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신냉전과 한국의 전략
2020-10-14
월드뷰 OCTO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0 |
글/ 유현석(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중 간의 갈등은 이제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Donald Trump) 등장 이후 무역 전쟁으로 시작된 미중 간의 갈등은 점차 전선을 확대해 가며 악화되더니 2020년에 와서는 ‘신냉전’의 시작이라고 불릴 정도로 심각한 상태를 보인다. 명심해야 할 점은 이러한 미중 갈등이 ‘트럼프 현상’이 아니며 공화당과 민주당을 초월하는 초당파적 대중국 견제 전략의 결과라는 점이다. 따라서 설사 민주당 후보가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더라고 큰 방향은 변하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시진핑의 중국몽과 트럼프 정부의 공세적 대중 정책
중국은 미중 관계 악화의 원인을 트럼프의 등장에서 찾고 싶겠지만 사실 그 시작은 중국을 패권 국가의 위치에 올려놓고 싶어 하는 시진핑(習近平)의 등장에서 찾아야 한다. 중화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종합국력이나 국제적 영향력에서 세계의 선두에 서는 중국의 위대한 부흥을 주창하는 시진핑 등장 이후 중국의 대외전략에 중대한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대략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미국 중심의 질서 안에서 힘을 키우면서 이 질서가 주는 이득을 챙기는 전략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미국의 패권 질서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진핑 주석의 ‘대국굴기’, ‘일대일로’ 그리고 ‘중국제조 2025’는 당시 국력의 하락을 보이는 미국에 직접 도전하는 중국의 움직임을 대변하고 있다. 오바마(Barack Obama) 정부는 중국의 부상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였지만, 본격적인 적대 정책을 취하지는 않았다. 중국이 미국의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라는 인식하에 중국을 기존 질서 속에 묶어두려는 전략을 지속한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집권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으며 지금 이것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중국은 미국의 패권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매우 공격적인 대중 정책을 시작했다. 트럼프 정부는 2017년 12월 ‘국가안보전략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였다. 2017년 이후 미국은 2018년 국방전략보고서, 핵태세보고서, 2019년 국방수권법 그리고 2019년 6월의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 등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적 준비태세를 강조해왔다. 이후 2019년의 미사일 방어 검토보고서를 통해 포괄적 미사일 방어능력과 A2/AD(반접근·지역 거부 전략)에 대응 강화를 위한 군사전략을 수립하였다. 미국이 2019년 8월 2일 중거리 핵전략 조약(INF: 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Treaty)을 공식 탈퇴한 것은 중국의 증대된 미사일 전략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에서 기인한다. 중국이 상당한 A2/AD 능력을 발전시킨 상황에서 미국이 서태평양 지역에서 효과적인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상 배치 INF 사거리 미사일의 보유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경제영역에서 트럼프는 미국에 대한 중국의 무역 흑자(2017년 3,756억 달러, 미국 총 무역적자의 63%)를 문제 삼아 중국에 대한 압박을 시작했다. 2018년 7월 6일 미국은 미중 간 무역을 바로잡기 위해 340억 달러의 중국산 제품에 25% 추가관세를 부과하였다. 그 이후 미중은 추가로 관세 부과 규모를 늘리면서 각각 2,500억 1,100억 달러에 대해 추가관세를 부과하게 되었다. 양국이 휴전을 선언하고 협상을 재개하기로 한 그날 미국은 화웨이와 전체 자회사에 대한 제재를 시작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는 미국의 중국에 대한 무역 전쟁의 시작이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라 미국의 패권에 위협이 되는 중국의 도전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기치 아래 중국이 지적 재산권에 대한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며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중국 IT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가했다. 미국 행정부는 2019년 5월 15일 “정보통신기술 및 서비스 공급망 확보에 관한 행정명령”을 발동하였다. 이 결과 구글은 화웨이에 공급하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계약을 철회하였고 퀄컴이나 인텔도 화웨이에 부품 공급을 중단하기로 하였다. 이러한 미중 간의 기술전쟁은 ‘중국제조 2025’라는 첨단산업 육성정책이 중국의 기술패권을 위한 전략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미국은 2019년 8월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고 환율전쟁에 나섰다. 미국은 중국이 대중 추가관세 부과에 대한 보복으로 위안화 가치 하락을 용인하면서 환율을 무기화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이에 대한 대응을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대중 전선 확대는 무역과 관계된 경제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중국이 주권의 영역으로 극도로 예민하게 생각하는 사안에 대한 공세를 강화했다. 대만에 대한 정책, 2019년 11월 28일 중국이 맹렬히 비난해온 홍콩 인권법 서명 그리고 대만과 홍콩, 신장 위구르 자치구 문제와 관련된 조항이 담긴 2020년도 국방수권법(NDAA)에 서명하면서 미국의 압박은 기술에 이어 인권까지 전선이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새로운 대중 정책: 신냉전의 시작인가?
