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이데올로기로 사회 개조하겠다는 시도는 틀렸다
2020-05-07
월드뷰 05 MAY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4 |
글/ 오세라비(칼럼니스트)
국내 페미니즘 혐오를 앞세우고 등장하다
급진 페미니스트(래디컬 페미니즘)가 국내에 등장한지 올해로 6년째다. 2015년 8월 일단의 영 페미니스트(Young Feminist)들이 출현하였다. 이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 ‘메갈리아’를 개설하고 “여성 혐오에 대항한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후 메갈리아는 더욱 극단적인 페미니스트 집단인 ‘워마드’ 커뮤니티로 변모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워마드는 ‘여성 우월주의, 남성 혐오’가 목적임을 사이트에 명시하고 있다. 경악할 일은 워마드가 ‘WE ARE FEMINAZIS’(우리는 페미나치)라고 영어로 버젓이 게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를 넘어 해외에까지 한국 페미니즘의 성격을 명확히 하겠다는 행위이다. 성차별에 대항하기 위한 페미니즘이 또 다른 성차별을 심화시키고 있다. 그것도 남성 혐오(Misandry)를 전면에 내세우는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로 말이다.
국내의 페미니즘은 한국의 고유한 특성과 기반이 고려되지 않은 채 도입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게다가 2017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Me Too:나도 당했다)까지 한꺼번에 겹치면서 페미니즘 전성기를 맞았다. 국내 페미니즘 운동은 단번에 세력을 결집하여 더욱 급진적인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변화하였고 남성 혐오 서사로 성별 갈등이 격화되었다. 페미니즘이라는 반세기 전 유물이 여자와 남자가 적이라는 구도로 전개되고 있는데 이를 보더라도 국내 페미니즘 전개 양상은 아주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
서구 여성들의 페미니즘은 약 150년에 걸친 투쟁의 역사로 이어져 왔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초기 여성 운동은 참정권 운동 및 법적 권리 투쟁이었고 백인 중간 계급 여성들의 권한과 지위를 향상시키는 운동이었다. 이러한 페미니즘 운동은 1960년대 말 ‘68혁명’ 신좌파(New Left) 청년 운동의 영향으로 신진 페미니스트들이 출현함으로써 대중화되었다.
현대 페미니즘은 1970년 초 미국에서 발달한 모델로 유럽 각국에 영향을 미쳤으며 급진성을 띠며 여성 해방을 내세웠다. ‘68혁명’ 신좌파 운동에서 시작된 페미니즘은 카를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이론의 두 기둥인 계급투쟁과 역사적 유물론에 기초한다. 남녀를 하나의 계급투쟁 관계로 여기며 가부장제 개념을 페미니즘으로 끌어들였다. 여성 착취의 근본 원인을 가부장제로 개념화하여 남성은 압제자이며, 가부장제가 여성 억압의 원천이고 남성이 폭력과 성 착취로 여성을 종속시키는 제도라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래디컬 페미니즘의 교리가 되었다. 서구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를 여과 없이 수입한 국내 페미니즘 역시 1970년 초 등장한 미국의 급진적 페미니즘 모델과 전개 양상이 동일하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주류가 된 레즈비어니즘
여성은 억압받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남성의 성 본능에 규제를 가하는 방식은 현대 페미니즘의 주요 전략이 되었다. 또한 1970년대 중반 무렵 본격화되기 시작한 레즈비언 운동, 게이 권리 운동은 페미니스트와 연대하며 정치적 세력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래디컬 페미니즘은 다양한 분파를 만들었는데 그중 한 분파인 레즈비언 페미니즘의 등장은 1970년대 초기 레즈비언 운동으로 조직화되기 시작했다.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이성애에 대한 극단적인 거부와 전통적인 가족제도를 비판한다. 이성애 자체를 가부장제로 규정하는 레즈비언 페미니즘은 여성 동성애를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여긴다.
1970년대 중반, 미국의 래디컬 페미니즘은 레즈비언 페미니즘을 수용하며 이때부터 여성 동성애 연구와 토론이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레즈비언 이론가들은 적극적인 저술 활동으로 레즈비어니즘 실현에 앞장섰다. 레즈비언 이론가인 쉴라 제프리스(Sheila Jeffreys)는 “모든 페미니스트가 레즈비언이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국내 페미니즘계도 페미니즘 붐을 타고 당시 미국의 레즈비언 이론가들이 수십 년 전에 쓴 저서를 속속 번역 출판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영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 운동의 이론서로 채택하여 행동 강령으로 삼는 것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시대착오적이다.
