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윤리와 낙태 문제
2020-12-02
월드뷰 DECEMBER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COVER STORY |
지난해 4월에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처벌하는 현행법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고, 올해 안에 법 개정을 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10월 형법 및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12월에 국회에 상정할 예정입니다. 이 개정안을 두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는 프로초이스(pro-choice) 진영과 태아의 생명권을 강조하는 프로라이프(pro-life) 진영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 주제에 관해서 기독교적 관점에서 어떤 주장이 바람직한 것인지를 듣기 위해 성산생명윤리연구소의 이명진 소장님을 모셨습니다. (편집자 주) 사진: 이청원
김승욱: 원장님께서는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을 현재 맡고 계십니다. 성산은 잘 알려진 고신대 병원의 성산 장기려 박사의 호인데요, 연구소 명칭을 이렇게 정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연구소의 설립 동기, 활동 내용 등을 좀 소개해 주시지요.
이명진: 성산생명윤리연구소는 1997년 한국 의사의 롤 모델이자 신실한 신앙인으로 한평생 살아오신 성산 장기려 박사님의 뜻을 받들어 성경적 세계관에 입각한 생명 존중 운동과 올바른 생명윤리 확산을 위해 창립된 단체입니다.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발생하는 모든 생명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성경적 시각으로 기독교 생명윤리의 기준을 밝히고, 교육하고 전파하고 있습니다. 지난 23년 동안 생명윤리적인 문제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상업주의와 세속적 흐름에 휩쓸려 갈 때, 성경적 가치와 기준에 어긋나는 일에는 소수이지만 분명한 목소리를 내어 왔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황우석 박사 사건과 낙태를 반대하는 프로라이프 활동인데, 선명하고 바른 목소리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작은 빛이 되고자 하고 있습니다.
김승욱: 의료윤리연구회 초대 회장도 역임하셨더군요. 그리고 <이명진 원장의 의료와 윤리>, <이명진 원장의 의료와 윤리 II> 등 책도 여러 권 집필하셨고, 교회에서 장로로 섬기고 계신데, 연구회와 교회 소개도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이명진: 의료 현장의 모든 일은 의사에게 윤리적 판단을 요구합니다. 자칫 윤리적 기준을 모르거나, 윤리적 민감도가 떨어지면 그 피해가 환자와 의사 전체에 미치게 됩니다. 개인적인 계기는 광우병 파동 때였습니다. 가운을 입은 어떤 의사가 군중들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선동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의학적으로 맞지 않는 말로 국민을 선동하는 것은 의사로서 윤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의사들이 가져야 할 전문 윤리나 의료 윤리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었기에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보고자 깊이 고민하던 중에 의료 윤리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는 모임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의료윤리연구회라는 단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의료윤리연구회는 2010년에 윤리적 기준을 배우고 실천하는 좋은 의사(Good Doctor)가 되기 위해서 뜻을 같이하는 동료와 선·후배 개원의들을 주축으로 만들었습니다. 매달 첫째 월요일 저녁 대한의사협회에 모여 전문직 윤리와 생명윤리, 의료 윤리에 대한 강좌를 열고, 특히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에 관해 많은 공부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약평론가회에서 매년 의사 2~3명 약사 1~2명을 의사 평론가, 약사 평론가로 추천하여 세우고 있는데, 저는 2011년 의사 평론가로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의학 전문지와 여러 언론지에 칼럼을 기고하며, 그동안 썼던 글을 모아 책을 출판하다 보니 몇 권의 졸저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인천에 위치한 회복의교회(담임목사 김민호)에서 대신교단 장로로 섬기고 있지만 어릴 때는 고신교단에서 보수적인 신앙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교단이 바뀌었지만, 학생 신앙 운동인 SFC 운동(Student For Christ)에 참여하여 수련회 등을 통해 신앙의 토대를 쌓았습니다. 당시는 신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의사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주변에서 신학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기도 합니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 활동과 함께 2014년에는 한국성과학연구협회(성과연)를 지금 회장으로 섬기시는 민성길 회장님과 함께 창립하여 의학적 지식을 통해 성경적 가치관과 성 윤리를 지키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창조질서에 어긋나는 동성애와 동성 성행위의 위험성, 트랜스젠더, 젠더주의 등에 대한 보건 의학적 자료를 찾아 분석하여 이론과 정보를 정리하여 제공하고 있습니다. 2년 전에는 성경적 가치관을 기초로 전 세계에서 발표된 300여 편의 논문을 정리하여 성교육 강사와 주일학교 교사, 학부모를 위한 <성 사랑 가정 II>를 출판하였습니다.
