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 함께 치욕의 영문 밖으로

주님과 함께 치욕의 영문 밖으로

2020-01-10 0 By worldview

“신학자의 혀가 맵다고 뽑으려 하지 말라”


월드뷰 01 JANUARY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5


글/ 이명진(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


최근 개혁주의 신학대학인 총신대에서 기독교윤리를 가르치는 이상원 교수를 성차별, 성희롱 발언 교수로 지목하는 사건이 있었다. 창조질서에 입각한 의학적, 생물학적 지식을 전달한 교수의 강의 내용을 성차별이라는 세속적 판단범주에 끼워 넣고, 성희롱이라는 상식에 벗어난 음해성 주장을 하는 학생들의 행태에 큰 실망과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더욱이 기독교 가치관과 윤리를 가르치는 대학에서 정당한 교수권에 대항하는 이러한 일부 학생들의 불순한 행태에 충격을 금할 수 없다.


사건의 진행


사건의 진행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은 이들의 행동은 사전에 치밀한 준비와 계획이 있었지 않았나 하는 판단이 된다. 이들은 쉽게 연결되기 힘든 주요 여러 언론매체에 정보를 제공했고, 동시다발적으로 비슷한 내용이 뉴스로 보도되었다. 여러 언론매체는 검증도 하지 않고 여과 없이 방송을 쏟아 냈다. 총신대학교는 학생들의 일방적인 피해 주장을 받아들여 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누가 봐도 우려스러운 마녀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교수를 성희롱 교수로 낙인찍어 내려 앉히기 위한 전형적인 인민재판과 같은 계획들이 착착 진행되고 있어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한평생 주님의 얼굴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온 이 교수의 올곧은 신앙과 신학자의 결기를 너무 얕잡아 보았다. 이 교수는 대자보로 학생들에게 신학자이자 가르치는 자로서 따끔한 지적과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또한 이 교수와 함께 복음을 지키고 좁은 길을 걸어온 복음주의 진영의 항의가 이어졌다. 성희롱을 주장한 학생들의 주장과 달리 같은 내용의 강의를 수강했던 다른 학생들과 원우회, 반동성애 운동 단체들과 생명윤리 단체의 강력한 항의 성명과 기자회견이 있었다.

2019년 11월 26일 성산생명윤리연구소는 다음과 같은 <총신대 사건에 대한 성산윤리연구소 입장>을 발표하고 총장과 총회장, 동창회장에게 의견을 전달했다.


1. 총신대학교는 학생의 입장을 벗어나 정당한 교수권에 대항하며, 학문적 표현을 왜곡하는 학생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엄중한 책임추궁과 징계를 통해 교수들의 정당한 교권이 침해받지 않게 하라.

2. 총신대학교는 이 교수의 강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을 지도하고 해당 학생들의 반성과 진솔한 사과를 요구한다.

3. 총신대학교는 기독교 대학으로서 이러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신학적 교리를 더욱 확고히 하여 대학 설립의 취지를 수호하라.


하지만 학교 당국은 성산생명윤리연구소와 여러 단체의 진심 어린 요구에 전혀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무언가 억지로 꿰맞추어 가는듯한 총신대 이재서 총장과 학교 당국의 행보에 실망을 금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십계명 중 제9계명에는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고 했다. 2000년 전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던 유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진실을 알면서도 광기에 찬 목소리에 눌려 등을 돌린 빌라도의 모습을 이번 총신대 사건에서 보는 것 같다. 중국의 문화혁명이 이렇게 진행되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입만 열면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정치권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오고 있다. 이 사건을 주도한 학생 중 일부는 성정치를 주장하는 모 정당의 직책을 맡고 있다는 소식도 들렸다. 대학 당국이 구성했던 대책위원회 구성을 보더라고 이미 짜 놓은 올가미로 밀어 넣고 있다는 의혹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진실과 신앙의 양심을 외면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차 이재서 총장과 총신대 당국에 총신대 사건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며, 이재서 총장과 학교 당국의 미온적이고 의심스러운 행보를 강력히 규탄했다. 이재서 총장과 학생들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급기야 총장이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여러 단체에서 대책위원회 구성원의 문제를 제기하며 항의하자 부랴부랴 대책위원회를 재구성했다. 성희롱을 주장한 학생들이 빠지게 되었다.

