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의학적 문제점
2020-12-07– 낙태되어야 하는 아기는 없다
월드뷰 DECEM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5 |
글/ 홍순철(고려대학교 산부인과 교수)
1982년 12월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태어난 아이는 팔, 다리가 없었다. 당시의 의료 기술로는 산전에 태아 기형을 진단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머니는 이 아이를 만나기를 거부한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엄마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아이의 이름은 “닉 부이치치(Nick Vujicic)”이다. 닉 부이치치는 <허그>, <플라잉>, <삶은 여전히 아름답다> 등의 베스트셀러 작가이며 유명한 강연가이기도 하다. 그는 팔다리가 없음에도 수영, 파도타기 등 정상인도 하기 어려운 스포츠 활동을 해냄으로써 역경을 이겨내고 도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영위할 것을 얘기한다. 동시에 신체적으로는 건강하지만 많은 현실의 어려움을 안고 사는 우리들에게 오히려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닉 부이치치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닉 부이치치가 최근 한국 임산부의 태아로 발견되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의료 수준은 세계 최고다. 의료진은 가장 정확한 최상의 진단 수준을 보인다. 초음파 진단 장비의 발달과 더불어 의료진의 지식도 발달하여 임신 중에도 태아 이상 여부를 자세히 알 수 있다.
우리는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더욱 많은 정보를 더욱 빠르고 정확하게 획득할 수 있지만, “우리는 얻은 정보의 양만큼 더 건강한 것인가? 정보의 양만큼 행복한 것인가?” 질문하게 된다. 산전에 얻은 정보는 출생 시에 신생아에게 필요한 의학적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하지만 많은 정보는 과도한 불안감을 만들고 이로 인한 유산 등의 극단적인 선택이 증가하기도 한다.
1. 잘못된 정보와 과도한 위험도 인식의 위험성
캐나다 교회에서 만난 한 어머니는 2학년, 4학년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대화 중에 두 아이 사이에 다른 아이를 임신했던 본인의 과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첫아이 출산 후 둘째를 임신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임신 초기에 풍진 예방접종 주사를 맞았다. 풍진 예방접종은 살아있는 생백신 바이러스로 임신 중에는 금기인 주사제이다. 예방접종 주사를 맞은 이 엄마는 의사의 권유로 유산을 선택한다. 하지만 이 주사제는 임신 중 금기이지만, 아직 백신주사로 인해 선천성 풍진 증후군이 발생된 보고는 없는 상황이었다. 비록 임신 중 금기인 생백신이긴 하지만, 바이러스가 약화되어서 항체만 생성하고, 감염 증상을 유발하지는 않아 태아 기형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분의 마음속에는 2학년, 4학년 아이 사이에서 태어났으면 지금쯤 3학년이 되었을 아이가 함께 자라고 있었다. 이분께는 임신 중 풍진 예방접종 시에 유산을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또 한 분은 임신 중 복용해서는 안 되는 Angitensin II receptor blocker 성분의 고혈압 약제를 복용 중에 임신이 확인되어 산부인과를 방문하셨다. 이 약제는 임신 2, 3분기에 태아 신장에 작용하여 소변 생성을 줄이고 양소감소증을 유발시켜서 이차적인 태아 기형 및 사망을 초래하게 하는 약제이다. 하지만 임신 확인 시 고혈압 약제를 바꾸면 태아에게는 영향이 없는 약제이다. 고혈압 약제를 처방한 의사는 해당 환자의 유산 수술을 위해 산부인과에 의뢰하였지만, 산부인과에서는 고혈압 약제만을 바꿀 것을 권했고, 산모는 건강한 넷째 딸을 출산하였다. 해당 약제는 임신 중 금기인 약제이지만, 실수로 해당 약을 복용 중 임신 시에는 약제만을 바꾸면 되는 그런 정도의 약제였다.
