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제도, 국제경쟁력 지닌 인재 선발에 초점 두어야
2020-04-08
월드뷰 04 APRIL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5 |
글/ 양정호(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시나리오 1: 1950년 한국전쟁 후 외국 기자의 눈
“학교를 방문했더니, 교실에 변변한 책상이나 의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칠판은 낡아서 다 떨어진 모습을 보니 참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교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쫑긋하고 듣고 있는 학생들의 눈을 바라보니, 아! 이 나라는 성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스쳐 갔다.”
#시나리오 2: 2020년 최첨단 미래 학교 참관한 한국 기자의 눈
“역시 최첨단 인터넷 강국답게 교실 곳곳에 컴퓨터와 대형 TV를 비롯해 태블릿으로 학생들이 다양한 학습 자료를 찾아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옆 교실을 가보니 수학 시간에 20여 명의 학생 중에서 고개를 들고 수업에 집중하는 학생은 서너 명뿐이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엎드려 자거나 다른 과목을 공부하고 있는 모습이 서로 대비되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교육의 기적, 그러나 끝없이 추락하는 학력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고속 성장을 해 올 수 있는 밑바탕에는 역시 교육의 힘이 가장 컸다고 볼 수 있다. 6·25전쟁 이후 1인당 국민 총소득이 7만 원 정도이던 것이 지금은 3천만 원 이상으로 크게 늘어 무려 500배 정도 증가했다. 지하자원이나 기술도 없던 시절을 넘어서, 박정희 정부가 초등학교 의무 교육을 전면 도입하면서 나온 결과물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은 ‘무’에서‘유’를 이루어 낸 급속한 성장의 전무후무한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 현장은 입시 혼란, 자사고 폐지 논란, 유치원 지원 갈등 등 다양한 문제가 노출되고 있다. 교육에 대한 갈망과 열정 하나로 지금까지 성장해 오던 한국 교육이 서서히 그 성장 동력을 잃고 배회한다는 평가가 늘고 있다. 열심히 하려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능력이 있는 학생들에게 정당하게 보상하는 방법도 줄어들고 있어, 열심히 할 필요가 있냐는 생각이 학생들 사이에서 확산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특히 여러 사회 문제 중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세대 간 갈등은 정치, 사회, 문화, 생활 전반에 걸쳐서 큰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를 3불, 3포, 6무 세대라고 하는데 젊은이들에게 희망이 없으면 앞으로 미래는 불확실의 연속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3불(不)은 사회를 보는 불안, 불만, 불신을 의미하며, 3포(抛)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반영한 모습이며, 여기에 노후 계획이나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하면 4포, 5포 세대로까지 불리고, 6무(無)는 일자리, 소득, 집, 사랑과 결혼, 아기, 희망까지 가질 수 없다는 의미로 이는 우리 사회의 젊은 세대가 처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결국, 사회 전반에 걸쳐서 불신과 불안, 불만이 잠재하고 있으며, 교육 현안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제학업성취도 평가인 OECD PISA(Programme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의 결과에서도 학생들의 학력은 20여 년 전에 비해 계속 추락하는 모습이다. 읽기(국어), 수학, 과학 모두 전 세계 국가 중에서 1, 2, 3 등을 하다가 최근에는 10위권 내외로 떨어졌다. 이런 현상은 일시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학력보다는 경험, 체험, 소위 혁신 교육으로 포장된 저학력을 방치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교육감을 정치적 행위인 선거를 통해 직접 선출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1950년대에 인재 키우기에 집중한 상황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더욱 걱정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OECD PISA 영역별 순위와 평균 점수 20년간 추이>
뜨거운 감자, 대입 제도
교육 현안 중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는 역시 입시제도이다. 언제나 입시제도가 조금만 바뀌어도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당시 교육부 장관이 수능을 모두 절대평가로 하겠다고 발표한 후 대혼란이 일어났다. 이후 최종 개편안이 1년 연기되고, 지난한 사회적 대타협이란 명분으로 수십억을 써가면서 공론화 과정을 거쳐 1년 가까이 의견을 수렴한 결과는 전문가 입장에서 보면 참담한 수준이다. 그 수많은 포럼, 토론회, 열린 마당, 집단 논의의 결과물 치고는 전문가 10여 명의 머릿속에 나올 수 있는 입시안이 어정쩡하게 제시되는 모습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지난해에는 조국 사태로 인해 대입 제도에 혼란이 더해지더니 이전에 오랜 기간과 수십억의 예산을 쓴 결과물을 통해 나온 입시정책을 한순간에 쉽게 뒤바꿔 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학부모들과 학생들 그리고 대학 관계자들이 이 정부 내내 더욱 힘들어질 것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입시가 그렇게 민감함에도 불구하고 보다 신중하게 따져보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부가 대통령의 한마디에 공식적으로 발표한 내용을 몇 달 간격을 두고 뒤집는다는 것은 차기 정부에서 반드시 문제가 될 소지가 많은 부분으로 보인다.
