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창출은 일거리가 있어야
2020-02-05
월드뷰 02 FEBRUARY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3 |
글/ 이윤재(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자리 상황이 별로 안 좋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는 연평균 약 30만 개 내외의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2018년에는 9만 7천 개에 지나지 않아 고용 쇼크였다. 다행히 작년에는 과거 수준으로 회복하여 양적으로는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일자리가 늘었다고 하여 고용의 질까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지만, 한 가지 예를 들면 단기근로자(17시간 이하)가 급증했으며 36시간 이상 장기근로자는 큰 폭으로 감소되었다. 작년 11월 기준으로 17시간 이하 단기근로자는 38만 6천 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5%나 급증했다. 단기 근로시간 증가는 그들의 소득감소를 초래하게 되어 소득 양극화를 악화시키는 주요인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청년의 높은 실업률이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이슈였고, 그에 따라 청년의 일자리 창출에 온갖 지원정책이 동원되었다. 또한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됨에 따라 베이비붐 세대(혹은 중장년, 신중년)의 일자리도 심각한 문제로 부각되어 정부는 신중년 지원정책과 함께 정년연장을 추진하였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자리 이슈에서 새로운 난제가 하나 추가되었다. 한창 일할 나이인 40대의 취업 감소가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최근 통계인 2019년 11월 기준으로 40대 취업자는 18만 명이나 감소하여 전 연령층 중에서 가장 큰 폭으로 감소되었다. 이는 총취업자 33만 1천 개 중에 절반 이상(54%)에 해당될 만큼 큰 폭의 감소이다. 반면에 장년층인 60세 이상의 일자리는 40만 8천 명이나 증가되어 일자리마저 노인공화국이 될 참이다. 이런 현상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40대 취업 감소를 40대의 인구감소로 인한 결과이니 뾰족한 방법이 없으며 크게 걱정할 것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과연 그럴까? 노동수요가 일정한 상태에서 노동 공급 측면(40대 계층의 인구감소)만 감소된다면 인구감소에 비례하여 취업자도 줄어들겠지만, 만일 노동수요도 함께 감소되었다면 취업자 감소 폭은 훨씬 더 크게 나타날 것이다. 노동 공급이 줄어든 경우 노동수요를 증대시키는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에 40대 인구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지난 2010년에 약 4만 4천 명의 40대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하여 한동안 완만하게 줄어들다가 최근에는 큰 폭으로 줄었다. 지난 2018년에는 21만 9천 명이나 감소되었다. 문제는 최근에 40대 인구감소 폭보다도 더 큰 폭으로 40대 취업 감소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11월 기준으로 40대 인구는 11만 2천 명이 감소되었는데 취업자는 18만 명으로 더 크게 줄어들었다. 이는 40대 고용시장에서 인구감소 요인도 있지만, 경기침체에 의한 기업의 수익구조 악화로 일거리(일감)가 줄어들어 노동수요 측면도 크게 감소되었다. 이에 노동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줄어들어 40대 취업 감소가 더 악화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최근에 높은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여파, 경직적인 노동시장, 미·중간의 무역전쟁 및 한·일간 경제적 갈등 등으로 인한 대내외 불확실 요인이 경기침체를 가중시켜 기업 매출 및 이윤 감소로 기업의 일거리(일감)가 줄어 근로자를 줄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경제활동인구의 가장 중핵적인 세대인 40대의 급격한 고용감소는 다른 연령층보다 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생애주기 관점에서도 40대는 한창 지출을 많이 할 때이다. 개인적으로는 자녀교육비 및 주택 구입비 등 지출이 많아 직장을 잃게 되면 자칫 빈곤층으로 전락될 수 있다.
