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서 사라진 ‘애국심’ 단원
2021-06-13
월드뷰 JUNE 2021●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11 |
글/ 김정효(이화여대 초등교육과 교수)
현행 초등도덕 교과서에서 사라진 애국심 단원
초등학교 교육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을 기르고 시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알아가게 하는 시민교육이다. 이러한 시민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도덕 교과이다. 도덕 교육학자들은 도덕 교과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사회적 통합이라고 했다. 따라서 도덕 교과 시간에 사용되는 국정교과서인 초등도덕 교과서의 변화는 시민교육과 사회적 통합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2015 교육과정 개정에 따라 2018~2019년에 새로 발행된 초등학교 3~6학년 도덕 교과서는 개정 당시 “더 적게 가르치는 것이 더 많이 배우는 것(Teach less, learn more.)”이라는 구호 아래 단편적인 교육내용을 많이 가르치기보다는 핵심적인 내용으로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하고자 하는 의도로, 학습 내용을 약 80%로 줄였다. 그런데 이러한 학습 내용의 축소로 말미암아 3, 4학년의 경우 정보윤리와 애국심에 대한 단원이 삭제되었다. 21세기 인터넷 사용이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4학년의 정보윤리 단원이 삭제된 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이고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3학년의 애국심 단원 삭제이다. 지난 2009 교육과정에서는 다음과 같이 ‘애국심’ 덕목과 관련해 “나라에 대한 사랑과 긍지”를 가르치도록 하는 성취기준이 제시되어 있었고, 이에 따라 3학년에서 ‘8.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단원을 가르쳤다.
(나) 나라에 대한 사랑과 긍지
우리나라의 상징에 대해 바르게 알고 올바른 태도를 지니며, 우리나라와 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나라에 대한 긍지와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도덕과 예절, 문화, 재외 동포의 활약 등 우리나라의 우수성과 자랑거리를 찾아보고 이를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발표한다.
① 우리나라의 상징들(국기, 국가, 국화 등)에 대한 이해와 예절
(출처: 2009 교육과정의 초등도덕과 3,4학년 애국심 관련 성취기준)
② 나의 행복과 나라 발전과의 관계
③ 우리나라의 자랑거리 및 나라에 대한 자긍심 함양과 나라 발전을 위한 노력
그러나 현재 실시되고 있는 2015 교육과정 3학년 초등도덕 교과에서는 위와 같은 애국심 관련 성취기준 항목이 사라지고 아래와 같은 통일 교육 성취기준 항목에 밑줄 친 “나라 사랑”이 덧붙여져 나타나고 있다. 이에 3학년 도덕 교과에서 사라진 애국심 단원이 4학년 도덕 교과에서 포함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새로 집필된 통일 단원에는 애국심과 관련된 학습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4학년 도덕 교과서의 통일 단원 ‘4. 하나 되는 우리’는 이전 2009 교육과정에서 사용되었던 4학년 통일 단원 ‘둘이 아닌 하나 되기’와 그 내용이 대동소이하게 구성되어있다.
[4도03-03]남북 분단 과정과 민족의 아픔을 통해 통일의 필요성을 알고, 통일에 대한 관심과 통일 의지를 기른다.① 통일의 의미와 필요성은 무엇이며, 통일을 위해 어떻게 하면 나라사랑을 위한 실천 의지를 기를 수 있을까?
(출처: 2015 교육과정의 초등도덕과 3,4학년 통일과 애국심 관련 성취기준)
② 북한 이탈주민을 배려하는 것이 왜 중요하며, 생활 속에서 어떻게 통일 의지를 기를 수 있을까?
이처럼 2015 교육과정의 통일 단원에서는 국가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을 가지도록 하는 애국심과 관련된 학습 내용이 첨가되는 대신에 통일에 대한 염원을 가지는 것이 곧 애국이라는 논리가 드러나 있다. 다양한 정서적· 인지적 학습활동을 통해 자신이 조국이라고 여기는 정치공동체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가지도록 해왔던 애국심 교육의 학습 내용이 통일이 애국이라는 학습 내용으로 대체되게 된 셈이다.
