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감시(Human Rights Watch) 보고서”를 통해서 본 북한의 성폭력 실상
2019-12-07“인권감시(Human Rights Watch) 보고서”를 통해서 본 북한의 성폭력 실상
-반인도적 범죄-
월드뷰 12 DECEMBER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4 |
글/ 정영기(아주대 의과대학 교수)
남녀 모두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고 남성 피해자들도 증가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들이 피해자(sexual violence victim)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은 가정폭력(domestic violence)과 함께 여성폭력(violence against women)의 대표적인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2018년 11월에 발표된 북한의 성폭력 실태에 관한 인권감시 보고서를 바탕으로, 반인도적 범죄성을 띠고 있는 북한 여성들의 인권유린 상황을 소개하고자 한다.
성폭력에 대한 개요
여성에 대한 성폭력(sexual violence) 사건은 아주 흔히 발생한다. 그리고 문화권과 지리적인 위치와 관계없이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성폭력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지역이 있다. 정치 · 사회적으로 불안정성이 큰 지역, 분쟁지역의 여성들이 많은 피해를 당한다. 대표적인 지역이 사하라사막 남부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우, “이 나라는 이 나라 여성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2002년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17세에서 48세 사이의 여성 100,000명당 2,070명이 강간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2016년도에 발표된 미국 질병관리국(Center for Disease Contro: CDC) 자료에 의하면 평생 19.3%의 여성들이 강간 피해 또는 강간 미수(attempted rape) 피해를 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43.9%의 여성들은 기타 형태의 성폭력(강압에 의한 성행위(coerced sex), 원치 않는 성적 접촉, 원치 않는 비접촉성 성경험·성희롱 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같은 해 발표된 우리나라 여성가족부의 성폭력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평생 신체적 성폭력(강간, 강간 미수, 성추행) 피해율이 21.3%로 추정되었다. 이처럼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세계적으로 만연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조사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성폭력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서나(가정이나 직장을 포함하여), 피해자와의 관계가 어떠한지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에 의해서이든, 강압에 의해 자신의 성적 결정에 반하여 자행된 어떠한 성적 행위를 얻어내기 위한 시도, 원치 않는 성적 언급이나 접근, 밀거래를 위한 행위”이다.
여기에는 광범위한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성폭력에는 다양한 행태가 존재하는데 강간, 성추행 등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형태 이외에 강제결혼이나 동거 등도 포함된다.
WHO 조사에 의하면 상당수의 젊은 여성들의 첫 성교가 강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린 나이에 첫 성교를 겪을수록 그 성행위는 강압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 CDC 자료를 보면 성폭력 피해를 처음 경험하는 나이도 상당히 어리다. 40%가 18세 이전에 성경험을 하며, 28%는 11세에서 17세 사이에 겪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성폭력은 범죄이다. 그러나 잘 드러나지 않는 범죄이다. 그 이유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잘 보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거론된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체계(support system)가 없거나 부족하고, 수치심, 보복에 대한 두려움, 비난받을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믿어주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당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폭력의 빈도는 조사된 것보다는 높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피해 사실이 알려지더라도 타 범죄에 비해 가해자가 처벌을 받을 확률이 낮다. 수사나 기소 단계에서 사건이 종결되거나 재판에 가서도 가해자가 유죄판결을 받는 확률이 가장 낮다.
어떠한 조건 하에서 성폭력이 발생할 위험성이 큰가? 이러한 조건들을 위험요인(risk factors)이라고 하는데 크게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의 위험요인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개인 차원의 요인으로 몇 가지를 나열하면 어린 시절의 학대(신체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 방임 모두 해당) 및 성학대 경험 (childhood abuse and sexual abuse), 어린 시절 부모간의 폭력에 노출된 경험, 교육 기회 결여 등이 중요한 요인이다. 사회적으로는 낮은 사회경제적 상태, 가난, 성 불평등, 남성에 의한 성폭력을 용인하는 분위기, 성행동을 남성의 권리로 간주하는 사회적 시각, 전통적인 남성 우위 사상, 가해자에 대한 처벌 미비 등이 성폭력이 쉽게 발생할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성폭력은 커다란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유발하고 이 때문에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므로 이제는 공중 보건(public health) 문제의 관점에서도 접근하고 있다. 원치 않는 임신, 임신중절, 생식기 손상, AIDS를 비롯한 성병 감염 위험 등 직접적인 건강 위협요인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만성적인 소화기 증상(소화불량, 늘 속이 울렁거리는 느낌, 토할 것 같은 느낌)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자존감이 낮아지고, 우울, 불안,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자살이나 자해시도, 타인에 대한 깊은 불신과 같은 정신, 심리적 문제를 야기한다. 이러한 후유증으로 인하여 삶의 질 저하, 직업 상실, 생산성 감소, 의료비 및 법적 비용 부담,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 가해지는 장기간의 고통, 대인관계 악화 등의 사회경제적 비용을 유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성폭력 피해 여성 지원기관인 해바라기센터를 설치, 운영하여 피해자 진료, 의료비 지원 및 수사와 법적 지원을 제공하여 피해자의 부담을 경감시켜주고 있다.
