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와 여성 리더십
2020-05-13
월드뷰 05 MAY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9 |
글/ 한상화(아세아연합신학대 조직신학 교수)
한국 보수 교회 안에 정착된 여성 차별의 현실
필자는 여성으로 보수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매우 특이한 처지에 있다. 필자가 몸담은 ACTS가 신본주의와 복음주의를 기초로 범교단의 연합을 지향하면서 세계 복음화를 설립이념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보수 신학교에서 이론 신학을 가르치는 전임 여성교수는 다섯 손가락 내에 그칠 정도로 그 수가 매우 적다. 필자가 1996년도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지 얼마 안 되어 참석한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참석자 남녀 성비가 190명대 1쯤으로 보였다. 이후 지금까지 보수 교회 내 여성 차별 문제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컸고, 현재도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신학교 내에서는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많은 교단이 여성 안수를 결의하였다. 이젠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몇몇 여성 목회자들의 이름이 종종 언급되기도 하고 크고 작은 총회장 자리에 여성이 선출되었다는 기사도 볼 수 있다. 작년 2019년 장로교 통합측 총회 때 부총회장에 여성 장로가 선출되어 시선을 끌기도 하였다. 드디어 여성 목사 1만 명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 목회자에게 한국교회 내 존재하는 유리천장은 여전히 심각하다. 여성 사역자들의 수많은 눈물의 이야기는 여기에 다 쓸 수 없으니 주님 앞에서 가슴깊이 애통해하며 기도할 뿐이다.
기독교 내 여성 리더십의 증가 추세에 대한 반동으로, 전통적으로 여성 차별적이던 장로교 보수 교단들이 예전보다 더 바싹 고삐를 조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017년 합동측 총회에서는 그동안 성별은 명시하지 않았던 목사안수 자격에 “만 30세 이상의 남자”라는 조항을 넣었고, 합신교단은 여성목사안수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어긋난다고 하며 불허할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종류의 여성 목사 배제 원칙을 세워 만장일치로 결의하였다. 필자는 남편이 합신교단에 속해 있어서 목사안수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2019년 장로교 합동측 총회에서는 여성사역자지위향상위원회에서 제출한 여성 사역자 강도권 청원이 1년 뒤로 미루어졌다고 한다. 한마디로 여성 총대 0명인 교단에서 여성사역자의 처우 문제도 남성에 의해 다뤄지고 그마저도 총회 헌법적, 신학적 문제로 말미암아 미뤄지고 마는 현실이다. 이러한 보수 교단의 분위기는 남성 리더십의 독점이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교회 내 위계적 남녀관계가 억압적으로 자리 잡기 때문에, 의식 있는 젊은 남녀의 상당수가 교회를 떠나게 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모든 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는 남자만 있고 여자들은 소모적인 노동만을 감당하게 하는 건강치 못한 교회 문화가 지속되고 있다. 교회 내 여성 리더십의 장려와 함께 성경이 지향하고 있는 바른 남녀관계, 즉 유기적 연합의 관계가 형성되고 바른 성경적 가정관이 세워져야 제대로 된 기독교 세계관을 가르치고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교회 내 여성 차별의 문화는 조속히 개혁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 구현을 위한 공동체로서 교회의 역할과 미래를 위하여 바른 남녀관계의 정립은 매우 중요한 기초가 된다.
