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 예수님 모시기

2019-08-22 0 By worldview

일터에 예수님 모시기

 

월드뷰 08 AUGUST 2019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5

 

글/ 방선오(명지대 사무처장)

 

일과 일터의 의미 

 

일터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전에 일에 대해 먼저 정의하기로 하자. 일은 창조 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이고 사명이었다(창 1:28). 그런데 타락의 결과로 그 축복과 사명이 변질되어 땀과 고통과 수고의 대명사로 전락하고 말았다(창 2:17~19). 이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축복과 사명으로서의 일의 참 의미와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골삼이삼(골 3:23)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이다.(골 3:23 /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 하듯 하지 말라) 그리스도인에게 일터는 하나님의 축복과 사명인 일의 의미를 회복하는 귀한 장소이다. 돈을 버는 직장만이 아니라 우리가 공부하는 학교도 일터이고 가사를 돌보는 가정도 중요한 일터이다. 종교 개혁가 츠빙글리는 이 우주에 일꾼만큼 하나님을 닮은 존재는 없다고 말했고 마틴 루터는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소 젖까지 짜신다”라며 일과 일터의 중요성과 그 가치에 대해 강조하였다.

 

베드로의 일터에 찾아오신 예수님 

 

눅 5:1~11 말씀을 묵상하다가 베드로의 일터에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베드로가 자신의 일터에서 밤새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그물 씻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 일터에 찾아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셨을 뿐 아니라 일터에서 처한 상황에 직접 개입하셔서 풍어를 체험하게 해주셨다. (목수 예수님이 어부 베드로에게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신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는 베드로에게 사람 낚는 어부, 다시 말해 일터 사역자라는 새로운 사명을 부여하셨다. 베드로의 일터에 찾아오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일터에 찾아오셔서 우리의 일터 상황에 구체적으로 개입하시고 동행하시며 도우시고 일터 사역자로 세우신다.

 

이원론의 장벽을 만나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교회 청년부에서 훈련받은 대로 직장 성경 공부 모임을 만들고 전도하고 일대일 양육도 하고 신우회를 발족해서 해외 비전 트립까지 갈 정도로 열심히 사역했다. 교회뿐 아니라 일터에서도 주님을 모시고 산다고 자부했지만 뭔가 2% 부족함을 느끼던 때, 한 직장 사역자의 간증을 통해 일터에서의 나의 신앙적 삶의 모습이 종교적 영역에만 제한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신우회 모임과 제자 훈련할 때는 예수님이 필요하지만, 회의 준비와 프로젝트 기안, 보고서 작성할 때는 내 상식과 내 노하우로 나 혼자 일하고 있었다. 주님과 동행한다고 하지만 종교적인 영역은 주님과 함께 하지만 일상의 영역 속에서는 내 마음과 내 생각대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이 성과 속을 구분하고,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을 구분하는 이원론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것이 사단의 교묘한 전략임을 깨닫게 되었다. 사단은 신앙생활을 못하게 하면 더 뜨거워져서 펄펄 뛰고 순교하는 것을 알기에 신앙을 종교적 영역에만 머무르고 일상생활에 흘러가지 못하도록 하는 교묘한 전략을 세웠는데 이것이 바로 이원론의 담벼락이다. Monday Morning Atheist(월요일 아침 무신론자)라는 단어가 있다. 주일날 교회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지만 월요일 일터에서는 마치 하나님이 없는 듯 무신론자처럼 사는 크리스천을 일컫는 말이다. 월요일 무신론자, 일터 무신론자, 일상 무신론자들이 많다. 그러다가 주일날 예배 드리면서 예수님께 안부를 여쭙고 마치 환자 문병 오듯이 신앙생활을 한다. 사단이 쌓아놓은 이원론의 담벼락을 깨부수고 그곳에 예수님을 모셔드려야 한다. 이원론의 담벼락을 허물고 예수님을 일터에 초청하면 일터가 달라진다.

 

예수님을 일터에 초청하다

 

물론 한번의 깨달음으로 단번에 주님과 항상 동행하는 일터가 되지는 않았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실수 그리고 다양한 체험을 통해 예수님을 조금씩 일터에 모시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내 작은 업무 하나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께서 일터에 오셔서 개입하셨다. 우리 주님은 신우회 사역뿐 아니라 내가 맡고 있는 모든 업무와 내 주변의 모든 대인 관계, 승진과 인사 발령에도 관심을 갖고 계시며 그 모든 것에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심을 알게 되었다.

문제가 풀리지 않아 고민하던 출장 중에 호텔방에서도 주님은 말씀으로 만나주시고 찬양하고 기도하며 홀로 부흥회를 하게 하신 후 일주일 동안 해결되지 않던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 주셨다. 거래처 사장님과의 전화 통화를 통해서도 성령님의 감동으로 은혜의 눈물을 흘리며 부흥회를 열어주셨다. 상사의 꾸지람이 예수님의 음성으로 들리기도 했고, 회의실 회의가 예배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업무상의 문제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단숨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도우시는 손길을 체험하기도 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쪼르르 달려와 하나님께 물어봤던 다윗, 무너진 성곽을 재건하면서 생기는 고민과 장애물 앞에서 시도 때도 없이 짧게 내뱉듯이 기도했던 느헤미야의 화살기도가 일터에서 주님과 동행한 선배들의 모본이다.

