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2018-07-02 0 By worldview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월드뷰 07 JULY 2018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ISSUE 8

 

오성훈/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 사무총장

 

체제분단 70년과 대전환기

성경에서 ‘칠십 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다니엘 9장의 민족적 차원의 중보기도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칠십 년(렘 29:10)”의 의미를 깨달으면서 시작되었다(단 9:2).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에 의해 1차 포로로 사로잡혀 갔던 B.C. 605년부터 바사 고레스 왕의 귀환명령이 내려진 B.C. 538년까지를 약 70년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 솔로몬성전이 완전히 훼파된 B.C. 586년부터 1차 귀환자들에 의해 스룹바벨 성전이 재건된 B.C. 516년까지가 꼭 70년이다.
한민족은 유난히 이스라엘의 역사와 많은 공통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성경의 70년을 한반도의 상황에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특히 구약학자들은 이런 접근에 대해서 큰 우려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도 그 만물을 다스리고 계신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보면, 체제분단 70년이 차는 올해에 긴박하게 벌어지고 있는 대전환의 기회가 그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북한 신년사로부터 평창 동계올림픽을 지나, 두 차례에 걸친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숨 가쁘게 시간이 흘러갔다. 과거 북한의 외교행태와 전혀 다른 김정은의 파격적인 행보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도 적극 지지하고 있다. 국내 정치적으로는 6.1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심은 대통령 탄핵 이후 철저한 자기반성과 환골탈태를 등한시 했던 보수정당에 철퇴를 내렸다.

통일문제의 영적 이해

거듭난 크리스천들은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 정치‧경제‧사회‧문화‧외교‧군사와 같은 가시적인 영역과 함께 영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성경은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 6:12)”을 상대하는 영적 전쟁이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광야에서 물질욕, 권세욕, 명예욕으로 예수를 시험했던(마 4:1~11) 사탄은 거짓과 증오, 우상숭배 등 가용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한반도를 분열의 땅으로 묶어두려고 한다. 이런 영적 시각이 열려야만 분단의 빗장을 풀어낼 수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은 88서울올림픽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한민족에게 주신 선물이었다. 서울올림픽은 전 세계적인 동서냉전을 종식하는 기회였고, 평창올림픽은 남북이 높게 쌓아올린 불신과 증오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여전히 통일문제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북한의 문이 열리고, 그 땅에 교회가 회복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한편으로 이념의 종노릇하며 북한 정권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인다. 북한의 김정은이 제아무리 잔악한 독재자라할지라도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만물을 지금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뜻을 어찌 거스를 수 있겠는가.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 가시는 복음 통일의 길을 오히려 열심히 기도한다는 그리스도인들이 틀어막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새 부대를 준비해야 한다.

복음의 본질 회복

필자는 북한은 한국교회가 얼마나 복음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는지를 비추어 주는 거울로 이해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자기 육체를 허물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가로막힌 담을 허물었다(엡 2:14). 복음의 본질적인 방향은 돈과 권력과 명예가 있는 ‘중심’을 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난하고, 억눌려있으며, 고난당하고 있는 약자들이 있는 ‘주변’을 향한다. 십자가 정신은 낮아짐이요, 비움이며, 섬김이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남과 북 사이에 더 높은 담을 쌓으려고 한다. 끝없이 높아지려고 하고, 채우려고 하며, 다스리려고 한다. 정치권력과 가까이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하면서 사실상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하나님께서는 깨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에게 작금의 한국교회가 복음의 본질에서 얼마나 멀리 벗어나 있는지, 그 진면목을 가감 없이 보여주신다.
무기노동 교화형을 선고받고 31개월을 북한에 억류되었던 임현수 목사의 눈에 비친 한국사회와 교회는 통곡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극단적 대립, 거짓과 사기, 음란과 탐욕과 더러움, 사치, 부정부패, 청소년 폭력, 일확천금, 일상화된 중독… 그 원인을 어둠이 덮고 썩어버린 교회와 목회자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사회와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그는 이 시대를 “대한민국 반만년 역사 가운데 가장 죄가 많은 때가 아닌가 싶다”라고 썼다.한국교회가 “배역한 이스라엘은 반역한 유다보다 자신이 더 의로움이 나타났나니(렘 3:11)” 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이 반역의 길에서 돌이켜야만 한반도에 희망이 있다. 한국교회가 중심을 향하는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복음의 주변성’을 회복하는 영적 갱신을 이루어야만 한반도에 평화통일이 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기 때문이요, 분열과 증오, 우상숭배로 가득한 남과 북에 진정할 샬롬을 가져오게 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십자가의 복음으로 거듭난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들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믿음의 본질이요, 진리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20년 가까이 기도사역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성령님께서 북한과 통일을 위한 기도시간 중에 70%는 우리 자신과 한국교회, 한국사회를 위한 기도로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교회가 복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남북 간 교류 확대와 북한의 변화 가능성

