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 극복 대안, 성서적 연방제
2019-11-23제왕적 대통령제 극복 대안, 성서적 연방제
월드뷰 11 NOVEMBER 2019●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BIBLE & WORLD VIEW 5 |
글/ 김성호(자치법연구원 부원장)
Ⅰ. 연방제 논의 배경
사람은 대부분 권력을 한번 잡게 되면 남용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무제한적 국민 주권은 개인주의의 횡포이며, 무제한적 국가 주권은 전체주의의 횡포라는 점에서 둘 다 횡포이다. 이러한 국가 권력의 횡포를 막기 위하여 국가 기관 간, 중앙-지방 정부 간 관할권을 한정하고, 권력 기관 간 3권 분립 제도라고 하는 권력 견제 장치를 두고 있다. 자유주의적 연방 제도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2017년 대통령 선거 당시에 문재인 후보는 국회에서 연방제 수준의 지방 분권을 공약하였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연방제 수준의 지방 분권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그가 주장하는 연방제의 모습은 아직 제대로 제시된 적이 없어 궁금증과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정당 차원에서 자유선진당의 이회창 총재가 ‘강소국 연방제’를 주장하면서 연방제에 관한 관심이 촉발되었다. 하지만 북한이 제안한 ‘고려 연방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연방제는 더 이상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최근 일부 유튜브 방송에서도 연방제가 마치 대한민국의 공산화 전략처럼 부정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공감하지만, 권위주의적 일당 독재 연방 국가는 말만 연방 국가이지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방 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우선 지적하고 싶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개헌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성서적 국가 권력 구조로서의 연방제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공유하고자 한다. 사실 연방 국가의 기원이 성서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크리스천은 많지 않다. 이 글에서는 연방제의 성서적 의미와 국가 번영을 위한 필수적인 제도로서 합리적인 지방 분권과 깊은 상관관계를 가진다는 데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Ⅱ. 성서적 연방주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로부터 구원하여 인도해 내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에게 이집트의 중앙집권적 절대 왕정 통치와 정치 방식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이드로는 이스라엘이 국가 제도를 창설함에 있어 철저하게 하의상달 식 국가 운영 체제를 제도화하여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개인과 사회의 자유와 책임을 가장 많이 보장할 수 있는 제도는 실질적 지방 자치 제도이며, 그 정점은 하의상달 형 자유주의적 연방제이다. 그 근거는 “내가 어떻게 너희의 괴로움과 너희의 짐들과 너희가 다투는 것을 혼자 감당할 수 있겠느냐? 현명하고 통찰력 있고 존경할 만한 사람들을 너의 각 지파에서 뽑으라. 그러면 내가 그들로 너희를 다스리게 할 것이다(신 1장 12-13).”라는 말씀에 있다. 성서는 국가 제도를 만들 때, 국가의 통치권을 1인 또는 소수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권한을 나누되, 각 지파별, 즉 각 지역별로 선출하라는 의미이다. 하나의 국가이지만 각 지역별로 지도자를 선출하라는 것은 연방제적 국가의 전형을 보여 주는 것이다.
연방주의는 개인과 사회의 자유와 책임을 최대한 보장하는, 아래로부터 설립된 정당한 국가 질서이다. 모든 제도는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지, 사람이 제도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가 제도의 기준을 개인에게 두고 있다는 점에서 창조 질서에 부합하는 제도이다. 연방주의 질서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하며 개인을 기본으로 삼는다. 개인만이 소명을 들을 수 있으며 양심을 소유한 의무적인, 인격적인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은 사랑에 의하여 부름을 받는 동시에 사랑을 위하여 부름을 받는다. 사랑은 진정한 생활 내용이며 참 공동체다. 모든 집단에 대한 개인의 우위야말로 개인주의 또는 자유주의를 의미한다. 하지만 개인주의는 곧바로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정의로운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공동체의 일부가 되지만, 제왕적 전체주의 국가를 배격한다.