정부는 그동안 청년층과 노년층의 일자리 창출에만 매몰되어 있다가 40대의 고용급감에 화들짝 놀란 기색이다. 금년 대통령의 신년사에서도 40대 고용 부진이 언급될 정도로 정부 내에서도 40대 고용감소를 심각하게 여기는 듯하다. 금년 3월까지 대책을 마련하여 발표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총취업자 수가 과거 수준을 회복했기에 고용은 문제가 없다는 인식이다.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고용에 대한 양적인 지표만으로 고용상황을 판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현재 취업(일자리) 중에는 불안정한 일자리가 많다. 취업자라고 다 같은 취업자가 아니다. 질적인 측면에서 천차만별이다. 현재 통계작성 기준에서 수입을 목적으로 조사대상 주간(1주)동안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을 취업자로 정의(ILO기준)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영업자를 도와 주당 18시간 이상 일하는 무급 가족 종사자까지 포함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아르바이트 학생도 취업자에 포함되고 남편이 하는 자영업 사업체를 도와주는 부인이나 자식 등도 주당 18시간 이상 일하면 취업자로 간주된다. 가장 최근 자료인 2019년 11월 기준으로 무급 가족 종사자만 108만 6천 명으로 1백만 명이 넘는다. 외형상 취업자이나 실질적으로 취업자라고 보기 힘든 불안정 취업자들이다.
금년에는 취업상황이 나아질까? 작년보다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는 올해도 경제 상황이 크게 개선될 것 같지 않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면 기업에겐 일거리(일감, 주문)도 변변치 않을 것이고, 일자리도 많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현 정부는 일자리 창출에 우선순위를 두고 일자리 상황판까지 만들어 놓고 일자리 창출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성과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근로자들의 소득을 늘려주면 (최저임금 인상을 통하여) 소비가 증대되고 기업투자도 증가되어 일자리가 잘 만들어질 것이란 생각으로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결과는 시원치 않다. 또한 수조 원의 재정(예: 일자리안정자금)을 투입하여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만들었지만 노인 일자리만 늘어나고 민간부문의 제조업 일자리(양질의 일자리의 중요한 원천임)는 줄어들었다. 과도한 재정지출 증대를 통해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대부분의 일자리는 초기에만 반짝하는 효과가 나타날 뿐 지속될 수 없다. 종국에는 민간부문의 일자리를 감소시키는 고용구축 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일자리(고용)는 기본적으로 기업에 일거리(일감)가 있어야 만들어진다. 즉, 일자리는 일거리(일감)의 함수이다. 기업에 일감이 생기려면 우선 시장의 수요(판매, 매출)가 늘어나야 한다. 기업은 시장에서 잘 팔릴 것이란 기대가 생기면 생산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투자도 늘리고 사람도 채용한다. 이런 기업의 생산 활동에서 부수적으로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수요를 파생수요(derived demand)라고 한다. 따라서 일차적으로 일자리를 만들려면 기업에 일거리(일감)가 잘 생길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더 효율적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지속적인 일자리가 되기 힘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작용이 따르게 된다.
금년 경제상황도 녹록지 않고 국내외 불확실성(uncertainty)이 높아 기업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과 기업가 정신이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금년은 선거의 해로 선거 과정에서 각종 포퓰리즘적인 선심성 정책들이 난무하고 여론을 의식한 규제들이 도입되어 신성장 분야에서 투자가 줄어들까 우려된다. 이는 다시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키고 일거리(일감)가 줄어 결국에는 일자리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선 선심성 포퓰리즘적인 정책을 지양하고 과감한 규제개혁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여 자율자동차, AI, 드론, 의료 및 헬스 분야 등 새로운 신성장 산업 분야에서 투자가 일어나야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일거리(일감)가 생기고 자연히 일자리도 많이 생길 것이다. 일자리는 기업의 일거리(일감)에서 만들어진다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한다.
<yjlee@ssu.ac.kr>
글 | 이윤재
숭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며, 중소기업학회장 및 기독교경제학회장을 역임 했으며, (재)중소상공인 희망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중소기업, 고용문제, 성경경제(biblical economics) 등에 관심이 높다. 저서로는 <거시경제학>, <사회적기업 경제>, <성경속의 경제학>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