2020년 4월 미국은 반중국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conomic Prosperity Network)’ 구상을 내놓았다. 이 구상의 배경은 전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는 것이지만 그 이전부터 미국이 가지고 있던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한 견제 그리고 우방국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의도가 구체화된 것이다. 미국은 일본, 인도, 호주는 물론 뉴질랜드와 베트남에도 참여를 요청하고 있다. 이와 함께 미국은 G7을 확대하여 G11 혹은 G12(혹은 D(Democracy)10)를 만들어 다층적인 대중 견제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통과에 대해 그동안 홍콩에 제공해온 관세, 무역, 투자, 비자 발급 등에 대한 특혜를 제공하는 특별 지위를 박탈하였고 주휴스턴 중국 영사관을 중국이 미국의 지적 재산권을 도둑질하는 소굴이라며 폐쇄하면서 중국에 대한 공세를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남중국해 중국의 인공섬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조치까지도 예상한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가 예방전쟁을 향해 치닫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2020년 5월 21일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적 접근(United States Strategic Approach to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을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미국의 지난 40년의 대중 정책이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미국과 중국은 전략적 경쟁 관계며 중국은 미국에 경제적, 가치적, 안보적 측면에서 도전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을 독재정권으로 표현하고 중국을 중국 공산당으로 표현하면서 중국인들과 중국 공산당을 분리, 구별하고 있다. 그리고 ‘일대일로’에 대한 위험성을 강하게 비판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금의 상황은 미국이 미중 수교 이후 유지해왔던 대중 정책, 즉 중국을 미국 중심의 질서 속에 끌어들여 개방되고, 법에 따른 지배, 민주주의 가치를 수용하는 나라로 만들려는 지난 40년간의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닫고 새로운 대중 정책을 시작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미중 신냉전과 한국의 대응 전략
이제 미중 관계는 경쟁과 협력의 양면성을 갖는 단계를 넘어섰다. 미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Mike Pompeo)의 7월 23일 닉슨도서관 연설(Communist China and the Free World’s Future)은 미국이 중국과의 전면적 대결을 선언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 연설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시진핑은 전체주의 사상의 신봉자이며 중국은 거짓말을 하고 지적재산을 도둑질하고 있다며 중국에 대한 포용정책을 중단하고 자유 국가들은 힘을 합쳐 중국 공산당을 중국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우선 여론전·선전전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은 폼페이오의 연설을 조목조목 반박, 비판하는 기사를 인민일보에 게재하면서 미국 측이 부당하게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을 세계에 알리려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을 고립시키기 위한 반중 전선을 구축하는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7월 28일 워싱턴 DC 호주 외교, 국방부 장관과의 2+2회담 계기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연설을 반박한 중국과 관련해서 자신이 제기한 문제는 독재국가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선택하는 문제라고 반박하며 민주주의 국가들 그리고 대서양 연안 동맹들이 어느 쪽에 서길 원하는지 정확히 알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이날 회담 관련 공동 성명에서 인도. 태평양에서 네트워크화된 동맹과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데 있어 아세안, 인도, 일본, 한국, Five eyes(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5개국으로 구성된 기밀정보 동맹) 등과 나란히 협력한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이제 미국과 중국 중 어느 쪽에 설 것인지 입장을 정하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미중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우리의 외교적 대안을 신중히 검토해야 하는 시점에 왔다. 미중 간의 본격적 충돌이 한국에 미칠 영향을 외교, 안보, 무역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다차원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있다. 경제번영네트워크 참여, G7 확대 정상회의 참여, 중국의 홍콩 보안법에 대한 입장, 화웨이 장비 사용 금지, 틱톡 등 중국의 앱에 대한 조치 등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사안들이 밀려들고 있다. 미중 관계가 이러한 방향으로 진행될 때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 혹은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은 설 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미국과 중국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 역시 매우 잘못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은 미국과 동맹 관계이며 군사, 정치, 경제를 비롯해 수많은 영역에서 긴밀한 협력을 바탕으로 지금까지의 발전을 이룩해 왔다. 이러한 현실에서 “미국인가? 중국인가?”라는 논의는 그 자체가 우리가 처한 상황을 왜곡하고 잘못된 전략을 택하게 하는 위험한 프레임이다. 외교에서 어느 한쪽을 버리고 다른 편에 서는 것은 없다.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의 마음을 얻기 위해 북한 정권을 위태롭게 하는 조치를 한 적은 없다. 중국도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약화시키면서까지 중국과 가까워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노력할 뿐이다.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멀어지는 순간 중국이 보는 우리의 위상과 우리의 협상력은 곤두박질치게 된다. 건강한 한미관계야말로 건강한 한중관계의 핵심 조건임을 명심해야 한다.
협력, 타협, 거래를 통해 모든 나라와 최대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외교의 본질이다. 최악의 미중 갈등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안에 따라 국익이라는 큰 원칙을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외교를 하면 된다. 그러한 노력이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상대는 속으로는 이해하면서도 겉으로는 불만을 표출하면서 그것을 향후 외교에서 카드로 사용하는 게 외교의 세계에서의 상식이다. 중요한 것은 국익과 원칙에 따라 상대방을 설득하는 외교가 상대를 만족시키지는 못하지만, 이해시킬 수는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우선 중국이 불필요한 기대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국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기대도 접어야 한다. 한국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규칙에 기반 질서가 한국의 핵심이익이라는 것을 미국과 중국 그리고 국제 사회에 알려야 한다. 미중 사이에서 등장하는 예민한 외교 사안에 대해서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입장을 정해야 한다. 가장 단순한 길이 가장 쉬운 길이다. 우리의 국가이익이 무엇인지를 냉철히 판단하고 그것을 지키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 그것이 외교의 본질이고 최선의 전략이다.
<hsyu@khu.ac.kr>
글 | 유현석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중앙대학교 국제관계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으로 근무했고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주말레이시아 한국 대사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국제정세의 이해: 위기의 시대, 지구촌의 어젠다와 국제 관계>, <동아시아 지역주의: 평화, 번영, 인간안보의 지역적 모색>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