앞서 언급했던 국내외 환경의 변화로 남북 간 교류는 급속도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이들은 이런 변화가 북한 김정은의 독재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 북한 주민들과 지하교회 성도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해방의 날을 지연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체제의 악마성을 깊이 통찰한다면, 그 체제가 아무리 어려운 상황을 만난다 해도 지도부만 망하고 주민들은 해방되는 그런 상황이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있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없다”는 김정일의 말은 결코 허풍이 아니다. 북한은 여타 독재국가와는 확연히 다르다. 북한은 종교화된 유일체제이다. 교리와 같은 사상을 중심으로 정치와 군사 영역이 모든 다른 영역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그러기에 튀니지나 이집트처럼 독재자만 축출되고 민주화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만약 북한이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서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계속하고 한미와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의 고삐를 더욱 죄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일차적인 피해가 핵심계층에게 가겠는가, 아니면 일반주민들에게 가겠는가.
이것은 마치 계란을 삶는 것과 같다. 일반적으로 계란을 삶을 때 겉에 있는 흰자위가 먼저 익고 나서야 안에 있는 노른자위가 익는다. 즉, 북한의 독재정권(노른자위)이 급변사태에 의해 무너진다는 이야기는 곧 북한의 일반 주민들(흰자위)은 이미 다 죽고 없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계란의 흰자와 노른자가 오묘하게 조화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부화시켜야 한다. 21일간 암탉이 알을 품으면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게 된다. 이 때 병아리가 되는 것은 흰자도, 노른자도 아니다. 흰자와 노른자 사이에, 정확하게는 노른자 위쪽 꼭대기에 양막에 싸여있는 ‘씨눈’이 있다. 이것이 자라서 병아리가 된다. 흰자는 초기에 수분과 탄수화물, 단백질에 관한 영양분을 공급하고, 노른자는 며칠이 지나 지방과 관련된 영양분을 병아리에게 공급한다. 이렇게 해서 부화된 병아리는 흰자와 노른자의 완벽한 조화이다. 북한을 계란으로 비유했을 때, 이 씨눈을 ‘파워벨트’로 명명할 수 있다. 이것은 김정은 정권을 지지하는 핵심그룹을 의미하는 ‘파워엘리트’에 대비된 개념이다. ‘파워벨트’는 파워 자체가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북한 사회에 전달하는 컨베이어벨트의 역할을 감당한다. 또한 역도선수들의 허리를 보호하는 벨트처럼, 점 조직화된 개혁 세력을 연결하여 변화의 주역이 될 중간 계층을 든든하게 지지하고 보호할 수 있는 연대된 세력을 의미한다. 이런 파워벨트가 북한의 각 분야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할 때, 더디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북한의 본질적인 변화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북 간 교류 확대는 파워벨트가 형성되고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계란과 같은 북한을 압박하여 깨트려버릴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사랑으로 품어서 부화시켜야 한다. 만에 하나 동서독처럼 북한 주민들이 다 으스러지기 전에 북한정권이 무너지고, 한국 주도의 통일이 이루어졌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천민자본주의의 온갖 더러운 것들이 먼저 그 땅과 주민들의 마음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돈의 위력에 눈을 뜨고 있는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김정일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자마자 맘몬을 다시 섬기게 될 것이다. 땅문서를 들고 자기 땅 찾겠다는 사람들과 자기 잇속을 차리기 위해 투기하려는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룰 것이다. 이런 모습은 결코 우리가 꿈꾸는 통일의 모습이 아니다.
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분명하다.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고, 새 포도주를 담을 새 부대로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는 길이다. 하나님은 분단의 빗장을 풀어낼 열쇠를 다른 어떤 누구에게도 주지 않으셨다. 오직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를 따를 수 있는 거듭난 크리스천들에게 주셨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문제다.

 

오성훈 | ’96 선교한국대회를 통해 북한선교의 사명을 받고, 서울신학대학교에서 모든 학위과정(M. Div., Th. M., Ph. D.)을 북한선교 연구로 한 우물을 팠다. 현재 예심성결교회 담임목사, 북한과 열방을 위한 중보기도네트워크(PN4N) 대표, 북한통일 전문 기독출판사 포앤북스 대표, 쥬빌리 통일구국기도회 사무총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저서 「하나님의 눈으로 북한바라보기」(포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