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문케어
2020-11-13
월드뷰 NOVEM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0 |
글/ 지영건(차의과학대학교 예방의학교실 교수)
2019년 5월에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안)을 통하여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을 다음과 같이 4가지 영역에서 추진하겠다고 하였다; 1) 건강보험 재정 관리 강화, 2) 의료이용 적정화, 3) 합리적인 지출구조 설계, 4) 통합적‧효율적인 노인 의료 제공.
그러나 미사여구(美辭麗句)가 정책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보험의 재정 안정화는 결국 수입을 늘리거나 지출을 줄여야 달성할 수 있다. 지출을 줄이는 방법을 세분하면 1) 수가를 재조정하거나(줄이거나) 2) 본인 부담을 재조정하는(늘리는) 것, 3) 불요불급한 의료를 줄이거나 4) 고가(高價) 의료를 저가(低價) 의료로 대체1)하는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필자는 정부 보도자료의 문구 대신에 직관적인 구문으로 대체하여, 각 방안에 대하여 간단하나마 실현 가능성, 효과 크기 등을 평가하고자 한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방안
첫째, 건강보험 수입을 늘리는 방안이다. 정부는 매년 보험료율 인상률을 평균 3.2%로 유지하면서, 보험료 부과 대상 소득을 주택임대소득, 금융소득(연 2천만 원 이하), 근로소득(프리랜서 등) 등으로 확대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2022년 12월 말까지의 보험재정에 대한 정부 지원(국민건강보험법 제108조)을 연장하겠다고 한다. 물론 계획(안)이기 때문에 실현 여부는 별개이다.
이들 방안에 대하여 ‘부담 증가에 대한 국민의 저항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와 ‘언제까지 정부가 예산으로 보험재정을 챙겨줄 수 있겠는가’의 의구심은 들지만, 다른 방안에 비하여 재정 효과가 예측 가능하고 그나마 실현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된다.
둘째, 환자의 법정본인부담을 재조정(인상)하는 방안이다. 경증질환의 법정본인부담을 높이고, 중증질환은 낮추는 방향으로, 그리고 의료전달체계에 불응하면 법정본인부담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특히 요양병원의 사회적 입원에 대하여는 본인 부담을 높이면서 본인부담 상한제의 혜택을 주지 않는 방안이 포함되어 있으며, 노인 외래 정액제에 대하여 적용연령, 부담방식(정액, 정률), 부담금액 등 단계적 조정하겠다2)고 한다. 또한, 상급병원 이용을 위하여 의뢰서 발급을 요구할 경우 본인부담 부과도 검토한다고 한다.
필자는 이러한 정부의 정책 방안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들 방안은 새삼스러운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과거 숱하게 제시되고 검토됐지만, 국민의 저항과 일부 시민단체의 반대 그리고 정치적인 부담으로 인하여 포기하거나 미뤄왔었다. 기껏 할 수 있었던 것은 페널티가 아닌 인센티브로서 중증질환 본인 부담을 낮추거나, 회송 수가를 주는 것 정도였다. 이번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안)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과연 현정부가 (기존과는 달리) 눈치를 안 보고 과감히 추진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셋째, 급여 기준 강화(불요불급한 혜택의 축소)이다. 경증환자의 장기 입원에 대한 급여를 축소하고, 극단적인 과다 의료이용에 대한 급여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급여되었던 것(의료행위, 약제, 치료재료)들을 재평가하여 급여에서 제외하거나 줄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정책은 당연한 것이지만, ‘줄 땐 쉽지만 다시 뺏고자 할 때는 쉽지 않은 법’이다. 선거를 앞두고 ‘무상의료다, 선별급여다, 예비급여다’ 해서 선심 쓰듯이 남발해놓고, 인제 와서 ‘효과가 의심되니, 경제성이 부족하니’ 등의 이유로 없애거나 줄이려고 한다면, 국민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정책의 한 축으로서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들은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효과의 크기도 크지 않고, 실현 가능성도 그리 있어 보이지 않는다.
넷째, 의료 공급자를 규제하는 방안이다. 앞서 언급한 의료전달체계와 요양병원에서의 사회적 입원 등의 문제에 대하여 의료 공급자의 행태를 변화시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으며, 주로 수가를 정책수단으로 삼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수가 조정이 공급자의 과잉공급 행태를 실효성 있게 억제하였다는 뚜렷한 선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 효과가 의문시된다. 또한, 일정 영역의 수가 조정은 다른 영역의 수가 인상을 전제로 해야만 의료 공급자들이 동의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 공급자 규제가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중요한 방안으로 보기는 어렵다.
또한, 보험급여의 사후관리 강화로서 부당청구와 거짓청구 등도 방안으로 포함되어 있으나, 지금까지 안 해왔던 것도 아니고, 이들이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에 의미 있게 기여할 지에 대해서는 의문시된다.
마지막으로, 사무장 병원이나 불법개설 약국 적발체계 등도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포함되어 있으나, 과연 이것이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의 방안으로 열거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의문이다. 불법에 대한 단속은 그 자체에 의미와 필요성이 있는 것이지,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전면에 내세울 만한 것은 아니며, 기여하는 효과 크기도 미미할 것으로 판단된다.