더구나 조국 사태의 핵심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10여 년에 걸쳐 자녀의 대입 기록과 당락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핵심 자료들을 임의로 만들어서 대학에 제출한 부분이다. 당시는 입시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학교생활기록부 작성방법 보완이나 점검이 강조되는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입학사정관제 확대의 초창기이기는 하지만 대학들과 함께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입시를 철저히 관리할 시점이다.
<문재인 정부 교육정책 난맥상: ‘~척’, ‘~것처럼’ 추진하는 교육 정책 모습>
대학교수나 사회 지도층들이 자녀 입시에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는 것은 나중에라도 꼭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특히 당시 입학사정관제가 강력한 이유 중의 하나는 학생들의 서류가 허위로 확인되면 수십 년이 지나도 대학은 해당 학생의 입학 자체를 취소할 수 있다는 점이다. 수능처럼 점수만으로 대학을 가는 경우에는 이런 강력한 안전장치가 없다. 실제 사례로 서울 주요대학에 합격한 지방의 한 학생은 대학 입학 이전에 있었던 학생 폭력 가해 사실이 확인되어 입학이 취소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불이익을 받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21세기에 살고 있으면서 우수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사례는 우리나라가 유일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자율형 사립고(자사고)와 외국어고, 국제고 폐지 논란이다. 아무리 학생들 간의 위화감이 있을 수 있다고 해도 길게는 지난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교육 제도를 한순간에 폐지하겠다고 하는 발상 자체가 교육을 무시하고 있거나 교육은 백년대계란 말의 의미를 이해를 못 하거나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 같은 논리로 과학고와 영재고는 없애지 않는다는 말을 기자회견에서 하는 모습을 보며 잘못하면 지금까지 이루어낸 고속성장이 교육에서부터 흔들려 나라 전체가 와르르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땐 소름이 쫙 끼쳐오기도 했다.
교육, 미래를 위한 준비
이제라도 교육 관련 전문가를 비롯한 당사자들이 우리 교육의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때다. 세계는 엄청난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특히 수학과 과학에 집중하면서 AI 인공지능 시대를 이끌어 가기 위해 경쟁을 지속하고 있다. 2017년에는 IBM이 대표적인 미래 선도 산학 협력 사례로 알려진 MIT-IBM 왓슨 AI 연구소에 무려 10년간 2억 4,000만 달러(약 2,700억)를 지원하고 있다. 한 마디로 선진국에서 교육의 핵심 가치는 미래, 긴 시간, 선도 기술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런 국제적 흐름과 현실 속에서 수시로 바뀌는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나 교육 정책들을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지난 1950년대에 가난과 절망 속에서도 어린 학생들이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열정을 느꼈듯이 다시 뛰는 대한민국을 위해 새로운 예측 가능한 교육 정책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서 세밀하고 치밀한 교육 전략을 세워야 하며, 5년마다 바뀌는 정부와 관계없이 최소 6년 이상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국가미래교육위원회에서 미래 전략을 마련하고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향후 70년 후에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세계무대에서 교육 부분만은 최고라는 찬사를 받기를 기대해 본다.
<성공한 교육과 경제 성장에 나타난 ‘한강의 기적’ 관계>
<jyang@skku.edu>
글 | 양정호
성균관대학교 교육학과 교수이며, 현재 교육데이터분석학회 부회장과 미래교육자유포럼 공동대표, 한반도선진화재단 미래교육혁신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데일리안 논설위원 활동을 비롯해서 ‘난세의 사자후’와 ‘디케의 세상읽기’ 등 다양한 칼럼 시리즈의 에디터로 교육과 사회 각종 현안의 여론을 전달하고 있다. 관심 분야는 교육 정책 전반과 입시제도와 및 사교육, 사회 정책, 미래 전략, 빅데이터 분석, AI(인공지능) 분야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