또한, 애국심 단원의 실제 뿐아니라, 2015 교육과정에서는 도덕 교과의 하위구성요소인 사회윤리영역을 부르는 명칭에서도 ‘국가’라는 용어가 사라졌다. 도덕 교과는 개인윤리뿐만 아니라 사회윤리와 환경윤리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데 지금까지 하위영역으로서 사회윤리영역의 명칭은 “사회, 국가, 지구공동체와의 관계”라고 불려왔지만 2015 교육과정에서는 ‘국가’가 빠지고 “사회 및 공동체와의 관계”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이러한 국가개념과 애국심 교육의 약화는 매우 주목할만한 변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국가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관련 문서상에 드러나 있지 않다.
3학년에서 가르쳐왔던 애국심 단원은 초등도덕 교과의 사회윤리 학습의 계열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애국심 단원은 사회윤리를 공식적으로 처음 배우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3학년 아동에게 국가공동체에 대한 정체성과 소속감을 갖게 함으로써 이후 4~6학년에서 다루어지는 시민교육 (예를 들어 공동체 의식, 준법정신, 사회정의, 통일, 인권교육 등)의 기반을 형성하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번 3학년 도덕 교과서에서 애국심 단원의 삭제는 이러한 사회윤리교육의 기반을 상실하도록 한 셈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도덕과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21세기 한국인으로서 시민사회와 국가, 지구공동체를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개인의 공동체적 정체성의 발달”(교육부, 2015: 4~5)에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애국심 단원을 삭제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한 심각한 숙고와 논의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 전반의 애국심 교육의 문제
사실 애국심 교육은 애국심 단원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 교과 전체 텍스트에서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다양한 학습활동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동안 공교육에서 해온 애국심 교육에 대해서 많은 비판이 있었다. 지금까지 애국심 교육은 국가와 정부를 동일시해 정권에 무비판적으로 충성하게 함으로써 정권에 대한 비판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됐다거나, 집단적 민족 정체성 이데올로기에 머물러 있어 충과 효, 즉 애국애족을 강조하는 자국중심주의적 또는 편협한 민족주의적 애국심 교육으로 흘러왔다는 것이 그 지적이다.
현행 초등도덕 교과서 전체 텍스트에서 드러나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주목할 만한 한 연구(장수빈, 2019)에서는 초등도덕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국가공동체를 ‘북한과 대조되는 경제 공동체’로 또한 ‘다문화주의를 품은 원초적 민족 집단’으로 보고 있으며, 애국이라는 의미는 ‘전체를 개인이나 소수자보다 더 우선하는 위치에 놓는 것’,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 등으로 제시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그는 ‘원초적 집단정서에 호소하는 이러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는 대한민국이라는 민주 국가에 선행하는 ‘우리 민족’이라는 개념으로 공동체성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적 가치를 전혀 포함하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결론적으로 연구자는 2015 교육과정에 따른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는 대한민국 국가공동체의 정치적 정체성, 민주주의와 헌법적 기초에 대해 완전한 공백을 드러내며 철저히 침묵함으로써 국가에 대한 충성을 ‘민족 전통에 대한 자긍심’과 ‘국가 경제 발전’으로만 설명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즉 현재 교과서에서는 국가공동체를 문화와 조상을 공유하는 원초적인 집단으로서의 민족공동체만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헌법과 정부를 가진 정치적 결사체로서의 국가로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애국심 교육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정치적 공동체의 기반으로 제시하지 않고 원초적인 집단정서에 호소하는 민족주의적인 애국심 교육의 문제는 삭제된 2009 교육과정의 4학년 애국심 단원에서도 드러나 있었다. 이 단원에서는 1) 우리나라의 상징인 무궁화, 애국가, 태극기 등에 대한 정서적인 학습경험을 통해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키우며 2) 우리나라의 우수한 조상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게 함과 동시에 3) 개인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가치판단을 하는 학습활동으로 이루져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과 국가의 관계를 다루는 부분에서 가정이 소중하듯이 조국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고 제시해 국가를 가정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도록 한다거나, 에너지 절약을 소재로 개인의 편의보다 에너지 부족국가인 국가의 이익을 우선 생각해 낭비를 줄여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국가의 정체성을 경제 공동체로서만 드러내고 있었다는 점이다.
