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위기의 본질과 대응
2020-01-09
월드뷰 01 JANUARY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4 |
글/ 한정화(한양대 경영대학 특훈교수)
1. 자유의지와 기업가정신
대한민국은 현재 건국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체제가 위협받고 있으며, 그간 동북아 세력균형을 통해 한국의 안보와 평화를 유지해온 한미동맹에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지도상에서 사라질 뻔한 한국전쟁 이후에도 수많은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심각한 체제와 안보 위기에 직면한 적은 없었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위기의 본질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겉으로 나타난 현상과 사건들에 대해 일희일비하는 상황이다. 문제의 본질은 대한민국의 건국과 역사적 정체성에 대해 부정적인 관점을 가진 세력이 집권하면서 체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데 있다.
역사를 통해서 볼 때 대한민국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어려움 속에서 생존해 왔다. 강대국의 세력균형이 흔들릴 때마다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위기를 맞게 되고 생존의 위협을 받아 왔다. 특히 16세기 이후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충돌 속에서 겪은 민족적 고난은 역사적 상흔으로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20세기 후반 어렵게 형성된 평화 체제하에서 천우신조의 발전기회를 얻게 되었고 산업화 반세기만에 세계 11위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세계 역사 무대에서 존재가 미미하던 변방 국가에서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존재감이 있는 국가가 되었으며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
한국의 발전은 단순히 경제적 성공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발전을 연구한 마이클 슈만은 <더 미러클>이라는 책에서 “한국의 경제성장은 부를 쌓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국가의 목표를 분명히 하고, 오천 년 역사에서 드물게 자존심과 자신감을 높였으며 경제적으로 존경받고 힘 있는 나라로 인정받게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가 주도의 성장정책과 민간주도 기업가정신의 역동적 상호작용이 이러한 성과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한다. 분단국가인 한국의 성공은 공산주의 독재체제와의 경쟁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승리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자유의지를 주셨다. 자유가 있는 곳에 인간의 존엄성이 인정되고 잠재력이 개발되어 사회가 발전한다. 기업가정신과 혁신도 경제활동과 의사결정의 자유가 주어지는 곳에서 가능하다. 그래서 사상, 종교, 언론,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가 중요한 것이다, 한때 국가 주도 때문에 소련이나 북한이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인 적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체제의 결함 때문에 지속하지 못하고 몰락했다. 지금 한국에서는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온 것들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나타나고 있다.
정의, 공정, 평등은 인간 사회에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이상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볼 때 부패한 인간들이 근본적인 자기혁신이 없이 이러한 가치를 정치적 구호로 내세우며 혁명이나 급진적 사회개혁을 추진했을 때, 오히려 부정의, 불공정, 불평등이 더 커졌음을 알 수 있다. 소련의 스탈린 독재, 중국의 문화혁명, 북한의 주체사상, 심지어 캄보디아의 킬링필드까지 비극적 재난을 초래했다. 타락한 인간의 죄성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힘으로, 특히 독재 권력을 가지고 이를 강력하게 추진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결과가 참담해진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피터 드러커는 ‘이노베이터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인류는 ‘종교에 의한 구원’을 믿었던 시대에서 벗어나게 되면서 ‘사회에 의한 구원’을 기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가 사회의 모든 면을 장악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가 전체주의의 길을 걸었던 역사적 경험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의 신중한 시장개입을 통하여 자유시장경제의 강점을 살리면서 국가 전략을 수행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선한 의도였다는 말로 결과의 오류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리더십이 아닌 의도한 성과를 만들어 내는 실용적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2. 선한 의도와 악한 결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분석한 책에서 나온 말이다. 신용등급이 낮아서 대출을 받기 어려운 서민들의 주택 마련을 위해 시작된 서브프라임 모기지 정책은 선한 뜻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탐욕과 무지 속에서 유동화 증권과 파생상품은 무한 자기증식을 했고 거품이 꺼지는 순간 전 세계를 금융위기 속으로 몰아넣었다.
현재 한국도 유사한 길을 걷고 있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근로시간을 단축시키고자 하는 정책은 다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결과는 의도와 달리 오히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힘들게 하고, 일자리를 줄이고 경기를 침체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자영업자의 한숨과 원망 속에 한국경제의 시한폭탄인 가계부채가 증가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은 대응 준비가 부족한 중소기업에게는 심각한 위기로 다가오고 있으며, 뿌리 산업의 생존위기와 함께 스타트업과 연구개발 부분의 경쟁력 약화를 초래하고 있다.