정치적 양극화의 상황에서 기독교 본연의 자세 되찾기
필자는 오래전 “개혁주의 관점에서 본 여성 신학과 여성 해방”이란 글을 통해 급진적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는 진보적인 여성 신학에 대해 비판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참다운 여성의 해방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죄로부터의 해방에서 그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그것의 확장으로서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해방이 반드시 포괄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즈마리 류터(Rosemary Ruether)와 같은 에코-페미니스트 신학자를 비판적으로 고찰한 적이 있다. 최근 2018년에 <캐서린 켈러(Catherine Keller)의 트랜스페미니즘에 대한 복음주의 신학 관점에서의 비평적 고찰>이란 논문을 기독학술원에서 발표했는데, 그 논문을 통해 여성문제가 동성애 문제로 가려지게 되는 것에 경고하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1990년대 이후 페미니즘이 여성 해방의 범위를 넘어 성소수자의 해방을 추구하게 되어서 오히려 여성문제를 동성애 문제로 비약시킬 뿐 아니라, 동성애 문제 자체도 정치적 양극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우정치 이념 대립의 문제로 비화(飛火)하여 모든 문제가 본질에서 벗어나 혼란 속에 빠지게 되었다. 보수 신학자들이 교회 내 여성문제에 대하여 제대로 지향점을 제시하지도 못하고 차별적인 전통의 수구에 머무는 가운데, 몇몇은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도 또 하나의 정치적 보수의 논리로 맞대응하고 있는 것은 성경을 따라 교회를 지도하는 본연의 자세를 망각한 것이다. 성차별적인 문화 속에서 남성 중심적인 해석과 신학과 삶을 지속하면 성인지 감수성이 낮아져 이성의 차이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진다. 성인지 감수성 자체가 없으므로,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이성이나 이견을 가진 사람에게 얼마나 상처를 주는지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동성애 문제를 정치화 하는 것에 대하여 필자는 가슴 아파하며 교회 차원에서 올바른 성경적 남녀관계의 정립을 위해 노력하며 건강한 성문화를 정착시킴으로써 왜곡된 성에 대한 궁극적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는다. 좌파 진영이 지향하는 차별금지법 통과를 포함하여 개헌의 여러 독소 조항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함께 그 폐해에 대해 알리는 것도 시급하고, 젠더 이데올로기로 네오마르크스주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맞서는 활동도 시급할 수 있다. 하지만 교회를 이용하거나 또는 정치적 세력을 얻기 위하여 기독교에 기대는 것은 교회가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치유하고 연합의 방향으로 선도해 갈 수 없도록 만드는 해로운 일이다. 기독교 본연의 화해의 종교, 치유의 종교, 무엇보다 복음을 통한 죄의 지배 속에 신음하는 전인 구원의 복음적인 모습으로 회복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촉구해 본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 구현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주신 성에 대한 바른 인식과 더불어 남녀의 유기적 연합관계를 통한 가정의 회복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가정이야말로 기독교 세계관의 형성과 정착이 이루어지는, 기독교 문화의 최소 단위이자 예배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에 혼인율 급감과 이혼율이 꾸준하게 상승하는 모습은 무엇보다 교회가 자성해야 할 일이다. 복음 신앙이 삶으로 구현되지 못한 가장 뼈아픈 현실임을 깊이 통감하여 올바른 남녀관계 그리고 결혼과 가정의 중요성을 신학자들이 자신의 성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서부터 개혁의 출발로 삼게 되기를 소망한다.
남녀파트너십에 입각한 여성 리더십 장려
기독교 교회 내에서의 여성 리더십은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장려되고 계발되어야 한다. 여성의 목사안수가 비성경적이고 창조질서에 어긋난다는 하나의 신학적 해석은 성경적 정신에 입각한 바른 적용인가?
복음주의 교단을 대표하는 훌륭한 남성 신학자들 중에 많은 분들이 소위 남성 헤드십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이 입장을 보다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도록 이름을 바꾸어 “상호보완주의(complementarianism)”라고 한다. 상호보완주의는 남녀가 서로 보완하여 온전함을 이룬다는 주장인데 그 중심에 그리스도가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상호보완주의를 적용하는 데 있어서 질서라는 이름으로 남녀의 위계적 개념이 다시 자리한다. 즉 이전 헤드십 입장으로부터 지속되어 온 “존재론적 동등성과 기능적 종속성”이란 개념이다. 여자와 남자는 존재론적으로는 동등하나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서 남자는 대표성을 가져서 머리의 위치에 있고 여자는 몸으로서 돕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호보완에 있어서 역시 주(主)는 남자이고 여자는 부(部)라는 것이다.
“이러한 남녀 관계가 과연 성경의 창조질서를 가르치는 것인가?”하는 질문에 대하여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래 전 <복음주의 내에서의 여권주의>라는 논문을 통하여 필자는 복음주의 교회 안에 여성에 관한 세 가지 입장을 다룬 바 있다. 첫째는 남성 헤드십 견해이고, 둘째는 남녀의 동등성을 강조하는 성경적 페미니즘이고, 셋째는 상호복종주의이다. 그때 여성에 관한 성경적 입장은 상호복종주의라고 주장한 바 있다. 여전히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성도들은 서로에게 복종하는 관계성이 가장 그리스도의 정신을 잘 반영하는 것이라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상호복종의 적용에 대하여 다시금 남자의 머리됨과 대표성을 주장하면서 여성의 종속적 위치와 역할을 인정하라는 의미의 상호복종주의라면,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참다운 구속을 반영하는 상호복종주의가 아니라고 본다.