2009 교육과정의 도덕교과 애국심 단원의 교사용지도서에서는 ‘우리나라와 문화의 우수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가 속한 정치공동체로서의 국가를 사랑하고 그것의 존속과 발전에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애국심 단원에서 국가를 정치공동체로 규정짓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기반이 되는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가 분명히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은 현행 도덕 교과서 텍스트가 드러내고 있는 문제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애국심 교육에서 원초적 민족 정서만을 강조하는 것이 문제가 됨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도덕 교과 학습 내용의 영역 구분이 자신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사회와 공동체와의 관계, 그리고 자연과 초월과의 관계로 되어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개인이 속한 공동체로서의 국가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갖도록 하는 정서적 접근이 배제될 수는 없다고 보인다. 이러한 자연발생적인 감정은 국가가 지향하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동의로 발전될 수 있는 동기적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개정에서 이루어진 애국심 단원의 삭제는 애국심 교육에 대한 정서적 접근의 공간도 사라지게 하였을 뿐 아니라 정치공동체로서의 국가의 정체성을 제시할 가능성의 공간마저도 없애버린 셈이다.
민족주의적 애국심 교육의 대안으로 관련 연구자들은 공화주의적 애국심 교육을 주목한다. 공화주의적 애국은 종족과 인종에 대한 애착과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소속된 국가의 자유로운 정치 체제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또한 “공화주의적 애국은 정치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평등한 관계, 즉 지배 관계가 없는 곳에서 나타나는 것이고, 따라서 공화주의적 애국은 이러한 자유와 평등 그리고 법질서가 모두에게 이익이고 모두의 참여 속에서만 가능한 제도임을 인식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와 문화에 대한 애착이며 사랑(김경희 2009, 101)”이라고 한다. 따라서 초등학교에서의 애국심 교육에서는 아동들이 그가 속한 국가공동체에 대한 건강한 도덕적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헌법적 가치를 제시하고 정치공동체로서 국가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할 수 있는 요소가 보완되어 교육과정에 다시 복원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화와 통일시대의 애국심 교육
최근에는 세계화와 통일시대를 대비해 어떻게 애국심 교육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즉 어떻게 세계시민교육, 통일 교육과 함께 애국심 교육을 상호보완적으로 해나갈 수 있겠느냐의 문제이다. 애국심 교육이 맹목적인 민족주의로 나아가지 않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실현되는 공화주의적 애국심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애국심 교육은 세계시민교육이나 통일 교육을 약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강화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이웃 국가와 북한의 자유와 안녕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함으로써 세계시민의 책무와 통일에 관한 관심과 열정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간혹 기독 교사들이 통일 단원을 기독교적으로 재구성하는 활동을 하면서 단편적으로 ‘하나님은 형제간의 분열을 미워하시기 때문에 하나의 민족으로 민족통일을 이루는 것’이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보다 우선한다는 식으로 통일 단원을 재구성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애국심 단원에 대한 기독교사들의 잘못된 오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살 곳을 재어주셨고(시 16:6)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속하게 하신 민족과 국가를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만일 그 민족과 국가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짓는다면 그 땅을 위하여 우리는 그 악한 길에서 떠나 회개로 나아가야 하고 그때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그 땅을 고치신다고 약속하셨음(대하 7:14)을 기억해야 한다.
<junghyo@ewha.ac.kr>
글 | 김정효
이화여자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교육과정/초등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기독교학문학회 교육분과장과 국가인성교육위원회위원, 이대부속초등학교 교장과 한국초등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교수이다. 주요저서로는 <초등교육이란 무엇인가>(교육과학사), <세계관으로 본 교육>(교육과학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