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고난의 역사 교육
2021-09-07
월드뷰 SEPTEMBER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9 |
글/ 이재현(쉐마교육연구원 간사, 자유의 숲 사무국장)
교육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이 있다. 사실일까? 교육의 대상인 인간은 천차만별로 다양하고, 교육 기간은 최소한 20년 이상이기에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알 수 없다. 특정한 교육의 방법을 20년 동안 적용하고, 환경과 변인을 완벽히 통제하여 인과관계를 정확히 밝히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오랫동안 ‘교육에는 왕도가 없다’라는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쉐마교육연구원의 현용수 박사가 30여 년을 연구한 유대인의 쉐마교육을 알게 된 이후에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유대인들의 자녀 교육 콘텐츠 대부분은 내가 진리로 믿는 성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고, 그들은 수천 년의 역사를 살아오며 자신들의 뛰어난 교육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뛰어남에 대해서는 누구나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이 왜 그렇게 뛰어난 민족으로 불리며, 어떻게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유대인의 생존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자면, 유대인의 인구수는 1,500만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약 0.2%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까지 20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는 세계 평균의 100배에 달하는 엄청난 수치이다. 이밖에도 예일대 대학원생의 60%, 하버드 대학교 재학생의 30%, 아이비리그 대학 전체 학생의 27%, 교수의 30%, 부유한 미국인의 23%, 전 세계 억만장자의 30%를 유대인이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 과학상 38%, ACM 튜링상 25%, 웨스팅하우스 과학상 수상자의 30%를 각각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대인의 가장 큰 업적은, 오랜 세월 나라 없이 떠돌며 수많이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살아남아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한 그들의 생존 그 자체이다.
BC 586년,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 제국에 함락당하고 남유다가 멸망한 이후, 그들은 2000년이 넘도록 나라를 되찾지 못했다. AD 70년 이후에는 나라를 완전히 잃고, 민족이 디아스포라로 전 세계로 흩뿌려졌다. 후기 로마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가톨릭교회들은 유대인 강제 이주 정책을 펴고, 그들의 탈무드와 유대주의적인 모든 글을 불태워 유대인의 정체성을 없애려 했다. 11세기부터 12세기 십자군의 구호는 ‘유대인을 죽이고 너의 영혼을 구원하라’였다. 십자군은 찬송을 부르며 유대인을 죽였고, 유대인은 찬송을 들으며 죽어갔다. 중세 가톨릭 시대로 넘어와서도 유대인에게는 땅 소유가 금지되었고, 특정 직업을 가지는 것에 대한 제한 때문에 세금징수원, 환전업, 대부업 등 인기 없고 천대받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탐욕적인 민족이라는 굴레가 씌워졌다. 1348년에는 흑사병의 원인자들이며, 우물에 독을 넣은 자들, 심지어 리스본 지진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누명을 썼고, 1492년에는 스페인 국토회복 운동인 레콩키스타(Reconquista)의 일환으로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이 나라 저 나라로 쫓겨났다. 쫓겨 도착한 나라에서도 또 다시 쫓겨나기를 반복해 세계 제2차 대전 때는 잘 알려져 있듯 나치에 의해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되는 고난을 받았다. 이 밖에도 미처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고난의 역사가 유대인들과 수천 년을 함께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유대인이 있기까지 그들을 생존하게하고 탁월하게 한 비결은 무엇일까?
유대인의 ‘수직 문화 교육’
수많은 학자들이 유대인을 연구했지만, 정작 유대인에게 직접 인정받은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현존하는 유대인의 최고 지도자 랍비 중의 한 명인 랍비 마빈 하이어(Marvin Hier)는 현용수 박사의 오랜 연구에 대한 평가를 다음과 같이 내렸다. “유대인을 연구한 학자들이 많지만 현 박사처럼 생존의 비밀을 정확히 지적한 것은 의외다.”
현용수 박사는 유대인의 생존과 탁월성의 비밀을 그들의 강력한 수직 문화 교육에서 찾았다. 수직 문화 교육에 대한 개념을 간단히 설명하면 전통적인 가치를 다음 세대로 전달해, 세대 차이를 없애는 것이다. 수직 문화 교육의 대표적인 방법의 하나가 바로 고난의 역사 교육이다.