페미니즘은 1970년대 후반이 되자 본격적인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로 발전하였다. 래디컬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슬로건인 ‘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는 낙태 합법화, 동성애, 인종차별 문제 등 개인적인 영역의 문제를 개인적인 일인 동시에 정치적으로 해결할 사안임을 부각시켰다. 이렇게 ‘정체성 정치’ 시대가 열린 것이다. 페미니즘, 동성애, 인종 문제 등 ‘정체성 중심 운동’은 좌파 정당의 중요 이슈가 되었다.
페미니즘 이데올로기에서 젠더 이데올로기로 전환
1970년대 말에 이르자, 신좌파 운동은 포스트모더니즘과 결합하여 ‘해체주의’로 발전하였다. 프랑스 출신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사상이 미국 문학 비평에 영향을 미치며 도입된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화 연구, 페미니즘, 동성애 연구 등과 혼합되어 유행을 일으켰다. 이 시기부터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는 젠더 이데올로기로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에 있어 사회적 성별을 가리키는 젠더(Gender) 개념의 영감은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가 1949년에 발표한 <제2의 성>의 핵심 명제인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에서 찾는다.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여성성은 변하는 것이며 여성의 본질은 고정된 어떤 관념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젠더 이론의 기반을 만들었던 중요한 인물이 또 있다. 바로 존 머니(John William Money) 박사다. 그는 1960년대 후반부터 30년 동안 세계 최고의 성 전문가로 군림해 온 인물이다. 그의 지론은 한마디로 “타고난 성은 중요하지 않다. 성은 바꿀 수 있다”이다. 존 머니는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성 문제 전문 연구원 겸 임상심리학자로 명성을 얻으며 승승장구하였다. 1965년 존스홉킨스 병원이 사상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시작했을 당시 머니의 집요한 설득으로 의사들이 수술을 시행하였다. 존스홉킨스 병원에 ‘성 정체성 클리닉’을 운영하였으며, 성 정체성(gender Identity)이란 용어를 창시한 이가 바로 존 머니다. 그는 인간의 성 정체성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을 죽는 날까지 바꾸지 않았다. 생물학적 성(sex) 결정이 아니라, 사회적인 학습과 환경으로 결정된다는 젠더 이론의 창시자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1990년 초 ‘상호 교차성’을 출현시켰다. 이어 ‘상호 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 분파로 발전되었다. 상호 교차성 페미니즘은 새로운 페미니즘 트렌드가 되었다. 젠더 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무한히 유연하다고 주장한다. 성 정체성, 성 해체, 성별 관점 초월, 장애인, 난민, 인종, 계급 등 모든 요소들은 복합적으로 상호 작용한다는 유형을 만들었다.
젠더 이론을 결정적으로 주창한 철학자는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다. 주디스 버틀러는 1990년 <젠더 트러블: 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을 출판하며 해체주의적 페미니즘 담론을 만들었다. 주디스 버틀러의 해체주의적 페미니즘의 핵심은 “남성, 여성이라 말하지 말라. 남녀 이분법으로 나뉘는 것은 남성 중심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남녀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생물학적 사실도 부정해야 하며, 이성애 정체성을 부수자.”이다.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의 영향은 컸다. 그녀는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진정한 여성 해방은 동성애로 유지될 수 있다고 믿도록 했다. 이것이 오늘날 수 십 년을 지배해 온 젠더 이데올로기이다.
우리가 가야 할 길
젠더 이데올로기는 교육 방침으로 현재 국내 초·중등교육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8년 초 본격적인 ‘포괄적 성교육 권리 보장’ 방향이 추진되었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보건기구(WHO), 유엔 여성기구가 2018년 1월 펴낸 <성교육 국제 실무 안내서>에 따른 것이다.
포괄적 성교육(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이란 “경험적, 감정적, 육체적, 사회적 맥락에서의 성(sexuality)교육”을 말한다. 다양성에 기반을 둔 성교육의 목표 역시 청소년이 향후 타인과 원만하게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한 지식·기술·태도·가치를 갖추도록 하는 데 있다. 생물학적인 성만을 다뤘던 기존의 성(sex, 섹스) 교육에서 벗어나, 인권과 성 평등의 개념을 포괄하는 성(sexuality, 섹슈얼리티)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이것을 청소년 성교육의 목표로 제시하였다.