공‧사 의료보험 연계를 강화하여 실손보험 보장영역과 범위를 조정하는 것은 우리나라 공적 보험체계를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나,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여러 정부 부처가 관여하는 문제라 다소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문케어, 건강보험 지속 가능한가?
하나의 제도 도입이나 개선은 여러 방면에서 효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하나만 두고, ‘이들 제도가 필요한가, 그렇지 아니한가’를 논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첫째, 수입을 늘리는 것이 우선 필요하고, 둘째 고삐 풀린 의료이용에 대한 억제로서 본인 부담 조정, 셋째 신중한 급여 범위 설정(확대)이 중요하다고 판단된다.
2017년 8월 9일 보건복지부는 ‘모든 의학적 비급여(미용·성형 등 제외) 건강보험이 보장한다!’라는 제목으로 대국민 발표를 하였다. 당시 보도자료에 따르면 ‘그간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음에도, 건강보험 보장률이 지난 10년간 60% 초반에서 정체되어 있는 등 국민이 체감하는 정책효과가 미흡한 것’이 배경이라 한다.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의 비중이 높아, 국민이 직접 부담하는 의료비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다.
그래서 결정한 내용은 이전과 달리 ‘비급여의 점진적 축소’가 아니라 ‘의학적으로 필요한 비급여를 완전히 해소’하는 것이며, 미용, 성형 등 일부를 제외하고 모든 의학적 비급여는 신속히 급여화하되, 다소 비용‧효과성이 떨어지는 경우는 본인 부담을 차등 적용하는 ‘예비급여’로 건강보험에 편입‧관리한다고 하였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문재인 케어’라는 용어는 사용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각종 뉴스 매체에서는 ‘문재인 케어’라는 용어로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의도하였던 그렇지 않았든 간에 ‘문케어’라고 별칭이 붙었다.3)
필자는 여기서 ‘문재인 케어가 옳다, 그르다’를 논하거나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는 판단을 하지 않는다. 다만, 문재인 케어가 어떠한 배경에서 어떠한 의미로, 충분히 논의되고 국민적 합의하에 시작되었는가를 곰곰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2006년 5월의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당시 정부는 2006년부터 6세 미만 아동 입원진료비 무상(본인 부담 면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여당이 선거에 패배한 이후 2008년부터는 슬그머니 본인 부담 10%를 부과하는 것으로 후퇴하였다. 그래서 이것은 건강보험의 우선순위 원칙과 재정 건전성을 무시한 채, 의료를 정치적 목적으로 끌어들인 대표적인 사례로 남게 되었다. 현재의 여당은 오래전부터 선거 때마다 건강보험 보장률 80%를 목청껏 외쳐왔다. 그런데, 보장률 80% 자체가 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 보장해 주어야 할 규모를 선정하고, 각 영역과 대상별로 본인 부담의 수준을 설정하면, 그 결과로서 보장률이 나오는 것이다. 즉, 보장률이 60%대에 머무른다면, 질병별 계층별 의료서비스 종류별로 현재의 보장 수준을 파악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을 곶감 빼먹듯 단기간에 써버리면서 문케어를 추진하겠다는 것도 문제이다. 2019년 말에 분석된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이 2018년에 20조 원에서 2023년에는 정부 추산 11조 원, 국회 예산처 추산 0.7조 원으로 감소될 것이라 한다. 물론 이러한 언론 보도 직후에 정부는 해명자료를 통하여 ‘오해다’, ‘계획이 반영 안 되어 있다’, ‘잘 해보겠다’라고 했지만, 이 말을 믿더라도 일단 최소한 10조 원의 곶감 빼먹는 것을 인정한 것이며, 나머지 10조 원에 대하여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결론적으로 ‘문케어’는 의료보장의 대상과 수준을 먼저 설정하고 면밀히 추진하였다기보다는, ‘건강보험 보장률 80%라는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내세우기 위하여, 소요 금액을 역산하고, 그 재원을 건강보험 누적적립금으로 마련한 정책’으로 보는 견해가 적지 않다. 순서는 뒤바뀌었지만, 지금이라도 그 재원의 용처에 대하여 건강보험 급여 우선순위 원칙에 따라 차근차근 지출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된다. 초음파, MRI, 선택진료 및 상급병실료 등 굵직굵직한 비급여들은 보장이 필요한 부분이 적지 않다. 다만 우선순위가 크지 않은 부분까지도 80% 달성에 떠밀려 2006년과 같은 정책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ykjee@cha.ac.kr>
1) 경증의 환자들에게 대학병원 대신에 동네 병의원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 등을 의미한다.
2) 실질적으로 본인 부담의 인상을 의미한다.
3) 그러나 얼마후 문재인 케어를 위한 재정 부담과 소요 재원에 대한 의문이 하나둘씩 나타나면서, 정부는 ‘우리는 문재인 케어라고 명명한 적이 없다’라고도 하였다.
글 | 지영건
연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예방의학전문의이며 현재 차의과학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개방형 전문직위 실장으로 근무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