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과 국군 지휘관 3: 장도영 장군

6·25전쟁과 국군 지휘관 3: 장도영 장군

2020-08-19 0 By worldview

월드뷰 AUGUST 2020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1


글/ 안재철(월드피스 자유연합 대표)


장도영 국군 육군 보병 6사단장


6·25전쟁의 많은 전투 중, 고비마다 큰 획을 긋는 성공적인 전투가 있어 대한민국을 위기에서 구했다. 1950년 11월 말 갑작스러운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었다. 신임 리지웨이(Matthew Bunker Ridgway) 8군 사령관이 한국에서 패퇴하면, 미국까지도 위험하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직접 지휘관과 병사들에게 보냈다. 자극을 받은 유엔군과 국군은 다시 북진을 시작하였다. 중공군과 전투를 해 보니 인해전술로 덤비는 중공군이 별거 아니라는 확신도 갖게 되었다.

1951년 봄까지 중공군도 인명 상의 큰 피해를 보아, 중공군 조직 자체가 만신창이가 되어 6·25전쟁 당시 중공군을 지휘하던 팽덕회(彭德懷)는 더 이상의 공격을 주저하였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은 물론 자신들 병사들의 목숨마저도 하찮게 여기는 모택동(毛澤東)의 무모한 압력으로, 예비 병력을 포함하여 70만여 명의 3개 중공군 야전군을 동원하여, 1951년 4월 22일부터 중공군은 춘계공세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유엔군과 국군을 공격하며 몇 차례의 치열한 전투 끝에, 중공군은 투입병력의 3분의 1을 잃고 전의를 상실하였다. 자칫하면 북한 땅까지 모두 잃을 위협을 느껴 소련을 등에 업고, 1951년 6월 23일 유엔에서 휴전 협상을 제의할 정도였다.

중공군 춘계공세에 맞서 싸운 전투 중에 결정적으로 전쟁의 흐름을 바꾼 전투는, 장도영 장군이 지휘하는 육군 6사단의 용문산 전투와 바로 이어진 파로호 전투였다.

이 전투는 6·25전쟁의 가장 성공적인 전투 중 하나였고, 장도영 육군 6사단장은 6·25전쟁 중 최고의 지휘관 중 한 명이었다.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는 미 육군사관학교 전술 교범에 성공 전술 사례로 기록되어있을 정도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1951년 4월 화천댐. 중공군이 화천댐 북방을 장악하고 있어 화천댐 방류로 유엔군과 국군을 위협할 수 있어 위기의 상황이었다.
일자: 1951년 4월. 자료: <6·25전쟁과 대한민국의 꿈(안재철 저)>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전장을 직접 방문하며, 국군과 유엔군을 격려할 정도로 국가 위기에 철저히 대비하는 진정한 지휘관이었다. 중부 전선의 미 9군단과 국군 6사단을 방문하는 이승만 대통령과 무초 미국 대사.
일자: 1951년 5월 9일. 자료: <6·25전쟁과 대한민국의 꿈(안재철 저)>
1951년 5월 17~21일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로 국군 육군 6사단에 패퇴한 중공군 63군 3개 사단의 포로들이 강원도 화천에 있는 미 8군 직할 21포병 대대의 관리하에 있다.
일자: 1951년 5월 29일. 자료: <6·25전쟁과 대한민국의 꿈(안재철 저)>
1951년 5월 17~21일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로 국군 육군 6사단이 중공군 63군 3개 사단을 궤멸시키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항공 폭격 지원한 주한 미 공군 군사고문단장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이승만 대통령
일자: 1951년 5월 31일. 자료: <6·25전쟁과 대한민국의 꿈(안재철 저)>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


용문산 전투는 1951년 5월 17~21일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과 가평군 화야산 일대에서 국군 육군 6사단 2연대, 7연대, 19연대가 중공군 63군 예하 3개 사단(187사단, 188사단, 189예비사단 총 2만여 명)의 공세를 격퇴하고 패잔병 무리를 춘천 사북면 지암리를 거쳐 화천 저수지(현 파로호)까지 쫓아가 섬멸한 전투로, 6·25전쟁 초반 1년간의 엎치락뒤치락하며 치열했던 전면전을 마무리 지은 전투로 평가된다.

