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 시대의 노인 자살과 생명의 존엄성
2019-12-09고령화 시대의 노인 자살과 생명의 존엄성
월드뷰 12 DECEMBER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6 |
글/ 민성길(연세의대 명예교수)
근래에 이르러 인간의 존엄성 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 전쟁, 폭력, 인종차별, 낙태 등 인권유린으로 인해서 인간 존엄성이 많이 훼손되고 있다. 특히 우리는 현재 고령화 시대에 증가하고 있는 노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나 노인 자살의 증가도 인간의 존엄성이 경시되는 현상으로 본다. 노인들의 고독한 자살, 조용한 자살은 인간 존엄성의 문제를 새삼 가슴 아프게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편견 없이, 노인의 삶에 대해서도 어린이나 젊은이의 삶처럼, 또는 나의 삶처럼 존엄하게 대해야 한다. 성경은 노인을 공경하라고 가르치며, 또한 죽음의 권세를 이기라고 가르친다.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노인을 공경하는 방안의 하나로 노인 자살을 예방하는 일을 하나의 사역으로 생각하여야 할 것이다.
현황
노인들 중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인구가 고령화되는 사회에서 보는 비극 중 하나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비극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원래 자살률이 높기로 유명한데, 이는 우리가 인간 존엄 문제에 소홀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KBS 2019년 9월 29일 자 보도에 따르면,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4.7명으로 OECD 평균 11.5명의 두 배가 넘어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기록했다. 특히, 노인일수록 자살률이 높아 60대 32.9명, 70대 48.9명, 80대 이상 69.8명이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자살률은 OECD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데, 이 역시 우리나라의 노인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 같다.
노인 자살의 특징
노인 자살은 신고 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실제 자살은 더 많다고 본다. 노인 자살의 40%가 자살로 보고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소위 “침묵의 자살”(silent suicides)로서, 약물 과용, 굶기, 물마시지 않기, 사고로 위장하기 등이 있다. (젊은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총기 사용, 목매기, 물에 빠짐 등은 자살로 인정되기 쉽다.) 침묵의 자살은 성공률이 높다고 한다. 또한, 노인 자살은 동반자와 같이 죽는 수가 많아, 다른 연령층에 비해 두 배이다. 이러한 현실은 노인들이 오죽하면 그리하겠는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따라서 불쌍한 노인들이 조용하게 자살하는 것을 막는 것이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며, 교회가 마땅히 앞장설만한 일이라 생각한다.
노인 자살의 이유
우리나라 인터넷 검색 결과, 노인 자살의 특징은 “빈곤과 고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나이가 드니까 능력이 떨어지고, 병이 생기기 쉽고, 무서운 치매가 오는 것 같고, 은퇴하니까 가난해지고, 배우자나 친지·친구들이 한 분씩 죽어가니까 고독해지고, 죽음이 무서워지고, 그래서 스스로 노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인정하고, 절망하게 되고 우울해지는 것이다.
서구의 의학 문헌에 의하면 노인 자살의 원인은 크게 건강문제와 스트레스로 요약된다. 여기에 우울증, 불안, 신경인지장애(치매), 사회적 고립, 배우자 죽음에 따른 슬픔, 신체 질병과 통증, 음주와 약물 남용 등등이 포함된다. 그리고 단일한 이유로 자살한다기보다 여러 요인들이 누적되거나 겹칠 때 자살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각 요인들은 원인과 결과로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말하자면 노화하면 기력과 능력이 상실되고, 그래서 은퇴하면 빈곤이 찾아오고, “노인”에 대해 사회적 낙인이 찍히고, 또 노화와 관련되어 신체 질병과 통증이 발생하고, 뇌의 노화로 기억장애가 오고, 임박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안해지고, 고독과 고립을 자초하게 되고, 배우자의 죽음으로 절망감-분노-우울증에 시달리게 되고, 그런 정신적 고통을 잊기 위한 술과 약물을 남용하게 된다. 나아가 뇌의 노화가 인지와 판단을 그르치게 하여 충동적으로 자살을 저지르게 한다. 노인 학대도 노인 자살의 원인 중 하나이다.
여러 원인들 중 특히 “노인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인간 존엄성을 경시하는 것과 관련된다고 본다.
우리의 대응
노인이든 젊은이든, 사람이 자살하지 않도록 돕는 것은 기독교인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즉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지켜낸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이 특히 노인이 자살하는 이유를 연구하고 그에 따라 적절하게 대처하여야 한다. 그 핵심은, 자살하려는 노인의 문제가 무엇이든, 적절한 도움으로 그가 자살이 최선의 또는 유일한 해결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즉 한국인 노인들의 자살 원인이 고독과 가난이라면, 자살위험의 증후를 빨리 알아채고 노인들이 고독하지 않게 해주고 사회경제적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일찍 알아채기
주변 사람들, 예를 들면, 가족, 이웃, 교회의 지도자나 교인들이 노인 자살을 경고하는 징후를 가능한 한 일찍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노인이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눈치챌 수 있을까? 다행히 자살 의도를 가진 사람은 대개 그 의도를 여러 방법으로 암시하는 수가 많다. 이를 주변에서 빨리 알아채고 대응하여야 한다.
