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하나님 앞에 선 개인의 발견, 근대적 시민의 탄생
2020-01-24
월드뷰 01 JANUARY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2 |
글/ 김상종(미국공인회계사)
하나님 말씀을 통한 개인의 발견과 시민의 탄생
1517년 독일에서 루터는, 당시 가톨릭의 부패에 대해 비판하며 ‘95개 조 반박문’을 발표했다. 가톨릭교회는 면죄부를 돈을 주고 사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고, 루터는 이를 반박한 것이다. 특히 36번째 반박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떠한 그리스도인도 진심으로 자기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 증서가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루터는 기존의 가톨릭교회 체제 내에 있으면서도 일방적인 교회의 해석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의 믿음으로 얻는 구원에 대해서 성경적인 해석이 밝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루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각지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를 통해 ‘종교개혁’이라고 불리는 움직임이 불붙기 시작했고, 이는 유럽 전역을 깨우기 시작했다. 스위스의 취리히에서는 츠빙글리가 그 지역을 성경 중심의 가치관으로 개혁하는 데 일조했고,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칼뱅이 그 사회를 성경적 가치관으로 물들였다. 이들 종교개혁가가 공통으로 주장하던 것은 성경적 세계관이었다. 물론 가톨릭도 성서를 기반으로 한 종교였지만, 교황의 일방적인 성경 해석이 성도 개인의 각성과 회심을 방해했다. 개혁가들은 더욱더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관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세계관을 추구했다.
종교개혁가들의 새로운 생각 중 기존의 가톨릭과 가장 큰 차이를 보였던 점은 ‘개인’이라는 개념의 등장이다. 위 36번째 반박문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한 개인의 죄 사함은 교황이나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 앞에 서서, 자기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회개하면 가능하다는, 당시 가톨릭교회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혁명적인 개념이었다. 이러한 주장을 한 루터는 독일의 가톨릭교회에 소환되어 의회에서 신앙 검증을 요구받게 된다. 하지만 그는 개인 중심의 신앙에 대해 소신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가톨릭교회로부터 파면당할 뿐 아니라 암살의 위협에도 놓인다.
그는 이때부터 독일어 성경 번역에 힘썼다. 또한, 출판 기술의 발달로 인해 성경이 대중에 보급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었던 움직임이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가톨릭교회의 허가를 받은 일부 성직자들만 성경을 소유하거나 공부하고 이를 가르칠 수 있었는데,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각 개인에게 성경 소지가 가능하게 되었고, 라틴어가 아닌 일상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언제든지 성도 개인이 하나님과 말씀으로 만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런데 개인이 소지한 성경을 언제 어디서든지 자기가 이해하는 언어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 개인의 탄생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것은 성경 속에 담겨있는 정치적 자유와 평등의 개념 때문이다. 당시 중세 가톨릭 국가의 왕은 ‘그리스도인의 보호자’라는 명목에서 옹호된 것이었으나, 어떤 왕이 시대를 다스리느냐에 따라 어떤 신앙인은 보호받고 그와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핍박당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었다. 이것은 깨어있는 신앙인들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왕은 명목상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그리스도인의 보호자이다. 그런데 도리어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자유를 박해하는 경우가 생기는 데다가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마다 신앙의 기준이 바뀌는 것에 대해서 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자기 형상으로 지으셨기에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존엄한 개인들이어야 했다. 하지만 신분제가 사회를 옥죄고 있었고 특정 계층은 재산의 소유나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고 오히려 영주들에 종속된 소유물이었다. 그러던 중 일반 개인들에게 성경이 보급되며, 그들이 정치적 자유와 평등의 개념을 알게 되면서, 개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였고, 왕은 이를 보장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획기적인 생각이 더 많은 사람들을 깨우게 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어떤 왕이 즉위하더라도 이러한 자유와 평등이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왕보다 상위에 있는 규칙을 만든다. 이는 헌정주의라는 개념의 시초가 되었고, 이제는 왕조차도 이 규칙의 지배를 받으며, 이 틀을 벗어나 특정 신앙을 가진 사람을 핍박하려고 하면 이에 저항할 수 있다는 개념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 생각이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지배자의 독단적인 결정을 견제하기 위해 균형 있는 권력의 배분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철학으로 발전한다. 이로써 지배자의 권력이 의회와 법원에 의해 나뉘고, 서로 부딪힐 때는 가장 상위법인 헌법을 근거로 통치를 받게 되는 헌정체제와 삼권분립의 원칙을 만들었다. 결국, 성경의 보급과 개인의 탄생, 그리고 근대 자유 공화정체제는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구했던 종교개혁의 정신을 기억하자
덧붙여 중세 가톨릭에서는 흔히 죄악시되던 물질의 소유에 대한 관점도, 깨어있는 신앙인들에 의해 바뀌었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기보다 어렵다는 구절을 근거 삼아 재물을 축적하는 것을 금기시하던 문화가 있었으나, 종교개혁가들은 세상의 물질조차도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범주 안에 속함을 알았다. 따라서 개인은 그것을 소유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그것을 지키고 서로 봉사하는 데 사용하도록 승화시켰다.