“인권감시(Human Rights Watch)” 보고서를 통하여 본 북한 여성들의 성폭력 실태
2018년 11월 발표된 인권감시 보고서에는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 실태를 보여준다. 모두 2011년 김정은 집권 이후 탈북한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면담을 실시하여 자료를 수집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발생하는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의 양상을 요약하자면 첫째, 성폭력이 너무나 일상화되어 있다. 둘째, 북한은 위에서 열거한 성폭력 발생의 위험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는 나라이다. 셋째, 성폭력이 만연해 있어도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 피해나 가해 사실을 말하고 있지 않다. 물론 국가도 함구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넷째,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위치에 있는 자들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다섯째, 따라서 피해자에 대한 지원 체계가 전무하다. 여섯째, “탈북 여성의 가정폭력 경험과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김경숙 2016)”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북한은 가부장적인 폭력체제가 사회 유지의 근간이다.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여성은 남성에 종속된 존재이며 여성에 대한 신체적 폭력과 성폭력을 용인하는 사회 규범이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김씨 일가의 지도하에 모든 여성들이 모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부문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향유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바와 정반대이다.
앞서 말한 대로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자가 될 위험성이 커진다. 1990년대 말에 있었던 대기근 이후 배급 체계가 사실상 무너졌다. 남성들은 가장으로서 국가가 지정해 준 직장에 나가 일을 해야 하지만 먹고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월급 때문에 생존을 위해 여성들이 장마당에 나가 장사를 해야 했다. 여성들이 가계를 책임지는 가장의 역할까지 맡게 되었다. 장마당에서 장사뿐만 아니라 물건을 떼러 여성들이 장거리를 여행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북한은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다. 장거리 여행에는 허가가 필요하다. 여러 곳에서 검문과 검색이 시행된다. 장마당은 중앙 공산당의 지시나 지방 당 간부, 관리들의 태도에 의해 운영 조건이 쉽게 바뀐다. 따라서 여성들이 하는 장사 행위는 불법이 될 가능성이 커서 이들의 처지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당 간부, 보안원(경찰), 보위부원(비밀경찰), 철도공안원, 국영기업의 간부, 군인 등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에 의해 여성들의 인권이 아주 쉽게 유린당할 소지가 크며 실제 그러한 일들이 매우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배급체제의 해체 이후 관리들이나 당 간부들의 봉급이 실질적으로 없는 상태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점차 뇌물에 의지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부패는 급속하게 확산되었다. 그들에게 뇌물을 제공하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뇌물이 보통은 돈이나 물건이지만 여성의 경우에는 여성의 몸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권감시 보고서에 의하면 여행 중 검문 · 검색을 당할 때는 지나치게 여성의 몸을 더듬거나 여성의 몸속으로 손을 넣어 불법적인 물건이 있는지를 확인하기도 한다고 한다.
북한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한 가해 사례가 많은 것 같다. 북한 고위 관리를 포함한 탈북자 면접에서 탈북자들이 인권감시 조사원들에게 권력을 가진 자들이 어떤 여성을 점찍으면 짝한 여성들은 그들이 무엇을 요구하던지(성 상납을 포함) 들어 주는 수밖에 없다는 점을 털어놓았다고 한다. 거절했을 때 돌아오는 보복이 어떠한지를 알기 때문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한 성폭력은 장사하는 여성들에게도 어김없이 만연되어 있는 것 같다. 이들의 요구를 거부했을 때에는 후일 무슨 이유에 의해서든지 가진 물건과 번 돈을 압수당하고 심하면 장마당에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즉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고 한다. 구류 시설이나 감옥에서는 거의 일상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성에 대한 강간, 성추행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유엔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성적으로 심한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심문, 조사과정이 동반되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은 전체주의 체제이다. 개인은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이 없다. 출신성분이라는 엄격한 신분질서에 의해 인간관계가 규정된다. 피해 사실을 호소할 곳도 없고 가해자를 고소해 봐야 가해자는 처벌을 받기는커녕 피해자가 보복을 받게 된다. 또한, 뿌리 깊은 남성 우월, 가부장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비난하는 사회 규범이 지배한다. 발고했을 경우 피해자가 오히려 사회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피해 사실을 발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피해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한다. 가해자들은 처벌의 두려움 없이 성폭력을 여성들에게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매우 드물게 가해자의 가해 사실이 드러나고 처벌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정치적인 목적이 있을 경우라고 한다. 성폭력의 가해자가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 자신들에게 생살여탈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자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 여성들은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거니와 더 문제는 성폭력이 만연되어 있어 자신이 당하는 것이 성폭력인지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 정권은 북한은 순결한 나라이기 때문에 성폭력 같은 것은 없다고 강변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북한의 사회, 정치, 경제 상황은 성폭력이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는 완벽한 사회적 조건을 갖춘 진정한 헬조선이다. 정부 차원에서 피해자를 지원하려고 하는 의사도 없다. 만연해 있는 성폭력을 그들은 방조하고 있다. 마치 90년대 말 대기근 때 체제 유지에 필요한 사람들을 제외한 국민들이 굶어 죽는 것을 방기해버린 것처럼. 그래서 인권감시 보고서에 나타난 북한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은 반인도적 범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별적인 성폭력 사례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2018년에 발표된 Human Rights Watch report “You Cry at Night but Don’t Know Why”-Sexual Violence against Women in North Korea를 참조하기 바란다.
<ykchung@ajou.ac.kr>
글 | 정영기
아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80년에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84년에 정신과, 신경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였다. 2009년부터 여성성폭력피해자 지원기관인 경기남부원스톱지원센터 실무책임자를 거쳐 2013년 12월부터는 경기남부해바라기센터 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성인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의 정신과 진료를 전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