왜 선한 의도가 선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는가? 그 이유는 시장의 구조적 특성이나 경제행위자의 심리를 무시하거나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 정책을 추진하면서 최저임금을 지난 3년 동안 34.6% 인상했다. 그 결과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저임금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이 이유는 우리나라 자영업의 40%가 최저생계비를 벌지 못하는 영세자영업자들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인상은 자영업자 소득을 근로자 소득으로 강제 이전한 결과가 되었다. 부정적 여파로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하고 가족이 나와서 일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근로시간 단축도 현장의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추진하다 보니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어긴 기업주를 형사 처벌하겠다고 하니 기업 의욕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시장 실패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역할은 필요하지만, 시장에 개입할 때는 신중한 고려 속에서 정책을 만들고 시행해야 한다. 잘못된 정책을 만들어 부작용이 생기면 그 폐해가 막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고 국가의 생존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모택동이 주도한 대약진 운동 당시 곡식을 쪼아먹는다고 해서 참새를 박멸한 결과 초래한 대기근의 참사를 기억해야 한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가 무엇인가? 아마추어는 참가하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지만, 프로는 확실하게 성과를 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책임지는 위치, 특히 국가의 생존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철저한 책임의식과 프로정신이 필요하다. “일단 해보고 안되면 말고” 식의 사고는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최근 만나 본 많은 기업인들이 “우리는 보수나 진보냐 하는 진영논리보다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역량 있는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문화혁명이라는 깃발 아래 완장 찬 홍위병이 설치는 세상이 아닌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 잘 잡는 고양이를 원하는 것이다.
3. 좋은 사회 만들기
한국은 현재 ‘좋은 사회 만들기’를 놓고 심각한 이념적 대립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은 기회주의와 반칙에 의한 기득권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적폐청산을 하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현재의 집권층을 구성하고 있다. 마태복음 12장에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집 안을 청소해 놓았더니 더 악한 귀신 일곱이 들어와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는 말씀이 있다. 좋은 사회란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실현할 희망이 있으며, 실패해도 재도전이 가능해야 한다. 이를 중소기업 관점에서 본다면 창업과 중소기업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 대중소기업간 상생과 임금 격차 완화, 소상공인의 생존권 보호와 안정화, 사업실패 비용 감소와 재도전 기회 제공 등이 필요하다.
시장을 우선하고 경쟁과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불평등과 차별을 확대시키는 경향으로 인해 ‘다 함께 잘 살 수 있는 좋은 사회’의 길과 멀어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악화시킨 것은 재벌 대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과 무한 확장에서 벌어지는 제로섬 게임, 이러한 구조에서 공생하는 정치권, 법률 시장, 언론 시장, 관계, 학계의 암묵적 담합 상태에 있다. 또한, 지난 30여 년간 민주화 과정에서 힘을 키워온 노조는 정치권력과 담합하여 당파적인 이익에 충실해 왔다. 한편으로는 재벌 대기업과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서로의 이해관계를 인정하면서 공생하는 단계가 되었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소비자와 중소기업에 전가하고 있다.
자유시장경제의 지속 가능성은 공정한 시장경쟁 질서가 전제되어야 한다. 불공정한 게임을 계속하면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방조하는 것은 사회적 불공정과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현실에서 자유시장경제 논리만을 주장하는 것은 약육강식의 생태계를 강화하자는 논리밖에 되지 않는다. 절대 강자가 시장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게 되면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진다. 개인의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게 되어 사회 전반적으로 역동성이 떨어지고, 개인의 자유나 인권도 심각하게 침해를 받게 되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위협이 된다.
공정경제 질서 수립과 복지정책을 통해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노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이미 국민적 동의가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경제민주화’이든 ‘포용적 성장’이든 방향성은 공감하지만, 실현 방법에 있어서는 효과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시장경제와 공정경제 질서라는 두 바퀴가 튼튼하게 움직일 때 지속 가능하다. 일방적으로 자유시장만 강조해도 안 되고 공정경제만 강조해도 안 된다. 자유 속에 공정을 담보해야 하고 공정 속에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 개혁적 리더십과 함께 의도한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실사구시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립적인 가치를 혁신과 실용의 틀 안에서 포용하면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하는 무거운 책무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hanjh@hanyang.ac.kr>
글 | 한정화
현재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특훈교수로 재직 중이며, 아산나눔재단 이사장,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13대 중소기업청장, 기독경영연구원 원장, 벤처산업연구원 원장, 중소기업학회 회장, 인사조직학회 회장, 전략경영학회 회장을 역임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