지면의 한계로 이 주제에 대한 많은 성경신학적 논의를 다 기술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히 믿는 것은 성경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사고 체계, 즉 해석의 틀에 따라 다른 견해와 적용이 나온다는 점이며, 이는 모든 해석자에게 불가피한 조건이라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개혁주의 구속사적 창조, 타락, 구속의 이해가 남녀관계에도 일관성 있게 적용되어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창조의 상태, 타락 이전 원상태에서의 남녀의 하나됨은 창조순서에 따라 위계적인 의미가 포함된 하나됨이 아니라 한몸됨의 온전한 유기적인 연합(창 2:23-4),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 공동체적 연합의 원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에 반해 남녀의 위계적인 관계는 창조의 질서가 아니라 타락의 상태에서의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보아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아 유기적인 연합에서 타락의 권력 투쟁의 위계적 관계 구조 안에 고통받는 남녀로 변하게 된 것이다. 죄의 전형적인 결과인 억압적 관계(창 3:16, 20)는 보편적으로 세계 역사 속에서 현실화 되었고 선악과를 따먹는 주된 역할을 담당했던 여성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았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원복음인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의 약속(창 3:15)과 남녀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시는(창 3:21) 구원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여자가 타락의 주된 역할을 했듯이 구원에 있어서도 여자가 주된 매개체가 되는 것을 성경은 “여자의 후손”이라는 표현을 통해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은 죄로 말미암아 끊어진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 회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본래적이고 유기적인 수평적 관계회복을 포함하고 이에 가장 원초적인 남녀관계의 유기적인 하나됨의 관계를 다시금 회복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구속사적인 이해라고 해석한다. 그리하여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말씀이 구속사적으로 회복된 모든 인간관계의 유기적인 하나됨을 가장 잘 가르치는 말씀이라고 본다.
맺음말
남자의 머리됨을 주장하며 여성 위에 군림하고자 하는 아담의 타락성을 버리고, 보수 교단의 남성 지도자들은 여성들을 파트너로서 인정할 뿐 아니라 그동안 계발되지 못했던 여성 리더십을 더욱더 활발하게 개발하여 하나님 나라 복음사역을 위하여 파트너로 함께 인정하기를 바란다. 이와 같은 건강한 파트너십에 입각한 교회의 리더십이 회복되게 될 때 교회의 부흥과 갱신이 다시 올 것이다. 하늘 영광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그리스도! 종의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섬기신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섬기는 리더십을 교회 안에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남성 교회 지도자들이 타락의 질서인 위계적인 사고 체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여성 리더들을 인정하여 리더십에 있어서 남녀의 파트너십 관계의 모본(模本)이 교회 안에 건강하게 세워져야 한다. 또한 무너져 가는 가정이 회복되려면 남편과 아내가 하나 되어 가정의 주인이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 부부관계에서 이루어져야 사랑과 행복으로 견고하고 건강한 가정이 세워지고 이를 통해 기독교 교회와 사회에 소망이 싹틀 것이다. 세상을 향해 삶을 통한 활발한 복음 증거의 선교적 교회로 거듭나기 위하여 관계의 원형인 구속된 모습의 남녀관계가 기초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 공동체가 세워지고 이를 통해 참다운 예배가 회복되며 세계 속에서 바른 성경적 가치관과 문화를 확산시키는 교회의 사명을 다할 그 날을 위해 남성과 여성의 전쟁은 끝이 나야 한다. 한국 교회에 이러한 새로운 미래를 향한 성령의 치유와 화해와 변화의 역사가 강력하게, 고요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일어나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이 글을 마친다.
<sang03@acts.ac.kr>
글 | 한상화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변증학 전공으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현재까지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 교수로 사역하고 있다. ACTS 신학연구소장, 신학대학원장, 한국복음주의조직신학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현재는 대학원장으로 봉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