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 명의 유대인을 살린 대만인, 허펑산 이야기

4천 명의 유대인을 살린 대만인, 허펑산 이야기

2020-01-21 0 By worldview

악의 평범성과 선의 낯섦 사이에서:

4천 명의 유대인을 살린 대만인, 허펑산 이야기


월드뷰 12 DECEMBER 2019

● 기독교세계관으로 세상을 보는 매거진 | WORLDVIEW MOVEMENT 2


글/ 김수인(영어교사)


기독교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아니하든, 유대인 홀로코스트는 당시 기독교 국가임을 자처하던 독일 사회가 인종차별을 묵인했던 구조적 악의 범죄로 세계사에 기록되어 있다. 이 씻을 수 없는 비극은 안타깝게도 나치 독일의 히틀러 한 사람만의 범죄가 아닌, 정교한 관료제로 구성된 독일 정부의 모든 부서와 독일 교회의 일사불란한 협조 속에서 이루어졌다.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이히만 재판.


악의 평범성


독일 교회와 내무부는 독일 내 유대인들의 출생 기록을 제공하고 우체국은 유대인들의 추방과 시민권 박탈 명령을 신속히 전했다. 재무부는 유대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독일 기업들은 유대인들을 해고하였으며, 심지어 교육 기관들도 유대인 학생의 입학을 거부하고 유대계 교수를 해고하였다. 독일 제약회사들은 강제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계획하고, 각 기업은 수용시설 및 화장시설의 계약권을 따기 위해 입찰을 진행했다.

이렇듯 나치독일의 만행은 독일 사회 각계의 긴밀하고 신속한 협조 속에서 이루어졌다. 당시에도 많은 유대인은 독일의 정부 기관, 민간단체, 사회 집단, 학술 기관, 기업 등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었지만, 홀로코스트가 이루어질 때 독일은 유대인들과의 그 어떤 관계도 철저히 외면했다. 독일 사회는 유대인들이 추후에 그들을 위협할 반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허황된 두려움과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듯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대학살이, 무엇인가에 홀린 듯 이토록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하고, 어떠한 저항도 없이, 속전속결로” 진행되었다는 것이 홀로코스트의 가장 독특한 현상으로 이야기된다. 심지어 다른 어떤 학살과는 달리 유대인들에게는 개종의 기회나 학살을 면할 다른 선택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3, 4대를 거슬러 올라 유대인 조부가 있는 사람들이면 무자비한 학살의 리스트에 올라야만 했다.

유대계 정치 철학가 한나 아렌트는 그녀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1963)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심판대에 오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을 통해 독일 사회가 구조적인 악에 얼마나 취약했는지 고발한다. 아이히만은 죽음의 수용소에서 수백만 명 학살과 치클론-B 독가스 도입 및 운용, 리투아니아 8만 명 학살, 라트비아 3만 명 학살, 벨로루시아 4만 5천 명 학살, 우크라이나 7만 5천 명 학살, 키예프 3만3천 명 학살 계획 입안 등, 모두 15가지 범죄 혐의로 기소되었다.

많은 사람은 이토록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최고 실무책임자 아이히만이 사악하고 악랄한 성격의 인물일 것으로 추측했지만, 실제로는 지인들에게 다정하고 충성스럽고 선량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친숙한 모습으로 재판장에 나타났다. 사람들을 경악하게 한 것은 그의 악랄함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그의 모습이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구조 속에서 이런 평범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역사적인 전범자가 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고발함으로써, 악의 평범성이라는 이름으로 악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과 경계를 촉구한다.

이렇듯 유럽 전역은 죽음의 가스에 도취되어 그 순간만큼은 유럽 사회가 자랑하던 인본주의적 문화도 실종되었고, 근원과 실체를 알 수 없는 공권력 앞에 인간 존엄성에 대한 믿음은 비겁하게 무릎 꿇었다. 그들의 양심은 깊은 잠에 빠져든 듯했다.

오스트리아 중 영사 허펑산(1901~1997).


검은 눈의 쉰들러, ‘허펑산’


하지만 홀로코스트의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이런 불의와 비극에 인류애적 양심의 고통을 느끼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저항하며 많은 생명을 탈출시키는 데 기꺼이 동참한 이들이 있었다. 당시 오스트리아 주재 중화민국(현재 대만) 영사 허펑산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허펑산은 뮌헨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었고 독일 사회를 얼마간 경험했던 유학생이었다.