청교도 교육을 받고 자란 로크는 성경적 생명권과 자유권의 개념에 이러한 재산의 소유에 대한 권리도 포함해 국가가 마땅히 보장해야 할 기본권으로 만드는 데 크게 공헌한다. 청교도들은 앞서 기술한 종교혁명가들의 성경적 가치관을 공유하고 이를 지켜 행하는 깨어있는 신앙인들이다. 이들은 영국에서 시작하여 종교개혁에 동참하고 기존 가톨릭의 비성경적인 가치관들에 반대하여 피 흘리기를 불사하며 저항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일부는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를 거쳐 현재의 미국 땅으로 넘어가 새로운 독립공화국인 미합중국을 세우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는 대표적으로 앞서 말한 정치적 자유와 평등의 개념이 미국의 독립과 건국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이 보장하는 자유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신앙의 자유인데 이것은 국교를 불허함으로써 보장하려 했다. 특정 교단이나 종파를 국교로 제정하거나 이에 버금가는 특권을 주게 되면, 그 교리를 따르지 않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이 핍박을 피해서 온 영국과 같이 국가가 신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또한, 국가가 특별하게 인정하는 교단이나 종파는 국가의 금전적, 행정적 지원을 받을 것이므로 언제든지 국가가 교회에 간섭하는 것도 가능하다. 결국, 국가의 종교에 대한 간섭을 불허하는 것은 탁월한 선택으로서 지금껏 미국이 신앙의 자유를 가장 잘 보장하고 있는 나라가 되게 하는 틀이 되었다.
이렇게 성경에서 비롯된 세계관과 정신으로 시작한 미국은 독립 당시, 노예제 폐지에 대해 합의점을 찾다가 13개 주가 분리되는 것을 우려하여 이를 후대 신앙인들에게 맡긴 채 반쪽짜리 건국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독립선언으로부터 87년 후 남북전쟁을 통한 노예해방을 성취하여, 완전한 독립과 건국을 하게 되었다. 이후 성경적 가치관에 입각한 높은 수준의 도덕과 시민의식을 통해 정부의 최소한 개입만으로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이들은 큰 규모의 땅과 다양한 인종 및 민족들의 연방국가로 발전해나가면서도 높은 수준의 통합을 이루어내며 하나 됨을 실현했다. 또한,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체제와 싸우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나라로 현재까지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게 깨어있는 신앙인들이 종교개혁을 통해 성경을 직접 소지하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선 개인을 발견한 이들을, 우리는 근대적 ‘시민’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이제 그리스도를 믿을 자유와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본떠서 창조한 인간으로서의 평등, 그리고 세상 만물에 대해 자유롭고 정당한 소유의 권리를 기본권으로 헌법이라는 체제 안에서 보장받고 있다. 이 틀 안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누리고, 각 양심의 지배를 받아 세워진 사회질서와 도덕으로 신분제와 직업의 귀천을 타파하고, 인종차별과 남녀차별을 극복하며, 직업 소명의식과 책임 윤리를 근간으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발전시켜왔다.
우리가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위대한 종교개혁의 영성을 이어받으며 어떤 유혹에도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고 어떤 핍박이 있더라도 끊임없이 이겨내며 매 순간 하나님의 뜻에 가까워지려 노력한 믿음의 선진들의 순교와 헌신,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과 유산들 덕분이다. 종교개혁 당시 가톨릭교회는 개인 성경을 소지하는 자들을 불태웠으나, 깨어있는 신앙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지키고자 목숨을 걸고 저항(protest)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는 명칭을 얻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으로 퍼진 칼뱅의 사상이 영국에 도착해 혁명을 일으키고, 영국 국교회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독립 국가를 세운 청교도(Puritan)들은 그들의 죄로 물든 육체와 정신을 정화(purify)하여 하나님의 깨끗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우리는 그들의 영성을 이어받아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그 크고 위대한 사명과 비전과 비교하면 너무도 작은 우리가 가진 약함과 죄성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며, 오직 부어주시는 은혜로 자신을 극복해내야겠다. 죄를 상대로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고는 믿음을 지키기 쉽지 않은 이 시대를, 마지막 눈 감는 그 날까지 매 순간 분별력을 잃지 않으며,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오늘도 종교개혁의 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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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상종
부산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미국공인회계사로서 일하고 있다. 부산대 트루스포럼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