재구성된 대책위원회는 2019년 12월 13일 이 교수의 발언은 “성희롱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대책위원회의 결정은 일방적으로 이 교수에 대해서만 잘못이 있는 것처럼 사족을 붙였다. (이 교수의 발언은 성희롱이 아니다. 그러나 학생이 불편함을 느꼈으므로 부적절하며 대학부 수업에서 분리시킨다. 교수로서 학생에 대응하는 태도가 부적절하므로 갈등을 조장한다. 진영논리는 학교에 해를 끼쳤으므로 별도로 다룬다.) 징계위원회 회부를 안 한다고 결정했지만 실제적으로 교수권을 빼앗고 불이익을 주려는 불순한 의도가 담긴 내용들로 가득 찼다. 학생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했기에 강의가 부적절하다고 대학부 수업에서 분리시키겠다는 결정에 동의하기 힘들다. 성희롱이라는 낙인을 찍어 교수의 입을 막고 학생들의 취향에 맞춘 강의를 주문하고 있다. 성희롱이라는 누명을 씌운 학생들의 행태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없다. 대책위원회에서 ‘성희롱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면 후속 조치로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을 불러 이들의 신중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했다. 교권을 침범하고 교수의 명예를 실추시킨 일에 대해 정중한 사과와 반성, 이후 학생의 신분을 넘어선 행동을 자제할 것을 엄중히 경고했어야 했다.

개혁주의를 내세운 총신대에서 생산되는 이 교수의 신학 논리와 기독교 논리는 미국의 메이첸(John Gresham Machen, 1881-1937) 교수에 버금가는 수준인 것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생명윤리 영역에서도 성경적 가치관과 교리를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대쪽 같은 신학자이자 목사다. 평생 기독교 윤리와 기독교 생명윤리를 위해 연구하고 강의해온 이 교수의 강의 내용은 동성애 옹호 진영에게는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어떤 성향의 사람이고 어떤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그 사람의 친구들을 보고 삶 속에 맺어지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교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의 평소 활동과 성향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으며 학교 당국이 대책위원회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박 모 변호사의 성향을 보아서도 합리적 추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대책위원회의 조사결과를 보고 받은 관선 이사회에서 대책위원회 결정을 거부한 것이다. 이들은 “현재 절차를 밟는 중이기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번 사건은 철저하게 피해자 관점에서 들여다볼 것이다. 엄격하고 엄중하게 보고 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향후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모르지만 이런 일이 왜 발생하였으며, 어떤 영향을 총신대에 끼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왜 총신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을까?


첫째, 총신대학교가 신학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다. 청교도들의 눈물과 기도와 희생으로 세워진 프린스턴 대학의 세속화 과정을 살펴보면 좋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프린스턴 대학은 1746년 장로교도들이 목사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신학교에서 시작된 학교다. 미국의 독립선언서 내용에 기독교 정신을 넣는 중요한 역할을 한 학교다. 이런 학교가 명문대로 성장을 했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세속화된 대학으로 변질된 상황이다.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지도자가 대학 총장이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대학 지도자의 영적 분별력이 떨어질 때 사탄은 여지없이 침투해 들어온다. 바른 교리를 추구해야 할 신학교가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세상과 타협하기 시작할 때, 작은 누룩에 점령당해 버린다. 신실한 장로교도들의 눈물과 신앙으로 세워진 신학교가 바로 서지 못하고 혼합된 신학에 맥없이 무너져 버린 교훈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프린스턴 대학의 주류를 형성한 자유주의 신학자그룹은 복음주의 신학자 메이첸(John Gresham Machen, 1881-1937) 교수를 핍박하기 시작했다. 소금의 맛을 버리고 관용하고 포용하라고 요구했다. 메이첸은 모세처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다. 좁은 길을 택했다. 메이첸의 신앙은 살아 전해지고 있고 프린스턴 신학교는 죽어버렸다. 소금의 맛을 잃어버리면 길가에 버려지게 된다(눅 14;43). 소금의 맛을 잃지 않고 화목해야 한다(막 9;50).

