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의 국제화 정책과 현황
2020-11-05
월드뷰 NOVEM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3 |
글/ 진기남(연세대 미래캠퍼스 보건행정학과 교수)
1. 의료의 국제화 정책 추진의 배경
한국 경제는 자동차, 반도체, 철강, 조선 등의 산업이 주축이었지만,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이 모든 경제 분야에서 약진하면서 한국의 경쟁력도 약화되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의 경제발전을 지속 가능케 할 신성장동력을 발굴하여 발전시키고자 하는 정책이 추진되었다. 2009년 한국은 글로벌 헬스케어를 17개 국가신성장동력산업 중 하나로 선정하고 ‘외국인 환자 유치행위’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법제도적인 접근을 통해서 의료의 국제화를 위한 초석이 마련되었다. 이를 통해 한국은 태국, 싱가포르와 같은 아시아의 의료관광 선도국들에 이어 이 시장에 진입하게 되었다.
20세기 후반부터 항공·인터넷의 대중화 시대가 열리며, 서비스의 국제화가 촉진되었다. 특히 질병 치료와 건강증진을 위해 국경을 넘어 환자가 이동하는 의료관광은 지난 20년간 전 세계적으로 활성화되었다. 의료관광객 수는 2005년 1,900만 명에서 2013년 5,370만 명으로 증가하였고, 시장규모는 2020년 20~30조 원으로 성장하였다. 이는 2020년까지 연평균 17.9%의 성장률을 보이며 성장할 것으로 추정되었다(Transparency Market Research, 2015).
태국과 싱가포르 등의 동남아시아 국가가 의료관광시장에 뛰어든 동기는 경제위기를 타파하기 위해서 당장 외화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즉 의료관광객 유치를 통한 외화 획득에 있었다. 이에 반해서 한국은 의료의 국제화를 통해서 의료산업을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서 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끌어내고자 하는 좀 더 장기적 시각에서 정책을 추진했다.
의료의 국제화는 단순히 외국인 환자를 유치하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양상이 있다. 원격으로 타국에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자국의 병원 시스템을 해외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의 국가는 의료관광뿐만 아니라 병원 시스템의 수출에서도 괄목한 성과를 내고 있으며, 의료기기의 강국인 일본도 의료관광이란 인바운드(Inbound) 정책과 자국의 의료기술을 수출하고자 하는 아웃바운드(Outbound) 정책을 신성장 전략의 하나로 2001년도부터 추진해오고 있다. 한국이 추구한 의료의 국제화 정책도 외국인 환자를 한국으로 유치하는 인바운드 정책과 한국의 의료기술이나 병원 시스템을 수출하는 아웃바운드 정책의 두 가지를 포함하고 있다.
2. 외국인 환자 유치 실적과 전략
방한 외국인 환자는 2009년 60,201명에서 2019년 497,000명으로 8배 이상 증가하며, 연평균 23.5%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보건복지부, 2020). 또한, 외국인 환자의 출신 국가는 한국과 인접한 중국, 일본 외에도 UAE, 러시아와 같은 다른 문화권까지 다변화하였으며, 의료관광 상품은 중증치료에서 웰니스(Wellness) 관광 상품까지 다양해졌다.
한국의 이러한 성과는 국제적으로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유럽에서 권위 있는 의료관광기구, IMTJ(International Medical Travel Journal)는 2018년도에 의료관광을 통한 외화수입 지표를 가지고 분석하여, 한국을 세계 2위의 의료관광 경쟁력을 가진 국가로 평가하였다. 미국의 의료관광협회, MTA(Medical Tourism Association)는 의료관광 목적지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지표를 개발하였는데, 2020년도 한국은 14위의 순위에 올랐다. 이처럼, 한국이 글로벌 의료관광시장에서 이룩한 성과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러한 성과를 끌어낸 여러 성공 요인이 있다. 첫째 성공요인은 한국 의료기술의 국제적 경쟁력에 있다. 중국, CIS 국가와 중동 등에서 오는 환자들은 한국 의료진의 높은 의료기술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한국이 중동의 국비 환자를 받기 시작한 것이 수년밖에 되지 않지만, 짧은 기간 내에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서비스를 개발하여 중동시장에서 한국의 의료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올해 코로나 팬데믹에 한국이 잘 대응하고 있는 사실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고, 한국 의료시스템의 위상이 올라가고 있어서 앞으로의 환자 유치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둘째 성공요인은 타겟 시장의 다변화에 있다. 외국인 환자 유치 등록을 한 의료기관은 2,000여 개에 달했고, 이렇게 많은 의료기관이 서로 경쟁을 하는 과정에 의료서비스 상품이 다양해지고, 타겟 시장이 다양해졌다. 싱가포르는 반수가 넘는 외국인 환자가 말레이시아에서 오고 있고, 인도는 반수 이상의 환자가 방글라데시에서 오고 있다. 물론 확실한 환자송출 국가가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지나치게 한 나라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은 위기분산이 되지 않아서 단점이 될 수 있다.