자살을 생각하는 노인들은 흔히 우울감, 절망감, 무망감, 무가치감 등을 말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죽는 것이 차라리 좋겠다.”라는 말을 한다. 중요한 개인적 상실(배우자 등)을 예측한다고 말하거나, 죽음에 관한 생각에 집착하거나 그런 생각을 자주 표현하거나, “이번이 나를 볼 마지막이다.” 또는 “더 이상 약속을 잡지 않을 것이다.” 같은 말을 한다. 가장 중요한 징후는 직접 “죽고 싶다”라는 자살 의도를 말하거나 글로 남기는 것이다.
간접적 암시로는, 가치 있는 소유물을 하찮게 여기기 시작하거나, 가진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리기 시작하거나, 주변 일을 정리하거나 유언을 바꾸려고 하거나, 전에 즐기던 것에 대해 흥미가 없다고 하거나, 사회적 교제를 중단하거나, 자기 돌봄이나 치장하기 등을 중단하거나, 개인 안전을 소홀히 하거나, 식사 또는 약을 제대로 먹지 않기 시작하거나 한다.
도우려는 이의 역할
노인을 도우려는 사람은 노인과 시간을 가지고 대화하여야 한다. 자살 의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대화는, 비판단적이어야 하고 지지적이어야 하고, 노인의 지적 수준에 맞는, 그리고 즐겁고 긍정적인 것이어야 한다. 노인을 도우려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노인과 친해져야 하고 신뢰받아야 한다. 그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배우자와 가족들일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친구 교인들일 수도 있고, 어느 정도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교회의 지도자들일 수도 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상실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고, 성의를 다해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상실을 극복할 수 있다. “들어 주는 것”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더라도, 괴로워하는 사람을 힘내게 만들 수 있다. (음악이나 그림이나 춤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이때 노인의 자살 의도를 다른 사람에게는 숨기겠다고 약속하면 안 된다. 진정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즉각 노인의 의도를 공개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해야 한다.
들어주기에 대한 조언 – 적절한 시기에 자살 의도에 대해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죽음, 포기 등을 생각하고 있는지, 특정 방법으로 자살할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과거를 모른다면) 과거에 자살을 시도한 적 있는가, 등등에 대해 직접 물어본다. 이런 질문들이 개인의 자살 생각을 자극할 수 있을까 걱정할 수 있지만, 염려할 것 없다. 그런 질문은 마음을 열게 하여 오히려 솔직하게 자살에 대해 대화할 수 있게 된다. 일단 감정을 말로 표현하면 그런 감정이 악화되기보다 대개 약화된다.
대화 결과 노인이 치료에 동의하면 즉시 전문가에게 데려가 치료받게 한다. 또는 자살예방센터에 전화를 걸게 한다.
지역사회 공동체로서 교회의 역할
교회는 고독한 노인들을 도울 수 있다.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들이 개인적으로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돕듯이 노인 자살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아마도 그 핵심은 기쁜 복음의 전달일 것이다. 큰 교회라면 전문 상담사도 둘 수 있다.
교회는 노인들의 웰빙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다. 교인이든 아니든 지역사회의 노인들을 모아, 복음을 전하면서, 건강 교실 또는 행복 교실을 운영할 수 있다. 취미와 특별 관심사를 배우는 교실, 피트니스 교실도 노인이 고독을 이기게 하는데 좋은 방법이다. 피트니스 운동은 강력한 항 우울제이다.
교회는 지역사회의 기존 노인 지지기구와 연계하여, 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다른 노인들과 대화하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사회경제적 지원 – 급료가 있든 없든 노인이 일할 수 있다면,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한결 자신의 삶이 가치와 의미가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봉투를 붙이든 교회에서 음식을 나르든, 타인을 돕는다는 것은 노인이 자존감과 보람을 느끼게 하여 고독과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사회적 편견
우리 사회가 젊은이의 자살은 비극으로 보고 안타깝게 여기나, 노인 자살은 그렇게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여서 노인 자살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그런 편견은 인간 존엄성의 보편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자살에 대한 편견, 노인에 대한 편견, 우울증에 대한 편견 등등이 노인의 자살 행동을 적절히 예방하는 것을 방해한다. 혹시 교회에서도 노인에 대한 편견이 있지 않은지 반성해 볼 일이다.
자살의도를 가진 노인들의 70%가 자살하기 한 달 이내에 주치의(primary care physician)를 방문한다고 한다. 즉 그들은 의사가 혹시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이다. 그런 노인들이 교회에서 위로와 도움을 받도록 해야 한다.
<skmin518@yuhs.ac>
글 | 민성길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의학박사를 받았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을 역임하였으며, 대한민국 의학한림원 종신회원이다. 현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 및 효자병원 원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최신정신의학>(2013, 일조각) 및 <임상정신약리학>(2007, 진수출판사) 등 다수가 있으며 국제신경정신약리학회 선구자 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