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자유가 첫 번째 자유인 이유
2020-04-21
월드뷰 04 APRIL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2 |
글/ 조평세(트루스포럼 연구위원)
중국에서 유입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COVID-19)가 국내에 확산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교회의 예배 모임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일부 시·도청은 주민들에게 교회에 나가지 말 것을 권고하는 ‘긴급재난문자’를 보내거나, 주일날 교회 앞에서 ‘가정예배 권고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교회에 모든 종교 집회 등을 금지하는 긴급 행정명령 공문을 내리기도 했다. 이런 조치들이 이해되기 어려운 이유는,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밀집하여 모이는 나이트클럽과 피시방, 대중교통, 백화점 등의 다른 공간에 대해 이런 수준의 사용금지 조치가 없기 때문이다. 사이비 이단 집회 모임을 제외한 실제 교회 예배를 통해 감염이 전파된 사례는 극소수다.
각 교회와 성도가 자발적으로 대규모 모임을 자제하고, 가정단위의 예배를 이 기회에 더욱 활성화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는 지역사회의 위생 보건과 방역에 힘써 이바지할 책임도 있다. (언론 보도가 잘 안 되지만, 이미 많은 교회는 지역사회 방역과 피해 구제에 그 어느 사회단체보다 더 많이 힘쓰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다른 집단도 아닌 교회를 특정하여 종교모임을 금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종교의 자유, 특히 기독교 신앙의 자유는 자유 공화국과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근간이 되는 ‘첫 번째 자유’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자유’
미국의 3대 ‘건국문서’(founding documents)란, 1776년에 선포된 미국 독립선언문과 1789년에 발효된 미국 헌법 그리고 1791년에 채택된 미국의 권리장전을 말한다. ‘권리장전’은 다름 아닌 미국의 수정헌법 1조부터 10조를 말한다. 독립선언문이 미국의 건국 ‘정신’을 담고 있다면, 헌법은 미국 정부의 구성과 권한을, 권리장전은 미국 시민들의 권리들을 규정하고 있다.
1600년대 영국 청교도들이 신대륙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신앙의 자유를 향한 뜨거운 갈망으로 미국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갈망은 종교개혁과 칼뱅주의 개혁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미국인들에게 ‘자유’란 무엇보다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을, 왕이나 교황의 중재 없이 온전히 ‘예배할 수 있는 자유’를 의미했다. 신대륙에 정착한 이들은 150년이 지난 후에도 영국 왕의 주권이 여전히 그들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여겨지자, 결국 독립을 선포하게 되었고 이들의 개혁신앙은 고스란히 그 건국문서에 스며들었다.
따라서 이 건국문서의 주인공은 물론 미국이지만, 이 문서가 담고 있는 무게와 깊이는 결코 미국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뜻하는 바가 지대하다. 이 3대 건국문서가 의미하는 것은, 창조주의 도덕률을 최초로 받아들인 히브리인들의 전통부터 헬라 문명의 정치철학, 로마제국의 공화정과 시민 인식 그리고 영국의 보통법과 자연권 사상까지의 정치사상을 종합해 당대 최고의 천재들이 모여 고안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최상의 인간 정부 모델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 3대 건국문서에 고안된 정치체제는, 시민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하고 교회공동체를 번영하게 하는 가장 유리한 정치체제이다. 선교학적 관점에서는 가장 ‘선교적인’ 정치체제라고도 할 수 있다.
이 3대 건국문서 중 시민의 권리들을 나열한 권리장전, 즉 수정헌법은, 1조에 시민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권 다섯 가지를 나열하고 있다. 이 다섯 가지 자유권 중 가장 첫 번째로 명시된 인간의 자유권은 무엇일까? 역시 종교의 자유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종교의 자유, 혹은 신앙의 자유를 “First Freedom”(첫 번째 자유)이라고 부른다. 종교의 자유 다음으로 표현(speech)과 출판(press)의 자유가 있고 집회(assemble)와 청원(petition)의 권리가 있다.
“의회(정부)는 국교를 정하거나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의사 표현, 출판(언론)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미국 수정헌법 제1조).”
정교분리의 본래 의미
여기서 가장 먼저 주목할 것은 이 권리장전의 명령이, 교회가 아닌 정부(의회)에 내려진 것이다. 즉 “정부가” 어떤 특정 종교나 교단을 국교로 세우지 말아야 하며, “정부가”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국교”를 세우지 않는다는 이 첫 부분의 내용은, 흔히 ‘정교분리’라는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는 표현으로 왜곡되어, 정치는 교회에 관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교회도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는 뜻으로 곡해되곤 한다. 그러나 이 문구 어디에도 교회나 신앙인의 정치적 자유가 제한된다는 의미는 없다.
당시 13개의 주(state) 정부들은 각각 이미 특정 기독교 교단을 주종교(state religion)로 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방정부가 어느 하나의 기독 교단을 국교로 정하는 것은 심각한 교단 간 분열을 일으키는 일이고, 일부 주의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연방정부가 국교를 정하지 않는 것은, 기독교 신앙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것이었지, 이를 제한하거나 이슬람교나 불교 등의 다른 종교를 염두에 둔 표현이 아니었다.