이와 같이 연방주의는 개인과 사회 전체가 기능적으로 상호 보완 관계에 있음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지방 정부 간 권한 배분에도 적용되며, 이를 “보충성의 원칙”이라고 한다. 성서적 국가 구성 원리라고 할 수 있는 보충성의 원칙은 원래 사적 영역을 공적 또는 정치 영역으로부터 구분하기 위한 원리로서 오늘날 개인, 사회, 국가 등 다양한 계층의 정부 간 권한 배분 원칙으로서 인정된다. 연방주의의 원리로서의 보충성의 원칙은 EU 각국의 헌법 원리로도 규범화되어 적용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자유주의적 연방주의는 성서적 국가 구성 원리로서 크리스천들이 추구해야 할 가치이다.
Ⅲ. 중앙집권적 전체주의
성서적 연방제와 달리 전체주의적 중앙 집권 국가는 개인과 자치 공동체의 자율과 책임을 제한하고 국가가 사실상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하려는 질서이다. 이러한 국가는 개인의 자유의지에 기초한 자연적이며 유기적인 인간 구조를 필연적으로 강제적이며 인위적인 국가 구조로 대체한다. 중앙 집권적 전체주의 국가는 국가 주권의 근대적 개념에 따라 개인과 다양한 자치 공동체의 자치권을 배제하면서 서서히 나타났다. 개인과 가정, 자치 공동체가 무력화될수록 그만큼 국가가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과 가정, 그리고 자치 공동체가 자신이 해야 될 일마저도 스스로 책임지고 해결하지 않고 국가의 조력에 의존하면 국가에게로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자들이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왔다. 따라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조직되는 상의하달 식 전체주의 중앙 집권 국가를 방치하는 것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죄악이다. 그 이유는 첫째, 국가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며, 제한된 권한만을 행사하는 존재라는 점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개인의 자율과 책임에 바탕을 둔 자치 공동체가 처리하기 어려운 일들만을 상급 정부가 보조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마땅함에도 국가 공동체가 하나님 또는 부모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동체 간 자율과 책임의 질서가 붕괴되면, 중앙 집권 국가는 개인과 자치 공동체의 역할과 책임을 위축시켜서 전체주의 국가가 되고 만다.
역사적으로 중앙 집권적 전체주의는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무시하면서 권력 세습을 부단히 추구해 왔다. 고대 이집트 왕국과 바벨 제국은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제국의 이름 위에 절대 권위를 부여하였다(창 2:20, 23, 다니엘 1:6, 7).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정한 하나님을 거부하는 국가들은 예외 없이 “하나님처럼” 통치자가 되고자 하였다(출애굽기 3:5).
오늘날에는 중국과 북한이 대표적인 중앙 집권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전체주의 국가이다. 창세기 11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고 통치자이신 하나님의 이름을 삭제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러한 반역(시편 2편)에 내포된 것은 인본주의이며, 인본주의 국가 창설자들은 절대 권력을 가진 국가를 창설하였다. 이와 같은 중앙 집권 국가는 개인과 교회, 사회 등 다양한 차원의 자치 정부를 배제하고, 오로지 국가만이 통치자가 되는 사회이다. 인본주의자들은 국가지상주의를 받아들여 국가 권력 기관을 통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 이상의 통제권을 스스로 장악하고, 중앙 집권화하며, 국민을 복종시켜 권력의 정상에서 종신토록 하나님이 되기를 추구한다. 그러므로 중앙 집권적 전체주의는 인민 주권의 위탁을 명분으로 국가가 무엇이든지 법률로 제정할 수 있으며, 개인과 가족, 사회를 강제하기 때문에 자치 공동체는 무력화된다는 점에서 반성서적인 제도이다.
Ⅳ. 북한과의 연방제 가능할까?
연방제는 미국, 독일, 스위스처럼 모든 국가의 구성원이 동일한 자유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에서만 채택할 수 있다. 북한은 1국 2체제의 고려 연방제를 제안하였고, 대한민국의 좌파 정부들은 한결같이 북한과의 연방제를 추구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노동당 일당 독재 체제의 하향식 통치 체제와 개인의 자유와 책임 그리고 자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대한민국은 추구하는 가치와 세계관이 전혀 다르므로, 결코 1국가 2체제의 연방제 국가를 채택할 수 없다.