셋째 성공요인은 정부의 지속적인 제도개선과 재정적 지원 정책에 있었다. 정부는 의료관광객 입국 편의를 위한 메디컬 비자의 도입,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유치기관 등록제의 도입, 의료분쟁 해결을 위한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의 설립, 검증된 인력풀을 위한 의료관광 코디네이터 국가 자격제도의 도입 등의 노력을 하였다.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의료관광 산업에 지속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며 지원해 왔다. 2015년 양 부처는 본 산업에 100억 원 이상을 투입하여 인프라 구축, 전문 인력양성, 기술 및 상품 개발, 해외 홍보마케팅 등을 추진하였다. 특히 복지부는 지자체를 지원하는 국내 의료관광 기반구축사업을 추진해오며, 2010년부터 연간 5개 이상씩 13개 지역을 지원하였다. 문체부는 2014년 대구, 2015년 인천, 2016년 부산·광주를 의료클러스터 조성 대상지로 선정해 지원하였다. 문체부는 2020년도에 의료관광 클러스트 사업과 웰니스 관광 클러스트 사업을 수행할 지자체를 선정하여 사업비를 지원하였다.
3. 병원 시스템 수출 실적과 전략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에서 외국인 환자 유치라는 인바운드와 병원 시스템 수출이라는 아웃바운드 정책을 추진하는 나라는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이다. 아웃바운드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해외에 팔 수 있는 기술이나 상품이 있어야 한다. 일본은 의료기기 세계 2위의 국가로서 해외시장에 팔 수 있는 상품을 갖고 있다. 한국도 대형병원의 운영을 지원하는 IT 인프라나 병원경영의 전문 인력풀을 갖고 있다. 이에 반해서 헝가리, 태국 같은 국가는 해외에 팔 수 있는 상품을 갖고 있지 않기에 주로 인바운드 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0년간 병원 시스템 해외 진출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다양한 지원사업을 수행하였다: 1) 의료 해외 진출 프로젝트 발굴 전문 컨설팅 지원, 2) 전문인력 채용 지원, 3) 재외공관 활용 협력 지원사업, 4) 정부 간 보건의료 협력 지원 등의 사업. 2020년 3월 현재 해외에 진출한 의료기관은 93개에 이른다. 중국에 34개 의료기관이 진출하여 제일 많이 나가 있고, 다음으로 베트남에 8곳, 카자흐스탄에 7곳, UAE와 몽골에 각각 4곳이 진출하여 있다. 진료과목을 보면, 성형외과가 25곳으로 제일 많고, 피부과 22곳, 치과 16곳, 신경외과 9곳 등의 순서이다. 지난 10년간의 지원정책에 비해서 많은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러한 해외 진출 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존재한다. 문화와 제도가 다른 나라에 진출하여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결국, 장기적인 투자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해외 진출하는 우리의 의료기관은 주로 민간 부분의 병원이어서 장기적인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의료면허를 얻는데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어서, 국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IT 인프라 구축이나 인력양성 등과 같은 다양한 형태의 진출 전략이 필요하다.
4. 결론
한국은 지난 10년 동안 의료 국제화 정책을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하였고, 글로벌 경험과 네트워크가 부족한 상태에서 시작하여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최근의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한국 의료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도가 높아지고, 그 브랜드 명성도 올라가고 있다. 지금은 한국에 주어진 기회로서 한국 의료의 우수성을 세계에 체계적으로 알리고, 브랜드를 구축하는 노력이 시급한 상황이다.
<jinkn@yonsei.ac.kr>
글 | 진기남
미국 Univ of Illinois at Urbana Champaign에서 사회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연세대 미래캠퍼스 보건행정학과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연구 분야는 의료관광, 의료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