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현장에서 본 전교조
2020-04-13
월드뷰 04 APRIL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0 |
글/ 어느 중학교 교장
현재 대한민국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이외에도 한국교원노동조합, 자유교원조합, 대한민국교원조합, 교사노동조합연맹 등 복수의 교원 노동조합이 존재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교원노조하면 전교조를 떠올린다. 이는 조합원 수에 있어서나 교원노조의 역사를 이해하면 당연한 일이다. 전교조가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 끼친 영향력은 매우 광범위하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전교조 탄생의 역사를 바탕으로 전교조가 우리 교육 및 사회에 끼친 영향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전교조의 탄생과 정치 참여
1985년 무크지 <민중교육> 발간을 계기로 4·19 혁명 이후 나타났던 교원노조 운동의 맥을 이은 교원노조 설립 운동이 일어났다. 전두환 정부는 이를 좌경용공 세력의 불순한 교육계 침투로 규정하였으나, 공안 통치에 염증을 느끼던 교사들의 호응을 얻어 1989년 5월 전교조가 창립되었다. 그러나 노태우 정부는 전교조를 불법노조로 규정하고, 가입 교사들에 대해 자진 탈퇴를 권고하였으며, 이를 거부한 약 1,500명의 교사를 해직시켰다. 이후 김영삼 정부 때 ‘선 탈퇴 후 복직’이란 조건부 복직이 이루어졌고, 김대중 정부에 이르러 합법화되었다(1999년). 이처럼 전교조는 설립 과정에서부터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출범하였고, 이후 보수 정권 시기에는 각종 시국 선언 발표와 학생을 대상으로 편향적 ‘계기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교육 현장 갈등의 온상이 되었다.
2002년 6월 경기도 양주에서, 미군 장갑차의 과실에 의해 2명의 여중생이 사망하자, 1992년 동두천 미군 기지에서 일어난 미군의 접대부 살인 사건까지 소환하여 중·고생들을 반미 운동에 동원하였다. 필자가 재직한 학교에서는 접대부 살인 사건의 엽기적인 현장 범행 사진을 아무 여과 없이 학생들에게 보여준 전교조 교사의 ‘계기 교육’이 학부모의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 전교조는 광우병 촛불 시위, 세월호 추모 촛불제 등 사회적 이슈가 나타날 때마다 ‘계기 교육’이란 형식을 통해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학생들을 적극적으로 광장 정치에 참여시켰다. (여중생 추모 촛불제는 2002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에, 세월호 추모 촛불제는 훗날 박근혜 탄핵의 전초가 되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전교조가 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원칙적으로 ‘계기 교육’을 하려면 학교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학교장의 허락 없이 불법적인 ‘계기 교육’이 이루어졌으며, 전교조의 이러한 위법 행위와 편향된 시각, 과격한 교육 철학 등은 많은 교사가 전교조를 멀리하는 원인이 되었다.
교사의 정체성 논란
전교조의 출범으로 교육계에 커다란 갈등이 일어났다. 전통적 교사상은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성직자로서의 ‘스승’이었다. 따라서 ‘스승’이기를 거부하고 하나의 직업인으로서 ‘노동자’임을 선언한 전교조에 대해 많은 교사가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전교조 출범 당시 40만여 명의 교직원 중 소수만이 가입한 것은 정부가 불법노조로 규정한 것이 원인이겠으나, 전통적 교사상에 익숙한 교사들의 외면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합법화 이후에도 전교조 조합원은 최대 10만여 명을 정점으로 점차 줄어들어 2015년 현재, 5만여 명의 조합원이 활동 중이라는 사실에서, 노동자로서의 전교조 교사상에 대해 현장 교사들의 거부감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교조의 허상과 실상 그리고 교육 현장의 혼란
전교조는 소수의 진보 교육활동가들의 선동과 기획으로 조직되었다. 민중 교육지 사건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인 김진경(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장)을 비롯한 초기 활동가들이 교육 현장을 ‘교육의 자주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유린한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강요로 인하여 집권세력의 선전대로 전락’(전교조 창립선언문 중에서)하였다고 규정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전교조는 처음부터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과 대립하는 노선을 선언하였다. 민족, 민주, 인간화 교육이라는 모토 아래 ‘참교육’을 표방하고 있는데, 민족을 첫 명제로 제시한 것은 민족 통일 운동으로서의 전교조 정치 운동 방향을 명확히 천명한 것이다. 이는 학부모들이 전교조가 학교 민주화와 교육계 정화를 목적으로 구성된 교사들의 조직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거리가 있다. 1990년대 초반 ‘촌지’를 추방하고 학내 민주화에 이바지한 것은 전교조 활동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행한 것일 뿐 전교조 결성의 목적이 아니었다.
전교조 태동에 단초를 제공한 것은 군사독재 정권이었다. 그러나 전교조의 궁극적 목표는 사회 민주화와는 거리가 먼 반미, 사회주의 사회 실현을 꿈꾸고 있다. 교원성과상여금 차등 지급 반대,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전수 평가 반대, 자율형 사립고 반대와 같은 교육 문제에 대한 의견 표명을 넘어 이라크 파병 반대, 대운하 건설 반대, 원전 반대와 같은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해 편향적 시각을 공공연히 표출하고 있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조직은 열혈 활동가, 중간 참여자, 소극 참여자로 나누어진다. 전교조의 특성 중 하나가 열혈 활동가의 비중이 높은 조직이라는 것이다. 이는 1980년대 대학가를 장악한 운동권 세력이 1990년대 이후 노동, 언론, 교육, 문화계로 세력을 확장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전교조는 합법화 이후 학내 민주화를 내걸고 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 과정에서 교원인사위원회 구성, 학교운영위원회 설치, 교사의 일숙직 폐지, 출근부 폐지, 방학 중 당직근무 폐지 등의 성과를 바탕으로 교사들의 지지를 얻기도 하였다.