김승욱: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2019년 4월에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에 대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부터 간단히 설명해 주시지요.
이명진: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2012년 합헌 판결 이후 7대 2라는 압도적인 위헌 결정은 많은 생명운동 단체와 종교계, 법조계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헌재 재판관들이 아무리 편향된 구성을 이루고 있더라도 다들 설마 했었습니다.
이번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은 부산의 한 산부인과 의사가 2013년 11월 1일경부터 2015년 7월 3일경까지 69회에 걸쳐 낙태하였다는 등의 범죄 사실로 기소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 의사는 형법 제269조 제1항, 제270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주장하면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하였으나 그 신청이 기각되자, 2017년 2월 8일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온 배경에는 형법 269조와 270조뿐만 아니라 모자보건법과 시행령이 있습니다. 모자보건법은 1973년에 국민적 합의 절차 없이 비상 국무회의에서 제정된 법입니다. 위법성 조각 사유(위법이지만 처벌하지 않는 예외 조항)를 적용해 낙태를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을 국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게 된 것은 당시 매우 높았던 출산율(4.5) 때문입니다. 실은 모자보건법은 출산 억제책을 목적으로 제정된 낙태 촉진법이나 다름없습니다. 강력한 출산 억제 정책을 펴던 시절에 낙태를 장려해서라도 출산율을 낮추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담긴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 출산율은 10여 년 만에 2 이하로 떨어지는 사상 유례가 없는 감소율을 보이다 현재는 출산율 0.9의 초저출산 사회가 되었습니다.
김승욱: 그러니까 출산 억제책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모자보건법에 근거하여 낙태죄에 대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군요. 그렇다면 이번 판결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이명진: 이번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여러 논쟁의 문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판결은 1973년 미국에서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로 대 웨이드(Roe v. Wade) 판결에 사용되었던 50년 전 논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미 미국은 낙태 찬성에서 낙태 반대와 생명 존중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데 반해 대한민국은 뒤늦은 뒷북 논리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김승욱: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명진: 1973년 1월 22일 원고 미혼 여성 Roe(가명, 실명 Norma McCorvey)와 지방검사 Henry Wade의 낙태 소송 판결입니다. 산모의 생명을 위협할 때만 낙태를 허용한 법이 부당하다고 소송하여 태아가 모태에서 분리된 상태에서 생존 가능한 시점인 임신 24주 내의 낙태를 허용하게 된 판결입니다. 24주라는 기준은 50년 전 당시 의료 기술로 생존 가능한 시점이 24주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의료 기술로는 22주의 태아도 살릴 수 있습니다. 미국은 1970년대 초까지 대부분 주(州)에서 임산부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가 불법이었습니다. 1969년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22세의 노마 맥코비(Norma McCorby 1947~2017)가 3명의 남성으로부터 윤간을 당한 후 임신했다고 주장하면서 낙태 수술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 이외에는 낙태를 할 수 없고, 성폭행 사건에 대한 경찰 보고서가 없다는 이유 등을 들어 낙태 수술을 거부당했습니다. 이에 맥코비는 1970년 텍사스주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노마 맥코비의 사례를 낙태권 확보를 위해서 위헌소송으로까지 끌고 간 데는 두 명의 여성 운동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1997년 노마 맥코비는 예수님을 믿은 뒤 자신이 여권 운동가들의 말에 현혹되어 잘못된 판단을 하였다고 양심선언을 하게 됩니다. 그 이후 노마 맥코비는 낙태를 반대하는 활동에 앞장섰으며, 2003년에는 1973년 판결을 재심해 달라는 청구를 주 법원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1973년의 판결로 지난 47년간 미국에서는 5천8백만 명 이상의 아기들이 ‘합법적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김승욱: 청교도적 신앙을 바탕으로 건국한 미국에서 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요?
