 당한 이후 수탁자의 ‘신중한 사람의 법칙(prudent man rule)’ 일환으로 주주 손실에 대한 책임투자를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2018년 7월 NPS가 수탁자책임의 원칙을 개시한 이후 한진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 배제를 행사하는 등 개별 기업에 대한 중요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NPS가 삼성전자의 실질적인 지배주주가 되면, 기업 본연의 경영 자율성이 제약을 받게 되며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국제경제환경에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할 것이다. 종국적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NPS의 가입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또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운영 중인 선진국들도 이러한 위험요인으로 인해 실제 이를 실행하기까지는 매우 신중하게 고려하며, 재무적 성과 이외에는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우리의 연금제도 개혁에 앞서 이러한 점은 반드시 숙고하여 재조정되어야 마땅하다.


연금 재정의 건전성 추구는 미래 세대를 위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연금소득 대체율의 증진과 그에 따른 연금보험료의 조정에 대한 문제로 돌아와서, 국제분산투자라는 과학적 투자기법의 정립과 함께 스튜어드십 코드의 자제를 통한 연금 성과의 개선을 위해서는, 연금 재정의 건전화가 함께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가 미래의 소득과 복리 증진을 위해서 현재의 소비를 희생하며 투자해야 하는 것처럼, 국민연금의 재정 운용에서도 일정한 자산규모를 유지할 책무가 있다. 이는 급속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연금 재정의 급속한 악화가 불가피할 때 더욱 필요하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기금운용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주어진다는 전제하에서 2043년부터 시작되는 연금 재정적자를 5년 정도 늦출 수 있다고 예상한다. 그러나 이는 연금 가입자 수가 줄어들지 않는다는 가정을 전제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합계출산율이 전 세계 최하위인 우리나라 실정을 고려하면 이러한 가정을 인위적으로라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연금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는 우리 모두의 현실적 고통을 인정하자는 것인데 ‘더 내고 덜 받는’ 대신에 ‘더 내고 똑같이 받자’라는 뜻이다. 당장의 고통을 모면하고자 곳간의 쌀을 모두 소비한다면 나중에 닥칠 모진 홍수와 가뭄의 현실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굶어 죽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서두에 지적한 우리나라의 연금소득 대체율의 정상화는 다른 측면에서 보완될 점이 없지 않다고 본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 이외에 강제적 사적연금이라 할 수 있는 퇴직연금은 그 적립액이 2019년 말 현재 219조 원으로 국민연금의 28%까지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퇴직연금의 운용방식과 제도는 너무나 허점이 많다. 자세히 언급하기는 어려우나 필자는 운용기관의 도덕적 위해를 해결하여 운용수익률을 높이고, 세제 지원을 통한 종신연금의 현실화를 추진한다면 연금 선진국과 비슷하게 연금소득 대체율을 증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bobbyjoe@kangnam.ac.kr>


글 | 김병준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재무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증권업계의 국제영업 및 조사부문에서 20년간 근무한 후 현재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에서 시니어 경제 및 시니어 자산관리를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