독일연방공화국은 사회주의적인 동독의 각 주들을 서독의 연방으로 편입하는 형식으로 흡수 통일을 하였다. 반면 남북예멘공화국은 1990년 5월에 역사상 유례없이 1국가 2체제 연방제 국가로 기적적으로 합의하에 통일하였다. 그러나 최근 분열과 대립을 극복하지 못하고 29년 만에 다시 갈라질 위기에 처했다. 중국과 대만, 그리고 중국과 홍콩 간 1국 2체제 역시 마찬가지이다. 최근에 중국이 홍콩 민주화를 힘으로 저지하고 있어 갈등이 매우 심각하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 남북한 간 1국 2체제의 연방제란 극심한 갈등과 대립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무늬만의 연방 제도라는 점에서 실익이 없는 환상적인 제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한민족을 앞세워 체제가 다른 북한과의 1국 2체제 연방제는 허상에 불과하다.
북한과의 1연방 2체제를 반대한다고 해서 자유 민주주의에 근거한 성서적 연방제를 거부하는 것도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과 사회의 자유와 책임, 자율을 우선하는 보충성의 원칙에 따른 자유 민주적 연방제는 성서적으로도 매우 바람직한 제도이다. 자유 민주적 연방제는 지방 자치를 핵심적 요소로 삼고 있다. 북한이 민주화된 이후에 대한민국의 국가 체제는 개인과 사회, 지방의 자율과 책임을 우선하는 자유 민주적 독일식 연방제를 채택하는 것도 매우 이상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헌 논의 과정에서 성서적 연방제 도입을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 중앙집권적 국가의 위협으로부터 개인과 자치 공동체를 지켜주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바로 연방주의이다.
Ⅴ. 제왕적 중앙집권 국가냐, 자유주의적 연방주의 국가냐는 정의의 문제
중앙집권 국가냐, 연방주의 국가냐 하는 것은 정의에 관한 논의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연방주의에서는 자치 공동체가 가지는 정의의 규범이 국가 규범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인간 생활은 개인과 가까운 자치 공동체를 거쳐 확대된 국가 공동체로 나아간다. 확대된 국가의 역할은 보다 더 추상적이고 비인격적이다. 인간 생활은 자치 공동체가 더 많은 역할을 할수록 국가의 역할은 오히려 적어진다. 그러므로 연방제 국가는 자치 공동체가 할 수 없는 문제와 사람 속에 내재하는 반사회적, 무정부적, 무질서가 발생되지 않도록 하는 과제를 주로 담당한다. 이 때문에 국가의 강제적 법률은 공동체의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최소한의 법 규범으로 작동된다. 그러므로 연방주의는 개별 자치 공동체가 공동 목적을 많이 수행할수록 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국가 전체가 최대한의 번영을 이룰 수 있다는 사상이다. 이러한 점에서 자유주의적 연방제 외에는 국가 공동체의 번영을 기할 수 있는 제도는 없다.
반면, 중앙집권적 국가에서 개인과 자치 공동체는 전지전능한 국가가 허가하는 범위 안에서만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
결국 개인 또는 자치 공동체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국가가 결코 각 자치 공동체의 자치권을 흡수하지 않는다는 연방주의는 실질적 지방 자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정의의 이념에 부합된다.
우리 헌법의 가장 큰 문제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 주권 헌법 이념을 무시하고 제왕적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정당화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도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국민이 부당한 국가 권력을 강하게 견제할 수 있는 성서적 연방주의 지방 자치제로 개헌함으로써 현재와 같이 정의롭지 못한 중앙집권적 제왕적 대통령제의 국가 운영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visionh@paran.com>
글 | 김성호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서 정책연구실장을 역임했다.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지방분권분과 간사, 대통령 소속 지방분권촉진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자치법연구원 부원장으로 있으면서, 한국지방자치학회 지방분권개헌특별위원회 위원장,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공동의장, 지방분권전국회의 공동정책연구위원장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