‘정교분리’ 혹은 더 정확하게는 “교회와 국가 간의 분리 벽(a wall of separation between Church and State)”이라는 표현 자체도 1802년 3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코네티컷주 댄버리(Danbury) 침례교도들에 보낸 답신에 처음 나오는데, 이 서신의 맥락 또한 당시 코네티컷주에서 소수 교단이었던 침례교가 정부로부터 그 어떤 차별과 제한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제퍼슨은, 종교는 온전히 사람과 하나님 간의 문제로서 정부의 합법적 권한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제퍼슨이 가장 많이 참고한 영국 정치철학자이자 청교도 목사의 아들이었던 존 로크(John Locke)도, 개인의 양심과 종교심의 영역은 정부가 침범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정교분리’의 명분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신앙의 자유를 정부가 범접할 수 없는 상위의 차원으로 여겼기 때문에 정부는 교회에 간섭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제퍼슨은 위의 편지를 쓰고 이튿날 주일에 평소처럼 교회에 출석했다고 한다. 이듬해에는 어느 인디언 부족 마을에 연방 예산으로 성당을 짓도록 하는 내용의 제안을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또한 제퍼슨은 초대 대통령 워싱턴이나 2대 대통령 애덤스처럼 국가적 기도의 날을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2차 취임식 연설에서는 공개적으로 국민에게 기도를 요청하기도 했다.
따라서 정교분리라는 이름으로 목회자와 성도의 입을 틀어막고 성도의 정치적 분별력을 무력화시키고, 정치인의 신앙고백을 막으려는 것은 너무도 무지한 발상이거나, 악의적인 반(反)기독교적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2018년부터 국무부 주관으로 ‘종교의 자유 증진을 위한 국제 장관급 회의’를 매년 열기 시작했다. 또한, 2019년에는 국무부 산하에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위원회’(Commission on Unalienable Rights)를 두고, 생명권과 자유권 같은 인간 기본권에 대한 가치 재정립을 통해 미국의 대외정책에 종교의 자유를 반영하려 하고 있다.
신앙의 파괴는 곧 자유의 파괴
역사를 돌아보면 반(反)자유 세력은 언제나 반(反)교회, 반(反)기독교 세력이었다. 대표적으로 1789년 시작된 프랑스혁명은, 겉으로는 자유와 평등과 관용을 외쳤지만, 사실 교회를 파괴하고 성직자들을 골라 죽이는 무신론 혁명이었다. 구글에 ‘de-Christianization’(비기독교화)을 검색하면, 프랑스혁명이 연관검색어로 나오는 이유다. 프랑스혁명은 같은 시기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고 종교개혁을 바탕으로 한 개인의 신앙의 자유를 첫 번째로 존중하는 미국의 독립혁명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다.
미국은 독립혁명 이후 엄청난 개인 자유의 번영과 부흥을 낳았지만, 프랑스혁명은 끊임없는 살육과 공포정치실험의 반복을 초래했다. 미국은 독립혁명 이후 90년 만에 노예해방으로 그 독립정신을 구현하고 건국을 완성했지만, 비슷한 시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은 결국 사회주의라는 괴물을 낳았다. 사회주의는 1917년 러시아혁명을 통해 처음 국가형태를 입었고, 결국 한 세기 동안 세계에서 최소 1억 명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제 마지막 남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북한이 그 무신론 혁명의 정치적 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 그 영향력을 집중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사실 사회주의의 본질은 그 유물론적 무신론에 있지만, 그 내막을 살펴보면 그 무신론은 오직 대중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산 루마니아에서 14년 동안 투옥되어 있었던 리처드 웜브란트(Richard Wurmbrand) 목사는 공산주의의 반기독교적 뿌리에 대해 파헤쳤는데, 사회주의의 창시자 마르크스가 사실 무신론자가 아닌 사탄숭배자였고, 그의 목적은 “위에 있는 그 존재에게 복수하는 것”, 즉 하나님을 대적하고 기독교를 말살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내용은 작년에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웜브란트 목사의 <마르크스와 사탄>(한국 순교자의 소리, 2019)에 잘 정리되어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도 마찬가지다. 북한 헌법이 말하는 “사람 중심의 세계관이며, 인민 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혁명사상”은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자리에 ‘백두혈통’을 올려놓는 무신론적, 반-기독교적, 적-그리스도적 사상이다. 1980년대 우리나라 대학가에 이 주체사상을 확산시킨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의 1기 의장이었던, 현재 여당(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번 4.15 총선의 승리가 “시장, 종교, 언론 등 분야에서 기존 패권이 재편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을 듣고도 크리스천들의 간담이 서늘하지 않다면 곤란하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정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때다.
우리 한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무려 107년 전에 이 모든 내용을 간파하고 우리에게 경고했다. 이승만이 1913년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급히 쓴 <한국교회 핍박>은 단순히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는 게 아니었다. 이승만은 이 책에서 일본제국이 교회를 핍박하는 이유가 바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말한다. 크리스천이 신앙의 자유를 사수하는 것은, 곧 민주시민 개인의 자유를 사수하는 것이고, 자유 공화국을 사수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예수가]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동등자녀 되는 이치와 … 모든 죄악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이치를 다 밝히 가르쳤으니 신약(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혁명사상을 얻는 것은 과연 그 책이 진리를 가르치며 진리는 사람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 결국, 개신교를 온전히 세워 사람마다 자유롭게 성경을 공부하며 직접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결국, 이후로 200년 동안 루터가 시작한 개신교가 정치제도를 개혁하기에 이르러 … 각국의 정치적 대혁명이 일어났고 오늘날 구미 각국의 동등한 자유를 누리는 모든 인간 행복이 여기서 시작한 것이다.”
<pyungse.cho@gmail.com>
참고문헌
Daniel L. Dreisbach and Mark David Hall, eds.(2009) The Sacred Rights of Conscience: Selected Readings on Religious Liberty and Church-State Relations in the American Founding, Liberty Fund Press.
리처드 웜브란트(2019), <마르크스와 사탄>, 한국 순교자의 소리.
이승만(2008), <한국교회 핍박: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외침>, 청미디어.
글 | 조평세
영국 킹스컬리지런던(KCL)에서 종교학과 전쟁학을 공부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트루스포럼 연구위원으로 미국에 거주하며 보수주의 블로그 <사미즈닷코리아>(SamizdatKorea.org)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