물론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은 미군의 전면적인 포병 지원과 항공 지원이라는 엄청난 물량의 화력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6·25전쟁은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 이후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리던 유엔군과 국군이 중공군과 북한 공산군을 밀어붙이기 시작하였고, 전쟁은 전면전에서 지금의 휴전선 인근 고지전으로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의 대대적인 승리로,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화천 저수지는 중공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로 이름이 바뀌고, 이승만 대통령 친필 휘호를 받았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자유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을 중국 공산당이 주도하는 동북아 공산연맹에 귀속시키려는 사람이 중국 공산당의 비위를 맞추려 ‘파로호’라는 이름을 없애려고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를 성공적으로 지휘한 장도영 육군 6사단장이 용문산 전투에 앞서 병사들에게 했던 훈시는 국가안보가 더욱 중요해진 위기의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내용이다.

“우리 민족은 고래(古來)로부터 왜 문약(文弱)하고 이민족의 침략을 당하고만 있었는가? 2,000년을 두고 모두 900여 회의 크고 작은 피침 굴욕의 비극을 겪으면서도, 단 한 번 능동적으로 적국 적진 유린은 고사하고, 우리를 노략질해가는 기지인 바로 눈앞의 대마도 한번 쳐들어간 역사조차 없다!

주변의 오랑캐들은 우리 민족의 이러한 유약(柔弱)하고 문약한 허점을 알고, 우리의 생활 터전을 짓밟아왔다. 참으로 한스러운 일이다.

이제 며칠 후, 우리는 조국과 민족의 천년의 원수 오랑캐와 조국의 사활을 건 일대 혈전을 벌일 것이다.

이번 싸움에서만은 여러분이나 나 사단장이나 ‘필승의 싸움’, ‘조국을 지키자는 기필코 이기는 싸움’을 하여야 한다. 이번 싸움에서 우리는 반드시, 그리고 크게 이겨야, 우리가 살고 조국을 구해낼 수 있다.

총 한 발이라도 적병의 가슴을 향해 정확하게 쏘아야 하며, 단 한 발이라도 더 많이 퍼부어야 한다. 일만 병사가 단 일발의 소총 사격을 제대로 쏘고 못 쏘고, 잘 쏘고 못 쏘고에 따라 전선이 수백 리 북상하기도 하고, 역으로 내려오기도 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하라.

나는 지난번 사창리 패전 이후, 고심 끝에 필승의 새 전술을 개발하였다. 나는 이번에 우리가 크게 이기고 위대한 승리의 선물을 조국에 안기게 될 것을 확신한다.

앞에 도열한 제군들의 불타는 결의와 적개심의 표출로 보아, 이번 싸움의 승리는 우리의 것임을 굳게 믿는다.

자! 나아가 싸우자! 그리고 승리의 기쁨을 후방 가족과 이 조국에 바치자!”

필자가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의 의미를 감격하며 기억하는 이유를,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의 ‘용문산 전투 전적비’를 통해서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용문산 전투 전적비’는 국내 전적비로는 유일하게 작전 중 산화한 장교 8명, 사병 322명, 종군자 2명 등 332명의 호국영령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용문산 전투 전적비’는 대한민국을 지킨 사람들은 어느 특정한 지위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지켰다는 자부심을 주는 역사의 현장이다.

특히 여기에서 종군자는 노무자 부대원을 의미한다.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모든 이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억하는 곳이어서,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의 의미가 더욱 감동을 준다.

1951년 5월 17~21일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로 국군 육군 6사단이 중공군 63군 3개 사단을 궤멸시키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장도영 육군 6사단장이 미 9군단장으로부터 공로 훈장(Legion of Merit)을 받고 있다.
일자: 1951년 8월 1일. 자료: <6·25전쟁과 대한민국의 꿈(안재철 저)>
미 9군단장으로부터 공로 훈장(Legion of Merit)을 받고 훈시하는 장도영 장군
일자: 1951년 8월 1일. 자료: <6·25전쟁과 대한민국의 꿈(안재철 저)>
1951년 5월 17~21일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로 국군 육군 6사단이 중공군 63군 3개 사단을 궤멸시키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장도영 육군 6사단장이 한국을 방문한 오성장군 오마르 브래들리 미 합참의장, 유엔군 사령관 리지웨이 대장, 미 8군 사령관 밴 플리트 대장 등 최고위층 지휘관 앞에서 전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미 합참의장이 방문할 정도로 용문산 전투와 파로호 전투 승리는 6·25전쟁 전세를 확고히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받았다.
일자: 1951년 10월 2일. 자료: <6·25전쟁과 대한민국의 꿈(안재철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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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안재철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받았다. 현재 The World Peace Freedom United(월드피스 자유연합)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6·25 한국전쟁과 대한민국의 꿈>, <생명의 항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