둘째, 세속주의 세계관과 기독교 세계관이 충돌하고 있는 현상이다. 성정치 이론에 매몰된 그룹의 주장이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세상은 성(性)을 무기로 성도와 가정과 국가를 무너뜨리려고 다가온다. 제일 먼저 공격하는 대상은 목사와 신학교다. 신학교가 바로 서야 바른 목사가 나오고, 바른 목사가 바른 설교로 바른 신앙인을 세운다. 1973년 미국에서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 역시 교회의 영향을 받은 판결이다. 청교도적 신앙을 바탕으로 건국한 미국에서 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일까? 남침례교가 미국 기독교 교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1960년대부터 70년대 말까지 남침례교 신학교와 교단 총회에는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좌파 신학자와 교계 지도자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들은 낙태에 대하여 상당히 유화적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이들의 설교를 들은 정치인들과 법관들 역시 낙태 허용에 대해 유화적인 입장에 서게 된다. 신학적 입장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중요하다. 신학이 바로 서야 신앙인이 바로 선다.

셋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는 현상이다. 법과 규정을 들고나온다. 내가 피해를 입었다고, 감정이 상했다고 처벌을 요구한다. 차별금지법이 아직 제정만 안 되어있지 실제적으로는 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학술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현상이다. 신앙의 자유와 예배를 자유롭게 드릴 수 있는 자유는 신앙의 선배들이 피 흘리기까지 싸운 결과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신학자의 혀가 맵다고 혀를 뽑으려 하면 안 된다. 진정한 신앙인은 비록 몸은 죽여도 영혼을 죽이지 못 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마 10:28).


맺음말


다른 영역에서 이런 방법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상대를 잘못 집은 것 같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상원 교수는 비록 향후 어떤 결론이 날지 모르지만,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과 불명예를 감수하더라도 주님과 함께 치욕의 영문 밖으로 나갈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교수와 같은 길을 걷는 제2, 제3의 이상원 교수가 나와 총신대를 무너뜨리려는 세력과 맞설 것이다.

존 낙스를 핍박하던 영국 여왕 메리가 중병으로 죽어가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존 낙스의 기도는 100만 명의 군대보다 더 두렵다.” 지금도 이 교수를 위해, 진리를 지키고 총신대를 지키기 위해 세상에 무릎 꿇지 않은 성도들의 기도가 끊임없이 주님의 보좌로 올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이제 깨어있는 총신대 교수들과 학생들의 신앙의 양심과 학자의 양심에 호소한다. 신앙의 양심에 따라 두려워하지 말고 같은 목소리를 내어 주기를 바란다. 좁지만 바른길로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가 있을 때 가는 길이 험하고 어려워도 힘이 나게 된다.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해야 한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행 18:9-10)

침묵은 암묵적 동의이고 악과 타협하는 행위다. 지금 바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눈감아 버린다면 총신대의 미래는 점점 어두워지고 신학교의 정체성을 상실할 날이 급속히 다가올 것이다. 주님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주님의 보좌 앞에 정직한 모습으로 나아갈 때, 우리 모두는 주님의 보혈로 싸매지고 회복될 수 있다. 깨어진 자, 모난 자, 병든 자, 슬픈 자 모두 예수님의 보혈로 거듭나기를 기도한다.

<mnose1@hanmail.net>


글 | 이명진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후 현재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개원하고 있으며, 의료윤리연구회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의사평론가로 여러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으며, 방송 출연과 윤리 강연, 저술활동(이명진원장의 의료와 윤리 II 외 3권)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