 

일터 사역자로 부르심

 

일터에 찾아오시고 일터에 개입하시는 주님은 우리를 일터 사역자로 부르신다.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일터에서 일터 사역자다.

첫째, 일터 사역자는 청지기(Steward)다. 일의 현장인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일하는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청지기에게는 주인이 있으며, 주인이 맡긴 과업이 있고 언젠가 와서 그 과업을 정산할 것이다. 그러기에 청지기는 골삼이삼(골 3:23)의 자세로 살아야 한다. 일터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해야 한다. 그런데 주께 하듯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다 보면 일이 주님이 되어버리곤 한다. 사업과 성공과 승진과 지위가 내 우상이 된다. 모세가 자신의 직업의 상징인 지팡이를 하나님께 올려드리자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출 4:3,10) 놀라운 기적과 함께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지만, 그 지팡이가 자기의 자랑과 교만(민 20:11)이 되어 버려 가나안 입성의 축복을 놓치게 된다. 골리앗과의 싸움에 하나님을 초청한 다윗 왕은 매 순간 일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성군이 되었지만, 사울 왕은 자신의 성공과 승리와 자랑에 빠져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된다. 일터에서 ‘주께 하듯’ 성실히 임해야 한다. 그런데 ‘주께 하듯’이 ‘주님’이 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필자의 저서 <일터행전>.

둘째, 일터 사역자는 군사(Soldier)이다. 영적인 전투의 현장인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전투는 육적인 전투가 아니라 영적인 전투이다. 때로는 세속의 무속 문화가 판치는 세상에서 영적인 전투를 해야 한다. 회사에서 상달 고사를 지낼 때 신우회는 같은 시간 회의실에서 기도했다. 안전 운항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켜주심을 고백하며 영적 전쟁을 치르곤 했다. 그뿐 아니라 심리적 전투도 해야 한다. 월요병이라 불리는 직장인의 불치병(?)을 예수님과 동행함으로 싸워 물리쳐야 한다. 윤리적 전투도 우리가 싸워야 할 중요한 전투 영역이다. 이런 싸움을 통해 영적 근육이 만들어진다. 싸우는 것 외에 군사의 또 하나의 과제는 견디는 것이다. 현재 처한 상황이 힘들고 이해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고(소명 의식) 맡기셨다는(사명 의식) 것을 신뢰하며 참고 인내하며 견디는 것이다.

셋째, 일터 사역자는 충성된 종(Servant)이다. 사역의 현장인 일터에서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이 되어야 한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고 나와 스타일이 다르다고 담을 쌓고 벽을 치다 보면 사역의 기회가 제한되고 축소되고 만다. 가능한 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섬김 사역의 가장 중요한 기초 인프라(Infra)가 된다. 좋은 관계 속에서 그들의 필요를 파악하게 되어 그 필요를 채우게 되고, 더 나아가 복음의 필요까지 채울 수 있게 된다. 3:1 점심 사역은 일터에서 좋은 관계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좋은 사례가 된다.

 

세속문화 속 I + H = I 원칙

 

예수님을 모신다고 일터가 바로 천국이 되지 않는다. 일터는 세속적이고 사단이 세속적인 문화와 정신으로 옭아매고 있는 곳이다. 일터의 세속 문화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영적 원리 I.H.I.(Identity + Harmony = Influence)를 소개한다.

먼저 그리스도인으로의 정체성(Identity)을 담대히 고수해야 한다(단 1:8).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 신앙의 정체성을 견지해야 한다.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왕의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고백한 것처럼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견지해야 한다. 그런데 정체성이 골방에만 갇혀 있을 때 왕따 당하고 고립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융화(Harmony) 해야 한다(롬 12:18). 세상 문화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들어가다 보면 세속화로 변질되고 만다. 많은 청년들이 대학 시절 신앙생활 잘하다가도 직장에 들어가 세속 문화에 빠져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Identity)을 가지고 동시에 세상 속으로 들어가 융화(Harmony) 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선한 영향력(Influence)을 미치게 된다. 세속 사회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마 5:16). I.H.I 원리는 존 스토트가 말한 거룩한 세속성(Holy Worldliness)이며 동시에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세상에 내려오신 성육신(Incarnation)의 정신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일터로 부르신다. 인생길 전체를 알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일과 일터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기 원한다. 우리가 고민하며 찾는 일자리는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마지못해 선택하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르신(소명) 곳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본받아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대행하는 영광스러운 사역(사명)임을 기억하자.

<sunohbang@hanmail.net>

 

글 | 방선오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 졸업하였으며, 후에 미국 USC에서 경영대학원(MBA) 석사(2013-2014) 및 한국항공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항공에서 29년간 근무하였으며, ㈜ 토파스의 대표이사를 역임하였다. 현재 명지대학교 사무처장으로 있다. 저서로는 <일터행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