이명진: 남침례교는 미국 기독교 교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고, 남침례교의 입장이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부터 70년대 말까지 남침례교 신학교와 교단 총회에는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좌파 신학자와 교계 지도자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낙태에 대하여 상당히 유화적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목사들의 설교를 들은 정치인들과 법관들은 낙태 허용에 대해 유화적인 시각을 갖게 됩니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나자 남침례교 총회장이 환영 성명을 발표한 것을 보면 당시 교단의 분위기를 잘 읽을 수 있습니다. 이후 미국 남침례교단은 1979년 복음주의자로 불리는 아드리안 로저(Adrian Rogers) 목사가 총회장이 되면서 보수주의 신학 그룹이 힘을 받게 됩니다. 이 시기부터 성경적 낙태 반대인 프로라이프(Pro-life) 운동이 남침례교단의 의견으로 다시 정착되기 시작합니다. 남침례교단은 신학교와 교단 지도자 중에서 자유주의 신학을 주장하는 그룹을 내보내고 복음주의 그룹으로 대체해 갑니다. 현재 미국에서 많은 낙태 반대 법안이 나오는 현상은 이러한 흐름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신학적 입장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신학이 바로 서야 신앙인이 바로 섭니다.
김승욱: 현재 다른 나라에서는 낙태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습니까?
이명진: 2020년 WHO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195개국 중 임산부의 요청에 의한 낙태는 132개국(67.3%)에서 금지되어 있습니다. 낙태가 허용된 나라 중에서 15주 이상 태아의 낙태를 전면 허용하는 10개국(5.1%)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낙태 허용 기간에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10주 이하의 낙태만 허용하는 나라가 9개국(4.6%)이고, 11~12주까지 허용하는 나라가 37개국(18.9%), 13~14주까지 허용하는 나라가 4개국(2.0%)입니다. 지역에 따라 기준이 다른 나라가 3개국(1.5%)입니다.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면 생명 경시 문화가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는 109개국(55.6%)에서 금지되고 있습니다. 낙태가 허용된 나라 중에서 13주 이상의 태아 낙태를 전면 허용한 12개국(6.1%)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낙태 허용 기간에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11~12주까지의 태아 낙태를 허용한 나라가 4개국(2.0%)이고, 알 수 없는 나라가 65개국(33.2%)입니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기준이 다른 나라가 5개국(2.6%)입니다.
임산부의 요청에 의한 낙태와 사회·경제적인 복합 사유로 인한 낙태는 130개국(66.3%)에서 금지되어 있고, 낙태가 허용된 나라 중에서 13주 이상의 태아 낙태를 전면 허용한 23개국(11.7%)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낙태 허용 기간의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10주 이하 허용 9개국(4.6%), 11~12주 허용 29개국(14.8%), 지역에 따라 기준이 다른 나라가 4개국(2.0%)입니다.
강간에 의한 낙태가 쟁점이 되는데, 이것 역시 잘 생각해야 할 문제입니다. 강간에 의한 낙태는 69개국(35.2%)에서 금지되어 있고, 낙태가 허용된 나라 중에서 25주 이상의 태아 낙태를 전면 허용한 10개국(5.1%)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낙태 허용 기간에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낙태를 12주 이하에서 허용한 나라가 11개국(5.6%), 13~20주까지 허용한 나라가 15개국(7.7%). 21~24주까지 허용한 나라가 17개국(8.7%)입니다.1)
김승욱: 올해 연말까지 형법과 모자보건법 등을 개정해야 해서 개정안이 나왔습니다. 이 개정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어떤 입법 대안이 바람직한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형법 개정안의 대표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명진: 형법 개정안에 270조 2항을 두어 임신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했는데, 낙태의 95.3%가 12주 이내에 시행되고 있고, 97%가 14주 이내에 시행되고 있기 때문에 이번 개정안에서 낙태를 임신 14주까지 허용한다는 것은 전면 허용과 같습니다. 의학적으로 임신 10주가 넘어서면 낙태를 할 때 임산부 생명의 위험이 급증하며 낙태 후 겪게 될 후유증도 2배가 넘습니다. 임신 10주가 넘으면 태아의 골격이 딱딱하게 굳어지기 때문에 낙태 수술을 할 때 태아의 뼈를 잘게 부수고 조각조각으로 떼어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임산부의 건강을 위해서 산부인과 학회와 의사회에서는 의학적 기준으로 낙태는 임신 10주를 넘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법성 조각 사유라고 해서, 성범죄나 임산부의 건강상 이유, 임산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에는 낙태를 24주까지 허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경제적 사유가 있을 경우에도 상담을 받았다는 확인서만 있으면 24주 이전에는 낙태를 할 수 있습니다. 성범죄로 인해 임신이 되었을 경우 그 죄는 태아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생물학적 아버지인 생부에게 있는 것입니다. 생부의 죄로 인해 태아가 죽어야 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작년에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심장박동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심장박동법은 심장 박동이 감지된 이후에는 낙태를 금지한다는 것입니다. 