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다음 세대를 건져내는 샤밧(Shabbat)의 시간
2020-05-22
월드뷰 05 MAY 2020●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2 |
글/ 김수인(영어교사)
특별할 것 없는 그러나 일상에서 가장 특별한 샤밧 의식
금요일 오후가 되면 예루살렘 거리의 상점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한다. 성스러운 안식일을 미리 준비하기 위함이다. 키 큰 검은 모자를 쓰고 배배 꼬인 구레나룻을 기른 유대인 남자들은 안식일을 준비하기 위해 마트에서 빵과 포도주 그리고 간단한 식료품들을 미리 사기에 바쁘다. 쇼핑을 끝내고 길을 나서면 골목 곳곳에는 꽃다발을 가득 담은 리어카들이 곳곳에 서 있다. 매주 있는 샤밧(Shabbat)에 아내에게 꽃 선물을 하는 남편들을 위한 것이다.
유대인 남편들은 금요일, 아내에게 줄 아담한 꽃다발을 고른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로맨틱한 민족이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몰랐을 것이다. 아내를 순전히 기쁘게 하는 것이 꽃과 같이 실용적이지 않은 선물이라는 것은 만국 공통인 것 같다. 이 꽃은 아내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안식일 저녁 식사의 테이블을 풍성하게 장식한다.
금요일 저녁 해가 떨어지면 거리가 한산해지고 유대인 남자들은 회당으로 모인다. 그들은 지난 2천 년간 민족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킬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가정과 이스라엘 이웃들의 평안과 성전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다. 랍비가 인도하는 집회가 아닌 회당에 함께 모여 토라를 읽으며 조용히 몸을 앞뒤로 흔들며 경배를 표하고 다시 기도에 전념한다.
남자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아내들이 촛대에 불을 밝히면 가족들 간의 샤밧 의식이 시작된다. 사실 의식이라는 말은 좀 부담스러울 정도로 일상의 예배를 소박하게 진행하는 시간이다. 이웃에 살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오시고 3대가 모여 낮은 단조풍의 히브리 성가를 악기도 없이 함께 부른다.
가족 모두가 함께 나누어 먹을 수 있는 큰 할라(Challah) 빵을 3~4대가 함께 떼어먹고 포도주를 나누어 마신다. 샤밧 음식이라고 따로 정해진 것은 없다. 유대인들이 평소에 즐겨먹는 코셔(Kosher) 음식들을 조금 더 정성스럽게 해서 먹는다. 코셔 음식은 레위기 11장, 22장, 신명기 14장에 기록된 도축과 조리 방법을 그대로 따라 요리한 것을 말한다. 우리네 정서로 치면 잔치 음식을 풍성히 차려놓고 샤밧 저녁에 가족들끼리 함께 먹으며 만찬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자녀들을 테이블 주변으로 세워놓고 아버지가 돌아가면서 자녀들의 머리 위에 성유 기름을 바르며 축복 기도를 해준다.
자녀를 축복으로 여기고 피임을 거의 하지 않는 유대인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계속 태어나고 여인들은 가족을 위해 수많은 집안일을 감당한다. 토라와 탈무드 그리고 유대 경전만 연구하는 남편을 대신해 상당수가 경제 활동도 감당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아내는 가족의 중심이고 허리다. 특히나 초 정통파 유대인(하레딤)의 남편들은 토라와 탈무드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주로 종사하고 하루의 많은 시간을 경전을 읽고 연구하는 일에 할애한다.
유대인 남성들은 신명기 24장 5절 말씀을 따라 결혼 후 1년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토라와 탈무드를 읽고 연구한다. 그 기간 동안 유대 공동체에서는 새 가정의 생활비를 지원해 주고 한 가정의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도록 훈련하고 가르친다. 유대인 남편들은 결혼하면 가정의 영적 지도자로서 아내와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도 도우며 아이들 교육과 신앙을 책임진다. 새로운 가정을 위해 공동체가 1년의 생활비를 지원해 주는 커뮤니티는 세계에 없을 것이다. 이들은 가정을 새롭게 태어나는 유대의 신앙 공동체로 여기고 기꺼이 지원한다.
대가족 속에서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유대 가정과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가정은 이러한 안식의 겨를이 없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직장일과 교회 사역에 바쁘고 어머니들도 맞벌이하랴 가사일하랴 아이들은 늦은 저녁까지 학원가를 배회하다 휑한 집에 들어간다.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서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종교심이 강하지만 그들의 신앙심은 결코 회당 중심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가족 예배가 신앙의 중심을 이룬다.
샤밧, 일상의 모든 일을 멈추고 영원한 시간을 바라보는 일
전쟁 중에도 피난 가는 것을 멈추고 가족들과 안식일 샤밧을 지켰던 것은 오랜 유대인의 역사에서 유명한 일화이다. 1967년, ‘6일 전쟁’을 준비하며 이스라엘 모세 다이안 장군은 전쟁을 6일 안에 마치게 하여 돌아오는 샤밧을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 기도 덕분인지 기적적으로 6일 만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샤밧의 전통을 수천 년간 목숨처럼 지켰던 비결은 샤밧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언약의 시간, 하나님께 들어가는 시간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들을 지켰다’고 고백한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소중히 여겼기 때문인지 그들은 2천 년간 민족을 소중히 지킬 수 있는 축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지키는 샤밧은 결코 대단한 종교 행위나 의식이 아니다. 가족들과 할라와 포도주를 나누고 아버지들이 토라의 말씀을 통해 선조들이 섬겼던 하나님에 대해 나누고 자녀들을 한 명 한 명 안수하고 축복 기도를 하는 것이다. 창세기 48장의 야곱이 자녀들에게 주었던 축복의 기도와 같이 아버지의 입술로 선포되는 축복과 격려를 통해 아이들은 자존감과 안정감을 키워간다.