정통파 유대인의 자녀들은 그들의 학교인 예시바에서 오전 내내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한다. 토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탈무드는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기 위한 유대인의 몸부림이 담긴 역사책이다.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유대인의 학습법인 하브루타는 탈무드를 학습하기 위해 질문을 주고받는 탈무딕 디베이트(토론)에서 유래되었다. 또한, 매일 가정에서 아침, 저녁으로 아버지를 통해서 매주 안식일에 드리는 샤밧 디너 시간에도 탈무딕 디베이트를 통해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한다. 그것도 부족해 매년 하나님의 말씀과 전통에 따라 절기를 지키며, 가정의 모든 구성원이 역사를 기억한다.
왜 이들은 이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고난으로 빼곡한 민족의 역사를 배우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 32:7).”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세대 간의 역사적 지식 전수에 대한 당위성을 말씀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의 지엄한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면, 그들이 역사를 전수하는데 목숨을 거는 두 번째 큰 이유는 바로 역사적인 대가를 치르고 얻은 값비싼 선대의 지혜를 그들이 존중하기 때문이다. 흔히 탈무드를 지혜의 책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탈무드가 단순히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지혜의 책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탈무드는 치열한 고난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선민으로 살기 위한 유대인의 몸부림이 기록된 책이다.
한국인과 유대인
한국인과 유대인은 많이 닮아있다. 작은 땅덩어리 약소국의 민족이고,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생존을 위협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모두 하나님께 헤아릴 수 없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수많은 신학자와 권위 있는 국내외의 목회자들이 한국을 제2의 이스라엘이라고 언급했다.
이렇게 공통점이 많은 민족이지만 한 가지 분명히 다른 것이 있다면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앞서 유대인은 역사를 얼마나 중요시하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다음 세대에게 기억을 전수하는지 언급했다. 하지만 한국인은 어떠한가? 다음 세대라고 부를 수 있는 지금의 청년과 학생들에게 역사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역사를 단순히 좋은 학교에 진학하거나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경우가 대다수인 듯하다.
또한, 윗세대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역사의 교훈을 지나치게 터부시하고 꼰대, 틀딱, 라떼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의 경험을 듣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갖는 경향이 많다.
얼마 전 6·25를 맞아서 지인의 아들이 평소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참전용사의 집을 방문했다. 아흔을 훌쩍 넘긴 이 할아버지에게 소년은 6·25에 관해 물었다. “할아버지 어떻게 참전하게 되셨어요?”, “전쟁에서 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나요?.”, “포탄과 총알이 날아올 때 무섭지는 않으셨어요?” 할아버지는 상세하고 자상하게 직접 참여했던 전쟁의 참상을 소년에게 말해주었다. 소년은 대한민국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편하게 공부하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된 것은 할아버지 덕분이라는 말과 함께 꽃다발과 작은 선물을 전달했다.
생각지 못한 선물에 노인은 평생 자신의 오른쪽 가슴에 달려있던 훈장을 떼서 소년의 가슴에 달아주었다.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훈장이라는 말과 함께 그것을 건네는 노인의 목소리는 감격에 겨워서인지 울먹이고 있었다. 아무도 물어봐 주지 않던 자신의 세월을 들여다 봐준 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훈장을 내어줄 만큼 감사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이 유대인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할 때 단순히 그들의 세상적인 성공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대인이 유대인으로서 남을 수 있게 된 가장 큰 비결은 바로 민족 고난의 역사를 생명처럼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는 수직 문화 교육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안에서 탄생한 국가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통해 일으킨 놀라운 기적이 대한민국의 역사 곳곳에 새겨져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대한민국은 자신의 역사에서 하나님을 자꾸만 지워가고 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여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2-14).” 이 말씀은 어쩌면 현재 대한민국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나타난 말씀이 아닌가 생각한다.
예배를 드리는 신앙의 자유마저 위협받는 이 혼돈의 시기에 이 글을 읽는 분들만이라도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다음 세대에게 그 역사를 전수하는 일에 함께 해주시길 간절히 소망한다.
<widebridge@naver.com>
글 | 이재현
NGO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과 지역사회 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했다. 유대인의 쉐마교육을 알게 된 후 교회에서 대안학교를 설립하는 일에 전력했다. 현재 시민단체인 ‘자유의 숲’ 사무국장이며, 유대인 교육 전문기관인 쉐마교육연구원의 대표간사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