심장 박동이 시작되면 생명이 있는 것으로 본다는 입장입니다. 심장 박동은 임신 5주~6주에 감지되는데, 앞으로 의학 기술이 발달하면 더 일찍 심장 박동이 감지될 수도 있습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성범죄로 임신했을 경우 낙태를 허용할 것이냐, 허용하지 않을 것이냐”의 문제로 논쟁이 붙었습니다. 성범죄로 태어난 레베카라는 여성이 낙태 허용에 찬성하는 변호사에게 “제가 지은 죄도 아닌데, 생부의 범죄로 임신된 저는 죽어야 하는 존재인가요?”라고 물었고 변호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태아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냉철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생모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경우에는 아이를 입양 보낼 수 있습니다. 입양은 기독교적인 방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나님께 입양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편에서는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 성범죄를 당한 여성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범죄로 인해 임신한 여성들은 낙태한 후 성범죄에 대한 트라우마뿐만 아니라 한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힘들어합니다. 낙태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더 큰 어려움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범죄로 임신한 여성들이 아이를 출산하고 그 이후 잘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유가 있으면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결정입니다.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상담만 받으면 낙태를 허용한다고 하는데, 사회·경제적 사유라는 것이 형법에 들어가기에는 이유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형법에 명확한 기준이 없으면 결국 국민들이 피해를 보게 됩니다. 지금 형법 개정안의 사회·경제적 사유는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이러한 사유를 허용하게 되면 생명 경시 사상이 확산되어 사회·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요양병원의 노인이나 병상에서 누워있는 병자들을 죽이자는 안락사 주장에도 힘을 실어 주게 될 것입니다.
김승욱: 다음으로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문제점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오.
이명진: 모자보건법 개정안에는 약물 낙태 허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보도 자료에 약물을 이용한 자연 유산을 유도한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약물을 사용하여 태아를 죽이는 잔인한 행위입니다. ‘미페프리스톤’이라는 약물을 먹고 24시간~48시간 후에 죽은 아이를 내보내기 위해서 자궁을 수축시키는 ‘미소프로스폴’이라는 약물을 먹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출혈량이 많고 배출이 잘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 다시 낙태 시술을 받아야 합니다. 의학적으로는 약물 낙태가 7주까지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는데, 모자보건법에서는 기준을 명시하지 않은 상태에서 약물 낙태를 허용하고 있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또 약물 허용 주수를 정해 놓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낙태 약물을 산부인과 전문의가 아닌 모든 의사가 처방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임산부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부족한 의사가 처방을 내릴 수 있어서 매우 위험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16세 이상 청소년의 부모 동의 없는 낙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로부터 자녀에 대한 자녀 보호권을 박탈하는 것입니다. 요즘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성교육은 성 윤리가 배제된 위험한 성교육입니다. 성적 자기 결정권 교육을 통해 콘돔 등을 사용하여 피임만 잘 하면 SEX를 즐길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에게는 임신하면 낙태하면 된다는 성 윤리 타락 현상이 생기게 됩니다. 감정 조절, 인격적인 판단, 분별력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이 발달되기 전에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영상과 정보를 접하게 되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에게 낙태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性)’의 올바른 의미에 대해 가르쳐야 합니다. 성은 생명과 관계된 것이기에 소중히 여기고 경외심을 가지고 다가가야 합니다.
상담 후 24시간의 숙려 기간도 너무 짧아서 문제입니다. 상담 후 임신을 유지할지, 낙태를 할지 고민하는 기간을 24시간(단 하루)으로 정한 것은 숙려 기간의 의미를 찾아볼 수 없는 요식행위에 불과합니다. 외국의 경우 상담을 할 때 낙태를 유도하지 않습니다. 임신 후 일어나는 몸의 변화와 낙태를 했을 경우 생기는 부작용에 관해 설명해 줍니다.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는 여성들에게는 양육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들을 안내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여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3일~7일 정도의 숙려기간을 줍니다.