이렇듯, 임신 중 금기인 약제나 백신 등이 태아 기형 위험도를 항상 증가시키는 것은 아니다. 설사 태아 기형의 위험도를 증가시킨다고 하더라고 그 위험도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 현재는 이러한 약물 노출 등 위기 임산부에게 전문가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낙태가 합법화되면 이러한 생존할 수 있는 아기조차 쉽게 낙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2. 태아 기형, 대부분 완치가 가능하다
태아 기형 진단을 받은 많은 임산부는, 태아 기형이 맞는지와 낙태에 대한 고민을 갖고 상담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 임산부와 그 가족의 심정은 이해가 된다. 아기 치료에 경제적으로 많은 비용이 들 것에 대한 걱정과 육아에 대한 고민이다. 더구나 장애가 남는다면 이 아이가 장차 사회적 차별과 차가운 시선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이러한 두려움은 과도한 경우가 많다. 최근 태아 심장 질환 90% 이상은 치료가 가능하고 안면 기형, 복벽 결손증 등 대부분의 기형 역시 완치 가능하다. 임산부의 불안증 해소를 위해 임신 중에 해당 전문과 교수와의 상담을 꼭 권한다. 예를 들면, 입술갈림증 태아가 진단되면, 성형외과에 상담을 보낸다. 성형외과 교수가 입술갈림증 아이들의 수술 전후 사진을 보여주면 대부분 임산부는 자신감을 갖고 임신 유지를 결심한다. 출생 후 일반 아이들과 다른 모습에 한번은 놀라지만,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자녀로 키우게 된다. 심장기형, 다양한 종양 등 어른들에게 생기는 병이 태아에게도 생길 수 있다. 이러한 아이들은 치료받아야 할 대상이지, 낙태의 대상은 아니다.
3. 염색체 이상
염색체 질환 중에 터너 증후군이라는 병이 있다. 터너 증후군은 염색체가 ‘45 X’로 X 염색체가 하나 없는 질환이다. 터너 증후군은 2가지 증상을 나타낼 수 있는데, 한 가지는 키가 작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불임의 확률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 의료는 이 두 가지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수준에 와있다. 성장클리닉은 정상인에 근접한 성장을 도와주고 있으며, 난임 치료 기술은 터너 증후군에서도 일부 임신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다운증후군(47 +21)이라는 질환이 있다. 일정 정도의 지능저하를 동반한 염색체 이상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운증후군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함께 생활하는 국가가 많은 것이 잘 알려져 있다. 이제 우리 사회도 다운증후군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도와줄 수 있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4. 모성 사유
산부인과로 의뢰가 왔다. 뇌종양 수술받은 분인데, 재발 우려가 있어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임신 14주 임신 중이다. 방사선 치료를 위해 유산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뢰였다. 환자는 복부를 가리고 머리에 방사선 치료를 잘 받았다. 이 여성은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또 다른 임산부는 임신 20주 경에 목 부위 림프종이라는 암 진단을 받았다. 역시 항암치료를 위해 유산을 해야 하는지 문의했다. 항암제 약물을 검토하니, 임신 20주인 중기에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은 약제들이었다. 또한, 태반은 이러한 약물로부터 태아를 보호해주는 역할을 해줬다. 임신을 유지한 채로 항암치료를 권고하였다. 임산부, 아기 모두 건강하다. 항암치료 후에는 두 번째 아기도 건강하게 출산하였다.
맺으며
정리하면, 태아 사유로 인하여 엄마의 자궁 안에서 낙태되어야 하는 아기는 없다. 또한, 모성 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대부분 전문가의 도움으로 임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낙태를 허용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태아의 목소리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태아였다. 우리 부모도 낙태를 한 번쯤은 고민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임신 유지를 결심했고 우리는 세상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글을 읽고 있다.
세상의 어머니께 말하고 싶다. “용기를 내십시오. 뱃속의 태아는 건강하답니다.” 뱃속의 태아는 말하고 있다. “엄마 나 잘 있어요.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법안을 만드는 분들께 요청하고 싶다. “불안해하는 임산부가 전문가를 찾을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 달라.”, “막연한 두려움으로 낙태라는 극단적 선택을 최소화하는 법안을 만들어 달라.”
언제나 뱃속의 태아는 말한다. “엄마 나는 괜찮아요. 당신을 용서합니다.”
<novak082@naver.com>
글 | 홍순철
고려대학교 산부인과 교수이며,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사무총장, 한국모자보건학회 부회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