전교조가 교사 노동조합으로 조합원인 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교사의 전문성 향상과 수업 지도에 대한 학교장의 정당한 장학 권한 행사마저 거부하는 데 있다. 교원성과상여금의 차등 지급은 사람마다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법적 근거에 의해 시행되는 많은 교육 정책들을 전교조의 정책 방향과 다르다고 거부하고,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그동안 전교조는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연가 투쟁, 시국 선언 등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하거나, 학생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반복해왔다.
현재 교육 현장에서 거대한 권력이 된 전교조의 눈치를 보는 관리자와 교사들이 많다. 심지어 교육감 선거에 공공연하게 개입하여 자신들의 정책을 관철해 줄 후보자를 당선시키거나, 전교조 출신 교육감을 배출해 왔다는 사실에서 전교조의 위상과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의 폐해
전교조로 인한 학교 현장의 폐해로는 전교조의 정책 방향과 맞지 않는 개혁적 변화는 모두 거부하고, 전교조 우산에 기대어 적당히 시간만 보내려는 교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 세계관이 형성되지 않은 초·중등 학생들에게 편향적인 사고를 하도록 교육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교실 붕괴와 교권이 추락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교조의 활동 방향과 다른 생각을 하는 교사는 반민족, 반민주 교사란 프레임을 씌워 철저하게 따돌리고 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오늘날 학교에 ‘왕따’, ‘폭력’ 문제가 만연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전교조 교사들의 이와 같은 편 가르기, 편향성, 자유방임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교조가 학내 민주화에 이바지한 부분은 칭찬받을 일이다. 그러나 긍정적 측면보다 교육 현장의 정치화와 불신을 가중한 측면이 더 많다는 지적에 전교조의 자성이 필요하다. 많은 전교조 교사가 ‘참교육’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전교조 전체를 대변하고 이끌어 가는 소수 지도부의 정치적 편향성은 변함이 없다. 필자가 속한 학교에 국한된 문제일지 모르나 관리자의 잘못에는 엄격하나, 자신들의 잘못엔 관대한 전교조 조합원이 많다. 객관적이어야 할 각종 평가에서 같은 전교조 소속 교사라는 이유로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하는 등 공정하지 못한 사례를 많이 경험하였다. 이러한 불공정한 평가와 편 가르기는 동료 교사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강요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헌고 사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교조의 급진적인 개혁과 방임이 우리나라 발전의 토대가 되었던 교육 현장을 혼란과 분열로 이끌고, 어린 학생들을 반대한민국적 사고로 이끌고 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또한, 전교조는 입시 위주의 교육과 지나친 경쟁을 막는다는 미명하에 학생의 학력을 떨어뜨렸으며, 학생의 인권 보장이라는 명분으로 모든 학교의 생활 규정을 교내 휴대전화 사용 허용, 화장 및 염색 허용으로 바꾸려고 시도하고 있다. 학교마다 전통과 교육 목표가 있다. 특히 역사가 깊은 사립학교는 건학이념과 선배들이 이룩한 전통이 있다. 교육은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과정이 정당하지 않으면 정의가 아니다. 생활 규정 개정이 구성원의 토의를 통해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나, 교육의 3주체인 교사와 학부모의 의견보다 가르침의 대상이기도 한 학생의 의견을 50% 이상 반영하도록 강요하고, 전통을 지키고 학생의 용의 복장을 엄격하게 유지하려는 학교 관리자를 반민주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올바른 교육적 자세가 아니다.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는 학교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보장해주어야 한다. 특히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전교조의 지원에 힘입어 당선된 많은 교육감이 학교 구성원 모두의 합리적 의견에 따르기보다 우군인 전교조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하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있다. 백년대계인 교육 정책이 교육감 임기만큼도 못 가는 현실에 많은 학교 구성원들이 좌절하고 있다.
교육의 본질은 사랑이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는 평등의 문제를 형평의 문제로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기회의 평등이 결과의 평등으로 오도되어서는 안 된다. 한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있었던 ‘다 함께 1등’의 미담은 장애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이 밑바탕에 담겨있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만일 모든 운동회 참가자들이 ‘다 함께 1등’을 꿈꾼다면 운동회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경쟁과 협동의 조화를 통해 우리 인간 사회는 발전해 왔다. 정당한 경쟁을 죄악시하는 사고는 위험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성숙한 학생 교육을 담당하는 초·중등학교 교사가 정치적 중립을 벗어나 자신의 편향된 가치관을 주입하려 한다면, 매우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교육은 교사 자신의 세계관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가치관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벌거벗은 임금님은 한 명이나 그 모습을 보고도 진실을 외면한 수많은 어른이 있었다. 오직 순수한 마음을 가진 어린아이만이 ‘임금님은 벌거숭이’라 외칠 수 있었다. 현재 전교조의 문제는 너무나 명확하다. 처음부터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지도자들에 의해 결성되고, 오로지 목소리 큰 운동가 중심으로 조직이 운영되다 보니, 새내기 교사와 올바른 교육을 꿈꾸는 교사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이는 전교조의 미래를 위해서도 우리 교육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이제 전교조는 좌편향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미래 세대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교육 조직으로 재탄생해야 한다.
전교조 핵심 지도부의 정치 편향성은 이미 우리 교육 현장에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 주입한 반미, 반자본적인 사고는 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통합과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교육은 증오가 아닌 사랑을 가르쳐야 한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분법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운동권적 시각에서 벗어나 모두를 포용하는 사랑을 가르치자. 현재 법외노조로 합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전교조의 합리적 선택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의 요청에 따라 필자의 성함을 밝히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