상담자 자격도 문제인데요. 생명을 보호하는 의학 지식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을 연결해 주는 상담 기준이 먼저 마련되고 이 기준에 따라 상담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상담자도 생명을 경시하는 낙태 옹호 활동에 가담했거나 그러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나 단체에 상담 자격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상담 결과에 대한 보고와 분석도 필요합니다. 나라마다 조금 다르지만, 외국의 경우에는 상담 의사와 낙태 시술 의사가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으며 생명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의사가 상담하도록 하는 나라가 많습니다.
김승욱: 지금까지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형법과 모자보건법의 문제점에 대해서 들어봤습니다. 그럼 프로라이프 진영에서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특히 논란이 되는 것은 언제부터를 생명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 입장이 다른 것 같습니다.
이명진: 크리스천들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순간부터 생명이라고 믿습니다. 한편 일반인들은 심장이 정지되었을 때 생명이 죽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심장이 뛰는 순간부터 생명이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인 생물학자들 5,577명에게 생명의 시작을 언제라고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96%가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순간부터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미국의 생명운동 지원 단체인 Save the storks는 일반인들이 심장이 뛰는 순간부터 생명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생명 살리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초음파 검사 기구를 탑재한 특수한 차량을 만들어 낙태 시술을 하는 기관인 Planned Parenthood를 찾는 임산부들에게 태아 초음파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낙태하려던 임산부들이 태아의 심장 박동을 듣거나 태아의 모습을 초음파로 보게 되면 5명 중 4명이 낙태를 포기하고 출산을 결심한다고 합니다. 현재 이런 차량 48대가 미국 전역을 돌며 태아 살리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2019년 4월 심장박동법이 통과된 미국 아이오와주의 법 제정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오와주뿐 아니라 노스다코타·아칸소·켄터키·미시시피주 역시 심장박동법이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테네시·텍사스·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도 이와 유사한 낙태 규제 법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남침례교가 우세한 남부 11개주(일명 바이블 벨트)에서는 다양한 심장박동법이 만들어졌지만,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인해 시행을 못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연방 대법원도 프로라이프 진영인 에이미 코니 배럿(Amy Coney Barrett) 재판관이 임명되어 연방대법관의 구도가 프로라이프(5) 대 프로초이스(4)로 50여 년 만에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파기하고 생명 존중 기준이 만들어질 기회가 왔습니다.
김승욱: 지금까지 낙태죄 개정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낙태 문제에 대해서 성산생명윤리연구소는 어떤 주장을 하고 계시는지요?
이명진: 저희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첫 번째 원칙은 “모든 생명은 보호받아야 한다”입니다. 모든 낙태 행위를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프로라이프 진영에서도 심장박동법을 근거로 하여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5~6주부터는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렇게만 되어도 낙태의 90% 이상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한 생명도 포기할 수 없고 어떻게든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생부가 생모의 임신 유지와 출산 그리고 아이를 양육하는 책임을 지게 할 수 있는 부성 보호법(일명 Hit & Run 방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생부인 것이 확인되면 아이의 출산과 양육비를 법적으로 책임지게 되어 있습니다.