샤밧은 대단히 복잡하고 의식을 강요하거나 난해한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선조들은 수천 년간 이 율법을 지키며 살아왔고 그것이 우리가 살아온 방식이며 앞으로도 우리 민족의 가야 할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그 속에는 자신들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율법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루와 같이 치셨던 뼈아픈 민족의 경험도 전한다.
유대인 아버지는 경전을 읽는 모습의 본을 보여주고 자녀들과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한다. 부모들은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토라와 탈무드로 하브루타 문답을 하면서 자녀들의 모든 질문들에 대해 일일이 대답해 주며, 그들의 역사와 문화, 민족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함께하시고 또 메시아로 오실 것이라는 소망을 전한다. 인류가 겪은 많은 질문들을 담고 있는 토라 경전을 읽으며 자신의 질문들에 대해 경청하고 답해주는 어른들과 소통하면서 아이들의 생각과 통찰은 빠르게 확장되어간다.
샤밧 안식은 세대를 넘나드는 연대와 신뢰, 끊임없는 소통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의 뿌리를 알고 그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시간이다. 금요일의 해가 떨어지는 샤밧 안식의 시간 동안 모든 것이 멈추어진다.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는 것도,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것도, 보일러를 켜는 일도, 심지어는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를 끊어 쓰는 일 등 자신의 육체를 위한 일체의 행위도 허용되지 않는다. 너무 융통성이 없다 싶을 정도로 문자적으로 지키는 것 같아 보이지만 나름 그러한 형식을 따르면서 형식에 담고자 했던 본질이 체득된다.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는 소극적 종교 행위가 아니라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라는 세속의 요구와 물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시간이다. 유대인들이 겪은 고난과 핍박의 역사도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인 샤밧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위함인 경우가 많았다.
샤밧은 흘러가는 세속의 시간을 거슬러 영원의 시간 속에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이다. 샤밧이 어떠한 것들보다 우선되어 유대인의 역사 속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젖먹이일 때부터 몸에 배어있는 의식이자 마치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혈연처럼 그들에게 연결되어 세대에서 세대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대단한 설교자도, 메시지도, 화려한 음악과 찬양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거룩한 날을 지켜 말씀에 기록된, 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가족들과 상기하고 가족 공동체가 함께 말씀 앞으로 나아온다. 샤밧 속에서 자라난 유대의 다음 세대 아이들이 스스로 증언한다. 그들 스스로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지켜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고 말하며, 자신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지금 한국 교회 다음 세대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오늘날 한국 교회는 다음 세대의 신앙 교육을 많이 우려하고 있다. 복음화율 4% 미만을 미전도 종족으로 보는데 2012년 기준 대한민국의 청소년 복음화율은 3.8%에 지나지 않는다. 이 시대의 진짜 땅 끝은 바로 내 자녀의 방이라는 웃픈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지금 한국 크리스천 가정의 일상을 돌아보면, 한때 있었던 한국 기독교의 폭발적인 성장이 왜 지속 가능한 것이 아니었는지에 대한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 시대를 살아가는 다음 세대의 언어와 소통의 방식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어제의 지식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은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은 또 어떤 것을 따라가야 할지 알 수 없는 혼돈의 시대에 아이들은 적응해야 할 것이다. 가정과 결혼의 가치가 훼손되고, 파편화된 개개인들이 최고라고 하며, 세속의 가치가 물밀듯이 밀려오는 가운데 어떻게 가정 공동체와 다음 세대를 건져낼 것인가?
한국의 크리스천들을 보면 아이들은 교회 프로그램에 맡겨놓고 수많은 교회 행사와 프로그램, 달콤한 멜로디의 찬양, 지식과 위트 넘치는 설교 말씀들로 신앙을 전수하려고 하지만, 유대인들이 지난 수천 년 간의 역사를 통해 증명한 매우 자명한 사실은 바로 자녀들은 부모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워진다는 것이다.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 말씀을 지키는 경건의 훈련,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앙은 부모들의 입과 손에서 나오는 축복으로부터 형성된다. 그들은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초림의 하나님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 약속을 기다리는 상태라는 점에서 우리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그 약속을 향한 간절함과 진중한 태도에서 오랜 역사를 견디어 온 시간의 무게가 느껴진다.
하나님과의 언약 그리고 그것을 지켜내는 것의 의미를 누구보다도 더 깊이 이해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삶은 오늘날 신앙을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야 할 사명을 가진 한국 가정들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가를 알려준다. 숱한 환란과 핍박의 역사를 거치며 지난 수천 년간, 갈대 상자에 담겨 떠내려간 아기 모세를 묵상했던 유대인들. 가정과 다음 세대에 대한 우려와 혼란이 계속되는 한국 사회는 이들에게서 지혜를 얻을 필요가 있다.
<kim2shine@gmail.com>
글 | 김수인
현직 영어 교사로,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글로벌교육협력 석사 과정에서 시민교육을 전공하고 있다. 9차 개정교육과정 영어 능률교과서 집필위원과 바른교육학부모연합 연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데릭프린스의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복의근원, 2014)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