‘성의 다양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조류에 휩쓸린 요즘 청소년, 대학생, 동성애자, 페미니스트들이 부쩍 자신의 성별을 복잡하게 규정하는 현상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성 정체성(gender identity) 분류를 말하는데, 일반적으로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되는 두 개의 성별에서 벗어나 수십 가지 젠더 옵션을 만들어내고 있다. 71개, 63개니 하는 젠더 옵션 분류로, 안드로진, 안드로이드, 시스젠더, 시스메일, 데미 걸, 데미 보이, 에이젠더, 넌 바이너리 등이다. 한 여자 대학생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에이로맨티스트 그레이섹슈얼 판섹슈얼 성소수자이다.” 그런가하면 21살 남성 청년은 한 TV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이렇게 소개한다. “생물학적으로 정해진 성이 아니라 내 성별은 내가 결정한다. 나는 호모로맨스 에이섹슈얼 안드로진이다.” 이 말은 정서적으로는 동성에 끌리고 육체적으로는 아무에게도 끌리지 않으며 내면에는 양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이와 같이 근래에 들어 자신의 성 정체성에 여러 가지를 조합해서 분류하는 경향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성 정체성 분류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적 취향, 로맨틱 취향까지 세분해서 스스로에게 라벨을 붙이는 실정이다. 이런 젠더 분류는 청소년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머지않은 장래에 자신의 성 정체성을 나열한 표식을 부착하고 다녀야 하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성 정체성을 알지 못하는 타인이 외모만 보고 잘못 불렀다가 “차별이다! 혐오다!”라는 말을 듣는 날이 현실로 다가올 수 있게 된다. 포괄적 성교육이란 이름으로 ‘성의 다양성’ 존중을 가르친 것이 청소년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두려움마저 든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절감한 한 교사는 이렇게 토로했다. “학생들에게 실시하는 성폭력 예방교육은 남녀 갈등을 조장하고, 관계를 파괴한다. 또한 가정 파괴 교육이다. 대부분의 초·중·고교 교사들도 인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여성가족부가 일선 학교의 성교육 관련 내용을 모니터링하고 성교육 내용을 제대로 학생들에게 전달했는지까지 검열한다. 그러니 교사들이 항의할 수 없는 실정이다. 여성가족부는 교육부의 상급기관이라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성교육은 유해한 교육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페미니즘 이데올로기는 젠더 이데올로기로 방향을 바꾸어 성(性)의 해체로 이어지고 있다. 페미니즘은 처음부터 가정을 공격했다. 가정이야말로 페미니즘에서 말하는 가부장제가 유지되는 본바탕이라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성애를 부수는데 주력하고 사회 분열과 남녀의 단절을 야기한다.
페미니즘은 인류 문명사의 발달 맥락을 무시하며 문명 건설에 대한 남성의 기여도 역시 무시한다. 문명의 발달사에 있어 성별 역할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했다. 인류의 문명은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농경 시대╺ 청동기·철기 문화 시대╺ 연맹 왕국╺ 중앙집권 국가 형성과 발전╺ 왕정 시대╺ 중세 봉건 제도╺ 도시 부흥과 상업 발달╺ 근대 사회╺ 시민 혁명╺ 산업 혁명╺ 자본주의 발달의 순서로 발전해 왔다. 이러한 문명의 창조는 남성의 육체적·신체적 힘을 필요로 했고, 여성은 여성대로 성별 역할에 맞는 문명을 창조해 왔다. 인류 문명은 남녀가 상호의존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며 발전해 왔다.
인류 문명은 이성애자들에 의해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새 조류인 젠더 이데올로기는 타고난 성을 해체하며 가정을 파괴한다. 성을 해체하고 가정을 해체한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가정은 명백한 여성들의 영역이 아니던가? 왜 페미니스트 스스로 여성들의 영역을 부숴 버리는가? 페미니스트들이 페미니즘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murphy803@hanmail.net>
글 | 오세라비
시민 사회단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다 늦은 나이에 왕성한 저술을 하고 있다. 독서광으로 스스로 ‘책 사냥꾼’이라 자처한다. 현재 페미니즘 비평가, 칼럼니스트, 사회운동가이다. 저서로는 단행본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와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