비밀 출산제 도입도 시급합니다. 얼마 전에 베이비박스 앞에 출산 직후의 아이가 탯줄과 태반이 달린 채로 버려져 죽은 안타까운 일도 있었습니다. 아기를 유기한 엄마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사실 아기의 엄마는 열 달 동안 자신의 뱃속에서 아이를 지켜낸 용기 있는 선택을 한 사람입니다.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넣으면 박스 안에서 체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벨이 울려 아기가 베이비박스 안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에 그 아기를 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엄마가 조금만 용기를 더 내었다면 아기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아기 엄마가 당황하고 무서웠는지 아기를 베이비박스에 넣지 못하고, 베이비박스 앞 플라스틱 통 위에 놓고 가 가슴 아픈 일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입양특례법 때문입니다. 출생신고를 할 때 생모의 이름을 밝혀야 하기 때문에 출생신고를 하지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출산한 아기를 유기하거나 죽이는 일까지 생깁니다. 비밀출산제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출산하는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생모가 원하면 의사가 대신 비밀 출생신고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제도가 있을 때 생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를 수용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유로 낙태를 허용하는 순간 세상은 생명 경시 풍조가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가정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제도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출산장려금으로 책정된 금액이 연간 11조 원이 넘습니다. 이 돈이 제대로 사용된다면 아이를 잘 양육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며, 간접 지원보다는 직접 지원을 늘리면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원칙은 “상업주의를 배격한다(낙태가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입니다. 최근 제왕절개를 하여 34주 된 아기를 낙태시킨 의사가 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것이 의사인데, 돈 때문에 생명을 죽이는 데 의술을 사용하는 의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낙태 상담 의사와 수술 의사를 분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낙태 수술에 의료보험 수가를 산정해 낙태 수술 전문 의료기관을 관리해야 합니다. 지금은 낙태 수술을 숨기기 때문에 낙태 수술 관련 의료기관이 통계에 잡히지 않고 관리도 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낙태 수술 자격이 인증된 의사에게만 수술을 허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여성이 안전하게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세 번째 원칙은 “양심에 반하거나 종교적 신념에 반하는 비윤리적 의료 행위를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입니다. 진료와 수술은 별개의 의료 행위입니다. 낙태 수술에 참여하게 되는 의료인(수술 참여 의사, 마취과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역시 양심과 종교에 반하는 의료 행위를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김승욱: 마지막으로 한국 기독교계가 어떻게 프로라이프 운동을 해야 할까요?
이명진: 생명을 존중하는 가치관과 신앙관 확립 운동이 신학교에서 먼저 시작되어야 합니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에서 생명 존중 교육을 강조해야 합니다. 신학교 입학 전에 세상사조로 교육받은 목사 후보생들에게 인간 중심의 신학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신학을 가르쳐야 합니다. 신학교가 바로 서야 바른 목사가 나오고, 바른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성도들이 바른 신앙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바른 신앙인들이 가정과 사회 각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생명 사랑 목소리를 높이고 사회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신학교와 강단에서 생명 존중 신앙관 확립을 위한 강의와 말씀 선포가 뜨겁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시작한 생명운동이 교단 차원에서도 병행돼야 합니다. 교단마다 생명위원회를 만들어 교단 차원의 생명운동을 전개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법보다 위에 있는 것이 성경적 기준입니다. 법으로 적법하다고 윤리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옳은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이 말씀을 통해 올바른 신앙관을 갖도록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목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할 때 성도들이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입니다. 그래야 법적으로 낙태가 허용되더라도, 낙태는 하나님 앞에 범죄이고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낙태를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단 차원의 활동이 중요합니다.
비록 낙태죄가 위헌 판결을 받았지만, 성경의 기준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한국교회가 일어나 생명을 죽이는 죄악과 싸우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이후 형법과 모자보건법이 어떤 기준으로 만들어지더라도 세상 법이 아닌 생명의 법, 양심의 법을 따라 모든 낙태를 거부하고 생명을 지켜가야 합니다.
이제 교회에 회개와 회복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낙태가 죄라는 것을 모르고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에 영향을 받아 낙태를 했던 가정들의 회복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알고 지었든 모르고 지었든 생명을 죽인 죄를 회개하고, 낙태라는 죄의 멍에를 깨뜨리고 자유함을 얻도록 모든 교회에 회개와 회복 운동이 확산되어야 합니다. 대형 교회가 진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큰 영향력이 있습니다. 성결교회 교단장이 된 한기채 목사님은 낙태 반대, 생명 존중에 관한 성명서를 내셨고, 11월 마지막 주를 생명 존중 주일로 지킨다고 합니다. 고신, 대신, 합신에서도 11월 8일 태아 생명존중 주일로 지켰습니다. 온누리 교회의 이재훈 목사님도 낙태 반대, 생명 존중 입장을 명확하게 밝혀주시고 진리를 선포해 주셔서 교회와 교인들을 깨우고 있습니다.
교계와 연합하여 강력한 생명운동을 전개하고 모든 기독교계가 한마음으로 연합하여 강력한 생명운동을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지극히 약한 태아의 생명을 지키고 임신한 여성을 보호하는 고귀한 사명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시대적 사명입니다.
김승욱: 오늘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1) 자료: 세계보건기구(WHOhrp) https://abortion-policies.srhr.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