1938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남아있던 유대인들은 학대가 더욱 심해지자 타국으로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갈 곳 없는 이들은 여기저기 떠돌아 난민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문제가 되자 각국 대표들은 프랑스 에비앙에 모여 유대인 난민 문제 처리를 위해 회의를 시작했다. 32개국이나 모여 유대인들의 딱한 사정에 동정표를 던지긴 했지만, 2차 세계대전 직전 각국의 민감한 국제관계와 국익의 문제 앞에서 어느 나라도 선뜻 유대인 난민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회의는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나게 되었다.

이 회의 결과에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바로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이 회의를 통해 ‘유대인 없는 사회(judenrein)’를 주창하며 유대인을 완전히 말살하려던 계획을 더욱 강력하게 실행하는 데에 자신감을 얻었다. 에비앙 회의의 결과가 오히려 유대인 핍박에 대한 국제사회의 묵시적 동조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유대인들의 학살 또한 암묵적으로 가능하게 되었다.

허펑산은 자서전에서 어떠한 보호도 없이 오스트리아의 거리에서 무자비한 폭력과 학대를 받으며 목숨을 구걸하는 유대인들을 보고 심각할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목격했던 유대인들을 향한 증오와 폭력은 루터교인으로 성장했던 자신의 신앙관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지켜야 하는지 아니면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서라도 유대인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중화민국 영사관 건물의 주인이 유대인이었는데,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산을 몰살당하고 건물이 폐쇄되는 것을 목격한 허펑산은, 유대인 핍박은 도저히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자신에게 도움을 구하러 온 유대인들을 개인적으로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유대인들이 가장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상하이로 2~3개월 동안 거의 4000명을 도피시켰다. 당시 오스트리아에 남아있던 유대인들이 13만 명으로 추정되는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숫자였다고 볼 수 있으며 전후 비공식적인 도피를 고려하면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중국 당국의 압박과 함께 그동안 자신이 일구어놓은 모든 지위와 명성과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걸어야 했지만, 결국 절체절명의, 풍전등화와 같은 유대인들의 생명을 외면할 수 없어 이러한 모험을 감행한다.

그의 도움으로 4천 명의 유대인들이 중국으로 건너가 정착할 수 있었고, 앞서 와 있던 유대인들이 서로 도우며 다시 유대인 공동체로 회복될 수 있었다. 홀로코스트 가운데 어두워진 양심을 일깨운 그의 인류애적 용기와 선행은 이후에도 기억되어 이스라엘 정부는 상하이시에 감사를 표하고 2000년에 ‘야드바샴(Yad Vashem – 이스라엘을 도운 의인의 전당)’에 허펑산의 이름을 동양인 최초로 등록시켰다. 대만 정부는 2015년 허펑산에게 조국을 빛낸 이들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영광의 훈장’을 수여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가 작고한 1997년으로부터 수년이 지난 후 이루어졌다.

아우슈비츠.


선행을 위한 값 치름,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의 공통된 고뇌


인류 최악의 잔혹한 전범자 아이히만의 모습에서 의외로 친숙하고 평범한 인간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수많은 생명을 구했던 의인으로 칭송받는 위대한 허펑산의 삶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낯익은 고뇌들을 들을 수 있다.

허펑산은 자서전에서 그 당시 무엇이 가장 힘들었느냐는 질문에 양심을 따르는 일을 하는 가운데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꿈과 야망이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고백한다. 그 안에 유능한 외교관과 정부 관료로서 더 성장하고 싶은 입신양명의 야망들, 미래에 대한 두려움, 안전에 대한 걱정이 여지없이 그의 마음에도 짐이 되었다. 그러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것들을 과감히 버려야 했던 값 치름의 결단 속에서 한 생명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열정을 더 깊이 느끼게 되었다고 회상한다.

모두가 묵인하는 악에 동조하며 얻는 유익과 모두가 꺼리는 선행의 값 치름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은 어디를 돌아보아도 악이 만연해가는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들의 공통된 운명이 아닐까?

옳은 일을 하는 데에 필요한 용기는 참으로 낯설다. 하지만 한 그리스도인의 선한 양심과 용기를 통해 어두움으로 점철될 뻔했던 부끄러운 기독교의 역사가 미약하게나마 그 생명의 빛을 발하게 되었고, 이스라엘 회복과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는 소수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여전히 멈추지 않고 이어가고 있었음을 증명하게 되었다.

<kim2shine@gmail.com>


글 | 김수인

현직 영어교사로,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글로벌 교육협력 석사과정에서 시민교육을 전공하고 있다. 9차 개정 교육과정 영어 능률교과서 집필 위원과 바른 교육 학부모연합 연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데릭 프린스의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을 번역했다.